0. 프롤로그
2013년 1월 결혼 2년차를 달리는 우리는 세부로 겨울 휴가를 갔다. 리조트 안에서 뒹굴며 먹고 자고 수영하기만 반복하며 4박 5일간의 느긋한 휴가를 즐기고 한국으로 컴백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집, 회사를 반복하며 설명절을 보내고 2월이 되었다. 2월 중순 우리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사건으로 인해 다투었고 냉전을 거듭하고 있던 중 평소와는 다른 촉에 약국에 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3개 사왔다. 그날 밤 희미하게 보이는 2줄을 확인 하였으나 싸움의 여파로 이 사실을 함구한채 정확한 확인을 위하여 다음날 아침 첫 소변으로 다시한번 확인했다.(호르몬 상, 아침 첫소변이 가장 정확하다고 한다.) 이번엔 선명한 2줄이다. 남편에게 이 소식을 알렸고 둘 사이 미니미 탄생의 설레임과 함께 자연스레 화해하게 되었다.
수능 시험을 치르기 위해 노력한 치열했던 그 시기도, 생전 부산 바닥을 떠나본적 없던 뼈속까지 부산사람인 내가 취직을 위해 경기도로 상경했을때도, 기숙사 생활을 하다 지쳐 원룸으로 들어가 1인 가구 생활을 하며 보냈던 우여곡절의 기나긴 나날들도, 인생의 큰 전환점이였던 만 5년간의 연애 끝에 올린 결혼식도... 모두 포맷되버리고 내 삶에 가장 기억에 남는건 임신과 출산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나와 남편의 2세, 미니미다.
나에게만 특별하지 않은, 남들 대부분이 겪는다는 그 기간들이지만 밖에 나가지 못하고 이제 겨우 100일도 안된 생을 살고있는 미니미와 꽁냥거리며 쌓이는 스트레스를 PGR 눈팅으로 풀고있다가 문득 글이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져 글 한번 써보자 했다. 남편의 도움으로 컴퓨터와 모니터를 따뜻한 안방으로 옮기는 공사를 한 뒤, 맛난 식사 후 주무시는 미니미에게 음악을 틀어주곤 엄마는 키보드 앞에 앉았다.
1. 임신기
아기집이 보이지 않는 시기에 병원에 가게되면 한번 더 발걸음을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기에 (아기집이 확인되어야 임산부 수첩을 준다.) 일주일 정도를 기다렸다 병원에 갔다. 내 자궁 안에 작은 반지 모양의 아기집이 보였고 쑥스러움에 선택한 여의사 선생님은 이제 6주차로 접어들었으며 2주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6주라고? 아하. 놀고먹고자며 뒹굴거렸던 그곳 세부다! 태명을 고민하며 세부나 묵었던 리조트 이름을 생각해보지만 이건 좀 어색하다. 남편과 서로의 이름 하나씩 따보자 하니 태희가 나오는데 이건 더 이상하다. 건강이,튼튼이,사랑이 등등... 이건 너무 흔하다. 고심끝에 지은 이름은 @@. 태명 짓기에 너무 많은 생각이 들어 결국엔 그냥마냥 평범한 태명을 선택하였다.
8주쯤 되었을까? 꽃피는 춘삼월이라는데 나는 졸음과 울렁임과 싸우며 집과 회사를 오갔다. 회사 입사후 거의 매일을 달고 살았던 커피를 끊으니 졸음이 장난아니게 밀려온다. 거기다 알수없는 배멀기같은 미식거림에 회사에서 모니터 쳐다보며 집중하는것도 너무 힘들었다. 그냥 마냥 앉아서 시간아 지나가라 하며 멍하게 보냈던 시기다. 초기에 유산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라고들 한다. 특별히 무리 가지 않도록 조심히 긴장하며 다녔고 신발도 굽 낮은 플랫 슈즈로 변경하였다.
입덧이 그리 심하진 않아 평소처럼 잘 먹고 다녔지만 딱 하나 밥할때 밥통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 싫었다. 밥이 되고 있을쯤엔 안방에 들어가 숨어있었다. 남편은 왜 먹고픈게 없냐고 물었고 나는 길거리 분식이 주로 땡겼지만 아기를 위해 맵고 짜고 달고 카페인이 들어간 것들을 모두 멀리했다. 다른 이들은 땡기는게 있어 밤중에 남편 고생도 좀 시키고 그런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별로 안땡기더라도 사오라고 할걸 그랬나 싶다. 남편 괴롭힐 수 있는 추억거리 하나 줄어들어 아쉽다.
임신기간은 봄-여름-가을이다. 봄은 티가 별로 나지 않아 괜찮지만 여름부터는 옷이 문제다. 임부복을 살펴보지만 회사다니며 입기에 유치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거기다 배를 감싸는 늘어나는 복대를 덧댄 바지들은 도저히 입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런 이상한 거적대기를 걸치기엔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결국 통 넓은 원피스로 낙찰하고 몇개를 샀다. 나는 단벌신사, 아니 단벌여자사람. 네다섯개의 옷으로 여름을 나고 거기에 가디건을 추가해 가을을 났다. 지겨운 원피스들. 거기다 머리는 어떠한가. 혹시모를 약품 때문에 미용실을 가지 못해 2012년 11월 이후로 머리는 거지가 되었다.(아기 낳으니 모유수유때문에 여전히 머리를 못한다. 백일만 넘기자! 지금 소원은 굵은 웨이브의 갈색 머리를 하는거다.) 머리 모양이 각이 안나오니 외모가 더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점점 나오는 배에 자신감은 자꾸 상승한다.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렸다. 기분이 너무 좋아 임신 사실을 바로 말해버렸더니 이런... 내 업무가 금새 변경되었다. 좀 더 수월한 업무여서 나와 아기에게 좋긴 하지만 함께 달려왔던 사람들과 멀어지고 치열하게 업무를 할 수 없다는 실망감에 속상해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나를 끌고 가달라고 말하기엔 내가 짐이 될테니 어쩔 수 없다. 회사에 모성보호 신청을 해야 야근없이 법적으로 8시간의 근무만 할 수 있도록 보호를 받게 된다. 허나 어런저런 눈치 싸움과 몇가지 이득에 실제 등록은 20주차때에 하게 되었다. 불과 몇년전까지는 모성보호 신청도 하지 못하고 야근을 하던 사람도 있었고, 애 낳기 2~3일전까지 일하다 휴직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 말을 들으니 더욱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등록 완료후엔 8시출근 5시퇴근, 정시로 움직이며 살았다. 배가 점점 불러가며 간혹 땡기거나 졸음이 몰려올때면 모성보호실이라 명명된 휴게실에 잠시 누워 한숨 자기도 했다. 회사생활 8년중 처음 겪은 모성보호실엔 우리 회사에 임산부가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임산부가 많았다. 동지들!
변경된 업무가 머리를 덜 써도 되는 주로 입으로 조율하는 것들이기에 전화통화를 매일 엄청나게 했다. 전투력 급상승 하기도 했지만 태교를 위해 욱하는 마음 다스리며 넘어가기도 다반사에, 미니미 엄마 목소리 많이 들을 수 있으니 좋은거라고 애써 위로하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녔다. 법적으로 임신 기간중에 사용할 수 있는 반차에 내 휴가를 추가하여 금요일에 쑤셔 넣어 금-토-일 3일을 쉬었다.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야했기에 토요일에 병원을 갔고 금요일은 나의 꿀같은 휴가가 되었다. 초반에 피가 자꾸 나와 (두려웠다. 혹시 모를 걱정에...) 병원에 갔을때 다행이 작은 혹이 원인이였고 쉽게 제거 할 수 있었는데 이때 혼자 병원을 다녔더니 의사선생님이 왜 남편은 오지 않느냐고 했다. 다음부터는 남편과 함께오라고 명령같은 조언도 해주셨다. 다른 이들의 눈에 나쁜 남편이였군.
임신 중후반까진 4주마다 정기검진을 받았고 이후엔 2주에 한번씩 검진을 받았다. 중간중간 갑상선검사, 영아검사, 정밀초음파, 임신성당뇨검사, 분만전 검사 등등... 여러 검사를 받았으며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고운맘 카드를 발급받아 검사비를 충당하였다. 임신 시기별로 먹는 약이 달라 초반엔 보건소를 통해 엽산제를 챙겨먹었고 중반부터는 보건초철분제와 사제 철분제+비타민이 들어있는 임산부용 건강제를 복용하였다. 후반부엔 머리 좋아지라는 속설에 오메가3와 뼈튼튼이가 되라고 칼슘제를 먹기도했다. 철분제를 먹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변비와의 싸움으로 아픔이 있었지만 출산에 비하면 별거 아니다란 생각으로 버텼다. 지금도 빈혈기 때문에 철분제를 먹고있어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을 진행중이다.
임신성 당뇨 검사때 172라는 수치가 나왔다. 140 미만이 통과 수준인데 너무 높았다. 오렌지 쥬스처럼 생긴 달디단걸 들이킨 뒤 물 먹지 않은 상태로 1시간 후 당뇨검사를 진행하는데 평소 당뇨 증세가 없더라도 임신을 할 경우 당뇨 수치가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내가 임당이라니... 흐윽. 검사 전날 교촌치킨을 큰맘먹고 먹은게 문제였을까? 다시 날짜를 잡고 1주일 후 2차 임당 검사에 들어갔다. 그동안 현미밥에 채소 위주로 먹고 빵,과일,튀긴류 다 금지인 꼼수를 썼다. 2차 검사는 1차 검사때보다 양이 2배 이상인 달디단 오렌지쥬스를 마신 뒤 3번에 걸쳐 피검사를 진행했다. 다행이 모두 통과. 역시 교촌치킨이 문제였다.(라고믿음) 임당이 있을경우 후에 임신성 중독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하여 식이요법이 병행되어야 하는 장기전이기에 먹고픈걸 먹지 못하는 고문이 크다. 이런 무시무시한걸 비록 꼼수를 살짝 썼지만 통과해서 다행히였다.
그것 말고는 임신 기간동안 아기에게 문제될만한건 없었다. 다만, 가끔씩 피어오르는 걱정들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정밀초음파때 심장 펌프질과 소화기관, 손발가락 그외 것들 하나하나 정상적으로 잘 있다는 말에 감사했지만서도 말이다. 온전히 무사히 잘 나올수 있길 바라고 바랬다. 귀 옆에 작은 혹을 추가로 달고 나오건 외엔 다행히 건강하게 나와줬다. 혹이야 나중에 살포시 제거해주면 되니 그정도면 감사하다.
아기는 잘 자라주었고 16주차때 아이의 성별을 1차로 알게 되었고 20주차 이후로 갈때마다 의사선생님이 이거 보이시죠라며 매번 말씀해주셨다. 뭔가가 두개 달려있었고 친정,시댁에 아들이라고 알려주었다. 양가에게 난 복덩이 며느리가 되었다. 하하하. 초반엔 cm로 아기의 크기를 쟀다. 0.27cm(첫검사)에서 시작하여 1.36cm(7주), 5.8cm(11주), 11.3cm(16주)로 수첩에 하나하나 기록되었고 초음파 사진을 받았다. 이후엔 배 사이즈 기준으로 아기의 몸무개를 쟀다. 440g(21주), 879g(25주), 1.2kg(28주), 2.0kg(32주), 2.6kg(36주)...! 아주 작은 동그라미에서 시작한 생명이 어느새 kg를 넘었고 그만만큼 내 배는 점점 불러갔다. 목 아래부터 다리 위까지 고무풍선처럼 지방으로 부어올랐다. 혹시 모를 충격에도 엄마의 지방이 아기를 보호해줄 수 있도록 말이다. 아기는 머리를 자궁쪽으로 다리를 가슴쪽으로 하여 거꾸로 자세로 자리를 잘 잡았고 한번 잡은 자세는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하였기에 아기 엉덩이가 위치한 부분이 어느날부터 더 심하게 볼록 올라왔다. 엉덩이가 위치한 부분의 내 배가 더 빵빵하게 불러 슬프게도 살이 트기 시작한거다. 오일에 크림을 치덕치덕 발랐건만 영광의 자국은 평생을 함께할듯하다. 흐윽. 엄마 비키니도 못입게하는 아주 착한 아기.
배속에선 얌전한 편이였다. 초반 꿈틀대던 시기엔 남편과 내가 얼마나 탄성을 질렀던가. 그때쯤 실감이 났다. 아 내 배에 다른 생명이 사는구나. 훅 가슴안으로 들어왔다. 그 후에 특정 배 부분이 불룩해졌다가 다시 잠잠해지면 배를 만지며 아기와 대화를 나누었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꿈들댐은 쿵쾅거림으로 바뀌였다. 밤이되면 더 심해져 남편이 코를 골며 주무실때 옆에서 아기의 쿵쾅쿵쾅을 애써 즐기며 뜬눈으로 밤을 보내는 날도 늘어났다. 불면증도 살짝 왔고 아기가 방광을 눌러 화장실 가는 횟수도 늘어나 밤중 화장실 가는게 일상이 되었다. 아기 움직임의 설레임은 나는 지속된 반면 남편은 초반은 신기해하다 나중엔 "와 신기해"하곤 금새 관심을 다른곳으로 돌렸다. 매정한 아빠같으니라고. 모성이 최고다.
친언니가 골반이 작아 41주가 넘어 유도분만을 하였고 3일차에도 벌어지지 않아 제왕절개를 할수밖에 없었는데 나도 그 전처를 밟을까 걱정되어 나름 운동을 열심히 했다. 임신 중반부터 직장인 임산부 요가와 주말반 아쿠아 에어로빅을 하였다. 병원 시스템이 좋아 원내 문화센터에서 쉽게 등록하여 운동을 할 수 있었다. 36주 정기검진때 아기는 40주 넘어 나올거라 하였고 산모의 골반이 좁은 편이지만 다행인지 아기의 크기도 작은편이라 낳을때 수월하겠다고 말씀하셨다.
36주차가 되던 시점에 출산 휴가에 들어갔다. 출산휴가는 90일, 산전 산후로 나뉘는데 산후 45일 이상이 보장되어야하며 일반적으로 출산직전에 주로 사용한다. 일이 고되었고 불면증도 심하였으며 배땡김도 자주 있어 일찍 쉬고싶었다. 이런저런 이슈로 가진 연차를 모두 끌어모아 간신히 36주차부터 쉴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이 휴직 시기를 즐기라 하였다. 아기가 태어나면 지옥이 시작이라고 그전에 천국을 즐기라고 말이다. 나는 출산이 가장 지옥같은데 설마 육아가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어 했다. (바보... 출산은 한번이지만 육아는 끊임없다.) 한 2주 정말 한량처럼 보냈다. 10시쯤 느즈막히 일어나 인터넷 하고 티비보며 밥 먹고 남편오기전까지 뒹굴거리다 저녁먹고 밤 인터넷에 티비 보고 영화보다 새벽에 잠들고... 낮잠을 많이 자면 아기가 많이 큰다길래 수월한 출산을 위해 낮잠을 자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정확히 38주를 가리킨 일요일 오후, 무료한 일상이 지겨워 일주일간 결혼한 언니네에서 지내며 출산 준비를 거기서 해야겠군 생각하며 언제 출발할지 고민하던 시간이였다.
2. 출산기
쇼파에 누워 딩구르르하며 갤노트10.1로 인터넷 서핑질을 하며 언제출발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왈칵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랏 뭐지? 화장실로 달려가 확인해보니 뭔가 줄줄 샌다. 계속... 이게 뭐지 하는 공황 상태에 남편에게 소리쳤다. 오빠 뭔가 자꾸 나와...! 출산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고 낳는 두려움이 커서 출산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두리뭉실하게 큰틀만 알고있던 내게 당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였다. 분명 의사선생님은 40주 넘어 낳는다 하였는데 이제 겨우 38주가 시작되는데 이건 출산의 신호가 아닐거야 라며 애써 상황을 회피해보지만 남편은 양수가 터진거 같다며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당시만 해도 난 양수가 살짝 흘렀을 뿐 병원가서 진료 받고 다시 집으로 컴백할 수 있을줄 알았다. 무지했구나. 출산가방조차 싸지 않았던 나였기에 병원갈 준비를 하며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했지만 금새 피가 새는것까지 확인해서 짐싸는것도 중단하고 집에서 차로 오분거리 병원으로 향했다.
일요일 병원은 조용했다. 3층 분만실로 올라가서 입구 벨을 누르니 간호가사 나의 급한 마음과는 달리 천천히 나왔다. 남편이 양수가 터진것 같다고 말하자 확인을 위해 분만 대기실 침대에 나를 눕혔다. 간호사가 무지막지한 힘으로 내진을 하였고 새된 비명이 흘러나왔으며 양수가 터진게 맞다며 진통 여부를 물었다. 나는 아직 진통은 없다고 답했고 간호사는 오늘은 기다려보고 내일오전까지 진통이 없으면 유도분만에 들어가자며 입원 수속을 진행하였다. 어머나... 나 내일 아기 낳는거야? 이게 뭐야? 배에 뭔가를 부착하더니 뱃속의 울림을 그래프로 그려내고있다. 팔에는 생에 첫 링겔이 달렸고 양수가 터져 감염 위험이 있어 항생제를 투여하기 위해 팔에 시침질하듯 바늘로 몇번 따며 부작용 여부를 확인했다.
내일 새벽 5시 검진 후 6시에 유도 분만 시작할 예정이니 밤 10시 이후 금식하라는 말을 들으며 6층 입원실로 향했다. 혹시 모르니 밤 10시쯤에 다시한번 분만실로 내려오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1인실인 입원실은 원룸처럼 넓은 공간에 침대, 쇼파, 티비, 화장실까지 널찍하게 갖추었으며 거기에 앉아 어안이 벙벙한 남편과 나는 어이없어 자꾸 웃었다. 현실 감각이 없었지만 계속해서 새어나오는 양수와 피가 다가올 출산을 말해주고 있었다. 남편은 출산 준비물을 챙기러 다시 집으로 향했고 나는 저녁 식사로 병원밥을 먹었다. 건강한 몸에 여타 사고없이 살아온 인생이기에 병원에서의 경험은 모든게 낮설었다. 남편에게 앞으로 못먹을거 같으니 맥도날드 상하이와 빅맥을 사오라 주문했다. 두어시간 티비를 보며 침대에 누워 놀고있으니 간단한 짐과 함께 남편이 돌아왔다. 햄버거를 먹으며 입원기념 사진도 찍으며 약간은 붕뜬 상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뭔가 느낌이 왔다.
저녁 9시였을꺼다. 엄마의 급한 성질을 닮아 아기도 세상에 나올 준비를 2주나 당겨 마쳤나보다. 아래가 싸해지는 기분이 든게. 진통이 없어 유도분만을 하게될 줄 알았는데 신호가 온듯하다. 이게 진통인가 하며 알쏭달쏭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세기가 점차 커진다. 밤 10시쯤 다시 분만실로 내려가 오후에 했던 기계를 다시 부착하여 배울림 그래프를 모니터링한다. 진통 주기를 보는듯했다. 대략 10분 사이의 주기로 보이는 진통이 시작되었고 자궁 얼마나 열렸는지 궁금하여 내진 다시 해달라는 나에게 간호사는 대략 5분 주기가 될때 다시 분만실로 내려오라며 나를 올려보냈다. 밉다 간호사.
입원실에 다시 누우니 긴긴밤이 될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만전에 씻지못하니 샤워랑 머리꼭감으란 조언도 있었는데 시기도 놓쳤다. 진통은 있지만 그 진행속도를 모르기에 난 내일 유도 분만에 들어간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새벽부터 긴 여정이 시작될듯하여 남편에게 먼저 자라고 했다. 코를 골며 쇼파에 누워 잘도 주무신다. 마침 케이블에서 하는 2시간이 넘는 영화 도둑들이 하기에 저것만 보고 자야지 싶어 티비에 집중해보지만 진통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그 세기가 장난이 아니다. 떨리는 손으로 진통주기 어플을 찾아 진통이 올때와 휴지 상태일 때의 타이머를 동작시켜 주기를 쟀다. 새벽 한시쯤 되어 영화는 끝났는데 내 주기는 5~6분 사이를 오갔다. 진통과 진통 사이의 휴지기에도 여진의 고통으로 온몸이 슬슬 떨리기 시작했고 입술은 손가락을 깨물며 저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괜히 지금 내려갔다간 냉정해보이는 간호사가 다시 올라가라고 할거 같아 더 참아보았다. 새벽 2시 30분이 넘었을무렵 온몸은 사시나무 떨듯 쿵쾅거리며 떨어댔고 새된 목소리로 남편을 깨웠다. 오빠 나 죽겠어 내려가자. 잠결에 부시시한 남편이 내 모습을 보더니 황급히 부축하여 분만실로 데리고 갔다. 그 짧은 시간 걷기가 너무 힘들어 거의 주저앉듯 남편과 링겔거는 막대기에 의지해 걸었다. 현실이 아니야 이건 꿈이야 자꾸 부정해봤다.
진통 주기가 2~4분 사이라고 말하니 대기실도 아닌 분만실로 안내를 한다. 아픈 와중에도 분만실로 들어가란 말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이제 몇대 고통중 하나라는 그 분만이 시작된게다. 티비에서 보는 차디찬 수술실 분위기가 아니라 입원실과 비슷하게 아늑하고 따스한 조명이 있는 병실이다. 살짝 안심이 된다. 한켠엔 출산에 도움을 주는 짐볼도 놓여있고 기다림 지루할까 쇼파에 티비까지 있다. 조용한 저 복도 한켠에서 이제 겨우 1cm 자궁이 열린 부부가 내려왔다가 간호사에게 한소리 듣고 다시 올라가는게 들린다. 그 외엔 조용하다. 이 층에 이시간에 아기 낳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걸까.
내진을 하니 자궁이 5cm 열렸다며 잘 참고 계셨다고 했다. 다시한번 나의 인내심에 박수를. 깨끗하게 아기를 낳기 위해 관장을 했다. 5분을 참은 후 분만실 안에 있는 화장실에 가라고 하는데 저녁에 맥도날드 햄버거까지 먹고 이미 볼일을 본 후라서 그런지 관장 효과가 전혀 없다. 간호사에게 걱정스럽게 다시 해달라하니 그냥 넘어간다. 쿨하다. 자궁이 4~5cm 일때 맞을 수 있는 무통주사를 외쳤고 시술에 들어갔다. 뭔가 등에 다시한번 바느질 하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흐느꼈으며 잠시후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면서 고통이 사그라들었다. 이때가 대략 새벽 4시. 무통의 지속시간을 물은 내게 1~2시간이라 답하는 간호사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있고 싶은데 말이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산호 호흡기를 달고 진통그래프를 보며 라마즈호흡(?)을 시전하였다. 남편은 긴장과 졸음 사이에서 쇼파에 앉아 있었고 나는 계속 숨을 크게 쉬고 내뱉으며 배 아래서 엄마의 골반을 뚫고 나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아기에게 맑은 산소를 공급하는 작업을 계속하였다. 무통이 최고다. 이건 정말 노벨평화상감이다.
5시 30분이 넘어가니 무통의 약발이 다되었는지 진통이 점점 거세게 밀려왔다. 갑자기 간호사 세명이 이것저것 들고 들어온다. 남편도 나도 눈이 휘둥그레진다. 속으로 빌었다. 제발 오늘 낮 12시 이전에만 낳게 해달라고. 그때까진 어떻게든 참아볼거라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명언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며 말이다. 다시한번 무통속에 출산 가능한지 여부를 물어보지만 자궁이 벌써 10cm나 열려 아기가 나올 준비를 완료하였고 무통상태에선 밀어내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며 매정하게 안된다고 한다. 흑. 출산 자세를 취하라며 자세를 잡아주고는 힘줘가 시작되었다.
임신 기간동안 임산부 요가 시간에 가장 중요시 되던게 호흡법이였다. 깊게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쉬는 방법. 속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세며 얼굴은 절대적으로 평온한 부처의 힘들어가지 않는 입매를 연상하듯 무표정을 지으라며 했던 수업. 그게 지금 필요한게다. 근데 절로 얼굴은 터질것처럼 힘들어가고 윗니와 아랫니는 부러질듯 앙 다물었으며 소리내지 말라는 간호사의 말에도 절로 신음이 나왔다. 계속해서 진통이 오는 시기에 맞추어 변비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힘을 쏟으며 숨쉬기를 반복하였다. 간호사들은 다독이며 잘하고있다고 하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 빨리 끝나라 젠장 이 또한 빨리 지나간다며!
갑자기 남편에게 나가라고 하더니 당직을 서고 있던 의사선생님을 부른다. 새벽이라 담당의는 출근전이다. 믿음이 덜간다. 난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싶어 얼마나 긴 시간동안 고통이 지속될까 싶었는데 알고보니 의사선생님은 아기 나오기 바로 직전에 들어오는거란다. 즉, 내 고통이 절정을 향해 가고 있으며 끝이 보이고 있다는거다. 물론 그땐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갑자기 젤 사납게 명령하며 냉정하게 굴던 간호사가 내 옆으로 온다. 산모님 이제 아기 나오니 진통 주기에 맞춰 힘줘야해요 하며 다독인다. 그러더니 헉, 진통이 올무렵 호흡을 시작한 내 배를 무지막지한 힘으로 쑤셔 누른다. 푸헉. 절로 신음이 새어나오니 주던 힘은 흩어지고 나를 혼낸다. 소리 지르지 말고 참으세요. 티비에선 산모들 다 소리지르던데 그건 거짓부렁인게다.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더 이를 악물고 다음 진통기에 다시한번 힘을주고 간호사는 다시한번 내 배를 눌러 아기를 밀어낸다. 머리가 반쯤 나왔는데 나는 미치기 직전이다. 못하겠다고 소리지르니 지금 아기 머리가 자궁에 걸렸다며 힘주라 하고 그와중에 아이 머리 걸리면 위험할까 걱정되어 다시한번 힘주어 밀어본다. 머리가 나왔고 두어번 간호사의 밀어내기 도움으로 뭔가 쑤욱 빠져나갔다. 나왔다...!
밖에 있던 남편을 급히 불러오며 카메라를 챙기라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왠지 모를 두려움에 눈을 꼭 감고 있었기에 남편이 탯줄을 자르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잠시후 새끼고양이보다 더 얇고 청아한 아기의 울음이 살짝 흘러나왔고 손가락 발가락 그외 등등 정상이라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으며 이내 엄마 품속에 안겼다. 여기저기 핏덩이가 묻어있는 정밀초음파 사진에서 봤을때와 꼭 닮은 퉁퉁 불고 자궁을 헤치느라 머리통은 길쭉한 작은 아기를 보았다. 그냥 눈물이 나왔고 나오지 않는 젖을 살짝 빨렸으며 남편은 연신 셔터를 눌렀다. 잠시후 간호사가 아기 그리고 남편을 후 수속을 위해 데리고 나갔고 나는 또 다시 남아있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몸을 맡겼다.
아기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던 뱃속 태반을 빼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다시 배를 누르기 시작했고 몇번의 작업끝에 꿀렁하며 뭔가 거대 덩어리가 빠져나왔으며 그 후 뒷처리 작업이 시작되었다. 대략 5시 55분쯤 출산을 위해 들어온 의사선생님은 6시 11분에 분만을 완료하였고 이후 작업을 완료하는데 4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의사쌤이 필요한건 뒷처리 때문이구나. 혹자는 분만보다도 이때가 더 아프다고 하던데 나는 실성을 한건지 뭔지 자꾸 실실 웃는데 눈물이 났다. 감염된다며 간호사가 눈 만지지 말라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기 위에 손이 갔다. 작업이 완료되었고 의사선생님에게 감사하다 했으며 내배를 무지막지한 힘으로 눌렀던 그 냉정했던 간호사에게 (너무 미워 배누를때 간호사 팔을 잡고 당기며 매달리기도 했다.) 최고라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말했다.
2013년 10월 7일 아침 6시 11분. 3.06Kg. 8시간의 진통끝에 그렇게 난 상상만 하던 뱃속의 생명을 만났다.
3. 회복기
이내 남편이 들어오고 나는 휠체어에 앉혀졌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갔는지 손발이 살짝 저렸고 정신은 몽롱했다. 환자용 엘리베이터를 타며 간호사가 이제 먹고싶은거 뭐든 맘껏 먹으며 절대 안정을 취하라 했다. 분만 직후니 어지러울수 있다며 아주 천천히 움직이라며 말이다. 무통주사를 맞았기에 4시간 이내에 소변을 봐야한다며 시간을 알려주었고 앞으로 적외선 좌욕을 틈틈히 하라며 그외 이것저것을 알려주었다.
가족들에게 전화하고 축하의 인사를 받으며 난 침대에 누웠다. 잠들려 했지만 야릇한 흥분이 몸이 떨려 잠이오지 않았다. 빨리 소변을 보고 난 뒤 아기를 보러 가고싶었다. 두세시간 지났을까 신호는 없지만 화장실을 가려 일어났다. 평소보다 천천히 일어나서 두세걸음 내딧었는데 갑자기 토할거 같은 기분이 들며 머리는 어지럽고 온몸에 힘이 없다. 바닥에 넘어지기 직전 남편이 나를 안았고 바닥은 피범벅. 급한 남편은 간호사를 호출했고 간호사는 원래 그런거라며 아주 아주 천천히 움직이라고 다시한번 조언을 해주곤 사라졌다. 생에 첫 쓰러짐이였다. 아 정말 조심해야겠구나 싶어 그냥 마냥 누워있었다. 아기를 봐야하는데 내몸조차 가누기도 힘들구나 엉엉엉. 오후쯤 되니 살짝 기울여 앉을 만큼의 기운이 생겼고 휠체어를 타고 면회실로 향했고 굳게 다문 입술로 평온하게 자고있는 미니미를 만났다. 울컥 또 눈물.
임신 내내 빈혈기가 있어 철분제를 달고 살았는데 출산후에도 빈혈기에 어지러움이 심해 수유가 힘들었다. 3시간마다 수유실에서 수유할 수 있었는데 최대한 나의 안정 위주로 하면서 얼굴 보고 나오는걸로 만족하며 아기의 얼굴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출산 후 2박 3일동안 입원을 하며 몸을 회복시켰고 그동안 아기를 만질 수 있는건 나 혼자. 남편은 내가 찍어온 영상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젖이 잘 돌지않아 통곡 마사지를 받았으며 출산 상처가 심해 하루 4번 이상의 좌욕을 해야한다고 조언을 받았고 빈혈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대신 분만때 간호사가 무지막지한 힘으로 눌렀던 내 배는 시퍼런 멍자국이 점점 진해졌다.(들리는 소문엔 이병원 간호사 힘이 넘 쎄서 갈비뼈 부러진 사건도 있었단다.) 그동안 아기는 3가지 무료 검사와 2가지 유료검사를 받아 이상 없음을 확인하였다. 수유하러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만나 처음으로 속싸개를 열어보았을때 보였던 앙상한 팔다리와 손발가락에, 퍼렇게 보이는 핏줄에 많이 놀랬다. 하긴 엄마 그 좁은 뱃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려면 오동통함은 무리인게다. 정말 앙상하게 말라서 조금만 힘줘도 큰일 날거 같았다.
출산 3일후 퇴원하기 직전에야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출산후 노폐물을 내보내기 위해서였는지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겁고 땀이 흠뻑 솓아올랐다. 땀범벅으로 누워있는것 자체가 곤혹인데 이시릴까 걱정되어 시원한것을 마실수도 없고 산후풍 걱정에 내복에 수면양말로 돌돌 말고 찬바람 쐬면 안되어 방안은 29도 수준으로 뜨끈뜨끈하게 난방을 했다. 땀에 잠드는것도 힘들었으니 온몸은 얼마나 찝찝했을까. 손목에 아대도 필수다. 뼈가 약해졌는지 안쓰는 팔 동작을 해서 그런지 아기를 안고 있는 손목이 욱신거리시 시작했다. 암암 조심해야지. 적어도 100일 전까진 내몸 내가 잘 챙겨놔야 앞으로도 쭈욱 건강할 것이다.
2주간 산후조리원에 있었다. 요즘 조리원 가격대가 나 사는 지역 기준으로 2주에 300에 육박하는 곳이 많은데 병원 산후조리원은 200이 채 안되는 시세대비 무척 싼 가격이다. 나중에 겪어보니 커리큘럼이나 식사 시설면에서 싼 이유가 있긴 했지만 일차 목표는 내가 다른이의 방해를 받지 않고 푹 쉬는것이기에 충분했다. 대략 2~3시간마다 콜이 있었고 그때마다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방으로 데려오던가 아님 수유실로 가서 자세 교정을 받으며 수유를 했다. 슬프게도 아기가 먹는 속도에 비해 모유가 부족하여 혼합 수유를 하였다. 한때는 부의 상징이라며 분유수유가 유행하기도 했단다. 요즘엔 다시 자연주의로 돌아가는지 왠만하면 자연분만이 권장되고 모유로 끝까지 가는 완모가 유행이다. 나는 양다리를 걸쳤구나.
슬슬 젖이 돌기 시작할 무렵이였다. 병원의 좁은 침대에서 벗어나 산후조리원의 퀸사이즈 침대에서 딩굴거리니 안일해졌나보다. 밤중 수유 혹은 유축을 해야하는데 2~3일 소홀히 했더니 갑자기 몸이 급속도로 안좋아졌다. 얼굴은 불덩이처럼 열이 달아오르는데 손발은 차디 차다. 덜덜 떨리고 어지럽고 정신을 못차리겠다. 조리원 선생님이 젖몸살 같다며 바로 병원으로 보냈고 유선염일수도 있다하여 항생제를 포함하여 다시 링겔을 맞았다. 아기는 신생아실 청소때문에 2시간 강제 모자동실(엄마 방에 함께 있는것)을 해야하는데 엄마가 병원에 누워있다. 아기 낳고 눈물흘리면 눈이 나빠진다고 울지말라는데 남편은 연락이 안되고 아기는 청소때문에 조리원 선생님이 대신 맡아주고 (다른 아기들은 모두 엄마찾아 떠났다.) 나는 병원에 있고. 서러웠다. 한시간 반만에 연락된 남편은 하던일 멈추고 뛰어와 처방받은 약을 들고 함께 조리원으로 갔고 나는 아기를 품에안고 울었드랬다. 항생제 효과인지 처방받은 약때문인지 아님 젖몸살로 막혔는지 모유가 나오지 않았고 거금 7만원짜리 마사지를 계속 받았지만 효과는 적었다. 지금 가장 후회하는게 귀차니즘에 푹 자고싶어 밤중 유축을 하지 않았던것. 그것만 아니였음 아기는 모유 먹으며 엄마의 영양 만점 양분 쏙쏙 받아먹을 수 있었을테고 난 젖병 씻고 소독하느라 힘들이지 않았을텐데... 속상하다.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을 끝으로 집으로 왔다. 아기를 낳으러 갈때 창밖의 풍경은 푸른 나무가 있었는데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오니 어느새 단풍이 들었다. 시간이 금새 흘렀구나. 이제 아기와 나 남편 그리고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육아가 시작되었다.
4. 육아기 (이제 겨우 90일)
초반에는 밤낮 구분없이 2~3시간에 한번씩 밥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또 재우고를 반복했다. 틈틈이 나도 씻고 뜨거운팩으로 마사지도 하고 밥도먹고 자야한다. 이말인 즉슨 나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걸 하면 다시 아기를 봐야한다는거다. 하루 24시간이 참 바빴다. 친정어머니는 청소와 식사, 설거지 그외 생활을 담당했고 간간히 아기도 봐주셨다. 낮에는 어머니의 도움이 있으니 그리 힘들지 않지만 밤중 수유가 문제였다. 몰아치는 잠 쫒으며 일어나 토할거 같은 기분으로 아기 밥을 준다. 밥먹고 그냥 자면 감사하다. 밥도 다 먹고 기저귀도 깨끗한데 이유없이 새벽에 울며 잠을 자지 않을땐 멘붕이 온다. 50cm짜리 쪼꼬미를 잡고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초반에 남편이랑 한방을 쓰다가 이런 이유로 잠시 작은방으로 보냈는데 어느날 육아가 힘들어 남편게 속풀이하다 각방쓰는건 서로에게 좋지 않다는걸 깨닫곤 다시 안방으로 돌아왔다. 평일엔 출근해야하는 남편을 깨우지 않고 내가 맡고 대신 주말에 새벽 타임은 남편이 케어해준다. 그래야 나도 연속 3시간 이상 잠을 잘 수 있다. 신생아 육아때 가장 힘든게 한번에 자는 시간이 2~3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는것. 자는 시간 총량은 대략 6~8시간인데 3번에 걸쳐 나누어 자니 자도 잔게 아니다. 요즘은 좀 수월하다. 아기가 한번잘때 길게는 5~6시간까지 자주니 말이다.
속싸개로 팔다리를 압박당한 아기는 잠을 자도 인형처럼 미동없이 조용히 자는줄 알았는데 아니다. 무슨 꿈을 그리 꾸는건지 혼자 낑낑거리고 웃다가 울다가 흐느끼고 쩝쩝 거리고 코로 쇳소리도 내고 뭔가 다양하다. 초반엔 이런 저런 소리에 아기가 잠에서 깬줄알고 옆에서 자다말고 계속 일어나기도 했다. 가끔 속사개가 살짝 풀려 팔다리가 자유로워 질때면 갑자기 제어할 수 없는 자신의 몸에 놀라 울기도 했다. 신기하다. 좀 더 자라면 본인 손을 입에 넣고싶어도 손과 팔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못해 울기도한다. 그럴때 살짝 들어 입에 가져다대면 주먹채로 입에 넣는다. 우아하게 엄지손 빠는건 아직 이른가보다.
이젠 제법 옹알옹알 거리며 한숨도 쉰다. 목도가누고 팔다리로 엄마를 때린다. 뒤집기 준비를 하는지 옆으로 누우려 굼벵이처럼 몸을 말았다 펼치기도 한다. 모빌도 지겨운지 눈동자를 굴려 온 방안을 두리번 거리며 눈맞춤을 한다. 30분에 걸쳐 밥을 먹고 30분에서 한시간 가량 놀다가 졸음이 오면 대략 30분 정도 걸려 잠을 재우고 한시간 정도를 잔다. 그리도 다시 깨면 3~4시간이 지나니 수유를 한다. 반복 반복. 3~4시간 텀으로 모유와 분유를 먹고 저녁 9~10시쯤 잠들면 새벽 3~4시까지 푹잔다. 이 사이 시간이 내겐 천국이여 재방송 티비도 보고 인터넷도 한다. 아기는 밤낮을 알아가는데 난 밤낮이 바뀌었다. 하루 대략 두번의 대변을 보고 대략 10번정도 소변을 본다. 저녁타임에 목욕을 시킨다. 등에 센서가 달려 안고 재우다 눕히면 깨고 다시 안고 재워 눕힌다. 보통 3번 정도 시도하며 30분 잡아먹으면 잠이 들기도 하고 실패하면 그냥 놀아준다. 요즘은 입이 심심한지 뭔가 물려있어야 잠이 든다. 등센서에 입까지 낮잠 재우는게 점점 힘들어진다. 단순했던 아기가 점점 복잡다난해진다는건 뇌가 자라고 있다는 반증이라 생각하고 기쁨 맘으로 받아드려야 하지만 정성들여 한시간 걸쳐 재웠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두눈을 부릅뜨고 입맛을 다실때면 가끔 욱 올라오는 뭔가가 있기도 하다. 이러며 사는가보다.
앞으로 뒤집기와 기어다니기도 해야하고 두번째 고비라하는 이유식 시작도 남아있다. 이유식기계를 물러받았는데 칼질 못하는 내게 든든한 녀석일거라 믿는다. 필수 접종을 이제 두번 완료하였고 앞으로 남은 리스트를 보며 병원은 부디 예방 접종때만 가게 해달라며 빌어보기도 한다.
5. 에필로그
글을 쓰는데 무려 4일의 시간이 걸렸다. 집중해서 좀 쓰려하면 등 뒤 잠든 아기가 깨버리니 말이다. 오타작렬에 횡설수설 앞뒤도 잘 안맞다. 남편이 우울증 오지 말라고 일이주마다 한번씩 백화점에 데리고간다. 밖이 추워 산후풍 올수도 있어 실내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라 가는데 너무 가서 이젠 거기도 지겹다. 인터넷 눈팅도 질려 블로그 시작한다고 하니 남편이 적극 찬성했다. 그걸로 스트레스 풀라고 말이다. 100일이 지나면 좀 덜 추운날을 잡아 집안에서만 놀리던 유모차에 아기를 싣고 첫 산책을 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헬스클럽 끊어서 러닝머신으로 슬슬 걸어봐야지. 봄이 지나갈 무렵엔 아쿠아로빅 하며 몸매 다시 만들어야지.
출산휴가는 1월초에 끝이났다. 이제 육아휴직기다. 번거롭게 회사에 다시 한번 가서 육아휴직계를 결재받아야했다. 눈치보지 않고 무려 10개월의 휴직계를 올렸다. 에라이 모르겠다. 짤리진 않겠지만 복직하면 한직으로 밀려나 구석탱이 자리에서 별볼이 없이 일하게 될까 두렵다. 남편은 둘째도 보길 바라는데 그럼 회사 못다닌다고 말해두었다. 2년 이상의 기간동안 임신과 육아 다시 임신과 육아를 반복한다고 하며 그 자리에 있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뭐 돈때문에 다녀진다고들 하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복직하는 시기에 아기가 엄마바라기가 되어 분리불안이 왕성하다고 한다. 그때 아기 떼놓고 일하러 갈 생각하니 뭣모르고 방실거리는 아기에게 미안하고 가끔 가슴이 아프다. 맘편히 육아를 완성하고 유치원에 보낸 뒤 다시 일을 하고 싶지만 그 시기에 나를 써주는곳이 없을거다. 요즘 쓸만한 자격증 없나 알아보고 있기도 하다. 남편은 공인중개사를 추천하는데 늘그막에 하는일같아 이것저것 좀더 알아봐야겠다.
태어는 나되 최소 일년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독립적인 생각과 감정을 갖는 다른 존재를 케어하며 살고있다. 이 아이의 미래가 황금빛이 될 수 있도록 무한한 기반을 만들어 주고싶어 남편도 나도 열심히 살아본다. 예전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말이다.
덧.
임신을 할 계획이 있는 여자 피지알러는 미역국 왠만하면 맛나더라도 자제하다가 산후조리할때 몰아먹길... 정말 토나올 정도로 먹게되니 말이다. 앞으로 평생 내 의지로 미역국 먹을일은 없을거다. 우웩.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4-02-11 12:51)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