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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23 13:43
만주-요동 정벌론->국가 백년 대계->그러면 우리 지금 잘 살았을거야라는 이론 아닌 이론(망상이라고 부르고 싶은)을 볼 때마다 느끼는건데, 당장 압록강-두만강 이하 지역에 대한 지배력도 조선 중기까지 계속 부침이 있었는데 만주를 먹었으면 뭔 수로 컨트롤했을지 상상이 안갑니다. 삼국지 게임에 너무들 익숙해진건지....
여담이지만 백두산도 결국 기존의 경계선(두만강) 기준으로 나눠먹기 해야죠. 위쪽은 만주 지배 국가 주고 아래쪽은 한반도 지배 국가에 귀속하고. 만주 지배 국가는 지금은 중국이고 한반도 지배 국가는 한국 혹은 북한이니 현재의 백두산은 역사적으로 보면 합리적인(..) 나눔의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14/06/23 14:00
만주가 스스로 자생할만한 생산력을 가지게 된 게 거의 20세기 가까운 일이니, 그 전까지 만주를 먹었다면 그 살림살이는 삼남이랑 경기도에서 나는 물자로 죄다 충당했어야 할테죠. 실제 평안 함경 양도에 사민시키고 군대 유지하는 것만 해도 힘에 겨울 지경이었는데 하물며 만주일까요.
뭐, 옆의 섬나라처럼 조세 비율 확 늘려서 백성은 배곯고 국가는 풍족한, 굶어죽기 직전의 백성들이 수시로 민란도 일으켜주는 그런 국가 분위기였다면 만주까지 어케 판도를 유지했을수도 있겠지만 그랬었다간 조선왕조는 5백년은 커녕 2백년도 가기 힘들었을 테고 말이죠. 뭐 백번 양보해서 삼남과 경기지방에서 만주에 사민한 백성 + 여진족까지 모두 입히고 먹일 물자를 공출해 낼 수 있다고 해도 당시 수운에 전적으로 의지하다시피하던 조선 물류 생각하면 그 물량을 어떻게 또 만주까지 지고 이고 끌고가야 하는지도 견적 안나오고요. -_-; 그렇다고 내륙에 신작로 열고 그걸로 물류 유통시키며 더불어 상업 발전도 하고 어쩌구... 로 가면 조선은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성리학적 국가가 아닐테죠. 당시 위정자들인 성리학자들이 그런 정책을 밀어붙일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 아니 그냥 0이고요.
14/06/23 19:48
애초에 강을 사이로 나눈 게 실효지배하기 편해서일 건데 백두산 같은 높은 데를 기준으로 하면 =_=;;;
영토분쟁에 민족주의에 이런 것 때문에 양국이 괜히 대립하는 거일 뿐이죠
14/06/23 14:34
몇가지 오류라고 보이는게..
1.명은 홍무제 시기에 남경 수도 아니었나요? 북경이 수도가 된건 쿠데타 이후로 알고있는데.. 2.이성계가 자리를 물려주려던 이방석은 아들 아닌가요? 그리고 백두산에 대해서는 일종의 국가의 세뇌교육이 잘된 거라고 봅니다. 간도와 마찬가지로요. 사실 간도나 백두산이나 독도같이 절대적인 경제적 이득이 있는 땅도 아니고, 조선말기에나 상황이 안좋으니 넘어간건데 뭐그리 집착적으로 교과서에서 서술을 해댄건지 모르겠네요.
14/06/23 14:42
1. 아마 국경을 확정할때인 세종시기에는 이미 정난의 변(조선 태종때)이 끝난 후 라서 그렇게 쓰신거 같습니다.
2. 이건 명나라 이야기입니다. 홍무제 주원장이 다음 보위를 물려준게 장손인 건문제 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명나라의 수양대군... 연왕 주체의 정난의 변이)
14/06/23 19:20
1. 맞습니다. 그냥 뭉뚱그려서 얘기했네요 ( ..); 2. siriuslee님 말씀대로 명나라 얘깁니다.
뭐 결국 민족주의 때문이겠죠. 지금은 우리가 못 살지만 예전에는~ 이런 거요
14/06/23 15:22
이런 글을 볼 때마다 문명의 도시 기준으로 영토가 늘어나는 것이 얼마나 현실에 맞는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5세기에 만주는 공백지였는데 여기를 차지하려고 도시를 세워봤자 주변은 모두 밀림 아니면 습지라 식량이 모자라 도시가 성장을 못하고 생산력도 모자르니 사슴이나 모피가 없다면 눈도 돌릴 필요가 없죠. 일꾼이라도 많아서 밀립/습지를 개간하면 모르겠는데 아직 조선시대때는 반도 내에도 개발 못한 땅이 수두룩 해서 말이죠.
14/06/23 17:39
내가 이 글을 어제 봤다면 장백산 논란 키배에서 퍼펙트한 승을 거뒀을 텐데....ㅠ
그런데 두만강을 국경으로 삼았다는 건 확실한가요? 자꾸 상대방이 토문강 논란을 들고 나오면서 장백산 문화론을 생각해서라도 전지현 김수현은 광고를 찍지 말았어야 했다고 하는데, 중국이 동북공정을 장백산 쪽에 하는 것도 사실이고 토문강 논란은 제가 잘 몰라서 뭐라 반박을 못했거든요. ㅠ
14/06/23 19:33
좀 늦게 나왔다면 저도 끼었을지도요 ㅠ; 백두산에 대해서는...
“백두산 근처에 한 땅이 있는데, 명나라의 태조 고황제가 고려에 예속시켰다. 내가 《지리지》를 보니 한 옛성의 터가 백두산 앞에 가로놓여 있는데, 이것이 그 땅이 아닌가 의심된다. 마땅히 찾아 내어 우리 나라의 경계로 하여야 하겠다.” - 세종 14년 "함길도. 나라에서 행하는 정평부의 비백산은 중사이고, 사묘의 위판은 비백산지신이라 쓰며, (중략) 현덕진과 백두산의 단 위판은, 하나는 백두산지신이라 쓰고, 하나는 현덕진지신이라고 썼는데, 위의 백두산은 본국의 경내가 아니고, 현덕진은 고려 때에 혁파하여 별로 영험이 없으니, 청하건대, 모두 사전에서 삭제할 것." - 세종 19년 뭐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_=; 이후에도 제사 때문에 나오는 경우는 있고, 여기서 우리 땅인데라는 말은 있지만 우리 땅 아니지만 영산이니 제사 지낸다는 말 역시 있죠. 이런 것들도 다 제사지낼 때 나오는 얘기고, 실질적으로 영토에 대해 얘기한다고 하면... 정말 없습니다. 백두산 정계비 세울 때도 조선에서 강조한 건 "백두산에서 시작된 두 강"이었고 그걸 경계로 한다는 거였으니... 이런 상황에서 백두산 전체를 영토라 생각하긴 힘들죠. 간도 같은 경우는 https://ppt21.com../?b=8&n=29613 예전의 이 글을 참조해 주세요 '-');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본문에 썼던 여진의 역사들까지 다 가져가려고 하긴 합니다. 하지만 명까지면 몰라도 청으로까지 가면 그걸 억지라고 할 수 있을지는 부정적이네요. =_=;; 음; 백두산 부분을 좀 보강할걸 그랬나봐요;
14/06/24 00:30
딴 얘기지만 백두산 화산 폭발 떡밥이 예전에 피지알에서도 나왔던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어가는지 혹시 아시는 분 있나요?
14/06/24 01:34
일요일에 정도전 보면서 요동정벌에 혹하게 됐었는데
정도전의 논리가 일본의 진주만 공습하고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정도전이 이성계에게 이런 주장을 했던건지도 궁금하고 이게 당시 설득력 있는 주장이였는지도 궁금하네요. 여기에 정도전이 청의 건국까지 예상하는 떡밥을 던지고요. 중국은 두번이나 오랑캐에 점령당하는데 어딘가를 점령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정해진것은 아니니까요.
14/06/24 11:11
오랜만에 글 올려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추천!
하지만 글을 볼때마다 느끼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기록물의 위엄이네요. 근현대에 와서야 신문이라던지 기록물이야 수두룩하게 많지만 국가에서 편찬했다는 강력한 기준이 있는 기록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나중에 몇백년후에 우리나라가 망하더라도 그 기억을 전해줄 수 있는 상징성있는 기록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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