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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16 18:36
아이고 부끄럽네요. 필력이 딸리니 횡설수설이네요. 이거야 원....
글 중간에 '인문학자' 얘기 하면서 나온 얘기인데... '소설과 시'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인류는 상상의 영역을 넓힘으로서 현실을 증식시켜 왔듯이 디지털 문화도 그리 보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게 사실이긴 하지만요...
13/01/16 18:14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근데 글쓴이분이 주장하는바가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제 생각은 ... 늘 세상은 변화를 추구하는 자와 과거를 지키려는 자의 대결로 점철되었고, 미시적으로는 어느누가 옳은지 명확하지도 않고, 전자가 이기기도 하고 후자가 이기기도 하지만, 거시적으로는 늘 변화를 추구하는 자가 이겨왔고, 그만큼 세상을 발전시켜왔다고.. 말이죠. 디지털도 크게 보면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소통이 줄어든 사람도 있고 더 불편해진 사람도 있고 소외를 느끼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뭐 요새 보니 디지털문화에 '찌든' 아이들의 지능이 실제로 떨어졌다.. 라는 결과도 있더라고요~~) 어쨋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좋은게 아닐까 하구요~~
13/01/16 18:38
주장하는 바가 정확하지 않다는 의견 받아들입니다. 요즘 하도 디지털의 폐혜에 대한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어 그에 대한 반감글이다보니
횡설수설 했네요. 그냥 분노글입니다.^^ 음 글고 또 한가지 궁금한점이...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립은 언제까지 계속될지...이건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실재'냐 '모방'이냐의 대결인데....미래에는 디지털의 아날로그화가 가속될 것이라던데...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합니다.
13/01/16 18:52
제가 이해력이 부족한지 글이 조금 어렵네요..
그냥 제 생각만 말씀드리자면 디지털을 아날로그랑 비교해면서까지 거부해야되나 싶네요. 예를 들어 어릴적에 동네에서 뛰놀던게 지금 피시방에서 게임하는거 보다 뭐가 더 좋냐는 이말입니다. 뭐 향수쯤은 느낄수 있겠죠.. 막상 그 시절로 돌려보내줄게, 하지만 나이는 그대로야 한다면 아무도 안갈걸요. 지금 후회하는 일을 다시 되돌아가 고치려고는 하겠지만요. 친구들 전화번호 못외우고 술자리에서 카톡만 하는게, 전화번호를 못외우지만 디지털로 더 쉽게 다른 학문을 배우고 카톡으로 더 쉽게 약속을 잡고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건 제 바램이지만 한마디 말로도 집에 불을켜고 자동차 시동을 걸며, 침대에 누으면 자동으로 천장에 TV가 나오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13/01/16 20:35
님의 이해력이 부족한게 아니라 저의 필력이 떨어지는 것이죠.
음 쨌든 '동네에서 뛰놀던게 피시방에서 게임하는거 보다 뭐가 더 좋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는 '그래도 기왕이면 동네에서 뛰어노는게 더 낫지 않겠냐'라는 대답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딱히 게임문화에 대한 부정적 견해라기보단 심증적인 상태 역시 무시할 수 없지 않나 싶어요. 물론 기성세대는 좀 극단적이긴 합니다.
13/01/16 18:55
디지털의 효용에 대한 고찰은 이미 차고 넘칠 만큼 이루어졌으니까요. 그냥 균형을 잡아 가려는 노력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현 시점에서 디지털 자체에 대한 회의론은 그 자체로 좀 설득력이 떨어지거니와 주장하는 사람도 거의 없지 싶습니다. 당징에 그런 주장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디지털이 배제되기 어려운 상황인데요. 흐흐
앞으로도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흐흐) 디지털 의존도는 더욱 올라갈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 디지털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혹은 디지털이라는 패러다임을 누리는 주체인 '사람'은 결국 아날로그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한 고찰들은 나름의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언급하신 디지털의 아날로그화도 그런 맥락이겠구요. 요즘 한 광고에 나오는 카피가 이런 접근의 핵심을 잘 짚어주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에서 기술로, 다시 사람으로]
13/01/16 20:37
디지털 자체에 대한 회의론은 여전합니다. 본문에서 피력했다시피, 대표적인 예가 '인문학자'들이에요. 거의 그런 논리를 주도하고 있는
쪽이 바로 이 계열입니다. 저는 디지털 회의론에는 딱히 부정하지는 않는 입장인데, 명백히 시대의 앞날을 통찰해야 할 학자들이란 작자들이 나서서 그런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는 게 다소 의외로 느껴지더군요. 약간의 실망도 느끼구요.
13/01/16 18:59
디지털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는 데이터를 처리, 저장하는 일종의 언어양식일 뿐이죠.
디지털 시대.. 뭔가 좀 와 닿지는 않습니다. 플랫폼을 이용한 커뮤니티, 소통기능은 얼굴을 보고, 음성을 듣고, 몸짓을 보는 소통과는 다르긴 합니다. 편리하지만 결여된 소통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죠. 3분 레토르트 식품과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식사의 차이라고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그걸 문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유효한 선택지가 늘어난 것을 반기면 모를까. 발생하는 문제들은 변화.적응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일 뿐입니다. 혹은, 누군가에겐 이 변화가 아주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요. (비유를 연장하자면, 아주 바쁜 사람들에겐 손에 들고 걸어가면서 먹는 음식이 필요한데 그 음식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런 음식이 우리의 식문화를 좀먹는다" 라고 하는 것에다 비유할 수도 있겠지요.)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고, 게중엔 폄하와 비난의 관점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것 역시 "너무 빠르니 좀 천천히 변해가자 응?" 정도로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변화든 그 변화의 방향 자체가 바람직하다고 하더라도 부작용을 줄이는 일 역시 중요하기에 그러한 관점 역시도 존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13/01/16 20:40
공감합니다. 제가 하고픈 얘기를 심플하게 요약해주시네요. (필력 좀 가다듬자 어흑..)
말씀하주신 대로 저 역시 아날로그적인 가치가 조금 더 인정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보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좀 약간 있어보이는 척을 하자면, '디지털은 가장 후진 아날로그며, 아날로그는 가장 완벽한 디지털이다' 랄까요?^^;;
13/01/16 19:13
디지털.. 이랄까 도구적 변화로도 문화는 굉장히 쉽게 변하죠. 대표적으로 레코드. 축음기나 LP판이 처음 나온 시절에 녹음 음악이라는 건 '생음악을 가공 변조한 열화품', '음악에 대한 몰이해를 유발하는 문화 파괴자'였죠. 더군다나 녹음 시간이 짧던 시절에는 '음악의 호흡을 짧게 강요하는 인스턴트 식품'이라는 얘기까지 나왔고. 지금도 몇몇 보수적인 음악 애호가들은 저 견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논쟁은 LP=>CD이행기에도 나왔고(이때 나왔던 가장 유명한 의견은 역시 '디지털의 차가운 음색으로는 LP만의 고유하고도 우수한 음색을 이길 수 없다'겠죠), CD=>mp3 이행기에도 나왔습니다.
그 논쟁 속에서의 다양한 사유들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만, 결국 언제나 결론의 방향은 '사용자가 알아서 조절해라'로밖에 귀결될 수 없었다는 점에서 편리함의 증대라는 마약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종합적으로 보면 더 좋은 것일 가능성이 아주 높고요(핸드폰과 문자메시지, 카카오톡으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변화가 엄청나고 부작용도 엄청납니다만, 예전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과연 몇이나 돌아갈런지?).
13/01/16 20:47
본문 하단쯤에 적은 부분에서 좀 더 첨언하자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애써 가르려는 행태도 참 웃기다고 생각합니다만...그것이 유효하다는 전제에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자면.. 컴퓨터의 발달 이전까지의 도구는 말 그대로 인간의식의 지배 아래 있었다면 이후의 디지털 혁명을 즈음하여 도구가 인간을 지배하는 형태로 변해버렸다는 견해 역시 충분히 수긍할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조건 '변화'라는 통시적 프레임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네거티브한 입장의 논리를 조금 더 가다듬어 이 유효하고도 뛰어난 디지털 문화를 우리 의식의 지배력 안에 놓아둘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근데 그렇게 되면 또한 디지털만의 고유한 문화가 퇴색되겠죠. 어렵다..)
13/01/16 19:20
글쓴 분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싶으신 건지는 잘 모르겠어서 일단 부분만을 보고 제 생각을 써 보자면..
글쓴 분께서는 디지털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보고 도구임을 부정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은 도구라고 봐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에 따르면(지금 읽고있는 중이고 절반밖에 읽지 못해서 이해가 일천하지만..) 정상과학을 지탱하는 어떤 과학활동의 여러 이론, 방법론적인 것들을 하나의 범주로 패러다임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과학자들은 작게는 어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크계는 전체 세계를 조망하는 세계관의 변화를 겪게 되죠. 그러면서 과학자들은 이전 정상과학에서 사용하던 패러다임이라는 도구를 지금의 정상과학에선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새 도구를 사용하여 과학활동을 수행하게 됩니다. 즉 패러다임은 우리가 착용하고 있는 안경이라는 도구와도 같은 것이고 패러다임의 혁명은 이 안경이 잘 안보인다는 것을 서서히 자각하게 되면서 안경을 갈아끼우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디지털이라고 하는 것이 아날로그의 여러 이상異想이 쌓임으로 인해 출현한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세계관의 변화로써 디지털을 바라보려 한다면 오히려 디지털을 도구로써 바라보는 게 맞겠죠. 여기서 아날로그적 세계관과 디지털적 세계관을 적용시켜 본다면 이전의 아날로그적인 안경을 끼고 있었을 때의 정상활동(정상과학 대신에)중 하나로 Z라는 목적을 위해 A를 수행하였다면 지금은 같은 목적을 위해 D라는 활동을 수행한다고 할까요.
13/01/16 20:49
제가 참 필력이 많이 부족하죠?^^ 그래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흐흐
근데 님의 글이 더 어려워요...ㅠ....암튼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13/01/16 23:50
아뇨 제가 공돌이라 이런 글을 이해하거나 이해시키는 게 많이 부족합니다 ㅠㅠ
제 요지는 결국 디지털을 세계관과 결부짓는다면 도구로써 바라보는 게 맞으며 도구이기 때문에 나쁘다 혹은 좋다는 식으로 가치중립적으로 바라보는, 글쓴 분께서 탐탁치 않아 하시는 그런 관점이 제 생각엔 맞을 것 같다. 뭐 이런 것이지요.. 아무래도 공돌이라서 디지털을 기술적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3/01/16 19:56
디지털이라고 하니,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생각나네요.
이인성 작가의 '한없이 낮은 숨결', 그리고 이에 관한 우찬제 교수의 비평(네이버 캐스트에도 있습니다.) 예술가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작품 세계 등이 제가 최근 디지털에 관해 고민해보게 되었던 계기가 되어준 것 같습니다.
13/01/16 20:00
아날로그의 가치라는 게 무엇인가요?
누군가는 말을 통해 생각이 훼손되기에 그 이전을 동경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말을 안하고 살아가기는 그렇죠. 구텐베르크 이전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보다 그에 가까워질 수는 있겠지만 마찬가지 의미로 무의미한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선가 본 바로는 먹을 갈고 마음을 다스린 다음에 글을 쓰던 사람들은 펜으로 바로바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글에 마음이 담겨있지 않다고 비난했고, 그렇게 펜으로 원고지에 글을 쓰던 사람들은 후에 컴퓨터로 타이핑하는 사람들에게 퇴고의 작업이 부족하다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본문에서 예로 든 대화의 단절과 디지털매체(혹은 문화)의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저는 상관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면에는 시대의 격변으로 인한 문화의 변화가 크게 작용하겠지요. 그리고 저야 생각의 깊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아가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관련 링크를 걸겠습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cid=472&docId=1395153&mobile&categoryId=1142
13/01/16 21:10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관련 링크글도 잘 읽었구요. 펜으로 바로바로 글을 쓰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건 저도 몰랐군요. 흐흐..
변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이것 역시도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도구적 이성의 극대화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도 한번쯤 논의해볼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 그런거지 뭐'하며 제껴두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말씀하신 그 '생각의 깊이'라는 것 말인데요...꼭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저는 도저히 사람들이 말하는 그 '깊이'라는게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옛날에는 지금보단 '깊이'가 있었다라는 것인데...다 인정하고서라도 보자면...왜 그 '깊이'라는 것을 꼭 지켜야 할 어떠한 것으로 두려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깊이'라는 게 없으면 어떻고 있으면 또 어쩔건지 참...디지털 시대가 아무리 '속도'의 시대라지만 그런다고 '깊이'라는 것이 발생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말이죠. 느림의 가운데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이 '깊이'라는 건 인정하겠는데 깊어지기 위해 부러 느려질 이유는 없는거잖아요?
13/01/16 23:27
구체적인 방식이야 제가 그것을 논할 수준이 아니라서 뭐라고 말을 꺼내지 못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살아가면서 배우다보면 어느 순간에 느끼는 바가 오지 않을까 합니다.
13/01/16 20:07
저 역시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확실히 스마트폰의 존재감은 세상에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출시될 때 세상이 바뀌니 생활이 바뀌니 했지만 그거야 당연히 식상해빠진 광고 문구인 줄 알았는데,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졌죠. 이젠 길 가다가도, 버스안에서든 어느 곳에서든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보는 사람들만 있습니다. 과거에는 버스에 앉아서 창가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전혀 없죠. 그리고 사람들과 만났을 때에도 서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광경. 저도 뒤늦게야 최근에 스마트폰을 처음으로 마련했는데.. 왜 그런지 이해가 가더라구요. 정말 하는 거 없이도 무심결에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배경화면이나 넘기고 있고.. 아무튼 뭔가 의존하고 싶고 없으면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네요.
13/01/16 20:54
맞습니다. 분명 안산드레아스님처럼 이런 변화가 좀 생경하고도 낯설게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겁니다. 일종의 위화감이랄까요?
나름의 해법(?)을 알려드린다면...그런 의존증이 불안하시다면 차라리 유익한 것에 의존을 해보세요. 가장 좋은게 E-BOOK이라고 생각하구요. 그것도 아니라면 인문학 관련된 양질의 글들이 있는 파워블로거들의 게시물을 찬찬히 읽어보든지 하는 식으로요. 그럼 뭔가 의존증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을까요? 뭔가 얻은 듯한 기쁨도 있고 말이죠.^^
13/01/16 21:40
전 디지털은 디지털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아날로그 신호를 구분하기 쉽게 끊어내어 숫자로 표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변하게 만든건 "편리함" 이고 더 큰 편리함을 만들어내는 도구의 개발속도가 빨라졌다는 것 뿐이죠. 스마트폰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사람들을 변하게 만든거지 디지털이란 기술이 사람들을 변하게 만든게 만든건 아니죠. 어차피 스마트폰도 통화버튼을 누르면 아날로그로 서로 소통합니다. 문자나 이메일도 편지나 다름없이 문자라는 매개를 이용해서 서로 소통하는 거죠. 달라진 건 내가 전하려는 아날로그 신호를 집으로 전화하지 않아도 전할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내가 전하려는 문자가 2~3일씩 기다릴 필요없이 바로 전해진 다는 것 뿐이죠.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트화 하면서 잃어버리는 값들을 아쉬워해 아날로그를 그리워한다."는 주장이면 모르겠습니다마는 디지털이라는 기술 자체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은 디지털일 뿐이죠.
13/01/17 01:14
매체가 우리의 인식 구조 자체를 형성한다는 매체결정론의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매체가 우리의 행동방식을 결정하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체결정론의 문제는 매체 또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매체가 전지전능하게 사람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모든 것이 매체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사회문화적인 요인들도 같이 고려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기술결정론도 비판받고 있습니다. 기술철학에서 현대 기술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학자들은 기술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기술 결정론의 함정에 빠지는데요, 기술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마치 기술의 홀로 살아 움직여서 진보해 나가는 유기체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기술은 기술일 뿐이죠. 그것도 사람이 만든 건데요... 이에 반하여 사회구성주의자들은 기술은 우연적으로 생겨나고 발전할 뿐이라고 오히려 너무 기술의 역할을 축소시켜 버렸죠. 기술에는 기술을 만든 사람의 정치적 의도가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기술은 만든 사람과 관계없이 발전하거나 정치적 의도들을 함의하기도 합니다. 랭던 위너라는 학자가 든 재밌는 예가 있는데, 바로 로버트 모제스(Robert Moses)라는 사람이 만든 뉴욕의 고가도로입니다. 모제스는 1920년부터 70년대까지 뉴욕주와 맨하탄의 도시 설계를 주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롱아일랜드의 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위의 고가도로를 낮게 설계했는데 위너는 모제스의 전기 작가의 증언을 빌어 이것이 당시 버스를 주로 타고 다녔던 흑인과 저소득층의 통행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위너는 이것을 아무리 정치적으로 상관없어 보이는 인공물이라도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정치적 목적을 실현시키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로 제시한 거죠. 반대로 제작자의 정치적 의도가 드러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제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정치적 함의를 지닐 수도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든 것이 태양열과 핵발전소인데 전자는 분산적이고 민주적인 관리시스템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지만 후자는 중앙집권적이고 위계적인 시스템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즉, 태양열 발전소가 핵발전소보다 더 민주적이고 사회참여적이라서 더 윤리적일 수 있다는 겁니다. 만약 디지털 매체의 윤리를 찾는다면 비슷한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디지털은 아날로그에 비해 좀 더 참여적입니다. 사회참여의 측면에서 보자면 디지털 기술이야말로 가장 윤리적인 기술일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참여자의 윤리의식이겠죠. 그렇다면 그건 딱히 답이 없습니다. 결론은 디지털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디지털은 역사상 가장 참여적인 매체이고, 랭던 위너의 사회참여의 기준에 따르면 가장 윤리적일 수 있는 매체입니다. 하지만 디지털이 덜 윤리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기술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거기에 참여하는 참여자들, 즉, 대중들의 성향 때문이겠죠. 그렇기 때문에 요즘 시대에 다시 윤리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는 거 같습니다. 결국 기업윤리, 매체윤리, 공학윤리, 기술윤리 등등 각 분야의 윤리학은 하나의 윤리학 담론으로 연결 되거든요. 얼마 전까지 정의문제가 화두였지만 엄밀히 따지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그 책은 윤리학 책이죠. 현대 사회의 윤리학의 부재가 많은 사회문제를 낳는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아닌 걸 아니라고 해야 되는데 모든 가치들이 상대적으로 해석되면서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는 거죠. 모든게 취향차이로 치부되지만 취향으로 봐줄수 없는 뭔가가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인문학이 해결 못하고 있는게 안타깝네요. ps. 여담이지만 매체철학자들의 이론들을 살펴보면 인터넷이야말로 진짜 매체의 끝판 대장격인 거 같습니다. 단적인 예로 마셜 맥루한이 쿨미디어/핫미디어를 이야기했을때 쿨/핫의 기준이 매체 사용자들의 정보에 대한 참여도였죠. 사용자에게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하고 참여하게 만드는 매체는 쿨이고 그 반대의 매체는 핫입니다. 정보의 밀도가 비어 있고 꽉 차 있는 것의 차이라고 볼 수 있죠. 라디오는 쿨미디어고 상대적으로 텔레비전은 핫미디어입니다. 만화는 쿨미디어이지만 상대적으로 영화는 핫미디어죠. 그런데 인터넷은 가장 쿨하면서도 가장 핫한 미디어입니다.(제 견해입니다만.) 가장 참여도가 높으면서도 가장 정보 밀도가 높은 매체죠.
13/01/17 01:44
긴글로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회적 문제의 야기는 디지털 기술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데에 공감합니다. 헌데, 제가 본문 하단 쯤에 적었듯이.. 과연 문명의 이기가 우리를 더 윤리적인 환경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요즘 들어 좀 회의적인 입장으로 변했습니다. 일전에도 게임에 관해 답글을 달았었는데...이전과는 달리 현대사회에서의 기술발전이라는 것은 기업주도식의 자본의 집중화 현상을 통해 발생되는 것이고 그것은 그만큼 서민 경제의 영역이 침해된다는 뜻인데....한마디로 기술이 더 세련되고 정교해진다는 것은 거대자본의 집중화 현상이 더 심화되었다는 것의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러니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성이 점점 더 쇠퇴한다는 이 터무니없는 말에 요즘 들어 은근히 공감이 가기도 하구요.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사회구조적인 부분이겠죠. (한마디로 교통사고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CCTV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바쁘게 운전하지 않을 수 있게 여유로운 일상을 조성해줘야 하는데 계속 그 해결을 기술로만 하려다보니 쓸데없는 돈낭비를 하게 되는...) 그리고 이런 부분을 사실 가장 정확하게 짚어내야할 인문학자들이 외려 디지털 문명을 자꾸 거부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는 작금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조금 화도 납니다. 뭐 그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구요. 그래서 더 열폭을....
13/01/17 14:35
인문학자인데요, 싸잡지는 말아주세요. 좀 그렇습니다. 당장 저만해도 그런 시선은 아니었는데.. 메인스트림 의견이 그럴 수는 있겠지만 학계의 일관된 시선이라 한다면 섭섭하겠지요.
13/01/17 15:00
아이쿠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네요. 학계의 일관된 견해는 아닐겁니다. 다만 이 혼탁한 시대 변화에 그나마 가장 호응해줄 수 있어야 할 인문학자들이 의외로 이 문화를 나이브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서말이죠. 그 정도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아예 병리적 현상으로만 진단하려하니 좀 화가 나서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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