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날씨는 특히나 꾸물꾸물했다.
내 핸드폰에 잘 뜨지 않는 아부지라는 이름 석 자가 찍힌다.
안 좋은 예감은 왜 그리 잘 맞는 걸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버지의 음성은 처음이자 끝으로 반항했을 때 나를 바라보며 슬프게 말씀하셨던 젖은 목소리였다.
"할머니 위독하시단다. 빨리 고모 집으로 와라"
멍했다. 멍하니 두시 간이 지나간다. 공부할 때는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잠깐 멍한 사이에 두 시간이 흘렀다.
고개를 들어 밖을 봤다.
꾸물꾸물하다. 오늘따라 특히나 을씨년스럽다.
빌어먹게 날씨 따위가 분위기를 맞춰주고 있다.
망할 지하철은 오늘따라 정거장 사이가 한국과 북한만큼 멀게만 느껴진다.
아마도 내려서 뛰다시피 한 걸음이 지하철보다 빨랐을 것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아버지와 고모는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계셨다.
담담하게 가자고 얘기하시지만 눈 속 깊은 곳에서의 슬픈 기색은 감추지 못하셨다.
의정부에서 전주로 내달린다.
항상 규정 속도를 준수하여, 110키로미터퍼아워가 한계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차가 내달린다.
오후를 못 넘기신다고 의사가 얘기했단다.
밤 12시에 도착했다. 할머니가 누워계시는 친척 집 대문 앞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자, 할머니는 힘겹게 나를 기다리고 있으셨다.
엄마 대신에 두 살 때부터 지금까지 키우셨기에 나를 못 잊어서 지금도 숨을 놓지 못하신단다.
세 시간 동안 할머니는 내 가슴을 가만히 놔두시질 않는다.
친척들이 불러도 눈조차 뜨질 못하시던 할머니는, 나의 외침에 슬며시 초점 없는 눈을 뜨신다.
목이 메인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할머니는 다음날까지 숨을 놓지 않으신다. 다들 내 걱정에 숨을 놓지 않으신단다.
아버지가 할머니께서 누워계시는 방에 들어가셨다.
할머니께 뭐라 뭐라 속삭이신다.
후일 들어보니 내 걱정 하지 마시라고.. 모두들 잘 보살필 거라고 얘기하셨단다.
할머니의 몸이 빠르게 변해간다. 피부가 자줏빛으로 물든다. 손톱이 검게 물든다.
숨이 잦아든다. 편하게 숨을 몇 번 쉬시더니 이내 숨을 멈추신다.
눈물이 만들어내는 허상일까. 내 눈엔 아직 숨을 쉬시는 것 같다.
허망하게 털썩 주저앉아 멍하게 있었다. 잠깐의 멍한 시간 동안 인사조차 못한 채 할머니께서 운구차에 실리셨다.
장례식장으로 내 몸이 끌려간다.
억지로 끌려가는 기분이 이런 건가. 아니 난 지금 내 발로 혼자 알아서 가고 있는데.
알 수가 없다. 계속 내 몸이 끌려간다.
날씨는 오살나게 좋다. 너무나 좋다. 빌어먹게 좋다. 망할
허망하게 첫날을 보냈다.
둘째 날
기분이 좀 괜찮아진 걸까? 친척들과 농담도 주고받는다.
오늘은 입관식이 있다. 차가워진 할머니를 뵈었다.
훼이크다 라며 눈물이 분수처럼 흩어진다. 참았던 눈물이 흐른다.
입을 막았다. 조인성처럼.. 물론 비쥬얼은 다르다.
할머니께 우는 모습을 보여 드리기 싫었다.
참는다. 손등이 찢어지도록 물며 참는다.
셋째 날
발인식. 날씨가 너무 좋다. 당신의 관을 모시는 손자들이 힘들까 봐 적절하게 구름을 배치하신다.
나도 관을 들었다. 너무 가볍다. 슬프도록 가볍다. 질량보존의 법칙인가? 내 가슴이 무겁다. 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화장을 하러 들어가는 관의 모습을 본다.
지금이라도 관을 열고 나오셔서 나를 보며 웃으시며 센베이 과자를 건네주실 거 같다.
야속하게도 할머니는 뜨거운 불길 속으로 들어가신다. 당신 육신이 너무 차가우셨나 보다.
눈물을 참는다. 마음대로 울 수가 없다.
두 시간 후 할머니는 하얗게 변하셨다. 흰머리가 싫으시다며 어렵게 염색을 하시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선산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영원히 내 곁을, 가족 곁을, 친구 곁을 떠나셨다.
환하게 웃으며 작별하고 싶다. 걱정 마시라고 웃으며 작별하고 싶다.
눈물샘이 말을 듣지 않는다. 망할 놈의 콧물은 왜 같이 나오는 걸까.
참는다. 억지로 참는다. 피나도록 살을 꼬집으며 참는다.
할머니와 작별하고 자취방에 도착했다.
쓸쓸하다. 할머니가 불을 켜시며 우리 강아지 이제 오느냐고 말씀하실 거 같은데 아무도 없다.
어두운 방안이 무섭다.
아무도 없는 방안이 무섭다.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가게 해서 화난다는 듯 사흘 동안 모아뒀던 눈물이 터진다.
여러 소원이 있었다. 취직해서 내 손으로 직접 할머니 용돈을 드리는 게 그중 하나다. 영원히 이룰 수 없다. 또 한 번 눈물이 흐른다.
소원을 바꿔야 할 거 같다. 취직해서 할머니 묘에 인사드리러 가는 것으로
그런데 두 줄을 직직 그어버린 공책의 한 줄처럼 그 소원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어디 수정 테이프라도 빌려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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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오늘 할머니를 보내드렸습니다.
두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할머니께서 저를 24년 동안 키우셨습니다.
저로서는 두 분의 어머니를 보내드린 게 되어버렸더라구요.
참 힘든 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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