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게에 올라온 헤드셋 사진을 보고, 거기에 M모군이 단 댓글을 보니 잊히지 않는 사건 - M모군의 입장에서는 충격일지도 - 이 자꾸만 떠올라 결국 그 때의 일을 한 번 적어볼까 합니다.
용산 E-sports 스타디움이 다 지어지고 개장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지금은 없어진 비타넷에서 M모군 등과 함께 ‘온비타넷’이란 자체 방송국을 만들어 아프리카로 중계를 하고 있던 우리는 어느 날 협회로부터 연락을 받습니다. ‘협회가 후원하는 커뮤니티 스타리그를 주최해보지 않겠느냐’라는 연락이었습니다. 상금과 상품 등도 후원해준다는 소리에 우리는 지체없이 ‘콜!’을 외쳤습니다. 이곳 PGR에서도 PGR 주최 대회가 열렸었으니,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온비타넷’을 혼자 만들어내다시피한 M모군의 주도 아래 우리는 차근차근히 준비를 해 나갔습니다. 명단을 만들고, 대진표를 짜고, 명찰을 만들고... 친목사이트 성격이 강했던 비타넷 답게 그렇게 준비하면서도 낄낄대고 재밌어하고 술도 제법 마셨던 기억이 나는군요. 비타넷 대회가 열리기 하루 전에 있었던 PGR 대회를 참관하기까지 하면서 제법 준비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대회 당일.
용산 경기장에 가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무대가 있고 그 위에 ‘타임머신’이라고 별칭이 붙은 경기 부스가 상설로 두 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 보조 경기장이 있고요. 선수 숫자가 제법 되었기 때문에 보조 경기장에서는 협회에서 나오신 분들 - 기억나는 분들 중에는 나중에 KTF 감독이 되셨던 김철씨가 있네요 - 의 도움을 받아 예선전을 진행하고, 동시에 그 중에 재미있는 경기나 특별전을 메인 화면으로 관람차 오셨던 관객 여러분들께 중계해 드리는 구조로 했었습니다. 와중에 상품 증정 등의 이벤트도 몇 차례 있었고, 협회에서 나오신 캐스터분과 함께 처음으로 중계했던 기억도 납니다. (베지밀 토스 얘기를 모르셨던지, 그 얘기를 했더니 박장대소를 하시더군요.)
그렇게 진행이 되다가 ‘특별전을 하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처음 열린 특별전은 팀플 2:2였습니다. 맵 제작자 김진태씨와 조승연(Forgotten_)군, 그리고 여성 유저 두 분이 한명씩 짝을 지어 팀플레이를 했는데, 의외로 여성 유저 모 님이 맵 제작자 모 님을 엘리당하지 않게 지켜주는 구조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신원보호를 위해 누군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해설자 특별전 하실래요?”
...예나 지금이나 공방 양민도 모자라 솔거노비에 불과한 저로서는 ‘타임머신을 꼭 타보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습니다. 상대는 앞에서 언급했던 M모군. 전에 온비타넷 맵 테스트 관계로 몇 차례 붙어봤을 때는 수 차례 제가 저 멀리 다녀오기도 했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변명 한 마디를 하자면, 당시 제 컴퓨터는 전설의 ‘9분만 지나면 스타가 다운되는’ 컴퓨터 중 한 대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스타를 못 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결국 저는 악마의 속삭임을 흘려듣지 못하고,
부스 문을 조금 열어둔 다음,
방음용 헤드셋을 쓰지 않은 채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로스트 템플에서 벌어진 테테전이었습니다. 저는 8시, M모군은 6시.
당시 제가 문을 열어둔 이유는 ‘처음 스타팅 위치 얘기만 듣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정찰을 6시로 보내고, 상대가 원팩 원스타를 올리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저 역시 같은 빌드를 타고 있었기에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커맨드 센터를 짓고, 띄워서 날려보내는 순간, 어디서 갑자기 날아온 클로킹 레이스 몇 대의 일점사에 센터가 날아가버린 거였습니다. ‘졌구나’라는 생각밖에 안드는 그 때,
갑자기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나- 둘- 셋- 두시~!!!”
나중에 나와서 들은 얘긴데, 제가 헤드셋도 쓰지 않고 문을 약간 열어둔 것을 본 모 님 - 앞에서 2:2 특별전을 하셨던 분 중 한 분입니다. - 이 “우리 저기 들리나 한번 볼까?”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고, 다들 그 계획에 동조해서 합창을 했던 겁니다. 아무튼 2시방향에 뭔가 있구나 라는 걸 알게 된 저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개그게임이나 하자’라는 생각으로 SCV도 아닌 탱크를 바로 2시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있던 M모군의 기지 - 저는 커맨드 센터로 기억하고 M모군은 스타포트로 기억합니다만 - 를 날려 버렸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제가 2시에 바로 탱크를 보냈던 것이 의외의 효과를 낳았다고 합니다. M모군이 ‘아, 형이 컨디션이 좋은가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그 후로 팽팽하게 진행되던 게임은 제가 드랍십을 뽑아서 M모군의 본진에 드랍을 하면서 제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제가 본진 드랍을 준비하는 것을 본 관중 여러분들이 이번에는 M모군의 편을 들어 “하나- 둘- 셋- 본진 드랍~!!!”이라고 외쳤으나, 저와는 달리 성실하게 이어폰을 끼고 헤드셋을 쓰고 문을 닫은 M모군은 그걸 듣지 못했고, 결국 경기는 저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날 용산역 앞 감자탕집에서 벌어진 뒷풀이에서도 화제는 결승전 - 훗날 프로게이머가 되는 모 선수가 결승전에 올라서, 치열한 명경기를 보여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 이 아닌 바로 저의 ‘두 시’ 경기였습니다. 지금도 M모군과 간혹 만나서 술을 마시면 아직도 그 얘기를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M모군에게 해 줄 말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미안하다, 귀맵이다...”
- Daydreamer, 09. 10. 15.
ps. 그 사건 후로 타임머신이나 방음시설에 대해서는 ‘엔간한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입추의 여지없이 꽉꽉 들어찬 관중들이 한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야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지간한 소리는 절대 안 들릴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ps2. 옛 추억을 되짚는 잡담 정도인 글이니 다른 논쟁의 불씨가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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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쯤인가.. 팬카페클랜리그(프로게이머 팬카페 안에 있는 팬클랜들이 모여 만든 리그) 결승전을
용산 경기장에서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 당시 최영우 씨(당시 대리)의 도움을 받아서 이용을 했었는데 지금은 어떤 일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건 그렇고 타임머신에 들어가면 정말 떨리더군요^^; 앞쪽에 사람들을 쳐다보기도 그렇고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너무 떨렸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