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4/09/16 17:00:25
Name 랜덤여신
Subject [일반] 북한 정권 세습은 7대를 넘기지 못한다?
제법 유명한 사실이지만, 컴퓨터는 바보입니다.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는 건 가장 낮은 단위에서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논리’를 더해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여러 가지 응용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요.

그렇다면 컴퓨터에서 ‘문자’는 어떻게 나타낼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컴퓨터에 표현되는 모든 글자는 수로 바꾸어 저장 및 처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전에 특정 수와 특정 글자를 일대일 대응시킨 표를 만들어 두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1000: 가
1001: 각
1002: 갂
1003: 갃

2174: 낖
2175: 낗
2176: 나
2177: 낙

12170: 힢
12171: 힣

그리하여 [안녕하세요]라는 텍스트를 위 규칙에 따라 변환하면, [7472, 2365, 11584, 6432, 7804]가 되는 것이죠. 물론, 위의 대응 규칙은 제가 임의로 만든 것이고, 실제로는 더 길고 복잡한 표가 사용됩니다. 이러한 개념을 ‘문자 집합’ 또는 ‘인코딩’(엄밀히 따지면 의미가 좀 다릅니다)이라고 부르죠.

웹 브라우저에서 인코딩 메뉴를 눌러 보면 수많은 인코딩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컴퓨터의 발달 과정에서 온갖 단체가 온갖 인코딩을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유니코드]라는, 기존 인코딩들을 전부 포함하는 새로운 표준을 만들었지만, 아직까지 100% 대체하진 못했어요.


[14개의 표준이 경쟁 중 -> 14개? 말도 안돼! 기존의 표준을 모두 포괄하는 새로운 단일 표준을 만들어야겠다 -> 15개의 표준이 경쟁 중]

그렇다면 이게 북한과 무슨 상관일까요? 문제는 북한에서 만든 인코딩 표준인, ‘국규 9566’입니다.

대부분의 인코딩은, 정렬의 편의성을 위해 글자가 사전순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가’부터 시작해서 ‘힣’으로 끝나죠. 국규 9566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죠. 북한 인코딩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가 따로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900:
901:
902:
903:
904:
905:

1000: 가
1001: 각
1002: 갂
1003: 갃
...
12171: 힣

일반 문자인 '김', '일', '성'과 별도로, 김일성의 이름만을 지칭하기 위한 '김', '일', '성'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즉, 북한에서 두 사람의 이름은 일종의 [특수 문자](!)입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컴퓨터는 숫자밖에 모르기 때문에, 단어를 가나다순으로 정렬할 때는 문자에 배당된 숫자를 보고 합니다. 따라서 김일성과 김정일에만 쓰이는 전용 문자를 '가'보다 앞서 배치해 놓으면, [엑셀 등에서 명단을 가나다순으로 정렬할 때 자동으로(!) ‘김일성’, ‘김정일’이 맨 앞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덤으로 김일성은 항상 김정일보다 앞서게 되죠.

또한 저 여섯 글자들은 항상 굵게 표시됩니다. 처음부터 굵은 글씨만 만들어 놓았거든요.


[표에 따르면, 한글 자모 -> 김일성과 김정일 -> 키릴 문자 -> 히라가나/카타카나 -> 한글 순서군요.]

문제는, 북한 역대 국왕의 존함을 나타내는 이 귀중한 영역에 예약된 공간이 [23글자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한 사람당 이름이 3글자라고 가정해 보면, 최대 7명까지 담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왕세자의 이름을 절약(?)해서 외자로만 짓는다고 해도, 최대 10명까지밖에 못 들어갑니다. 따라서 8대 임금, 또는 11대 임금부터는 표의 비어 있는 공간에 억지로 끼워 넣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자신의 이름이 키릴 문자보다 뒤에 나오는 굴욕(!)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Y2K 문제나 2037년 문제랑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아마 저 인코딩 만든 사람도 북한 왕조가 수백 년을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거겠죠. 근데 이런 의심 자체가 북한에서는 대역죄 아닌지… (..)


[심지어 북한 워드프로세서에는 김일성 김정일 입력하는 단축 키가 따로 있어요… 각각 Ctrl+I와 Ctrl+J라고 하는군요.]

유교 문화권에서 행해지던 ‘피휘’ 문화와 비교해 봐도 재밌습니다. 피휘란, 왕의 이름에 들어간 한자를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됐기 때문이죠.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당 태종 ‘이세민’ 때문에 ‘관음보살’이 되었고, ‘연개소문’은 당 고조 ’이연’과 이름이 겹쳤기 때문에 ‘천개소문’으로 불렸습니다. 이 피휘라는 제도가 무서운 게, 한번 왕 이름으로 쓰이면 그 왕조 끝날 때까지 그 한자를 봉인당하게 됩니다. ‘다스릴 치’(治)처럼 자주 쓰이는 한자라도 얄짤 없습니다. 그래서 나중 왕들은 일부러 잘 안 쓰이는 한자를 자기 왕자 이름으로 짓곤 했습니다.

북한은 분명 피휘보다는 한 발짝 진보한 셈입니다. 일단 그 글자를 못 쓰게 하지는 않으니까요. 대신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죠. 한자로 따지면, 새 임금 즉위 시마다 [똑같은 모양이지만 글씨체만 굵은] 한자를 2글자씩 새로 만든 셈입니다.

그밖에, 국규 9566은 이것 이외에도 남한 인코딩과 차이가 여럿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자모 순서죠. 한국은 가, 까, 나, 다, 따 식으로 단자음과 쌍자음을 섞어 쓰지만, 북한은 가, 나, 다, …, 까, 따 이런 식으로 쌍자음이 맨 뒤로 갑니다. 북한 인코딩에도 이것이 반영되어 있죠.

그렇다면 오늘날 전 세계적인 인코딩 표준으로 통하고 있는 유니코드의 한글 자모 순서는 어떻게 될까요? 물론 남한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문제죠. 사실, 북한이 유니코드에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바로 저 [‘김’, ‘일’, ‘성’, ‘김’, ‘정’, ‘일’ 글자를 유니코드에 넣어달라]고 졸랐습니다. (..) 물론 깔끔하게 무시되었습니다.

북한의 열악한 IT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몇몇 역사적 자료들을 빼면 북한식 인코딩이 한국 네티즌의 실생활에 떠오를 일은 그다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분단이 지속되어, 먼 미래에 북한산 텍스트 자료가 많아진다면, 상호 교환하는 데 추가적인 품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유니코드를 쓰면 간단한 일입니다만,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 입김이 많이 들어간 유니코드를 쓰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여타 문화적 차이와 더불어, 기술 분야에도 남북의 정치적 차이가 반영된다는 것이 재밌습니다.

과연 8대 세습부터는 북한이 어떤 대책을 마련할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밌을 듯합니다...가 아니라 그 전에는 망하겠죠? 설마 150년 후에도 북한이 존속하진 않겠죠...?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4/09/16 17:02
수정 아이콘
외자로 지으면 될듯 (무릎을 딱)
무적전설
14/09/16 17:04
수정 아이콘
그냥 앞으로 7대 이후에는 이름대신에 김팔대 김구대 김십대 김십일대 김십이대...
불건전한소환사명
14/09/16 17:41
수정 아이콘
김리
하심군
14/09/16 17:04
수정 아이콘
???: 동무...이거 만든 간나새끼 당장 잡아오라우
눈시BBv3
14/09/16 17:04
수정 아이콘
단축키가 있다는 게 뭔가 웃기네요 크크. 감히 수령님과 장군님의 존함을 단축키로 한다고?
랜덤여신
14/09/16 17:09
수정 아이콘
따지고 보니 그렇네요. 문자표 열고 '김' 눌러서 닫고 다시 문자표 열고 '일' 눌러서 닫고 다시 문자표 열고 '성' 눌러서 닫는 정성 정도는 보여야 하는데, 감히 무엄하게 단축키를 쓰다니...
소독용 에탄올
14/09/16 17:57
수정 아이콘
팔만대장경 만들듯.....
14/09/16 17:06
수정 아이콘
김일성 2세, 김일성 3세 이렇게 지어야 할 듯;;...
베네딕트컴버배치
14/09/16 17:06
수정 아이콘
7 명이면 21 글자... 성씨 빼고 14 글자... 14 글자 중에서 2 글자를 뽑으면 91 가지. 그 중 앞 7 명을 빼면 84 가지. 그런데 김일일 같은 이름은 솔직히 좀 오바니까 몇 개 더 빼면 몇 십 대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크크크.
14/09/16 17:07
수정 아이콘
아홉 글자 들어갈 공간으로 충분할 거라는 예언을 해봅니다.
VinnyDaddy
14/09/16 17:10
수정 아이콘
좌백의 <금전표>가 생각나시는 분 안계신가요? 결국 8대에 이르러 '왕소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거부가 이름을 바꾸려거 벌인 일 때문에 벌어진 얘기죠.
레지엔
14/09/16 17:10
수정 아이콘
8대까지 간다면 시대적 필요에 의해서+환경 변화에 의해서 새로운 규격을 출현시킬 거고, 아마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어차피 북한산 텍스트 자료는 걔네 내적으로는 폼이 통일되어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기계적 변환툴을 사용해서 꽤 손쉽게 우리 표준에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4/09/16 17:10
수정 아이콘
북한이 망하면 새누리외 조중동들도 망할런지요 흐흐
베네딕트컴버배치
14/09/16 17:11
수정 아이콘
근데 저 프로그램 OS는 리눅스 같은데 룩앤필은 상당히 MS Office 2003?스럽군요.
랜덤여신
14/09/16 17:12
수정 아이콘
리눅스 맞고, 저 워드프로세서는 오픈오피스를 개조한 것입니다. 아마 MS 오피스에서 아이콘만 도용(..)한 것 같네요.
14/09/16 17:11
수정 아이콘
여태까지 나온 이름 글자 섞어서 순서 바꾸고 그러면 생각보다 많이 나올 거 같은데요
될대로되라
14/09/16 17:13
수정 아이콘
'김'자, '일'자 겹치는데 아깝게도 모두 등록해놨네요. 성만 공용으로 써도 몇대 더 해 처먹을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이건 사후에 책정되는건가요?(묘호?) 김정은은 없네요.
랜덤여신
14/09/16 17:14
수정 아이콘
그건 아니고, 93년에 처음 제정되어 마지막으로 개정된 게 2003년이라서 그렇습니다. 아마 조만간 김정은 이름 추가한 개정판을 새로 내놓지 않을까요?

사실 이미 개정된 표준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만, 북한 관련 정보는 알기가 어려워서...
azurespace
14/09/16 17:14
수정 아이콘
어차피 공통되는 글자인 김짜를 왜 따로 할당했는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문자표에서 한글자씩 입력할때는 좀 편리할 수 있겠지만 상용구가 있다면서..
랜덤여신
14/09/16 17:32
수정 아이콘
얘들이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 아니면 멍청해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김 장군님'까지만 써도 그 '김'이 어디서 나온 김인지 바로 알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덕분에 '김김김' 이렇게 세 글자만 써 놔도 1대 2대 3대가 정확하게 정렬이 되겠죠. (..)

아니면 김일성의 김은 빨강으로, 김정일의 김은 노랑으로, 김정은의 김은 주황으로 색칠한다든가... 무궁무진한 응용이 가능합니다!
azurespace
14/09/16 17:34
수정 아이콘
근데 쟤들이 김가 풀네임이 아닌 성만으로 호칭할 일은 거의 없을 뿐더러 셋 다 공식적인 호칭이 달라서 헷갈릴 일이 없다는 게 함정(...)
14/09/16 17:16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토쁜이
14/09/16 17:27
수정 아이콘
네안데르탈님이 전공 바꾸신줄....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크크크 어느 정도 알고는 있는 내용이었지만 더욱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재밌게 봤네요.
노래방가자
14/09/16 17:27
수정 아이콘
와 재밌어요!! 이런 정보는 처음에 어디서부터 나올까요?
Neandertal
14/09/16 17:28
수정 아이콘
북한은 정은이 동생이 마지막이지 않을까요?...건강도 꽤 안 좋은 것 같던데...
14/09/16 18:05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
꽃보다할배
14/09/16 18:28
수정 아이콘
조선왕조마냥 이름대신 왕명 지을듯 500년 가겠네요 크
낭만토스
14/09/16 18:51
수정 아이콘
저도 네안데르탈 님인줄 알았네요
14/09/16 21:56
수정 아이콘
크크 재밌네요.. 혹시 예전에 바로슬닷컴 운영하시던 그 랜덤여신님인가요?
랜덤여신
14/09/16 22:03
수정 아이콘
네, 맞습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3831 [일반] 위닝의 추억 - 좀 처럼 손이 가지 않던 명문팀 둘 [29] Sheraton.II6231 14/09/17 6231 1
53830 [일반] 수원 2-1번 버스에 타는 남자에 관한이야기 [52] 정용현6163 14/09/17 6163 6
53829 [일반] 차별에 대한 사회적인 의식, 아직 많이 뒤떨어져 있는건 아닐까. [14] Bergy104041 14/09/17 4041 0
53828 [일반] [쇼핑] 유니클로 Schwinn 맨투맨 그래픽티셔츠! [22] 뀨뀨8560 14/09/17 8560 0
53827 [일반] 천국에서 지옥으로.....(pgr스러운 이야기...) [26] Made.in.Korea3640 14/09/17 3640 1
53826 [일반] 소녀시대 태티서/클래지콰이 프로젝트/백청강/장리인의 티저가 공개되었습니다. [5] 효연광팬세우실3162 14/09/16 3162 0
53825 [일반] 2PM/존박/히치하이커/스피카S/틴탑/버벌진트/레이디스코드/에피톤프로젝트의 MV가 공개되었습니다. [7] 효연광팬세우실3152 14/09/16 3152 0
53824 [일반] 이정도만 알아도 MLB는 다 안다! 생활 MLB 1편 [49] becker5441 14/09/16 5441 7
53823 [일반] 아이가 어떻게 공부를 하게 관리를 해야할까요? [246] 퀘이샤13332 14/09/16 13332 1
53821 [일반] 갈색 피부, 남성, 그리고 한국에서 환영받기 [66] Dj KOZE7085 14/09/16 7085 5
53820 [일반] 중고나라에 핸드폰 매장을 사칭하는 사기가 많습니다. [9] 일체유심조7227 14/09/16 7227 3
53819 [일반] [스포츠] 복싱 역사상 최대의 공포 [67] 사장18495 14/09/16 18495 8
53818 [일반] 김부선씨의 운명은..? - 고발자가 살 수 없는 나라 대한민국 [31] 시경7339 14/09/16 7339 8
53817 [일반] 북한 정권 세습은 7대를 넘기지 못한다? [30] 랜덤여신7072 14/09/16 7072 8
53815 [일반] 중력, 가장 약하고 가장 특별한 힘 [40] 글곰7136 14/09/16 7136 2
53814 [일반] 인실성기의 법칙 [47] 절름발이이리6677 14/09/16 6677 6
53813 [일반] 보이스피싱 간신히 막았습니다.... 아이고;;; [49] 압도수7904 14/09/16 7904 3
53812 [일반] 배설 장군 후손들 ‘명량’ 김한민 감독 고소 [36] endogeneity7625 14/09/16 7625 0
53811 [일반] 피지알에 어울리는 군대이야기 [9] 사학에빠진사학년3692 14/09/16 3692 4
53810 [일반] 朴대통령, 세월호 유족의 '수사-기소권' 요구 거부 [131] 어강됴리10488 14/09/16 10488 15
53809 [일반] 이 만화가 굉장해 2006~2014년 [56] Duvet13421 14/09/16 13421 1
53808 [일반] 미덕이지 필수는 아닌것. [14] 삭제됨4323 14/09/16 4323 0
53807 [일반] 좀 아쉬운 것 같은 삼성의 새로운 갤럭시 노트4 광고... [43] Neandertal6393 14/09/16 6393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