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년 5월 16일 조비가 사망합니다. 그 다음날인 17일에 조예가 황제로 즉위합니다. 바로 위명제(魏明帝)죠.
조예는 즉위하자 치서시어사로 있던 순우를 비롯한 관리들을 각 지역의 전선으로 보내 병사와 군관들을 위로하게 합니다. 그러던 8월, 손권은 군사를 일으켜 위를 공격하기로 결정합니다. 손권은 강릉에 있던 제갈근을 양양을 공격하게 하고 장군 심덕을 여강군 환성으로 진격하게 하죠. 손권 자신은 손환(이릉대전 당시 그 손환이 아닌 다른사람입니다.)을 선봉으로 삼아 강하성을 되찾기 위해 강하군 석양현으로 진격합니다.
3로 침공을 보복이라도 하는 듯 손권 역시 3로에 걸쳐 위를 공격한 겁니다. 오의 파상공세에 놀란 위의 조정신료들은 급박하게 돌아갑니다. 환성은 정동대장군인 조휴가 있었고 양양에는 무군대장군 사마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끼어있던 강하는 오의 수도인 무창과 가깝고 손권이 직접 나서서 대군을 이끌고 온 상황이라 강하성은 함락당할 위기가 컸습니다. 신료들은 조예에게 당장 강하에 원군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조예의 생각은 달랐죠.
조예 : 오군은 석양현을 공격한다고 배에서 내려 뭍을 공격하는데 이는 우리가 대비하지 못한 곳을 습격하기 위한것이오. 손권은 유리한 수전을 포기하고 육지로 와서 공격합니다만 성을 공격하려면 수비군보다 두 배가 넘는 세력이 있어야 하오. 지금 문빙 장군과 서로 대치하고 있지만 오군은 오랫동안 공격하지 못하오.
219년 강하태수로 있던 손교가 죽자 그 동생인 손환은 양무중랑장 강하태수가 됩니다. 3로 전투에서 진종이 왕직을 죽이고 배반하자 강하성이 넘어가게 되고, 226년 손권은 손환을 선봉으로 삼아 석양현을 공격합니다. 손환은 부장인 선우단에게 5천 군사를 주어 회하와 강하의 길을 차단해 위군이 지원하러 오지 못하게 하고 자신은 오석, 장량의 부장을 거느리고 5천 병력을 이끌고 석양현 인근의 고성을 함락시키고 수비군의 대장 세명을 생포합니다. 문빙은 군사를 이끌고 나와 석양성을 지킵니다. 손권은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석양성을 포위합니다. 손권이 석양성을 공격할때 쏟아진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성벽과 목책 일부가 붕괴되어 위급한 상황에 이릅니다. 거기에 석양성 내의 군사들은 둔전때문에 밖에 나가있던 와중에 손권이 강행해와 석양에 병력이 많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위급한 상황이 이어지자 문빙은 성 내의 백성과 군사들을 숨기고 자신은 관사에 들어갑니다. 손권은 20여일간의 공세에도 함락될 여지가 보이지 않던 석양성이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지자 손권은 더럭 의심이 들죠.
손권 : 위에서는 이 사람이 충신이고 형주에 오래 있던 사람이라 이 지역을 맡겼튼데 지금 성을 지키고 항전하고 있다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는 건 무언가 꾸미고 있다. 그러지 않다면 적의 원군이 이르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당시 이 인근에 있던 치서시어사 순우는 강하군 인근에서 군사와 민병들을 규합해 1천의 보병과 기병을 모읍니다. 그러나 1천 병력으로 수만에 달하는 오군을 공격할 수는 없는 법이죠. 순우는 석양성 인근 산에 올라 야간에 횃불을 여러개 들고 병력이 수만에 달하는 것처럼 위장하자 손권은 놀라 달아납니다. 그리고 성을 지키고 있던 문빙은 오군이 후퇴하려하자 바로 오군의 후위를 공격해 오군을 격파하고 손권은 겨우겨우 무창으로 되돌아갑니다.
무군대장군으로 있던 사마의는 제갈근이 양양으로 진격해오자 사마의는 양양성의 병력을 이끌고 제갈근을 중간에 요격해 제갈근의 부장 장패와 오군 천여명을 참수하고 제갈근의 오군을 격파합니다. 조휴 역시 환현을 침공하고 환성을 점거하고 있던 오 장수 심덕을 죽이고 오군을 격파해버립니다.
겨우겨우 무창으로 돌아온 손권에게 한가지 기가 찰 소식이 전해집니다.
손견때부터 손가를 섬긴 오의 원로 장수 중 한명인 한당은 227년에 사망합니다. 그 아들인 한종은 아버지의 병력과 작위를 승계받았는데 한종이 상중이라 손권은 한종을 손등, 육손과 함께 무창을 지키도록 합니다. 한종은 아버지 한당을 믿고 매우 방자해서 많은 비첩을 거느렸고 주석인 오서에는 그가 미리 배반하기 위해 부하들이 부녀자들을 겁탈하거나 민가의 재물을 빼앗아도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한종마저도 이러한 행동을 하는데다 손권의 조서마저 위조하기에 이르죠. 그의 부하들은 도적과 같은 짓을 했지만 손권은 한당을 봐서 그를 일체 문책하지 않습니다만, 한종은 저지른 일이 있기 때문에 내심 크게 두려워합니다. 한종은 아버지를 장사지내기 전 친척과 부하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자신의 비첩들은 측근들에게 내리고 잔치를 벌인 뒤에 자신을 따르게 하죠. 그리고 한당의 영구와 외가 쪽 사람들과 자신 휘하의 병사와 장수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수천의 사람들을 데리고 위로 도망갑니다. 한종이 위로 투항하자 조예는 그를 장군에 임명하고 그에게 광양후의 작위를 내립니다. 한종은 이후 위군을 이끌고 위와 오의 접경지역을 자주 공격해 오의 민간인과 병사들을 자주 죽여 손권이 크게 화를 내죠.
손권이 3로에 걸쳐 복수전을 벌이기 전인 226년 11월 교주지역을 오래동안 다스렸던 사섭이 죽습니다. 손권은 이렇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손권 : 제갈량을 따라 이 지역을 오의 직할지로 편입시키자.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여대를 교주로 보냅니다. 손권의 욕심이 또 발동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