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일도 약속도 없고 해서 그냥 낮잠이나 퍼질러 잤다. 그러다 깨서 지금 몇시인가 하고 핸드폰을 들여다 봤는데, 문자 하나가 와 있다. 혹시나 해서 들여다봤더니 역시나, 김미영 팀장님. 300까지 된다고? 내가 지금 만약 300이 생긴다면 그거갖다 뭘 하지? 와, 진짜 돈 쓸데 없다..하는 망상을 하며 무심결에 다음문자로 넘어가니, 월요일날 그녀가 제게 마지막으로 보냈던 문자가 보인다.
'오늘은 너무 늦었넹.. 다음에 얘기하자. 잘자고. 안녕~'
문자를 닫고 수신목록에 들어가보니 지금까지 그녀와 주고받았던 문자들이 있다. 여자사람과 이렇게 많은 문자를 주고받은적은 생전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나름 추억이다 싶어 그녀와 주고받은 문자를 지우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문자들은, 그녀를 알게된지 한달정도밖에 안됬는데 무려 200여통이나 된다. 나도 모르게 보낸문자와 받은문자를 대조해 가며 그녀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 뭐해?
- 응 예능봐
- 티비 계속 봐 그럼
- 괜찮아 지금 광고시간이야 말해
- 뭐? 그럼 내가 광고시간 땜빵용이야?-_-
- 당연히~~
-뭐?ㅡㅡ
-농담이지 ^^
-....
-^^
'이런 때도 있었구나 크크 참'
- 주말에 시간 있어?
- 왜? 동아리일 때문이야?
- 음..아니 동아리일 말고 다른일 때문에.
- 무슨일?
- 그냥 다른 이유가 있어. 시간 돼 안돼?
- 다른이유?크크크크크크 어 시간 있어. 원래 없는데 너가 나오라고 하니까 시간 내줄게. 기분 좋아?크크
- 응 좋아~^^
'이건 처음 약속 잡았을 때..'
-너 토요일 오후에 시간 되?
-응 되 그럼 그때 보자
-그럼 네시반에 보는거다?
-오케이
-날씨가 춥사옵니다. 부디 소녀를 바람맞히지 마시와요..
-남아일언중천금! 그런일은 없을 것이오 낭자.
'그녀가 저런 농담도 했었구나'
물론 그녀는 직장인이고 나는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가 잘 와닿지 않는 때도 있었고, 먼저 연락이 왔을때는 즐거운 이야기 보다는 자기 일 힘들다고 한탄부터 늘어놓는 그녀였지만, 그런 한탄을 듣고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처음 동아리 술자리에서 만났을때 두세시간 정도 있었던 자리에서 열번도 넘게 나와 눈이 마주쳤던, 그래서 그자리에서 용기내어 번호를 물어볼수 있었던, 그리고 처음 어색한 대화에서 내가 말도안되는 개그와 뻔히 보이는 멘트를 던져도 다 웃어주고 받아주고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자기가 알아서 이야기도 잘 하던 그녀, 그녀, 그녀.....문자를 보고 있노라니 계속 그녀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그순간, 나도 모르게 문자를 전부 선택한뒤 삭제버튼을 눌렀다. 문자를 보고 있노라면 계속 그녀생각이 날테니까. 그녀생각을 하는건 이제는 부질없는 일이 되버린 거니까. 그런거니까...
결국 이렇게 올해도 솔로부대를 전역하지 못한채 지나가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란인간은 참..못난것 같다.
기분이 꾸릿꾸릿 한것 같지만 상관없다. 어짜피 지나간일 후회해 무엇하랴...
전화를 받은 그녀는 많이 취한 상태였고, 왜 그렇게 많이 마셨냐고 물어보니 회식자리에서 강제로 술을 많이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제게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들어놓기 시작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누군가에게 많이 화가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화해서 욕을 한바가지 해주고 싶은데 전화를 안받는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워낙 많이 취한 상태라 내용전달이 잘 안되었죠. 그래서 그냥 다음날 전화하기로 마음먹고 푹 쉬고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한뒤 끊었네요. 그뒤 오늘 낮에 전화가 왔습니다. 어제 자기가 술취해서 무슨 실수한거 없냐고 묻길래 '실수는 안했어..근데 누구한테 그렇게 화가난거야?'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더니 그녀가 말해줬습니다. 전 남자에게 전화해서 욕을 하고싶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구요. 좋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녀에게 했던말은 온통 거짓말뿐이었고 그래서 마음을 많이 다쳤답니다. 그래서 전화해서 '세상 천지에 어느여자가 너같은 거짓말쟁이를 다시 좋아해줄것 같냐 이 나쁜놈아'라고 해주고 싶었다네요.(그녀가 한 이야기 그대로입니다)그다음에 어제 자기 한테 왜 전화했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시간있냐고, 시간있으면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말하려고 전화했다고 했죠. 그랬더니 주말에 집에 가봐야한다고 (집이 직장에서 멉니다)그러더군요. 그다음엔 제 고백을 들은후 그녀가 했던 이야기들을 반복하더군요. 바쁘다.. 나도 바쁘고 이제 너도 졸업해야 하고..서로바쁘지않느냐.. 졸업한뒤 뭐해야할지 너도 지금부터 미리미리 생각 해봐야된다..아니면 나처럼된다.. 이런 이야기들. 사실 그녀가 뭐라고 이야기 하는지 귀에 하나도 안들어오더군요..그냥 웃으면서 다음에 이야기 하자고한뒤 먼저 끊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확실히 알았으니, 이제 다시는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보관해왔던 그녀와의 문자들을 모두 지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전화번호도 지울려고 했는데, 전화번호는 차마 아직까지 지우지 못하고 있네요..혹시..하는 마음이 들어서요.. 참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쿨하지못하게..크크크
오늘 요근래 날씨가 제일 춥네요. 여러모로 추운 밤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진지해지면 상대도 진지해져요. 반면에 가벼워지면 상대도 겨벼워지는 법이죠.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만 아니라면 겨벼워지는 게 연애의 지름길이 아닌가 합니다.
고귀하고 특별하며 인생에 있어서 한번 올까한 영화같은 사랑을 추구하면 인생에 하나 올까 말까하게 올것이고
사랑은 특별한게 아니라 호감있는 사람이랑 재미있게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자주 찾아오지 않을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