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화요일 오전 12시 30분 우리집
우리집에 도착했다.
아 집이 개판이다. 동생놈 좀 치워놓지.
이렇게 집안이 개판인꼴로 새해를 맞아야 되나?
화장실을 열어보았다. 지난몇일간 변기를 뚫기 위한 내 사투와 노력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널부러진 수 많은 기구들과 내 삽질의 증거들
이젠 다 필요없다. 관통기가 나에게 있으니깐...
퍼렇게 빛나는 몸통에 거무튀튀한 쇠꼬챙이 크하하! 보기만 해도 믿음직스럽다.
내가 무협주인공이 된거 같은 느낌이 든다.
사용법이 겉포장 비닐봉지에 적혀있다. 뭔지 모르겠다. 그냥 막 쑤시면 될거같다.
아자 난 뚫을 수 있어! 다 쑤셔주마.
12월 31일 화요일 오전 1시 우리집
아 꿈쩍도 안하잖아.
내가 사용법을 잘 못 알고 있는건가?
쑤셔도 쑤셔도 뭔가 느낌이 없다. 철사만 늘어질뿐 다시 사용법을 읽어보았다.
그냥 쑤시고 손잡이를 돌리면 된다고 써있다.
그래 돌리는거야 더 열심히 돌리자.
12월 31일 화요일 오전 1시 30분 우리집
아...진짜 울고싶다.
안뚫린다. 티비를 보면서 딴짓을 하는 동생에게 뚫어달라고 도움을 요청해봤다.
동생도 못뚫는다. 저 도움 안되는 똥같은놈.
독고구검을 연마해서 저놈의 변기통을 인수분해시켜버리고 싶다.
진짜 새해 마지막 날까지 변기통 붙잡고 있어야되냐?
12월 31일 화요일 오전 1시 40분 우리집
큰일이다
아까 맥주를 마셔서 그런지 배가 살살 아파온다.
똥이 마렵다. 동생은 아직 안잔다.
뭔가 뱃속에서 사르르 찌르르 울리는 신호가 고체보단 액체의 느낌에 가깝다.
어제 오늘 뭐 먹은거 진짜 없는데 왜 너까지 날 힘들게 만드냐...
12월 31일 화요일 오전 2시 우리집
서럽고 슬프다.
동생한테 이틀 연속으로 욕을 쳐먹고 말았다.
개놈색히 아직도 탈취제를 뿌린다. 하긴 저 화장실에는 환풍기가 없다.
너는 똥 안싸냐 개객기야.
눈물나게 서럽다. 세상에 똥한번 싼다고 저렇게 구박하고 멸시주는 동생이 어딨냐.
친자확인을 하고싶다. 분명히 내 친동생이 아닐거라는데 우리집 변기를 건다.
아 너무 힘들다 자야겠다.
12월 31일 화요일 오전 10시 우리집
온몸이 쑤시고 저리고 아파온다.
집안청소도 해야되고 설겆이도 해야되고 빨래도 해야되고 할일 투성이다.
집안일뿐이면 다행이게 은행도 가야되고 팩스도 보내야되고 아 뭔가 진짜 마지막날인데 일이 더럽게 쌓였다.
2013 마지막날은 좀 느긋하게 보내고싶은데...한해를 추억하며...
xxx 이게 모두 저 망할놈의 변기 때문이다.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1시 우리집
변기는 왜 하얀색인걸까?
저 악마같이 음험하고 사람을 피말려 죽이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될 암덩어리 같은 존재.
변기에다가 그냥 타르를 덕지덕지 쳐 발라 버리고 싶다. 변기는 추악하고 더럽다.
어제 사온 내 마지막 희망인 관통기가 너무 밉다.
마지막 희망...그래 마지막 희망.
내가 다니는 사이트에 물어봐야겠다.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2시 우리집
피지알에 글을 썼다. 여기는 똥 전문가들이 많다.
사실 똥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여기는 배운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피드백도 빠르다. 바로 바로 댓글을 달아준다.
나도 여기서 많은 도움을 받아봤다. 그래 여기라면 해낼 수 있을거야.
여기는 책상에 똥싸는 아저씨도 있고 일년 내내 똥이야기만 하다가 결국 똥 꿈 까지 꾸는 똥인간도 있어.
변기 막힌것쯤은 간단히 해결해줄거야.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2시 30분 우리집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준다.
답변의 대다수는 다 내가 해본거다. 별 뾰족한 방법이 없다.
강한압력과 정교한 관통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집에있는 고무펌프와 관통기를 바라보았다.
정녕 최후의 수단밖에 없는것인가...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3시 우리집
결국 최후의 방법을 쓰고 말았다.
전문가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전화를 해보니 4~5만원 달라고 한다.
아 내 피같은 돈 내 돈 내 돈...
이미 화장실을 뚫으려 대략 치킨 한마리값이 소요됐다.
관통기에 고무뚜러뻥 뚜러뻥액체와 기다란솔에 20리터짜리 쓰레기봉지까지...
저것도 아깝지만 무엇보다 2박3일동안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 수많은 삽질은 어쩌라고...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병원 응급실에 과로로 실려갈거 같다는 기분이 든다.
새해 마지막날 변기 뚫다가 병원에 실려갈수는 없다.
내 자식의 자식의 자식까지 필시 멸시받고 놀림받을 만한 일이다.
그래 내가 졌다.
니 똥 아니 니 변기 굵다. 아 내 돈!!!!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4시 우리집
머리가 벗겨진 변기 수리공 아저씨가 왔다.
언뜻 보기에도 20년 아니 30년간 변기구멍을 뚫었을거 같은 달인의 풍모가 느껴진다.
어깨에 메고 온 저것은 대형 변기관통기다. 내가 만물상에서 산 관통기가 장난감처럼 보인다.
저것이야 말로 내가 찾던 바로 그 청령언월도다.
사실 대형관통기를 사고 싶었는데 저 관통기는 인터넷으로 구매할 수 밖에 없어서 동네 만물상에서 산거다.
내 육천원이 변기구멍으로 날아갔다.
관통기를 잘 보니까 무슨 바이올린 같기도 하고 막 바주카포가 나갈거 같은 느낌도 든다.
작업복을 입은 아저씨가 마치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수석주자로 느껴지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순간이지만 갑자기 돈이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 저 망할놈에 변기만 뚫어준다면...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4시 10분 우리집
아저씨 뚫어주세요. 화이팅!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4시 20분 우리집
아저씨 제발 뚫어주세요...
더 힘차게 돌려주세요.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4시 25분 우리집
아저씨.....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4시 30분 우리집
아.........
진짜 모든 세상에 있는 변기를 다 뚫을거 같은 저 관통기로도 안뚫린다.
아저씨는 정말 똥이랑 휴지만 들어간게 맞냐고 묻는다.
그럼 거기에 똥이랑 휴지만 넣지 내가 뭐 황금이라도 쌌을까봐?
아저씨는 관통기를 몇번 쑤시고 돌리더니 다시 차로 가서 신무기를 꺼내왔다.
그것은 바로 공기압축펌프였다.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4시 40분 우리집
아저씨가 차에서 들고온 공기 압축 펌프의 원리는 간단하다.
열심히 꾹꾹 압축기를 눌러담아서 압축된 공기총알을 뻥하고 쏘는 것이다.
아저씨가 꾹꾹 페달을 눌러 담는다.
언뜻 보기에도 초강력 방구..아니 초강력 공기 압축탄이 나올거 같다.
압축된 공기를 우리집 변기 구멍 깊숙한곳에 쑤셔넣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묵직하고 강력한 파열음이 들린다.
드디어 뚫린것인가?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4시 40분 우리집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뚫리지 않았다.
그래 한번더!!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뚫려라!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안뚫린다.
XXXXXXXXXXXXXXXXXXXX!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4시 50분 우리집
아저씨가 다시 관통기를 주워든다.
아까는 혼자 하더니 이번에는 관통기 중심을 잡아달라고 한다.
아무래도 내가 관통기를 받치고 있는 동안 양손으로 강한 회전을 주어서 뚫을 모양이다.
별로 기대되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룡..아니 관통기의 몸통부분을 꽉 잡았다.
부들부들 제발 뚫려라.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4시 50분 우리집
끼이이이이이이이익!
관통기가 세차게 돌아갔지만 늘어진 엿가락처럼 철사들이 힘없이 휘어지고 나부라졌다.
흐늘흐늘해지고 너덜너덜해진 관통기를 보니 아저씨도 나도 할말을 잃었다.
저 만능 관통기로도 해결이 안된다니...
우리집 변기 구멍에다가 내시경을 쳐박아보고싶다.
도대체 뭐가 박혀있길래 저 두꺼운 철사가 이렇게 맥없이 휘어진단 말인가?
아저씨는 지금 입구에서 쇳덩어리 같은게 박혀있어서 아예 꿈쩍도 안한다고 한다.
아저씨는 스펀지에서 나온 비닐봉지 방법도 써보고 내가 사온 장난감 관통기도 써본다.
그리고 짐을 챙기며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다.
'변기 들어내야돼...'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5시 30분 우리집
변기수리공을 소환하는 금단의 방법 마저 실패했다.
돈이 좀 들긴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였다고 생각했던건데...
전문가라고 해도 별거 없다 그냥 내꺼보다 좀 더 강한 펌프와 더 쎈 관통기만 있었을뿐...
뭐 하나 달라진게 없다.
그리고 채 한시간도 못쑤셔보고 그냥 나갔다. 근성도 없고 재능도 없다.
정말 전문가 맞나? 다시 분노가 치민다. 다른 전문가를 불러볼까?
피지알에 다시 글을 올렸다.
사람들은 내 글을 보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낄 거린다.
나도 제 3자의 입장에서 내 글과 댓글을 살펴보니 조금 우습긴 하다.
정신 차려야 된다. 현실도피를 할때가 아니다. 2013년의 마지막날이 끝나간다...
피지알 댓글중 어떤 사람이 오랜시간 변기구멍에 호스를 넣고 물을 계속 틀어놓으면 수압떄문에
막힌곳이 부드러워져 틈이 생겨 뚫릴 수 있다고 댓글을 달아줬다.
뜨거운 물로 틀까 하다가 조언해준 사람이 가스세가 많이 나올거같으니 그냥 찬물로 틀라고 한다.
안쓰는 걸레로 변기 구멍 사이사이를 촘촘히 막고 샤워기 호스를 악마같은 구멍에 쑤셔넣었다.
딱 두시간만 틀어보자.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6시 우리집
전화가온다. 엊그제 신세졌던 동진이녀석이다.
퇴근하고 잠깐 우리동네에 들려서 저녁이나 먹자고 한다.
그러고보니 오늘 하루종일 먹은게 없다.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7시 우리집
샤워기를 끄고 물을 내려봤다 역시나 헛수고다.
괜히 수도세만 날렸다. 힘들게 쑤셔박은 걸레를 꺼냈다.
아 고무장갑을 안끼고 쑤셔박힌걸 뻈더니 다시 손가락 관절이 욱신욱신 쑤신다.
누군가 변기 배수관이 얼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말 내 똥과 휴지가 꽁꽁 얼어서 막혔나?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7시 10분 감자탕집
친구놈이 영 표정이 안좋다.
오늘 회사에서 까이고 우리집앞에서 주차하다가 동네 아줌마랑 싸웠다고 한다.
친구집이라고 잠깐 주차해놓는다고 했는데 내가 샤워기뺴고 옷갈아입는 시간동안
동네 아줌마가 주차하지말라고 유리창을 10분동안 두들겼다고 한다.
친구는 견인 부르세요 한마디 쏘아붙히고 창문 닫고 날 기다렸다고 한다.
저 강철멘탈이 저런 똥씹은 표정을 하는건 일년..아니 삼년에 한번 볼까 말까다.
차를 타고 해장국집에갔다. 몇일전에 재워주고 민폐끼쳐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변기 뚫는라 오늘 아무것도 못먹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윤하콘서트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오로지 변기 이야기만 했다.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8시 감자탕집 밖
밥을 다 먹고 친구놈이 곧장 충청도에 있는 마누라 친정에 가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러 가야 된다고 말을 한다.
그럼 뭐하러 부천까지왔는지 이해가 안된다.
2013년도 이제 몇시간 남지 않았는데 왜 나를 보러 온거냐? 애딸린 유부남이 징그럽다.
가기전에 친구가 한마디 한다.
'여기 오기전까지 기분 정말 안좋고 아줌마랑 싸워서 더 기분 안 좋았는데
니 변기 뚫는 이야기 들으니 안좋은 기분이 다 사라졌어.'
저 미친놈이 지금 저걸 말이라고 하고 있는건가?
우리집 화장실에 가둬놓고 내 대신 3박 4일동안 변기만 뚫게 하고싶다.
친구는 우리집까지 차로 바래다준후 내동생 방에 가서 오줌을 싸고 갔다.
순간 저놈의 xx를 짤라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다음에 저놈 집에가서 우장창창 코끼리 똥을 싸줘야겠다고 다짐했다.
12월 31일 화요일 오후 10시 우리집
아무 생각이 없다.
곧 있으면 새해다. 아 너무 졸립다.
새해 카운트 해야되는데...잠이 쏟아진다.
1월 1일 수요일 오전 3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연휴의 마지막을 변기 뚫다가 지쳐서 재야의 종소리도 못듣고 잠이 들었다.
내 20대의 마지막날을 하루종일 변기 뚫다가 날렸다...
아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배가 고프다.
먹을 수 없다 똥만드는 기계가 될 수 없다.
배는 고프고 똥은 싸고싶고 아 진짜 죽고싶다.
변기가 뭔데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냐.
새해 첫날부터 울 수 없다. 꾹 참고 눈물을 삼켰다.
윤하 노래나 듣자...
1월 1일 수요일 오전 8시
몸에 힘이 없다.
열도 나는거 같다 온몸이 쑤신다.
엄마한테 전화가 걸려온다. 변기는 뚫었냐고 묻는다.
아무말도 못했다. 불효자가 된거같다.
1월 1일 수요일 오후 12시
배가고프다. 뭘 먹긴 먹어야 되는데...
1월 1일 수요일 오후 7시
동생이 오늘 소개팅을 나간다고 들떠있다.
정초부터 소개팅이라니 좋겠다.
뭐 다행이다. 동생이 없으면 맘놓고 방문을 열어놓고 똥을 쌀 수 있다.
이따가 문열고 싸야겠다. 탈취제도 안뿌릴거다.
아...다른 전문가를 부르고싶은데 너무 시간이 늦었다.
어차피 오늘 새해 첫날이라 불러도 안올거 같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변기를 신경쓰지 말아야겠다.
1월 2일 목요일 오전 12시
시름 시름 내 몸이 말라가는것이 느껴진다.
이유는 딱 하나 밖에 없다. 변기의 저주 때문이다.
어제부터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변기가 언게 틀림없다.
내일은 누가 말한대로 염산이나 염화칼슘을 부어봐야겠다.
1월 2일 목요일 오후 12시
집에 엄마가 찾아왔다.
누가 꿈이라고 해줘...
1월 2일 목요일 오후 3시
엄마한테 모진 잔소리를 들었다.
엄마는 10년을 넘게 아파트를 살았지만 단 한번도 변기가 막힌적이 없다라는 레파토리로 시작해서..
니가 맨날 똥싸고 휴지랑 같이 물을 내리니깐 그렇게 화장실이 막히지..
작년에 수도 터져서 빌라계단이 얼음 바닥되서 백만원주고 공사 한것도 내 탓이고...
얼른 봄이 되면 집을 팔아버리고 새집을 사서 나가야된다는 소리까지 듣게 됐다.
내가 왜 똥 한번 잘못 싸서 정초부터 엄마한테 이런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어제 새벽부터 자꾸 공구함에 들어있는 장도리가 생각난다.
내 손에 장도리만 쥐어주면 지금 당장이라도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될 수 있을거 같은 기분이다.
진짜 저 좌변기를 개박살날때까지 후려치고싶다.
1월 2일 목요일 오후 4시
엄마 손에 이끌려 이마트에 갔다.
그래도 아들집에 왔으니 반찬거리라도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엄마한테 죄송스럽다. 다 큰 아들 변기 하나 못뚥고 걱정시켜서 집까지 찾아오게 만들고...
이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집어먹고 내가 좋아하는것들을 잔뜩 산뒤 집에 왔다.
물론 다 먹으면 언젠가 똥으로 배출 해야 된다.
그래도 엄마의 사랑덕분에 우울하고 쪼그라들었던 가슴이 조금 누그러졌다.
집에 갈때 동네 철물점을 뒤져서 염산이랑 염화칼슘을 구해봐야겠다.
1월 2일 목요일 오후 6시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다시 힘을내어 동네 철물점을 뒤지기 시작했다.
XXX...갑자기 또 욕이 나온다.
염산은 어느곳에서도 파는 곳이 없었다 염화칼슘도 마찬가지다.
그런것들을 구할라면 화공약품점을 가야 된다.
얼른 핸드폰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버스로 스무정거장이나 가야되는곳에 화공약품점이 있다.
지금 시간도 늦어서 택시타고 가도 웬지 못살거같다.
부질없지만 다시 슈퍼에 들려서 뚜러뻥 2리터를 샀다.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한개사면 안될거 같아서 두개 샀다. 그래 2의 기운이라도 빌려보자.
몇일전에 이미 써본 방법이지만 내 직감으로 볼때 배수관이 언게 틀림없다.
뚜러뻥과 뜨거운물로 녹여야겠다.
1월 2일 목요일 오후 7시
동생은 내가 사온 이마트 초밥과 닭강정을 열심히 먹고 있다.
나는 변기에 뚜러뻥을 조금 부어놓고 양푼대야에 정수기 온수를 받아서
다시 가스렌지에 올려놓았다. 엄마는 집으로 가셨다.
오늘 밤을 새더라도 뜨거운물을 부어볼 생각이다.
1월 2일 목요일 오후 8시
변기에 뚜러뻥을 넣는다.
양푼대야에 물을 받는다. 다시 변기에 붓는다.
변기에 손을 넣어보았다. 따뜻하다.
따뜻한 변기물에 손을 넣으니 웬지 기분이 좋아진다.
가스렌지에 일곱번째 던가 여덟번째던가 양푼냄비를 올리고...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매일 아침 첫 차를 타고 대학로에 택견을 배우러 다닌다고 한다.
여기 나같은 정신병자가 하나 또 있구나.
변기 이야기를 해줄까 하다가 그냥 안부전화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물이 끓는다. 얼른 변기에 부으러 가야겠다.
1월 2일 목요일 오후 9시
아 옷걸이가 안보인다. 아무래도 아까 엄마가 집 청소할떄 버렸나보다.
아깝지만 다시 옷걸이를 하나 더 휘어야겠다.
변기물이 따뜻하다. 아 기분좋다. 옷걸이를 쑤셔보았다. 요지 부동이다.
내가 아무래도 헛짓거리 하는거 같다. 화가난다.
너무 화가나 변기 구멍에 오줌을 휘갈겼다.
사실 오줌 대신 똥을 싸고 싶었지만 뒷감당이 안된다. 아직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은듯 싶다.
물을 내렸다. 시원하진 않지만 소변은 확실히 내려가는거 같다.
근데 어제보다 더 내려가는 속도가 빨라진거 같다.
말 그대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 이런건가 싶다.
1월 2일 목요일 오후 10시 10분
다시 양푼대야에 물을 올려놓았다.
아까 물을 한번 내려서인지 변기에 손을 넣으니 물이 다시 차갑다. 기분이 나쁘다.
역시 변기가 언걸거야...내 오늘 밤새도록 자식 먹일 사골을 우려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수십번 수백번이 걸리더라도 변기에 뜨거운 용광로를 퍼부으리라.
양푼대야를 붓기전에 다시 한번 물을 내려보았다.
어? 물이 내려가는 속도가 아까보다 빨라졌다?
벌써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건가?
1월 2일 목요일 오후 10시 30분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아까 변기 물이 빨리 내려간거 같은 기분에 조금 설레이기 시작한다.
안되 참아야된다. 지난 수일동안 이 빌어먹을 설레임에 내가 그토록 고통받고 괴로워하지 않았던가?
희망은 좋은것이 아니다. 안돼 설레이면 안된다.
1월 2일 목요일 오후 10시 40분
도저히 안되겠다.
아까 변기 물내려가는 속도가 눈에 아른아른 거려서 물이 끓는 시간동안 엉덩이를 붙힐 수 가 없다.
다시 화장실로 뛰어갔다. 고무장갑을 끼고 옷걸이를 쑤셔보았다. 잘 모르겠다.
손가락을 변기 구멍 깊숙하게 쑤셔넣어봤다.
긴 손가락을 낳아주신 어머님께 감사드린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달그락'
잠깐이지만 뭔가 단단한 암석재질의 무엇인가가 만져졌다.
분명히 뭔가 느껴졌다.그리고 손가락으로 밀었는지 그 느낌은 금방 다시 어둠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분명 손에 느낌이 왔다 벌써 얼음이 녹은건가?
1월 2일 목요일 오후 10시 50분
유레카!
나는 내팽겨쳤던 고무펌프를 다시 손에 쥐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조난자처럼 미친듯이 펌프질을 시작했다.
퍽퍽퍽퍽퍽퍽!!
그 순간 어떤 생각으로 펌프질을 했는지 모른다.
그저 내 본능에 충실했던 기억밖에 안난다.
펌프를 꺼내들자 찌부러진 어떤 한 물체가 변기위로 떠올랐다...
그것의 정체를 밝히기 전에 지난 몇일간 나와 함께 한 내 친구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는 바로....
이 글을 함께 읽어주시고 걱정해주시고 응원해주신 피지알의 여러분들께 이 대사를 남깁니다.
Remember Red, hope is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I will be hoping that this letter finds
you and finds you well. Your friend, Andy.
기억해요, 레드, 희망은 좋은 것이예요. 아마도 최고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이 편지를 꼭 찾길 바랄게요. 친구 앤디가.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4-02-07 16:17)
* 관리사유 :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