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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5/08 21:29:02
Name 리듬파워근성
Subject [일반] [도전! 피춘문예] 그 생각하면 웃음도 나고 그래서





영정사진 찍는 날: 그 생각하면 웃음도 나고 그래서













수룡마을 문임순 할머니



죄없는 남편은 기관에 끌려갔다 3년이 다 되어 풀려나왔다.
그 사이 며늘아기는 집을 나갔고 아들놈은 집 뒷편 숲에 목을 매었다.
이름조차 제때 못 붙여준 돌도 안된 손주 핏덩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폐인이 되어 돌아온 남편은 이미 예전의 남편이 아니더라.
알 수 없는 소리를 며칠간 고래고래 질러대더니
손주아기를 다리 밑으로 던져 죽게 하고
화병으로 몸져 눕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더라.
싸늘한 손주 핏덩이의 묘에 흙을 덮고 남편의 뼈를 집 뒷산에 홀로 묻으며
피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수천번 수만번 또 생각했던가.


내가 왜 살아야 하나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살아야 하나


그래도 내 어릴적
날이 좋고 볕이 쬐면
남편 지게에 올라타
들쳐 지고 이산 저산 다니며
꽃도 따주고 산딸기도 따 먹여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같이 춤도 추고
수줍은 척 눈도 흘기고 하면 '어흠' '어흠' 거리던 남편이 생각나.

그 생각 한번이라도 더 하고 싶어서
하루라도 그 생각 또 하고 싶어서
그 생각하면 웃음도 나고 그래서
여지껏 여든 다섯을 넘게 살았네.

영정 찍어준다고 온 어린 청년 등에 업혀봐도 그때 내 남편 만치는 안좋더라.
안좋고 말고.

살날도 얼마 안남은 노인네지만 자꾸 졸라대는 청년 등쌀에
나오지도 않는 쉰목소리라도 한번 외쳐본다.


어~이, 내 남편 조일권아! 돌나물 무쳐서 뛰어 갈텐께 조금만 기다리시오!















<이 글은 인터뷰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사진의 주인공인 문임순 할머니는 영정사진을 찍고 넉달이 지난 아침 남편 조일권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기왕이면 꽃도 나오고 곱게 나온 사진이 좋다'던 할머니의 요청에 의해 위 사진의 원본이 그대로 영정으로 쓰였습니다.
모두 12년 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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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nyDaddy
15/05/08 22:00
수정 아이콘
또 찡하게 하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리듬파워근성
15/05/10 02:14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헤헷
ridewitme
15/05/08 22:55
수정 아이콘
너무 좋네요. 윤제림 시인의 시 같은 느낌도 들고..
리듬파워근성
15/05/10 02:1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또 멋진 시인 한분 알게 되네요.
윤제림 시인 검색해서 몇 편 읽어봤는데 정말 좋네요. 와....
시 중에 '쇠북소리 들리는 보은군 내속리면'이 나오는데 이 글의 주인공과 매우 가까운 거리여서 반가웠네요.
세계구조
15/05/09 07:56
수정 아이콘
ㅜㅠ
리듬파워근성
15/05/10 02:17
수정 아이콘
데헷. (먼산)
지니팅커벨여행
15/05/09 14:47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멍하니 피지알을 하는데 갑자기 글 하나가 뻥 하고 제 가슴을 치고 가네요.
리듬파워근성
15/05/10 02:1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잘 다녀오셔요.
15/05/09 15:04
수정 아이콘
아.. 이 짧은 글 하나가 눈물을 핑 돌게 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리듬파워근성
15/05/10 02:17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15/05/11 03:44
수정 아이콘
또 눈물나게 하시네요 ㅠㅠ 언제 봐도 글도 참 좋고 제목을 쓰시는 감각도 참 좋습니다.
15/05/11 09:45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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