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듣보입니다. 걱정해 주신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직까진 큰 문제 없이 잘 다니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하하
나는 태어난 곳도 서울이고, 평생 살아온 곳도 서울이고, 대학교도 서울에 있고, 심지어 군대도 서울에서 의경생활을 했다. 덕분에 집을 떠나본 적이 없었고 항상 부모님과 같이 살다보니 생활능력이라는 것이 없었다. 물론 평생 부모님이랑 살았으면서도 자기 앞가림 하는 법을 알아서 익혀온 친구들도 있겠지만 뭐 나는 그러지 못했다. 먹을 것 없으면 그냥 라면 끓여 먹거나 자장면 시켜 먹는 게 전부였고 사실 그게 당연했다. 집에서 밥을 혼자 해먹는 것은 신이 내려주시는 그런 종류의 특별한 능력인 줄 알았다. 엄마는 흡사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작년 10월 말에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홈스테이를 딱 일주일 하고 나왔다. 밥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밥을 사먹어야 하는데 거긴 한국처럼 외식비가 저렴하지 않더라. 물론 저렴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곳도 좀 있긴 하다만, 시내에서 5불~7불에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것은 전부 다 사 먹어봤는데 이후 내린 결론은 밥 하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것. 같은 학원에 맨날 도시락을 싸오는 한국인 누나한테 내가 도시락도 싸고 대단하다고 하니까, 라면 끓일 줄만 하면 누구나 음식을 할 수 있단다. 솔직히 속으로 개소리하네 했다. 신이 주신 요리 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니네가 우리 마음을 어찌알아!!
더 웃긴 건 지금 나도 그렇게 대답한다는 것. (그럼 또 누군가는 나한테 개소리하네 하겠지?) 별 수 있나. 쉬우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해야만 하면 할 수 있다. 어떻게 배웠냐고? 음식 관련 블로그 및 커뮤니티가 수도 없이 많다. 여행관련 자료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걸?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쉬워 보이는 것 있으면 식탁에 노트북 올려놓고 하나하나 보면서 따라하면 된다. 지금은 시어머니한테 구박받아가며 요리하는 법을 배워야하는 조선시대가 아니다.
하노버 둘째날 저녁. 닭이 싸길래 닭다리 몇개 사서 닭도리탕을 오인분이나 했는데 저거 먹기도 전에 호스트 언니가 다른 음식을 너무 많이 내와서 정작 저건 한개도 못 먹고 전부 두고 나왔다.
카우치서핑을 필사적으로 시도하는 두 번째 큰 이유가 있는데 바로 음식이다. 밖에서 사먹으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가격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고, 그럼 또 뉴질랜드 처음 갔을 때처럼 그지 같은 것만 사먹게 된다. 식재료는 여기나 한국이나 가격차이가 크게 없다. 싼 가게 비싼 가게의 차이는 크지만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싸면 쌌지 더 비싸진 않다. 근데 외식비는 한국보다 훨씬 비싸니 가급적 집에서 먹는 것이 좋다. 덤으로 그 나라 음식 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이 훨씬 낫다. 한국을 예로 들어볼까? 외국인에 한국에 와서 한국음식문화를 경험한다고 할 때 음식점을 가는 것과 우리 집에서 먹는 것 어느 것이 음식문화를 알기 쉬울까. 고급 한정식 집을 가서 삼십 가지 반찬 나오는 정식을 먹나 김밥천국에 가서 김치에 제육덮밥을 먹나 둘 다 어차피 음식점 문화라는 것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서민들이 평소 어떻게 사는지를 이해하는 데는 김밥천국이 더 나을 것이며, 전통 음식문화 같은 것을 이해하는 데는 한정식 집이 나을 것이란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맛과 질, 서비스가 다르겠으나 그렇게까지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만들고 맛없으면 있어질 때까지 설탕, 소금을 넣는다. 원래 몸에 안 좋은 걸 많이 넣어야 맛있는 법이다.
가장 한국적인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하고, 고춧가루를 들고 오기도 했고, 간 맞추기가 굉장히 편하기도 해서 열에 아홉은 제육볶음 같은 음식을 만드는데 이때까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굉장히 이국적인 음식이라고 좋아했다. 사실 무조건 맛이 있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한번 맛보이는 그런 음식이기 때문에, 이국적인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전자렌지로 밥하고 후라이팬에 고기 굽고, 야채 넣고, 소스 적당해 보이는 거 넣고, 설탕 넣고, 고춧가루 넣으면 끝. 말은 쉽다. 자세히 쓰면 한도 끝도 없으니 일단 좀 넘어가자. 다음날 점심에 도시락을 챙겨가야 할 것 같으면 좀 많이 해서 남겨놨다가 다음날에 싸서 나간다. 아니면 아침에 도시락 해서 나가기도 한다.
도시락의 좋은 예. 간장에 설탕이면 불고기 끝. 저 통에 꽉꽉 채워 넣으면 두 끼까지 잘 먹을 수 있다.
말은 쉽게 했지만 사실 뭐든 생각처럼 잘 되지만은 않는다. 귀찮으니 그냥 외식하러 나가자는 사람도 있었고, 독일에서 중동음식 해 먹는 사람도 있었고 프랑스에서 동양음식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 종일 빵과 술만 먹으며 이게 바로 주님의 몸과 피라고 농담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한국 자취생 같으면 매일 컵라면에 소주로 때웠을 텐데 걔는 맥주에 빵으로 때우더라.) 이렇게 글을 쓰는 나도 사실 아침에 늦잠자서 점심에 햄버거 사먹었다.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가끔은 대충 때우기도 했지만 대부분 아주 잘 먹고 다녔다. 매일 사먹고만 다녔으면 불가능한 일. 조금만 바쁘게 움직이면 돈도 절약하고 밥도 잘 먹고, 장보고 음식하면서 여행의 또 다른 재미를 맛보고 다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