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굉장히 망상이나 상상을 잘하곤 했다. 그 상상이 얼마나 터무니없냐 하면,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사실은 인간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는 외계인은 이미 지구에 살고 있다. 어디 있냐고? 바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당신들. 그리고 나. 바로 인간들이 지구에 정착한 외계인인 것이다. 그 사실은 굉장히 증명하기 쉽다.
지구에 사는 다른 생명체들은 지진이나 태풍, 화산폭발과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대피를 한다. 지구라는 어머니, 가이아가 보내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지구란 어머니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낳아주고, 키워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어머니의 살인 땅을 파헤치고, 어머니의 피인 바다를 오염시키는 일은 없다.
반면 인간들은 어떤가? 지구가 보내는 메시지를 듣지 못한다. 강이 범람하면 그대로 휩쓸리고, 화산이 폭발하면 그대로 묻혀 유적이 되어버린다. 지구를 자신들 마음대로 잔뜩 파헤치고, 강과 바다를 오염시킨다.
이것은 인간과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이 엄연히 다른 배(uterus)에서 나왔음을 알려준다. 사실 인간은 다른 행성에서 온 불청객이며, 이곳에 불시착하여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타고 온 비행선이 박살나고 오랜 시간동안 지구에 빌붙어 살게 된 것이다... 뭐 이런 터무니없는 망상이다.
내가 이런 망상을 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재밌으니까.
혼자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집에서! 멍하니 머릿속을 헤집으며 망상에 빠져들 때면 나는 주체할 수 없이 흥분하기 시작한다. 이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는가!
상상에는 그 어떤 제약조차 없다. 자본적인 제약도, 시간이나 공간 같은 물리적인 제약도, 심지어는... 심의 같은 도덕적인 제약조차 없다. 나의 뇌 속에서는 예수님도, 부처님도 내게 간섭할 수 없다. 신앙을 모독하고 패륜을 저질러도 상관없는 것이다.
아 물론 오해하지는 말도록 하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상상 속에서 신앙모독이나 패륜을 저질러 봤다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상상에는 그 어떤 제약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일 뿐.
둘.
나는 의심이 많다. 수상쩍게 내게 다가오는 사람은 물론이고, 내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도 빠뜨리지 않고 의심한다.
혹자는 내게 너무 팍팍하게 사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또 타인의 호의조차 의심하는 행위는 너무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상상해봐라. 과연 세상에 호의를 순수하게 베푸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지를. 하물며 사랑하는 애인이 내게 잘해 주는 것도 전혀 무상이 아니다. 반대급부로 그만큼의 애정을 바라기 때문이지.
자원봉사자들의 호의는 과연 무상인가? 어떠한 반대급부도 필요 없이 이뤄지는 행위인가? 아니다. 그들 역시 자원봉사를 통해 무엇인가를 탐닉하고 갈망한다. 그것이 일종의 만족감이든, 우월감, 주변의 시선이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봉사를 통해 무엇이든 반대급부로 얻고자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나는 의심이 굉장히 많다.
셋.
매일 망상 외에는 특별할 것 없던 일상에 재밌는 일이 하나 생겼다. 물론 내가하던 망상이 현실로 일어나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전혀 안 해 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또, 내게 벌어진 일이 마냥 사실이라고 믿지도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찾아온 모르는 번호의 전화.
대수롭지 않게 통화를 거절했다. 보나마나 또 신형 스마트폰을 사라느니 아니면 좋은 보험 상품이 생겼다느니 할 게 뻔하다. 그러나 나의 칼 같은 통화 거절에도 상대는 잠깐의 주춤도 없이 재차 전화를 걸어왔다.
무심코 다시 통화 거절을 하려는 찰나, 모르는 번호의 누군가에게 흥미가 동한다. 전화벨이 몇 번 울리는 그 짧은 순간에 나의 망상은 제멋대로 주체할 수 없이 가지가지 뻗어나간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전화를 건 상대방은 누구일까? 보험회사의 직원이거나 폰 판매업자라면 굉장히 철판이 두꺼운 사람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상업적인 목적을 두고 전화한 사람이 아니라면?
과거의 친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닐 것이다. 이렇게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재차 남자와의 통화를 간절히 바랄 남자는 없다. 남자는 없다? 그렇다면 아마 지금 내게 전화를 건 대상은 여자일 것이다. 그것도 나와 굉장히 통화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여자. 그래 내 상상이니까, 사실은 개인적인 바람으로 여자였음 좋겠다. 그것도 예쁜 여자.
더 상상을 이어나가고 싶지만, 이미 여러 번 오래 전화벨이 울린 터라 여기에서 멈추고 전화를 받도록 하겠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았다. 잠시 몇 초간의 정적이 유지되고, 마침내.
여보세요? 혹시 현진호씨 번호가 맞나요?
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상상 따위가 맞아들었다는 생각에 짜릿함이 뇌를 자극했다. 이어서 목소리만으로 이 여자가 묘령의 여인임을 알아차렸다. 스물 안팎의 여자. 목소리만큼이나 얼굴까지 예쁠지는 미지수다.
네 맞아요. 누구세요?
자 이제 정체를 밝혀라! 당신이 그 어떤 존재여도 괜찮다. 이제 와서 사실은 좋은 보험 상품이 생겼다고 말해도 실망은 하되 분노까진 하지 않겠다.
흠흠. 그러니까 저는.
그래. 너는.
현진호씨의 미래의 여자친구에요.
그래 내 미래의... 응? 뭐라고?
넷...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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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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