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 텀이 엄청 길었네요.
별 이유가 있던건 아니고...농심배 결과에 대한 멘붕과,
당시 피지알 자체 내의 분위기, 그리고 잦은 웹서핑에 대한 회의감 등등으로
인터넷하는 시간 자체가 줄다보니, 바둑얘기를 쓸 시간이 안 나더군요.
이제야 쓰게되서 할 얘기가 굉장히 많을까 싶다가도, 그만큼 까먹은 내용들도 많습니다...ㅠㅠ
감안해주시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시작하기전에 앞서서,
프로기사들에 대한 칭호는 그냥 '선수'로 통일하겠습니다.
보통은 '9단, 8단' 등 n단으로 부르거나, 존중하는 의미에서 '사범'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사범'은 너무 낯간지럽고, 단으로 부를 경우 신예기사들이나 잘 모르는 기사들은 자꾸
검색해봐야하는 사태에 이르러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창호 선수'와 같이 이름 뒤에 선수를 붙이는걸로 하겠습니다.
사실 귀찮아서 그냥 이름만 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영 어색하더군요. 뭔가 프로기사들을 막 대하는 느낌도 들고...
3.
저번에 제가 쓰던 바둑이야기와 '미약하게' 이어집니다.
미약하다 표현한 이유는, 워낙 텀이 길다보니 연대순으로만 이어지는 글이 될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ㅠㅠ
지난 글 :
https://ppt21.com../pb/pb.php?id=freedom&no=50119
4.
농심배 파이널, 이미 앞에서 스포성 멘트를 날려서 결과를 예측하신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웨 선수가 박정환 선수를 이기고, 한국의 농심배 12회 우승을 저지하면서 중국의 농심배 3회 우승을 이루었습니다.
늘 중국선수들을 상대로 포석에서 밀렸고, 박정환 선수의 앞선 두번의 경기 모두 초중반이 안 좋았지만 중후반 뒷심으로 역전을 했는데,
오히려 이번 대국은 박정환 선수가 꽤 좋은 형국으로 이어졌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그당시 상황이 기억이 나네요. 박정환 선수의 확정가(확실하게 굳어진 집)가 너무 거대해서, 스웨 선수는 두터움을
통째로 집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박정환 9단이 약간 깊게 삭감을 들어갔는데,
스웨 선수는 마치 '아마추어처럼' 노골적으로 통째로 잡으려는 수를 적극적으로 두어갑니다.
프로기사들은 대마잡이를 노골적으로 노리는 수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통 대마를 모는 척 하면서 집으로 득을 보거나,
노리는 척 안 노리는 척, 하다 은근히 간을 보고, 그러다가 수읽기가 충분히 되면 그제야 잡으러 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그만큼 포석에서 스웨 선수가 밀려있었고, 다른 중국기사와 달리 승부를 띄워야하는 순간에는 주저하지 않는 스웨 선수의 결단력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중간에 김성룡 해설도 그렇고, 무리라는 평이 대다수였습니다. 사실 스웨 선수가 중앙이 두터운 편이긴 했지만, 빈공간이 워낙 많아서 쉽사리 잡힐 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박정환 선수의 확정가가 워낙 커서, 일부를 꼬리자르듯 도망가서 일부만 산 뒤 계가바둑으로 가도 충분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환 선수도 승부사. 이 돌은 잡힐 돌이 아니라는 듯, 전체를 다 잇고 더욱 깊숙이 찔러 들어갑니다. 아무래도 스웨 선수의 진영이다보니 두터운 스웨선수가 유리해보이지만, 그만큼 박정환 선수의 돌이 통째로 살면 어마어마한 집의 격차에 그대로 바둑이 끝나버리는 상태.
하지만 박정환 선수의 그러한 과신은 결국 착오로 이어지게 됩니다. 결정적인 수읽기 착각에, 아니 어찌보면 어려운 상황에서 스웨 선수에게 수읽기가 밀렸는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스웨 선수가 묘수를 발견하면서, 정확히는 박정환 선수의 수가 무리수였다는걸 발견하면서 바둑은 133수만에 허무하게 스웨 선수의 불계승으로 끝이 납니다. 133수면 엄청나게 빨리 끝난 편입니다. 스타로 따지면 10분 이전에 끝난 정도인 셈이죠.
'개인전은 많이 밀리지만, 단체전은 아직도 한국이 약간 앞선다' 는 평가는, 중국이 작정하고 세계대회 우승자로 도배한 드림팀을 구성하면서 안타깝게 깨져버렸습니다.
그러나, 복수의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5.
얼마 안 있어, 초상부동산배 한중단체전이 펼쳐졌습니다.
초상부동산배는 한, 중 각각 7명의 선수가 나와 맞대결을 벌입니다.
총 이틀간 펼쳐지며, 마지막인 2일째 경기에는 양국의 주장들은 주장전으로 엔트리 고정되어있습니다.
스코어 합산이 높은 국가가 승리, 만약 7:7로 동률이라면 주장전을 승리한 국가가 승리하게 됩니다.
첫날은 4:3으로 근소하게나마 앞서는 한국팀의 승리로 끝납니다.
특히 고전을 예상한 한국팀은, 비교적 신예이며 어린 선수인 나현 선수가 중국 2위 천야오예 선수를,
변상일 선수가 중국 3위 구리 선수를 제압하는 이변을 토하며
한국도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알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초상부동산배 1차전 결과]
박정환(주장) vs 저우루이양 - 196수끝, 박정환 불계승
김지석 vs 판팅위 - 196수끝, 판팅위 불계승
나현 vs 천야오예 - 232수끝, 나현 불계승
변상일 vs 구리 - 199수끝, 변상일 불계승
이세돌 vs 미위팅 - 270수끝, 이세돌 불계승
이지현 vs 탕웨이싱 - 162수끝, 탕웨이싱 불계승
최철한 vs 스웨(주장) - 155수끝, 스웨 불계승
이틀째엔 아주 흥미진진한 매치가 펼쳐졌습니다.
바로 10번기 3국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이세돌 선수와 구리 선수가 만났습니다.
대국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나름 팽팽하다 싶은 순간에
구리 선수가 굉장히 자신만만하게 조금은 위험한 패를 들어가고부터
구리 선수에게 승리의 냄새가 난다고 포착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결국 구리 선수가 승리하면서 이세돌 선수가 2:0으로 앞서는 10번기에서
역전의 조짐이 슬슬 보이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현찰로의 가치는 아무의미없지만 가끔 재미로 하는 바둑머니를 구리 선수에게 올인해서
2.5배로 뻥튀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다른 올인을 실패해서 다시 무료충전으로 연명하는 무료충 신세입니다. ㅠㅠ)
한편 박정환 vs 스웨의 주장전에서는 박정환 선수가 스웨 선수에게 포석에서 많이 밀려서, 덤 내기 어려운 바둑이 될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주장전은 패배한다면 스코어로 앞서야 한국팀이 승리하는데...다른 한국팀의 상황도 좋지않아보였습니다.
변상일 선수는 천야오예 선수에게 좋았던 바둑을 역전당하며 패배. 미위팅, 탕웨이싱 또한 각각 이지현, 최철한에게 굉장히 유리한 구도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앞선 구리 선수의 승리까지 합치면 벌써 중국은 도합 4승.
다행히 김지석 선수는 한국팀 랭킹 TOP 10과 상대전적 7승 23패의, 한국팬들에게 한국팀이라 사랑(?)받는 저우루이양 선수에게 승리.
또한 나현 선수가 판팅위 선수를 잡아내는 이변을 다시 한 번 터트리며 2승 4패까지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승부의 흐름은 주장전의 승패로 갈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중반까지도 좋지 않았던 흐름이 조금씩 박정환 선수에게 넘어오면서, 후반에는 마침내 10집 이상의 차이를 보이며 덤을 내고도 넉넉하게 남는 형국으로 흐릅니다. 결국 박정환 선수의 승리! 총 스코어는 7:7이지만, 주장전을 승리한 한국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초상부동산배 2차전 결과]
박정환(주장) vs 스웨(주장) - 225수끝, 박정환 불계승
김지석 vs 저우루이양 - 234수끝, 김지석 불계승
나현 vs 판팅위 - 153수끝, 나현 불계승
변상일 vs 천야오예 - 163수끝, 천야오예 불계승
이세돌 vs 구리 - 162수끝, 구리 불계승
이지현 vs 미위팅 - 253수끝, 미위팅 불계승
최철한 vs 탕웨이싱 - 240수끝, 탕웨이싱 불계승
6.
중간에 국제대회가 몇차례 있었습니다. 바이링배(백령배), 몽백합배, 춘란배 등등...
여튼 어떤 대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세돌 선수와 구리 선수가 예선에서 다시 맞붙었습니다.
승자는 구리 선수의 승리. 초상부동산배까지 합쳐 구리 선수에게 2연패중인 이세돌 선수.
재미있는건, 이 2연패가 모두 10번기 3국을 앞둔지 1주일 사이에 일어났다는 겁니다. 스코어는 이세돌 선수가 앞서있지만,
이미 흐름, 기세는 구리 선수가 쥐고 있는 것이 당연한 상황.
10번기 3국에서도 구리 선수가 이세돌 선수에게 승리하면서, 구리 선수가 이세돌 선수에게 3연승을 따냅니다.
그와 함께 기세도 확실하게 구리 선수에게 넘어오면서, 스코어는 2:1이 됩니다.
아직까진 스코어에 여유도 있겠다, 다음 4국까지 시간은 한달 정도로 넉넉하고.
4국은 유일하게 한국에서 펼쳐지는 10번기였기에 다음 4국에서 이기면 되지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7.
가그린배 여류국수전 결승전에서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박지은 선수와 김채영 선수의 결승전 최종국. 1:1 상황에서 마지막 3국이었는데,
이미 기계적인 잔끝내기만 남은 상태에서 박지은 선수의 승리가 확실한 상황이었는데...
단수된 모양을 이어버리다가, 박지은 9단의 대마가 자충이 되면서 그대로 역전되어버립니다.
김채영 선수는 먼저 모양을 보고, 이걸 따내야되나 말아야되나 엄청나게 고민을 했고,
결국 두고 따냅니다. 따내는 장면에서 박지은 선수도 그제야 눈치를 채며 '아...'하고 탄식.
그렇게 여류 국수가 뒤바뀌어버리는 해프닝 아닌 해프닝이 발생합니다.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오갔지만, 결국 '프로라면 따내는 것이 당연' 쪽으로 결론지어졌습니다.
8.
황룡사쌍등배 세계여자바둑단체전은 농심배의 여류기사편이라 보시면 됩니다.
여류기사들이 출전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거의 모든 방식이 똑같습니다.
역시나 농심배에서처럼 일본은 일찌감치 탈락. 김혜민 선수가 5연승을 해주면서 한국이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갔으나,
자국 신인왕전에서 남자 프로기사를 꺾고 우승한 위즈잉 선수에 의해 막히게 되고,
결국 한국의 최정 박지은 vs 중국의 위즈잉 왕천싱의 2:2로 흐릅니다.
최정 선수와 위즈잉 선수는 각각 국내 여류기사 톱으로 라이벌구도를 형성했지만,
제가 볼때마다 위즈잉 선수가 최정 선수를 압도하면서 승부의 무게축이 한쪽으로 기운 감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위즈잉 선수가 가볍게 승리. 가그린배 여류국수전의 상처가 남아있는 박지은 선수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엄청 가볍게 박지은 선수가 위즈잉을 물리치고 최종전에 갑니다.
그런데 농심배 판박이 아니랄까봐, 역시나 최종전은 중국의 왕천싱 선수가 승리하면서, 아쉽게 한국은 우승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9.
여기서 잠깐 국내대회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요 몇달간 국내대회는 2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자전, 하나는 GS 칼텍스배.
둘다 속기전이고, 사실 국내 대회는 대부분 속기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방송용이다보니...
그게 계속 말이 나오고 있죠. 중국은 세계대회와 비슷한 시간이라 중국에 더욱 밀리는 경향이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한국 바둑리그에도 장고바둑을 일부 도입하기도 했고...아, 이야기가 너무 새버렸군요.
GS 칼텍스배는 예선전이 치뤄지며, 맥심커피배는 상위랭킹 16명에게 시드형식으로해서 16강부터 펼쳐지는 대회입니다.
그러나 바둑랭킹은 게임 랭킹과 다르게 굉장히 정확하다 싶을 정도로 기력을 충분히 반영하기 때문에,
예선전이 펼쳐지지 않는다고 해서 스타나 롤과 같은 이스포츠에 비해 대회의 권위에 손상이 가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여기서 국내랭킹 1~4위가 각각 격돌합니다.
맥심커피배는 랭킹 1위 박정환 vs 랭킹 3위 이세돌, GS 칼텍스배는 랭킹 2위 김지석 vs 랭킹 4위 최철한.
박정환 선수는 지난 대회 전승우승까지 합쳐 이번 대회까지 전승우승을 노리며 '맥심불패'에 도전,
이세돌 선수는 '박정환 선수는 젊으니까, 앞으로 우승할 기회가 별로 없는 이 선배에게 양보하리라 믿는다' 며
농담조로 이야기했습니다.
의외로 승부는 이세돌 선수가 2:0으로 다소 싱겁게 승리합니다.
아무래도 속기바둑인데다, 두 기사 모두 전투력이 강력한 기사들이다보니 초중반부터 굉장히 격렬한 전투가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모두 이세돌 선수가 승리하면서 이세돌 선수의 우승이 쉽사리 결정되었습니다.
한편, GS 칼텍스배는 부진하던 최철한 선수가 4강에서 박정환 선수를 제압하면서 예상외로 결승에 진출...했으나,
김지석 선수가 내리 3연승을 하면서 3:0이라는 다소 굴욕적인 스코어로 김지석 선수에게 우승컵을 내주고 맙니다.
현재 자국 선수들은 1위에서 4위까지인 박정환, 김지석, 이세돌, 최철한 네 선수는 성적이 거의 랭킹대로 가는 경향이 있고,
(다만 최철한 선수는 나머지 세 선수에 비해 요즘 많이 부진한 모양새입니다)
그 이하 선수들은 랭킹보다는 오히려 치고 올라오는 나현 선수나 몇몇 주목할만한 신예들이 눈에 띱니다.
아무래도 원성진, 백홍석 등 기존 선수들이 많이 군입대를 해서, 허리층이 텅 비어있고 신예들이 군데군데 치고올라오는 느낌입니다.
그에 비해, 현재 중국에서는 바둑 열풍이 불어서
축구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스포츠가 바둑이라는군요. 한국 기사들이 중국 바둑도장을 방문할때마다 그 어마어마한 열기에 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게다가 중국은 정부차원에서도 이창호 선수 이후 넘어간 바둑의 헤게모니를 뺏어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서, 바둑의 흐름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그나마 TOP 10간의 싸움은 한국:중국이 45:55정도라고 한다면,
TOP 20으로가면 40:60, 그 이하는 30:70...밑으로 갈수록 중국 선수들에게 많이 밀리는 모습입니다.
10.
지난달, 이세돌 선수의 고향 신안에서 이세돌 vs 구리 10번기 4국이 펼쳐졌습니다.
구리 선수에게 3연패, 게다가 유일하게 한국에서 펼쳐지는 대국.
이번에 지게 되면 기세가 확 넘어가는 것은 물론, 스코어에서도 2:2로 동률이 되어 여유가 없어져버립니다.
바둑을 보고, 해설을 들으면서 느낀것은
'이세돌 선수가 왜 저렇게 느슨하게 두지...?'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뭐랄까...이세돌 선수답지 않게, 무난무난한 수만 두다가 무난하게 패배해버린 느낌?
분명 해설들도 형세가 좋지 않아서 '이대로는 안 된다, 더 강한 수를 찾아야한다' 라고 했는데,
평이한 수로만 두면서 무난하게 패배해 다소 충격이었습니다.
여튼 이렇게해서 10번기 4국도 이세돌 선수의 패배, 스코어는 순식간에 2:2가 되었고
구리 선수의 4연승으로 흐름은 확실하게 구리 선수에게 넘어갔습니다.
매달 마지막 일요일에 10번기가 치뤄지니, 10번기 5국도 이제 3일 남았네요.
11.
아 이거 쓰다보니 너무 길군요. 요즘은 또 바둑을 안 보기 시작해서, 최근 리그 소식은 LG배를 제외하면 제가 본 것은 대강 적은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LG배 예선 이야기, 그리고 대만의 미녀 바둑기사 헤이자자 6단 이야기,
또 기회가 되면 중국리그와 중국 선수들에 대해서도 한 번 쓰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