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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1/16 00:52:28
Name nickyo
Subject [일반] 그래, 별 일 없이 산다.

PM 10:30분.

모든 손님이 나간 커피숍에는 나 혼자 바를 지킨다. 마감시간이 30분이 지나서 어차피 손님이 들어와도 커피를 내주지는 않을 것이다.
사장님은 내게 키를 맡기고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바리스타 누나도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나갔다. 그치만 나는 데이트 할 사람이 없었고, 당연히 마무리 청소는 내가 도맡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몇 평 안되는 테이블 일곱여개의 작은 커피숍 청소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괜시리 데이트 할 사람이 없어서 밍기적 대는 걸로 보이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쉐이커와 지거, 믹싱글라스를 바 위에 꺼내두고, 숨겨둔 드라이 진과 토닉워터, 라임주스, 카린스를 꺼냈다.

최근에는 칵테일에 흥미가 생겨서, 금세 이것 저것 주문해 버렸던 것이다. 처음으로 만져보는 지거에 조심스레 진을 1과 1/2온스. 그리고 믹싱글라스에 쪼르르 부어본다. 카페 바에 비치되어 있는 설탕시럽을 한 펌프 꾹 짜내고, 이어서 하이볼 글라스를 옆에 준비한 뒤 얼음을 채웠다. 티 스푼으로 시럽과 진을 잘 섞은 뒤에 하이볼 글라스에 따르고, 거기에 토닉워터로 쭈욱 밀어올렸다. 그리고 탄산이 새지 않게 스터를 딱 두번. 차갑게 식은 간단한 진 토닉이 완성되었다.


등 몇개를 꺼서 약간은 어두워진 바 아래서, 앞치마도 벗지 않은 채 진토닉을 홀짝거리며 핸드폰을 드르륵 드르륵 돌려보았다. 벌써 1월 중순이구나 하는 생각에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나는 참 별일없이 살고 있다. 그녀와는 아직도 일하면서 한 주에 두어번 만나건만 이제는 언제 그녀가 그렇게도 간절했었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다. 하루라도 연락을 하지 않으면 초조했던 날들은 마치 거짓처럼 아득해져있고, 핸드폰만 보아도 떠오르던 그녀의 모습은 어느새 희미하다 못해 존재감조차 없다.


그녀가 무얼 하냐고 오랜만에 물었을 때, 난 영업이 끝난 커피숍의 바에서 몰래 칵테일을 만들어 보고 있었다. 진 토닉을 다 먹은 뒤에는 김렛을 만들어 보았다. 쉐이커에 설탕시럽과 라임주스, 진을 넣고 얼음을 약간 넣은뒤 쉐이크. 칵테일 잔이 없었기에 작은 유리잔을 대신 썼다. 진의 맛과 쌉쌀함, 그러면서도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라임까지 입에서 기분좋게 어우러졌다. 그러나 그녀에게 나는 그저 별일 없이 살아요- 라고 말했다.


별 일 없이 산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임에도 참 먼 일이었던것 마냥 아무렇지도 않은게 되려 생소하다.

매일 커피숍과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침에는 체육관을 나가본다. 저녁에는 인터넷강의를 듣거나 게임을 하다 잠이 들었다. 더 이상 나는 그녀에게 내 일과를 보고하지도, 그녀의 일과를 궁금해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녀는 좋은 누나 동생으로 지내고 싶어했던 것 같지만, 나는 아주 약하게, 좋은 누나 동생사이도 어려울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그녀에게 별일 없이 산다고 말할 수 있게 되므로써, 그녀와 나는 별 거 아닌 사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지가 않다.


지난 반년간의 홍역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생각하며 김렛을 한번 더 홀짝인다.

워낙 작은 양이라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그녀는 기분이 상했는지 답장이 없다.

나는 피식 웃으며 레몬, 카린스, 진, 설탕시럽으로 진 피즈를 마지막으로 만들어 보았다.

레몬향과 달짝지근함사이에서 느껴지는 약한 진의 맛. 그러면서도 충분한 청량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다.
언제까지고 계속 좋아서 그녀에게 몇 번이고 고백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 새 그녀는 나 몰래 내 방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도망쳤나보다.

겨울이 차다. 날씨는 춥고, 술은 재미있고, 커피도 재미있고, 학원 아르바이트도 할 만 하다. 다이어트는 좀 힘든데다가 잘 안되지만, 역시 매일이 나쁘지 않다. 일주일 내내 쉬는 날이라고는 하루도 없지만, 못 할 만큼 힘들지도 않다. 집에서 먹는 밥도 맛있고, 밖에서 먹는 밥도 맛있다. 돈이 많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없지도 않다.


참 별 일 없이 산다.

그렇게 설레고, 즐겁고, 슬프고, 아프고, 울컥거리고 하는 모든 것들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별 일 없이 잘 산다.

그녀를 가지고 쓸 수 있는 글도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다.


행복은 기억의 것일까 경험의 것일까?


나는 그녀를 좋아하는 동안 느꼈던 많은 것들이 이렇게도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에

조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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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n&Tonic

드라이 진 30ml//토닉워터//기호에 따라 라임, 설탕시럽의 첨가

하이볼 글라스에 드라이 진 30ml를 넣고 얼음을 4~5개쯤 채운 뒤에 토닉워터를 적정량 채워 밀어 올린다. 기호에 따라 라임이나 설탕시럽을 넣고 2~3회, 탄산이 날아가지 않도록 스터한다. 머들러 등으로 생 라임을 꾸욱 눌러가며 맛을 바꾸어 먹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진 45ml, 토닉워터, 설탕시럽 1/2ts가 맘에 들었다. 시원하고 상큼, 담백한 맛이 기본이며 시럽이 들어가면 단맛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Gim let

드라이 진 45ml//라임주스 15ml// 설탕 1ts

포인트는 쉐이커를 설탕이 잘 녹을 수 있도록 강하게 여러번 흔드는 것이다. 시럽을 첨가하는 편이 편하지만 설탕이 더 맛있다고들 한다. 따라낼 때에는 설탕을 거를 거름망이 있는게 좋다. 드라이 진과 라임주스, 설탕을 쉐이커에 넣고 얼음과 쉐이크한 뒤에 칵테일 잔에 따라낸다. 쌉싸름하면서도 상쾌하고 달짝지근하다.


Gin fizz

드라이 진 30ml//카린스믹스 90ml(적당량)//슬라이스 레몬 반쪽

진 토닉과 비슷한 제조법. 토닉워터를 카린스믹스로, 그리고 라임대신 레몬을 넣는것이 차이이다. 진 피즈의 레몬을 빼고 체리장식을 넣으면 톰 콜린스라는 칵테일로도 부를 수 있다. 역시 진을 넣고 얼음, 카린스 믹스를 채운뒤에 슬라이스 레몬을 띄운다. 취향에 따라 레몬을 띄우기 전에 잔 주변을 쓰윽 레몬즙을 둘러주는 경우도 있다. 진 토닉이 라임, 토닉워터, 진의 상쾌하고 담백한 맛이라면 진 피즈는 라임대신 레몬때문에 새콤달콤함이 좀 더 강하며 레몬향이 피어나는 칵테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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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asice
11/01/16 02:10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술에서 단맛나는걸 안좋아해서 일절 설탕의 추가는 없었지만..
제가 집에서 아무 생각없이 만들어먹던게 진피즈였군요..
참소주
11/01/16 02:20
수정 아이콘
피지알이 복구되면서 nickyo님과 Love&Hate님의 글을 볼 수 있어서 아주 행복합니다 ^^

갑자기 술이 땡기네요.
왼손잡이
11/01/16 09:14
수정 아이콘
저도 외국에서 자취하면서 진토닉에 맛을 들였죠...
지금도 혼자 만들어먹진 못하지만 가끔씩 땡길때 홍대가서 싸구려 진토닉을 잔뜩 시켜서 마시곤하죠.. 하하.

일반 칵테일바는 너무 비싸요... 무슨 진토닉이 8천원이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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