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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7/04 14:07:29
Name 시즈트럭
Subject [일반] [잡담] 전투에 승리하고 전쟁에 패배하다.
엊그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저는 저보다 두 살 많은... 서른살 먹은 친누나와 학교 앞에서 자취하고 있습니다.
며칠전 누나 친구네집이 한 달여간 리모델링을 하는 관계로 당분간 누나 친구도 같이 살고 있답니다.

사건이 있던 시각은 엊그제 밤이었습니다. 누나가 학교 앞 고깃집에서 야식이나 하자고 하더군요.
저와 누나, 누나친구 셋이서 맛있게 불고기를 먹고 있었는데 마침 티비에서 순정녀가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누님은 "어? 쟤 코 고쳤네?" 이러더니 어느새 진품명품에 나오는 감정사 아저씨를 끼얹은 컴셋스테이션이 되어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출연자들을 스캔하고 관찰결과를 보고합니다. 마침 누나친구는 그런걸 잘 볼 줄 몰라 정말 재미있게 듣더군요.
저는 그런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어 그냥 고기만 열심히 먹었습니다. 제가 너무 말이 없자 누나친구가 물어보더군요.

"넌 성형하는거 어떻게 생각해?"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에 여자들이 예뻐지려 하는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유전자의 영향으로 선천적으로 예쁘지 않으면 후천적으로 화장을 한다든지해서 예뻐지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성형수술을 하는것도 자기계발에 들어간다고 봐요. 성형을 한다해서 비난 받을것은 전혀 없다고 보는데요."
"너 진짜 쿨하구나."
"쿨하기는, 예쁜것만 밝히는거지."

머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리를 일어났습니다. 집에 가는 10여분 동안에도 누님의 정찰 결과보고는 이어집니다.
저는 속으로 저 인간을 수색대로 집어 넣어야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궁시렁대다가 어느새 집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날이 더워 샤워를 했는데, 저희집 욕실은 방음이 잘 안되서 욕실밖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다보니  두사람의 대화가 들리더군요.
이번엔 연예인 사생활입니다. 누가 사귀네, 누가 누구 스폰서네........
'아아아아, 시끄럽다.... 저 입을 그냥.... ㅜ_ㅜ'
제 방에 들어가 인터넷을 하는데 몇달만에 터진 누님의 입은 가속모드가 멈추질 않더군요. 부엌에서 과일깎는 누님께 얘기했습니다.

"누나, 그만 좀 해라, 지치지도 않냐? 누나가 쟤들 성형한거 알아서 머할라그래, 그리고 누가 누구하고 사귀든 그게 누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그거 확실한 정보야? 누나가 직접 수술 해줬어? 추측만 갖고 어떻게 그걸 다른사람한테 사실인것처럼 얘기해. 그거 명예훼손이야,
  xxx가 왜 자살했는데, 누나같은 사람이 이상한 소문 퍼뜨린거 아냐? 누나랑 그 증권사 여직원이랑 다른게 뭐가있어?"
"야, 나는 인터넷에 올리지는 않거든, 그냥 친구들하고 얘기만 하는거야. 그런 말도 못하냐? 성인군자인척 하고있네."
"성인군자가 아니고 사람이 잘못된거 얘기하면 들을줄도 알아야지.
  그럼 누나친구들이 그 얘기 듣고 올리면 어떡할거야. 그리고 그 악플로 누가 죽으면?
  친구가 저도 들은 얘기고 사실 얘가 알려준거에요라면 어떡할거야? 그때도 아니라고 할거야?"

이런식으로 언쟁을 하다가 과일 다 깎은 누나는 과일접시들를 들고 방에 들어가버리더군요.
'깎아 놓은걸 보니 3인분인데..... 나는?? 나도 키위랑 오렌지 좋아하는데... 저거 내가 2만원 주고 산건데 ㅜ_ㅜ;;'

다음날 누나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집에서 잔다고 하더군요.
학교가 끝나고 와보니 집에 밥이 없습니다. 반찬은 달랑 김치.....
혼자 라면을 끓여 먹으며 생각합니다. 전투에는 승리하였으나 전쟁에서 패하였구나...
어제는 윤용태 선수의 경기를 돌려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문자를 보냅니다. "누나, 돌아와. 그냥 나 닥치고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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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성
10/07/04 14:18
수정 아이콘
좋네요

좋은 글이네요
NeedlessEmotion
10/07/04 14:29
수정 아이콘
아.. 뭔가 슬픈글인거 같아요..
래몽래인
10/07/04 14:36
수정 아이콘
리모델링 중인 누나친구분도 같이 부모님 댁에 가신겁니까?
저는 누님만 부모님 댁에 가서 둘이 남은 줄 알고 제목에 뭔가 기대를 했는데.......

슬프네요..
10/07/04 14:56
수정 아이콘
글 재밌게 읽었어요. ^^

그리고 제친구도 저와 만나면 끝없이 연예인 얘기를 해요;;
누구와 누가 사귄다, 쟤 또 고쳤대..
전 관심없지만 추임새는 넣어줍니다.
' 아~~ 그랬어? 몰랐네~~ '

반대로 제가 야구얘기하고 스타얘기해도 친구가 맞장구 쳐줍니다.
' 이긴 애가 저번에 니가 얘기한 선수야? 잘하네~~ ' 이런식으로..

그리고, 언능 누나님이 돌아오시길 바라요!
불한당
10/07/04 14:59
수정 아이콘
크크크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GunSeal[cn]
10/07/04 15:05
수정 아이콘
저랑 비슷한 성격인듯...저도 여자후배들이나 선배들이 그런얘기 하면 답답한게 참고 있다가 결국 짜증을 내버린 적이 몇번 있는데...
감성소년.
10/07/04 15:29
수정 아이콘
차라리 그러려니.. 하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시는게 나을것 같네요. 설득해서 다음부터 그러지 않게 만들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10/07/04 21:49
수정 아이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충고가 먹힐지 안 먹힐지...보통 충고하기 전에...알 수 있지 않나요??

그런 의미에서 전 웬만하면 먼저 충고하지 않기로 했죠...

대다수의 사람은 충고라는 걸...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깔끔한 GG 선언 감축드립니다...
이적집단초전
10/07/04 21:50
수정 아이콘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게 여성을 설득하려는 일입니다. 그것도 논리로 말이지요.
10/07/04 23:36
수정 아이콘
우하하하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뻘댓글: 저는 제 아내보다 더 수다라서 여자들 수다에 대해서는 아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이적집단님// 여성마다 다르지 않나요? 제 아내랑 논쟁을 벌일 때 제 아내의 favorite 표현이 '넌 그게 지금 논리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인지라...
3배빠른
10/07/05 04:46
수정 아이콘
그런데 글을 읽어보니, 밥하기나 과일 깎기 등은 글쓴분의 누님께서 도맡아 하시나요? 맡다면 축복받으신겁니다?
(제가 여자였다면 '축복받으신겁니다?' 라는 말 대신에 '가사도 정확히 분담해서 하세요!' 라고 썼을지도 모르겠군요.)
정말이지 논리고 뭐고 닥치고 사셔야겠는데요;;
10/07/06 03:33
수정 아이콘
엄청난 어휘구사력이네요.. 부럽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병민선수도 울고갈 gg타이밍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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