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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28 21:44
사실 진군, 진등 만으로도 힘들어요.
조조가 순욱 피라미드로 컸듯 유비도 제갈량 피라미드로 컸거든요. 향후에 제갈량 피라미드로 쓰겠습니다.
14/11/28 21:00
확실히 기마쌍검술이 일반인이 펼칠 검술은 아니죠.
무예랑 담쌓고 지내던 인물이 기마쌍검술을 펼치려면 10년은 수련해야 실전에서 써먹을 수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14/11/28 18:26
유비의 처세술이 참 대단하긴 해요. 쥐뿔도 없고 맨날 이리저리 치이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 같았으면 진작에 타세력에게 흡수되거나 망해서 사라졌을텐데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황제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14/11/28 18:52
여포는 뭐랄까.... 폭탄 돌리기랄까요?
동탁 밑에 들어갈때도 주인을 물었고, 동탁에게서 벗어날 때도 주인을 물었고, 유비도 물고, 조조도 물고... 그렇다고 승승장구 한 것도 아니죠. 이리는 이리인데... 다들 이리 좀 키워 볼라고 그렇게들 돌렸을까요 크크
14/11/28 19:35
여포가 유비를 확실히 이길 수 있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합니다만 유비 입장에서 그냥 안 받아들인다고 해서 이익이 될지는 확실하지 않은 상태이긴 했죠. 안 받아 줬다가 싸우면 이기든 지든 치명적인 피해는 확실했었으니까요. 뭐 미축의 경우야 확실히 돌아올 이득을 보기보다는 뭐 하나에 꽂히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는 덕심 정도로 보는게 옳고 해준만큼 대접도 잘 받았죠. 말년이 좀 안좋긴 했지만 그거야 미축잘못도 촉 잘못도 아니니...
14/11/28 21:40
서주의 유비와 형주의 유비는 기반은 없더라도 명성은 극과 극으로 봐도 무방해요.
신야 시절 유비는 조조와 대적해 망하지않은 영웅에 정식으로 예주목 좌장군 의성정후에 임명되었으며 방계지만 황족인 것도 인증받았을테니. 거기에 조조가 같이 영웅으로 칭했고 동승 의대조 사건까지 있었으니. 제갈량은 서주 시절에 조조의 학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였던데다 조조 집단엔 이미 제갈량이 치고 들어갈 자리가 사실상 없었고 제갈량의 꿈을 실현시킬 사람으론 유비가 딱이었죠.
14/11/29 02:29
본문에서 <자기보다 기반이 없거나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주지못할 사람에게 몸을 낮추는 인재는 없음.> 라고 적어주셨는데..
저도 pleiades 님과 마찬가지 의문이 듭니다. 제가 제갈량 입장이라도, 솔직히 기반도 없고 비전도 안 보였던 신야 군수 유비 정도로밖에 생각이 안 됐을 것 같은데, (삼고초려라는 이벤트가 있었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제갈량이 유비에게 몸을 낮춰서 들어가게 되죠. 그 당시 유비한테는 세력 기반도 없고, 꿈을 실현시켜주겠다는 달콤한 꾐(?)이나 유혹도 제갈량에게는 없었는데 말이죠. (유비의 명성이나 명예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면 이야기가 바뀌겠지만..) 본문의 주장과 배치되는 면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글쓴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14/11/29 03:07
저도 그 부분은 재밌다고 생각 되는데요 제갈량은 당시 형주 유력 호족들에 인맥이 있었으니 굳이 유비 밑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겠지만
당시 유비는 유표 밑의 객장이지만 유표군 최고 무장 문빙과 더불어 신야성 최전방에서 조조군을 막는 중책을 맡고 있었으니 실질적으로 유표의 세력 안에서도 꾀 중요한 직책에 올라 있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적벽대전 이후에도 장자 유기가 남아 있었지만 유비가 실질적으로 형주를 장악했을 정도니 형주내의 신망과 호족들의 지지역시 확고 했을 꺼구요 제 생각에는 당시 유비는 유표 밑에서 현재 미생에 비유 하자면 거의 부장급 정도로 회사내에서도 꾀 입김이 쎈 사람이라고 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러니 유비 밑으로 들어가서 줄선다고 해도 유표군내의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세력에 줄을 서는것이니 그리 나쁠게 없을것으로 생각 합니다
14/11/29 13:11
첨언하자면
유표가 유비를 받아들인 것과 유비가 여포를 받아들인 건 거의 유사한 행동이라고 봐야죠. 난세에 무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서주목 유비가 군벌 여포를 들였고 형주목 유표가 군벌 유비를 들였죠. 서주목 유비는 소패에 여포를 두어 청주로부터 오는 조조의 침입을 막게했고 형주목 유표는 신야에 유비를 두어 중원으로부터 오는 조조의 침입을 방비했죠.
14/11/29 03:17
글쓴님은 아니지만 저는 이때 제갈량이 형주의 중요성, 현재 유표의 상황, 유비가 형주를 차지할 가능성 등등을 계산기 두들겨보고 나름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고 수락한거라고 봅니다.(길게는 조조의 침공 대비 시나리오까지도 염두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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