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후반, 뭐 그래, 이정도 나이면 20대 후반이라 부를만한 나이겠지. 주위에 결혼하는 친구들도 한 둘씩 생기는 그런 나이 말이다. 아저씨라고 안 불러주고 학생이라고만 불러줘도 기분좋은 그런 나이, 여전히 나는 좋은 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좋을 때라고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 백수의 길을 선택한 나에게 각자의 막중한 책무를 부여받고 사회라는 전쟁터에 나간 주위 친구들을 보는 감정은 편하지 않다. 그들은 회사에서도, 연애에서도 항상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친구들이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필요로 하는가, 원하는 가 와 같은 말이니까.
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또한 매우 귀찮은 일일 듯 하다. 그런 경험은 비록 없더라도 그냥 그럴 것 같다로 나의 잉여스러움을 스스로 합리화하긴 하는데, 이게 또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예 없다면 그건 너무 서글픈 일이란 말이야. 이거 뭐 말 그대로 잉여인간이잖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 거 티비 사랑과 전쟁이나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프로 보면 온갖 나쁜 놈들이 다 나오는데 그놈들도 하다못해 최소한 자기를 바라보는 애인은 한명 있단 말이야..근데 나는 그런것도 없어.
날도 따뜻해지는데 괜히 심란해진다. 에휴.. 이거 뭐 요즘은 휴대폰에 하다못해 술한잔 마시자고 연락오는 사람도 없다고.. 이게 또 물론 나 생각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아무리 내가 백수생활을 자처했어도 막상 이렇게 되면 또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 결국 문제는 여자친구가 없는게 문제였어,라면서 온갖 청승을 떨고 괴랄한 결론으로 생각이 향하는 것을 간신히 막고 있는데 누군가에게 메세지가 하나 도착했다. 음 누구지?
하하 너였군,우리가 5년전에 처음 만났던가? 우리도 나름 오래 안 사이구나. 알고지낸 이후로 매년마다 그녀석은 빠짐없이 꼬박꼬박 연락이 왔다. 얼굴 한번 보자고, 내가 전국 어디에 있더라도 항상 내가 있는 지역까지 찾아와서 날 근사한 곳(?)으로 초대해 근사한 밥을 사줬다. 그리고 재미있게 놀다가 헤어지곤 했지. 설, 명절마다 안부도 항상 물어보고..만나는 날에는 한껏 기대하는 목소리로 아침부터 전화해서 약속 어기지 말라고 꼭 보자고 두번 세번 확인하면서 날 만나기만을 기대하는 참 좋은 녀석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연락이 왔다. 얼굴한번 보자고,자기가 밥 사겠다고, 하하 그래 그래도 세상에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구나 라고 웃음이 나온다. 이게 근데 기분이 좋은 일인가? 라는 의문점은 들지만 뭐 어떤가? 그래도 날 필요로 해서 찾아주는 사람인데 흐흐.
근데 왜 반갑지가 않지? 무슨 이유일까?
근데 필요로 한다는게 꼭 쓸모있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젠장맞을 예비군..간다고 가...... 고만보채 좀...
이제 좀 부르지마 제발... 우리 이제는 헤어져...그만만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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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과는 관계없이 글 제목만 보고 첫사랑과 버디버디로 쪽지 주고 받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그 때 아마 첫사랑쪽 숙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버킷리스트 처럼 죽기전에 꼭 해봐야할 일들을 쭉 얘기하던 중에 하나로 그 사람이 ['누군가한테는 필요한 사람이 되어보기. 이거 어때?']라며 쪽지로 그 내용을 보내주며 제 의견을 묻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