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화창했던 일요일 기차시간 10분전에 도착한 구포역..
뛰어 왔던 탓인지, 아직 쌀쌀한 날씨에도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아 무슨 회사가 일요일도 출근하라고 난리를 치냐....'
급한 회의 소집에 예정에도 없는 동대구행 기차를 급하게 구해 탔다,
19시 25분 기차라..............
구포-동대구 기차는 어차피 뭘타나 시간은 비슷하니, 서민들의 친구 무궁화호의 5호차 15번 좌석을 예매했다.....
'10번, 12번, 15번.... 아 여기구나!'
좌석에 앉아서 가방을 내리고 시트를 젖힌다..
눈을감고 피곤을 달래는데, 시끄러우니까 짜증이 더 난다..
고개를 뻗어 앞을보니, 여중생 7~8명이 의자를 돌려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옆에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입석을 끊으셨는지, 눈치를 보면서 옆자리에 주섬주섬 앉으신다..
"옆자리 주인 없나봅니다 어르신 그냥 앉으셔도 될것 같아요"
"그런가 보네요 허허허..."
기차가 출발하고, 이어폰을 꽂은채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기차가 서는 느낌이 들어 정신이 들었다..
기차는 서있었고, 내옆자리의 주인은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160cm초반의 검은 코트를 입고, 검은 스타킹, 검은 힐을 신은 긴생머리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친구와 카톡을 하는지 연신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저기...... 죄송한데..... 여기가 어디에요?..."
혹시, 사고가 났나 싶어서 옆자리의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돌아본다...
돌아본다.....
돌아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내얼굴을 보면서 10초간 생각에 잠긴 그녀는 나에게 무표정으로 이야기를 한다
" 음....... 그러니까.. 물금역 지났어요"
시트에 다시 고개를 젖히며, 감사의 인사를 한다..
"아!.. 지난줄알고..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니 이기차는 종점이 동대구 역이다...
'지날수가 없구나... 멍청아...'
그런데 옆자리의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심장소리가 들린다..
초롱초롱한 흑색의 눈동자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간다..
누굴 닮았지?...
누굴까...
생각이 날듯 말듯 한데?...
하이킥에 나왔던 영어쓰던 여고생과 상당히 닮아있었다,
전날 밤샌 피로가 몰려올만 하건만, 두근거려서 잠을 청할수가 없다..
음악을 들으면서, 친구한테 카톡을 보낸다
'야.. 살아 생전에 내 이상형이랑 이렇게 가까운 사람은 첨본다.. 그것도 내 옆자리에..'
'야야야 말걸어봐'
'벌써 걸어봤다.. 여기가 어디냐고...'
'으이구 등신아... 그니까 니가 안되는거다 여기가 어디긴 어디야 등신아.. 지옥행 열차나 타라'
살짝 옆을 보니,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앞의 여중생들 소리가 시끄러운지 살짝 인상을 쓰기도한다..
말을 걸어볼까 말까 걸어볼까 말까...............
용기를 낼때마다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이미 업무 내용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직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볼까 라는 생각뿐이다..
"이번에 내리실역은 종점인 동대구, 동대구 역입니다. 내리실때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잘 확인하시고 내리시길 바랍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총알같이 흐르고 어느덧 9시가 되었다.
옆에서 인기척이 난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도 반사적으로 일어난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상당히 높은 힐을 신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뒷모습에 향긋한 향기가 난다,
창밖을 보면서 머리를 쓸어올리는 모습에 심장이 터질것 같았다
'말걸어 봐야해 기회는 지금이다 용기를 내자'
'용기를 내자!'
'용기를 내자!'
'용기를 내자!'
난 지하철을 타야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녀를 따라 홀린듯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그녀는 타려던 버스가 오지 않는지, 쌀쌀한 날씨에 손을 비비면서 버스쪽을 바라본다..
3분정도 지났을까.. 회사에서 전화온척 하면서 그녀에게 다가가서 용기를 냈다..
"저기.... 어디로 가세요?"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칠곡이요......"
....................... 정확히 반대방향이다..
회사에서 30초 간격으로 나의 위치 체크를 한다..
오빠믿지 어플이라도 깔아드릴걸 그랬다...
'저기... 제생애 처음으로 이상형을 만났습니다. 지금 말걸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것 같습니다'
'저기... 제생애 처음으로 이상형을 만났습니다. 지금 말걸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것 같습니다'
'저기... 제생애 처음으로 이상형을 만났습니다. 지금 말걸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것 같습니다'
속으로 100번은 되뇌었다..
심호흡을 했다.. 후... 할수있어.. 할수있어... 할수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내가 다가감과 동시에 그녀가 기다리던 버스가 다가왔다..
그녀가 버스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내옆을 떠나갔다....
'가지마... 가지말아줘요.. 아직 말 못했어요..'
그리고 울리는 벨소리..
"여보세요!! 야!! 지금 어디야?!! 빨리 안와?!!!!"
"과장님...."
"왜? 뭐 사고났냐? 왤케 늦어? 지금 급한 회의있는거 몰라?"
"아무것도 아닙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멍하니 지나가는 버스를 바라본다..
멍하다..
난 왜그렇게 빨리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난 왜이렇게 바보같을까..
어떻게 끝난지도 모르는 회의가 끝나고, 담배연기를 뿜으면서 이대리가 어깨를 두드린다.
"야 운명이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거다 너무 기죽지마라"
운명?
정말 운명이 있을까?..
정말 꼭 다시 만나고 싶다.. 다시 만난다면 반드시 이야기 하고싶다..
'저기... 제생애 처음으로 이상형을 만났습니다. 지금 말걸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