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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5/21 05:42:08
Name 눈시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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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정유재란 - 9. 사로병진지계




... 여러분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미친 짓을 해 보았습니다.
무술년 앞부분이라서 거의 내용이 없다시피 하지만 (보통 임진왜란 얘기할 땐 이거 다 건너뛰고 사로 병진으로 바로 넘어가죠) 많은 댓글과 추천으로 제게 힘을 주셨으면 합니다. ㅠ_ㅠ)
bgm은 지금 새벽이니 날이 좀 밝으면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1. 완전한 승리를 위해
울산성에서의 교전은 전쟁의 주도권을 완전히 뺏어오기는 했지만 적이 강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알게 해 준 전투였습니다. 특히 남해안에 모여 있는 적들이 모여서 싸우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죠.

후퇴한 명군은 대구, 상주, 전주, 나주, 충주에 둔전을 계획하여 장기전에 대비합니다. 한편으로 경주, 대구, 합천, 남원, 나주에 진을 설치하죠. 이렇게 둔전을 하거나 시장을 만들어서 명군을 먹여 살릴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날도 좋은 2월 2일. 이덕형은 양호와 적을 치는 것을 의논하는데 여기에 그 유명한 계획이 나타납니다. 사로병진이었죠. 이 때 양호는 "수군과 육군 10여만 군사를 쓰지 않고는 일을 끝낼 수가 없을 것 같다." 라고 하면서 수군으로 해로를 차단하고 육군 일로는 사천, 곤양 사이의 적을 격파, 일로는 언양, 양산의 적을 격파하고 나머지 일로로 그 독한 -_-; 도산성을 공격하자는 거였죠. 보시면 실제 이루어진 사로병진과는 약간 다르지만, 사료병진의 첫 계획은 이렇게 세워지게 됩니다. 거기에 필요한 건 십만 이상의 병력이었죠.
양호와 형개는 이를 자세히 의논하여 동로는 제독 마귀가 주관하여 참장 양등산, 유격 파새 등이 포함됐고, 중로는 제독 동일원이 주관하여 이여송의 동생인 부총 이여매 등이 포함되었고 서로는 제독 유정이 주관하여 유격 우백영 등이 포함돼 있었죠. 그리고 수로는 제독 진린, 유격 계금 등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중국군만 총 14만 2천 7백의 대병이었죠. 이런 자세한 계획에 따라 3일부터 각 병력들이 해당 지역으로 이동했고, 그 이후에도 계속 병력들이 투입되었습니다. 각기 북병과 남병들을 거느린 장수들은 해당 지역으로 이동했고, 5월에는 계금이, 6월 26일에는 진린이 수군을 이끌고 도착하기도 했습니다.
5일에는 제독 유정과 동일원이 도착했고, 이후 각기 전주와 성주로 내려갑니다. 서로군은 남원을 지나 곡성으로 향해서 순천으로 향했고, 조선의 충청, 전라군이 속했습니다. 중로군은 성주에서 삼가를 지나 진주로 진격, 곤양으로 향했죠. 경기, 황해, 경상우도의 병력이 속했습니다. 서로군은 상주에서 경주에 있다가 울산과 한이 담긴 동래로 진격합니다. 평안, 강원 경상좌도의 병력이 속했죠. 수로의 병력은 전설의 땅-_-; 전라좌수영 앞바다로 가서 순천 왜교성을 공격하는 서로와 협동하기로 했습니다.

각 기록들에서 나타나는 이들의 공통된 진군은 9월 18일에서 20일 사이. 소굴에 웅거해 있는 적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10만이 넘는 조명연합군의 진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동로의 군사는 각기 명군 24000과 조선군 5514, 대장은 제독 마귀와 김응서였습니다. 중로군은 명군 26800과 조선군 2215, 제독 동일원과 경상우병사 정기룡이 이끌고 있었죠. 서로군은 명군 21900과 조선군 5928, 제독 유정과 도원수 권율이 이끌었습니다. 수로군은 명군 19400과 조선군 7328, 장수는 진린과 이순신이었습니다.
+) 이 사로에 대해 여러 가지 자료가 있는 모양입니다. 중로의 명군이 삼만사천이라든가 서로의 명군이 이만육천이고 조선군이 만명이라든가 하는데... 일단 실록의 기록을 넣었습니다.

2. 끝 없는 공방

그런 가운데서 각 전선은 소수의 조선군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적들은 심심하면 올라와서 분탕질을 치고 갔고, 심지어는 어딘지도 모르고 고.금.도에 정박해서 약탈을 시도하려다가 무식하면 죽어야 된다는 위대한 교훈을 낳기도 했습니다.

울산성 전투 후 명의 대군이 물러난 후에도 적은 끊임없이 왔습니다. 실록에 나타난 기록을 보면 한 달에 한 번은 들어왔고, 조선군이 이에 맞서 싸웠죠. 조경남이 이 때 직접 의병으로 뛰었고 활동구역도 이 곳이었기에 그 기록이 잘 적혀 있습니다. 몇 가지만 추려 보죠.
3월 3일 - 적 400명이 진주 -> 장수 -> 안음, 거창 -> 황간, 영동 거치면서 약탈 후 금산 -> 합천 경유 본진으로 돌아감
4월 10일 - 곤양의 적 400여명이 하동 -> 쌍계 -> 운봉 경유 약탈

에... 두 가지만 추려 보자구요. -_-; 적들이 약탈과 시위 목적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이에 맞선 조선군의 활약도 정말 처절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기껏 돌아온 백성들은 다시 도망쳐야 했고, 소규모래도 적은 여전히 무서운 왜놈들이었습니다. 점령을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니 성에 틀어박혀 있으면 얼씨구나 하고 바깥을 약탈하고 돌아갔죠.

이런 상황에서 맞서고 있던 것은 전라도의 경우 병사 이광악, 평안 감사 이경준, 감사 황신 등이었습니다. 하지만 보고에 따르면 이들의 병력은 각기 수백 수준. 이 중 평안도의 병력들은 실록이나 난중잡록에서 그 공을 크게 다루는 것이 보이는데 역시 조선군의 정예는 평안, 함경의 북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군요. 황신의 경우 휘하에는 직접 병력이 없었고 수십 수준의 병력을 가진 별장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이 중 구덕령이라는 자는 9명을 이끌고 남해도, 네 바로 그 남해도인 모양입니다. 거기에 침입해서 적 30명을 잡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강단이 참 -_-; 한편으로는 순천 부사 겸 조방장 김언공도 있었죠. 어라 순천 부사가 왜 육지에 있냐구요? 밑에서 얘기하죠 뭐 ( ..) 경상도의 경우 도원수 권율이 마귀와 함께 경주에 있었고, 우도병사 정기룡과 좌도병사 성윤문, 권응수, 고언백 등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김응서는 항왜들로 병력을 구성했죠.
이들은 적이 오면 맞서고, 게릴라전을 벌이고, 지형의 이점으로 돌아갈 길을 끊는 등의 작전을 수 없이 벌입니다. 명군 역시 4월 3일에 부총 해생이 병력 오백으로 합천, 거창 등에 진군하기도 했죠.

일본의 경우 명량해전 이후의 철퇴와 울산성 전투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히데요시의 명이 어떠한들 군량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북상할 이유가 없었죠. 히데요시의 명령부터가 그냥 적당히 적당히 공략하고 왜성으로 돌아오라는 거였으니까요. 그들의 마음은 애초에 저 멀리 일본에 있었겠습니다만 말 그대로 히데요시의 명령이 무서워서 남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5월로 넘어가면 고니시, 가토, 시마즈, 소 요시토시 등 12개 지역의 병력만 남기고 주로 섬에서 주둔하던 병력들이 철수하기도 합니다. 히데요시가 자기 몸 상태를 알고 미리 부른 걸까요. 아무튼 전군 철군은 아니었습니다만.

명군의 경우 병력이 집결될 때까지 대기해야 했습니다. 거기에 손톱만큼이라도 남은 강화 의지에 다시 매달리기도 했죠. 형개는 다시 재출병을 하면서 싸우는 한편 화의를 다시 시도해 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권율이 다시 남하하려 할 때 마귀에게 막히기도 했고, 이광악도 적이 얼마 없어서 칠 수 있을 거 같은데 명이 아군을 물러나게 한다고 장계를 따로 올릴 정도였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자기들의 조건만 들어주면 강화하고 철군한다는 것을, 특히 고니시가 계속 주장한 상태기도 했구요. 5월 요시라가 왔다가 잡혀서 명으로 끌려 가서 처형당한 것을 보면 그것을 들어줄 생각은 없었던 모양입니다만.

조선군의 경우 적이 물러서면 되려 공격해 들어가서 순천, 곤양 근처까지 치고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이광악부터 정기룡까지 이들은 모두 임진란의 그 많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명장들이요 맹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의지는 마지막까지 꺾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로병진 이전에 이들은 순천과 사천 사이의 연락망을 끊어 놓을 정도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고니시는 왜교성에 고립, 시마즈군은 육지가 아닌 바다로 지원군을 보내야 했습니다.

뭐 명이라고 그냥 조선이 싫어서 그런 건 아니었죠. 사로병진이 그렇게 늦어진 이유는 군량 문제가 가장 컸습니다. 선조가 명 장수를 접대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새로 온 명군, 기존의 명군에 대한 군량 문제를 의논해야 했습니다. 명에서 계속 따지기도 했고, 천진의 군량을 수송하기도 했죠. 이 때문에 해운을 되살리는 논의도 계속되어 각지의 배를 만드는 작업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어려워서 사로병진은 추수 이후에나 시작할 수 있었고, 한창 춘궁기인 3월에는 명에서 좁쌀을 지원해줘서 굶주린 백성들을 먹여야 했을 정도입니다. 무술년에서 중국군이 기를 모으는 시간이 길었던 것, 조선군이 소수였던 것은 모두 군량 때문이었던 거죠. 때문에 김수는 묵어 뒀던 은광을 개발해서 팔까 하는데 그러다가 명에게 다 뜯기고 백성들 고생만 시키니까 하지 말까, 이런 논의를 내놓기도 하죠. 결국 개발은 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이 해 5월 14일 관왕묘에 제사지내는 문제가 의논되었는데 조선에서 관우를 모시는 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3. 고금도 이전
2월 17일, 이순신은 고하도(보화도)에서 고금도로 진을 옮깁니다. 이 때 이순신은 그 형세를 설명하며 "한산도보다 배나 좋다"고 보고했죠. 여기 역시 일천오백호나 되는 이들에게 농사짓게 했다고 합니다. 난중잡록에는 이 때 뱃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한 달도 못 돼서 한산도와 같았다고 적어놓고 있군요.

난중일기에는 무술년에 들어서면서 신규 전선을 건조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금도로 가기까지 크게 늘어나는데... 뭐 자료 화면 보시죠.

경리의 분부로 선박의 수를 나누어 정하였다. 평안도 철산에서 만들어야 할 배의 숫자는 20척인데 이미 완성된 배가 8척이니 더 만들어야 할 배가 12척이고, 황해도 장산곶에서 만들어야 할 배의 숫자는 50척인데 이미 완성된 배가 40척이니 더 만들어야 할 배는 10척이며, 충청도 안민곶에서 만들 배의 숫자는 10척인데 방금 일을 시작했다. 전라도 변산에서 만들 배의 숫자는 20척인데 전일 속공선 13척을 그대로 더 수리했으므로 더 만들 것이 7척이다. 이상은 모두 조선에 관계된 것이고, 병선에 대해서는 양호의 민력이 이미 고갈되었으므로 다시 더 만들도록 독촉할 수가 없었다. 주사가 이미 40척을 만들었는데 이 숫자를 합하여 경리에게 보고하였다.
98년 2월 22일

40척입니다. -_-; 평안, 황해, 충청도 후방에서 만든 배와 이순신이 고하도에서 혼자 만든 배의 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죠.
뭐 저도 달리 설명할 수 없을 듯 합니다. 여기에 충청 수군 10척까지 합류한 조선 수군은 1년은 개뿔 채 반 년 만에 13척에서 60~70척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됩니다. 다만 이들이 모두 선박에 동원되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것은 나중에 다시 적도록 하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재건된 조선 수군을 선조는 너무도 기뻐하여 이를 위하야 어여삐 여겨... 순천부를 전라좌수영에서 빼 버립니다. -_-; 좌수영의 노른자는 이렇게 육군으로 가 버리죠. 이렇게 선조 무능설은 다시 한 번 강력하게 반박됩니다. 머리가 나빴으면 좌수영의 노른자를 어떻게 알았겠어요.
한편으로는 심심하면 칠천량 해전 당시 "주장"을 버리고 도망친 자들을 벌주라고 협박합니다. 한창 잘 싸우는 수군을 왜 이렇게 못 살게 구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순신을 제외한 수군 장수들은 목에 칼이 겨눠진 채로 싸운 겁니다.

3월에는 왠 적 16척이 고금도에 정박해서 조기를 잡다가 약탈을 시작해서 아예 없애버리기도 하는 등 고금도에서도 조선 수군이 한 건 똑같았습니다. 바다로 육지로 공격, 공격이었죠. 이상한 점은 고하도 시절부터 있던 이런 전투들의 승첩장계는 물론 승첩했다는 기록 자체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난중일기, 난중잡록 등에서 단편적으로 나올 뿐이죠. 그 명량해전조차도 중국에 보고하는 장계에 인용되면서 조금 나타날 뿐입니다. 너무 많아서 없앴을까요. 꼴 뵈기 싫어서 굳이 안 적었을까요. 아무튼 이상한 부분입니다. 노량해전 역시 나중에 이덕형이 보고를 한 후에야 그 전말을 제대로 알 수 있었죠.

고금도 시절에 이상한 점 한 가지는 고하도 때 기적적으로 재건된 수군이 증강된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13척에서 배를 타고 합류한 장수들, 10척의 충청 수군, 40척의 신조 건조를 다 합치면 최다 70척에 이르죠. 하지만 노량해전에 참전했다고 알려진 수는 80척입니다. 전후에도 남은 수는 80척이라고 하죠.

... 에?

우선 순천부를 빼 가는 등 조정에서 병력 지원이 안 돼서 그 정도만 만들고 나머지는 다른 곳, 화포 같은 곳에 투자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 병력만 보면 노량해전 참전 전선은 60척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하지만 임란 후 남은 병력이 아닌 남은 전선이 80척이라는 것에서 남은 판옥선 자체가 80척밖에 안 됐다고 봐야겠죠.

그렇다면 남은 것은 누가 또 이것을 갉아먹었다고 봐야 된다는 거겠죠. 누굴까요?

6월 24일자 실록에는 이순신이 물력을 자급하고 있는데 중국 장수들이 진 치고 있고, 우리의 물자를 신경 안 쓰고 계속 독촉하며 병력과 화포 등까지 점검해서 일을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 하고 명 장수의 명령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 한마디로 축약되죠.
"그간의 징색의 폐단과 난감한 역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때 명군은 육지에서 군량을 보낼 수 없어 이순신이 애써 마련한 군량을 줘야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조선 전역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만 나름 명에서도 군량을 바다로 보내주기도 했고 고금도 섬 하나와는 비교가 안 되었죠. 그리고 수군은 당시 명이든 조선이든 가장 강력한 단위부대였습니다. 실록에는 이 명의 장수를 유격 계금이라고 콕 찍어 말하고 있죠. 그나마 방법은 없었습니다. "대인"의 말에 따르겠다고 하면서 수군에는 물자가 없다고 호소하고, 이순신에게는 어떻게든 하라고 말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어 난중잡록에는 이순신이 나가려 했으나 진린이 막아서 나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기를 보나 이후 진린의 행동으로 보나 이 때 진격을 막은 것은 계금으로 보입니다.

... 원균 어디 안 간다니까요. 아주 조선 수군에 쪽쪽 달라붙어서 모든 것을 빨아먹어 버립니다. 충청 수군의 양이 적거나 비전투손실이 제법 많았다고 하더라도 고금도에서의 수군 발전은 너무나도 적습니다. 실록 찾아보니 4월 24일에 나주에서 명 수군을 위한 군량을 모으라고 했는데 이것도 수군에서 보낸 건지 거 참 -_-;

그런 상황에서 6월 26일. 진린은 도착합니다. 임금은 동작진까지 가서 맞이하죠. 진린은 예의가 바른 장수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4. 조명연합수군 결성

드디어 위대한 명 수군 본진이 도착합니다. 그리고 위대한 제독 진린이 배에서 내렸습니다.
징비록에 따르면 이 날 진린의 부하들은 조선의 수령들을 때리고 찰방 이상규의 목에 새끼줄을 걸어 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다른 이도 아닌 영의정 류성룡이 말려달라고 해도 진린이 듣지 않았다고 하니 이는 모두 진린이 꾸몄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그러더니‘나는 천조에서 명을 받아 수군을 총령하고 있으니, 주사와 변장들을 절제해야만 한다. 배신들 중에 혹 명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일체 군법으로 다스려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죠. 접반사 남복흥은 진린이 수군을 직접 거느리고 싶어한다며 귀띔했습니다. 고민에 빠진 비변사, 선조도 이 때만큼은 이순신의 걱정을 해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수군이 망하면 어떻게 되는지 딱 보이, 아니 두 번이나 봤으니까요.

그랬던 진린은 의외로 이순신에게 큰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뭐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유격 계금 하나 때문에 겪었떤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죠. 당장 진린이 도착한 16일에서 직후인 않은 18일에는 절이도 해전이 벌어지죠. 고금도 근처에서 벌어진 이 해전은 난중잡록에서 적 50척을 깨고 수급 100여급을 벤 것으로 적힌 것 외에는 딱히 알려진 것이 없었고, 나름 수수께끼의 전투였습니다. 그나마 이게 알려진 것도 그 유명한 진린의 수급 탈취 사건 때문이었죠. -_-; 8월 13일자 실록 기사를 보면 적의 시체가 바다에 가득했는데 급한 나머지 다 베지 못하고 '70여급만' 베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린이 여기서 40개를, 계금이 5개를 뺏어갔죠. 참 잘 하는 짓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수급 70여개는 이제껏 한산도 대첩 때밖에 없었죠 (...) 그래서 김경진님은 이 해전의 사료 없음을 바탕으로 장대한 액션 및 동서양 함대 대결을 쓰셨는데... 새로 나온 난중일기에 이게 나왔죠.

복병장 녹도 만호 송여종이 전선 8척을 거두다가 적선 11척을 절이도에서 만나 6척을 통째로 포획하고 적군의 머리 69급을 벴으며 용기를 발휘해 진영에 돌아왔다.

생각보다 시시한 전투가 돼 버립니다만 -_-; 8척으로 11척 중 6척 포획 및 69급을 베었다면 그냥 학살전이었죠. 일본군이야 어떻게든 상대해 보려고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조선 수군이 이 정도로 일방적인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었죠. 다만 김경진님은 그 외에도 한 번 더 출동했다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군요.

아무튼 이순신은 진린에 대한 장계를 보낼 때 예의 그 꼬장꼬장함을 버리지 않았으며, -_-; 진린은 이런 이순신을 이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씨아저씨? 아무튼 경칭이죠. 진린은 정 2품 도독첨사. 하지만 어쨌든 어엿한 수로의 주장이고 정 1품 도독 대우를 받을 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4월 28일에야 가선대부에 오릅니다. 그나마도 부하 김응함과 함께로요. 이것마저도 중국 장수들의 압박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잘 해야 정 2품인 제후국 신하에게 왕도 우습게 보는 진린이 이런 대우를 해 줬다는 게 이상하죠.

통설에서는 그저 이순신의 능력을 알아서, 이순신이 그 성격을 버리고 필요를 위해 접대를 잘 해서라고 하는데... 김경진님이 엄청난 주장을 하시더군요. 이건 거의 액면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_-;
이순신이 명나라의 정 1품 관직 도독에 임명되었다는 것은 제법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게 사후 추증으로 알려졌는데... 진린이 초기에 개판으로 놀며 수군 작전권에 신경쓴 것, 4월에 명나라 장수들이 선조에게 이순신의 품계를 올려주라고 하고 이순신에게는 직접 선물을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보낸 것, 진린이 이야, 노야라는 극존칭을 쓴 반면 이순신은 부군이라는, 친구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을 쓰며 진린을 대접한 것에서 이순신은 명량 해전 후 98년 4월 중국으로부터 정 1품 도독직을 받았으며, 이것이 실직이든 명예직이든 정 2품 도독첨사에 불과했던 진린에 비해 높았다는 것입니다.

헥헥... 간단하게 썼습니다만... 사실 이렇게 보면 그 동안의 모든 의문이 풀립니다. 이순신이 진린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데 정작 진린은 이순신을 이야라고 부르며 절이도, 노량에서 그를 막지 못 하고 끌려다닌 것이 설명이 되는 것이죠. 글쎄요. 아직은 주장 수준이지만...

아무튼 김경진님의 임진왜란 무술년편 인터넷 연재폰 [대명수군도독] 파트의 마지막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대명 수군도독은 진린이 아니라 이순신이다."

5. 무술년
정유재란에서 쉽게 볼 만한 서술은 97년 7월부터 9월 후 울산성 전투 한 번 쿡 눌러주고 98년 9월로 넘어갑니다. 이순신의 수군 재건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 이상이야 그 사이의 서술은 정말 보잘 것 없죠. 이 정도면 정유재란은 거의 임진왜란의 부속 수준입니다.
그 이유를 대충 따져보자면... 아무래도 병력도 없고~ 의병도 없고~ 했다는 인식, 아무리 자세히 해 봐야 명군이 중심이 된 상황, 해상 재해의 존재가 임진왜란 때에 비해서도 너무나도 커져 버린 것, 마감이 코 앞인데 마지막 부분에서 재미도 없고 시간만 긴 걸 써 봐야 뭔 의미가 있냐는 것 -_-; 등등이겠죠. 이런 이유들이 복학접으로 작용하면서 정유재란에 대한 서술은 울산성 이후로는 "사로병진 공격!" "오너라! 어차피 니네는 한 방에 다 물리칠 수 있다!" "크아악! 삼로군이 모두 당하다니!" "이순신! 우리도 물러나야 된다!" "안 된다! 조선 수군 단독으로 공격!" 이순신의 용기가 조선을 구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지금까지 cause you're my girl~

... 이런 삘이 나 버리죠. 뭔가 신 나서 써 버렸네요. 진통제가 너무 셌나.

그래서 나름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찾아보았고, 나름 재밌는 것들이 많았네요. 그래도 역시 중점적으로 다루기는 어려운가봐요. :) 재미가 없으니. 특히 조선군의 활약은 그 소규모로 깨작깨작 수준이었고 적 성을 뺏은 것도 아니요 적 대군을 막은 것도 아닌 상황이 계속된 게 큰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정유재란 때도 소수의 관군과 의병은 악착같이 활약했고, 적 코 앞까지도 병력을 겁 없이 진출시키기도 했습니다. 수군을 제외해도 이 정도면 조선군의 완성형이라고 봐야죠. 너무 자잘하기에 다 다룰 순 없었지만, 이들의 노력을 폄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의병장 조경남이 한창 백면서생에서 벗어나 나는 의병왕이 될 거라고 외칠 때 김식을 만납니다. 친척이라고 하는군요. 기쁜 마음에 같이 싸웠더니, 이 인간이 참 잔인하더랩니다. 거기다 그 부하들도 흉악해서 왜놈들보다 더 했다고 하죠. 결국에는 조경남의 공을 다 뺏어 버리고 다시 선전관이 돼 버립니다. -_-;

아마 조경남 난중잡록에 나오는 유일한 원균 옹호 문구 "패했지만 불충한 이는 아닌 듯 한데"는 김식에게서 들은 게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게 틀린 걸 알았을텐데도 바꾸지 않았죠. 이렇게 다른 내용을 같이 써서 후세의 판단에 맡기는 게 당시 방식이었고, 조경남은 거기에 충실했습니다. 그리고 선전관이었는데도 지방 수령으로 임명되지 않고 조경남의 의병에 합류해야 했던 김식의 상황을 보면 보고를 잘못한 죄로 파면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죠. 선조 이후 원균에 대한 평가에서 "천 척의 대군"에 대한 말은 별로 나오지 않더군요. 여러 보고로 조선 조정에서도 칠천량에서 기습한 적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 않았을까 넘겨 짚어 봅니다. 현대는 김식의 장계에만 너무 의지해서 천 척이라는 말에 아직도 빠져 있는 거 같구요. 뭐 조정 말고 개인 사료에서는 천 척이라는 표현이 제법 나오긴 하지만요.

아무튼 이렇게 전쟁이 길어지는 것은 어느 쪽이든 결정타를 지을 수 없고 정치적인 요구가 남아 있다면 어쩔 수 없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만... 덕분에 임진왜란에 이어 우리나라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죠. 남부지방은 일본의 점령 및 약탈로, 중부지방은 명군의 약탈... 명나라 옹호 느낌으로 좁쌀로 조선 백성 구호를 넣긴 했지만, 이 때 명나라가 잘 한 건 절대 아니죠. 굳이 넣진 않겠습니다. 많이들 들으셨을 테니까요.
어쨌든, 전쟁은 모두에게 비극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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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하죠. 휴... 몇 일만에 쓴 건지 모르겠네요. 부족한 부분은 퇴원 후 잡거나 하겠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많으니 좋네요. 계속 확인해 가면서 쓸 수 있으니까요. 사람이 많아서 좀 그렇지만 -_-; 거기다 평소와 달리 머리 대신 가슴 쪽이 아픈 게 다르군요.
정유재란은 앞으로 두 편 남았습니다. 그 후에 임진왜란의 후일담 얘기를 좀 하고... 오랫동안 글을 안 썼으니 그 대가로 호... 아닙니다. 아직은 확신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다음 편 "꿈의 끝"을 제 퇴원과 함께 기대해 주세요 ㅠ

혹시나해서 말씀드리는데 요새는 몸이 많이 좋아져서 진통제 안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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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1/05/21 06:07
수정 아이콘
수고하셨습니다~ 어여 나으세요~ 물론 완치되자마자 연재 gogogo...
무리수마자용
11/05/21 06:58
수정 아이콘
귀하의 진통제투혼에 눈물을 흩뿌리며 순식간에 읽었습니다.
명에서 이순신을 스카웃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그냥 립서비스겠거니 했는데 이게 사실이었나요???? 레알인가요!!@!@!??
나라덕후인 이순신장군이 명나라에서 보낸 관직을 받는 건 그림이 영 안그려지는데 말이죠. 뭐 진린->이순신의 애정관계일수도있잖아요 흠흠;;
메밀국수밑힌자와사비
11/05/21 07:07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이제 진린이 나오는군요...

쾌차하시길 빕니다.
11/05/21 11:59
수정 아이콘
이제 곧 퇴원이시군요. 글 올라오는 것 만큼 반갑습니다. :)
11/05/21 17:34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이순신이 명으로부터 관직을 받았다니.... 이거 정말 충격이네요.

몸 잘 추스리시고요,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
11/05/21 17:34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는데
그 고지식하고(나쁜뜻이 아닙니다) 한결같은 충무공께서 대국에서 내리는 관직을 받을수가 있나요?
'왜란종결자'의 서술에서 보면 진린은 싸움터에서 아예 충무공의 대장선에 타고 자기 군선들조차 충무공의 지휘를 받게 했다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그냥 단순히 놀라운 지략에 매료당한 진린이 충무공에게 존중을 보였던건 아닐까요?
11/05/21 18:02
수정 아이콘
내용을 읽기전에 사진이 먼저 떴는데 제일 먼저 들어온게... 부산쪽에 꼴데에키... 제가 야구를 너무 많이 사랑했나보군요...

먼저 일단 댓글 썻구요 잘 읽어보겠습니다~^^
Langrriser
11/05/21 22:33
수정 아이콘
당시 조선 국왕(이나 왕세자)가 은연중에 명나라 정1품 대우를 하던 세상에서(물론 은연중이었겠죠? 대놓고 그랬으면 영락제가 뭐고 한번 그냥...!) 그걸 받았으니 기록으로 남기거나 다른 여타 행동을 취하리라 무척이나 힘들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음... 나름대로 진린이 줄 잘 섰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진짜 원균급이었으면 지휘 자기가 할 테니 닥치고 따라오라는! 식이었으면 전쟁은...) 음...그리고...
퇴원 하시더라도 몸 조심 하세요. 이만 하면 됐다..싶을때 훅가기도 하니까요. ^^
꼬마산적
11/05/22 02:12
수정 아이콘
그런데 나중에 나오는 말이 있죠
광해군 당시 등거리 외교가 가능했던것이 조선수군때문이었다는겁니다
조선수군이 어느쪽으로 가느냐에따라 명과 청의 전쟁양상이 달라졋다는거죠
즉 조선수군의 위상이 상당했다는것이죠
이러면 진린의 행동과 장군님의 품계가 이해가 가죠
아무리 장군님 사후라 해도 당시 조선수군은 최정예요 무적이었죠
명나라 라도 이것을 묵과하긴 힘들었을것이고 더군다나 당시는 이순신 장군 이 생전이었죠
이것을 생각해보면 명의 장군님에대한 예우가 결코 이해못할 사안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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