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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9/19 03:47:48
Name 市民 OUTIS
Subject [일반] outis
나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전부는 아니고 반만.

市民 outis 중에 outis입니다.
헬라스(그리스)어로 [우티스]라고 읽으면 됩니다. 정확히는 고대 헬라스어인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네요. 고대 헬라스도 고졸기(아카익)-고전기(클래식)-헬레니즘기로 나눈다고 하는데, 보통 페르시아 전쟁 전을 고졸기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를 헬레니즘기로 보니, 제 이름은 고졸기까지 올라갑니다.

눈먼 시인인 호메로스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름으로요.
가령, 안드레아(스)는 용기(andreia)에서 왔을 것이고, 필리포스는 필리아(사랑, 우정)와 히포(말)의 결합어로 말을 사랑하는 이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outis는?

사실 헬라스어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outis란 한 단어는 없는 것 같습니다. ou와 tis가 결합된 말입니다.
ou는 홀로 쓰면 부사로 '아니, 아니오'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게 다른 말과 결합하면 부정을 뜻하는 접사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유토피아가 그 예가 될 듯 합니다. utopia는 u와 토피아, 즉 토포스(장소)가 결합된 말인데, u의 기원을 ou, 즉 부정어로 해석해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 봅니다. 혹은 eu(잘, 좋은)에서 왔다고 해서 좋은 곳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좋은 곳은 어디에도 없는 곳입니다. 플라톤 식으로 따지자면 좋은 곳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에는 없습니다. 감각(적 지각)으로 알 수 없고 지성으로 알 수 있는, 즉 보이지 않는 곳, 이데아계에 존재합니다. 어쩌면 진정으로 존재해 모범(본)이 되는 것입니다. ou는 이렇게 '아니'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tis는 부정, 의문 대명사로 '어떤 사람(것)', '누구(무엇)?'을 뜻합니다. ou와 결합해서 어울리는 것은 부정대명사로 '어느 누구도 아닌'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시민과 결합해서 무난하게 뜻풀이하자면 특별하지 않는, 보통 이하의 평범한 사람 정도가 될 겁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티스의 첫 쓰임은 책임회피, 즉 면피용 이름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던 안드레이아는 용기란 뜻도 있지만, 원초적인 의미는 남자다움입니다. 영어가 그렇듯 남자(man)는 사람이란 의미도 같이 가지며, 안드레이아도 사람다움이란 뜻도 있습니다. 즉 인간의 기본적인 덕목을 뜻했습니다. 사람의 탁월함, 덕(arete)은 용기가 그 첫째였습니다. 호메로스 시대에서 인간에게 가장 쓸모있는 덕목으로 용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용기있는 자, 영웅을 호메로스는 노래했습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아킬레우스이고, 아가멤논입니다. 쉽게 분노하고 미망에 빠지는 영웅들입니다. 이들에 비해 오뒷세우스는 특이합니다. 계교를 부리고 남을 속일 줄 압니다. 우티스는 "일리아스" 시대를 지난 "오디세이" 시대의 덕목일지도 모릅니다.
오디푸스가 쫓겨난 테바이에서 세대를 이어 복수혈전을 벌이고 10년의 트로이 공방전에서 영웅들의 몰락은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왕중의 왕 아가멤논이 사촌형제와 아내에게, 아니 간부들에게 죽임을 당할 때, 오뒷세우스는 눈이 둥근(퀴클롭스) 외눈박이 거인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합니다. "내 이름은 '아무도아니'요, 사람들은 나를 '아무도아니'라고 부르지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다른 전우들도 모두"(9권 366-7행/번역 천병희) 그리고 오뒷세우스는 신(포세이돈)의 아들 폴뤼페모스의 눈을 찌릅니다. 동료들(퀴클롭스)이 괴로워 울부짖는 폴뤼페모스에게 누가 너를 죽이려는가 묻자, '아무도아니'요라 대답할 수밖에 없는 폴뤼페모스!

이때는 신의 이름을 많이 알아야 하는 때였을 겁니다(기원전후쯤 그노시스-신지학-가 유행할 때 그랬다는데 이때도 그랬으리라 우기면서). 특히나 무서운 신일 수록. 하늘(천계)을 하나하나 벗어날 때 신의 이름을 불러야 그 신이 무사통과시켰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것은 그 사람을 아는 것이라 믿던 때였습니다. 영웅이 이젠 '아무도아닌' 사람이 되버렸습니다.

ps. 유가족의 세월호특별법이 처음 이슈가 될 때, 사인 소추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쓸 거라 생각했고, 누군가가 썼고 댓글을 달까 하다가 달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무도아닌' 사람이 되가는 것같습니다. "시민 우티스"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만, 그런 의미로 읽히기를 바랐는데, 정말 그렇게 되버렸습니다.

누구나 아무도 아닌 사람이 아니길 바라면서 썼습니다. 특히 '나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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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19 06:27
수정 아이콘
사회가 정리되어갈 수록 영웅 개념이 희박해지고 '나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너도 아무것도 아냐' 라는 기조가 팽배해지기 쉽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outis 님 아이디를 몇 년을 보면서 내내 '아우티스' 라고 읽었네요 헐....
14/09/19 11:07
수정 아이콘
영상이든 인터넷상의 글이든 내가 누군지 쉽게 알수 있는 시대라서 더더욱 아무것도 아닌 익명속에 숨어서 의견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유민아빠의 경우처럼 현재 행동의 옳고 그름이 예전 행동으로 부터 검증해 가는 상황에서 내 이름을 밝히기 어렵고 익명속에 숨어서 아무것도 아닌 채로 있는 것이 안전한 느낌입니다.
절름발이이리
14/09/19 19:1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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