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주말, 학회 답사차 진주에 갔다가 하룻밤을 머물고 여수로 향했습니다. 여수 지역에 있는 일본 군사시설물을 둘러보기 위해서였죠. 여수지역은 일제 강점기 시절 별다른 산업 시설이 있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진해처럼 대규모 함대가 주둔하거나 가덕도처럼 대한해협을 통제할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곳에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수상비행장을 비롯 포대와 대공포들을 설치했습니다. 여수가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중간 지점이며, 전라선의 출발 지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본 본토로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만든 여수항을 보호할 필요도 성도 있었던 것이죠. 1941년 여수 요새사령부가 현재의 여수중학교 자리에 설치된 이후 여수 앞바다의 돌산도 일대를 비롯한 해안 지대에 해안포가 들어섰고, 미군 항공기의 공습에 대비하기 위한 대공포 진지들도 하나 둘씩 자리를 잡았습니다. 일행을 태우고 바다를 매립한 해안 지역의 도로를 한참 달리던 차는 여수시 신월동의 어느 한 곳에 멈췄습니다. 그리고 가드레일 너머에는 낯설과 황량한 풍경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여수 신월동에 있는 비행장은 수상기들을 이착륙시키기 위해서 설치한 것이며, 현재까지는 이곳 하나 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원래는 안쪽까지 쭉 이어진 형태지만 해안도로를 만들기 위해서 제방을 쌓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이 사라졌습니다. 또한 근처에는 이곳에서 이착륙하는 수상비행기들을 위한 격납고와 정비고를 비롯한 각종시설물들이 있지만 군사보안 시설이기 때문에 들어가 볼 수 없었죠. 하룻동안 동굴진지를 비롯한 많은 유적지들을 돌아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이 수상비행장이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14연대의 주둔지였다는 또 다른 아픈 역사도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수상비행장은 큰 돌을 바닥에 깔아놓고 콘크리트로 만든 유도로를 만들어서 바다까지 이어놓은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육지쪽은 비교적 큰 직사각형이지만 바다쪽에 가까워질수록 건빵모양의 사각형으로 만들어졌는데 바닷물에 의한 파손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건빵처럼 구멍이 두 개 뚫려있는데 아마 파손된 콘크리트 덩어리를 꺼내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도로는 물속까지 이어져있으며,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비행장 시설을 돌아보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지만 하나 밖에 없다는 수상 비행장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눈 앞에서 봤다고 해도 그냥 옛날에 만들었다가 버려진 선착장 쯤으로 봤을 겁니다. 역사를 볼 때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 그리고 남아있는 것의 너머를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적하고 조용했을 여수의 바닷가에 수상 비행장을 만들어놓은 일본의 집념과 그것이 남겨놓은 흔적에 대해서 깊고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비행장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았지만 그것이 남겨놓은 상처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런 곳을 사적지로 지정해서 보존하고 악착같이 기록을 남겨놔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칫했으면 한반도 남부나 제주도는 오끼나와 같은 전쟁터가 될 뻔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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