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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4/03 22:20:02
Name 눈시BB
File #1 조선_지도1.JPG (107.7 KB), Download : 71
Subject [일반] 임진왜란 - 5. 나라가 망한다


지도 너무 복잡하죠? -_-;

이번 편은 의주까지 밀리고 조선 8도 중 7도가 점령당하는 부분까지 다뤄 보겠습니다. 다음 편에서 의병과 관군의 반격, 다음으로 명의 참전. 수군 얘기는 그 뒤로 미루겠습니다. 저번 편보단 좀 스피드를 올려보죠.

1. 파천

신립이 패전한 후 충청도의 조선군 역량은 소멸합니다. 조정은 급히 파천에 대한 논의를 하죠. 당연히 대다수 신하들은 반대합니다. -_-; 그렇다고 딱히 방책이 있는 건 아닙니다. 한양은 방어에는 전혀 안 맞았죠. 이산해가 파천 가능성을 내비칩니다만... 이후 이걸 핑계로 파직당합니다. 그래놓고 양반들은 자기 가족들을 피난시키기에 급급하죠. 네. 개판 오분전이었습니다. -_-;

일단 취한 조치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김명원을 도원수, 이양원을 유도대장으로 임명해서 한강 수비를 맡게 했고 이원익과 최흥원이 각기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그 지역으로 가서 병력을 모으게 하죠.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서 그렇게 미뤄뒀던 세자 책봉을 하고 임해군과 순화군은 함경도로 보냅니다. 거기서 백성들을 달래고 병력을 모으라는 거였지만...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다들 잘 알고 있죠.

4월 30일 새벽. 임금을 따르는 문무관은 100명이 채 되지 않았고, 벽제관에서 점심을 먹을 때는 왕과 왕비의 반찬은 겨우 대었지만 이외 족친들에게 먹일 게 없을 정도였습니다. 강을 건널 나룻배가 부족해서 왕비 등이 가마에 타지 못 하고 비에 젖은 채 배를 탔다느니, 율곡 이이가 일찍이 이런 상황이 닥칠 것을 알고 정자를 만들어 놓았고 그걸 불태워서 한밤중에 강을 건널 수 있었다느니 하는 얘기도 있죠. 그나마 5월 1일 저녁에 개성에 도착해서야 여유가 생겼습니다.

한편 4월 29일. 1, 2군은 합류해서 한양 공략 계획을 세웁니다. 회의 결과 고니시 유키나가의 1군은 여주 -> 양근 -> 용진으로 이동해서 한양을 동쪽으로 치기로 했고, 2군 가토 기요마사는 죽산 -> 용인을 통해 곧장 북상하기로 했습니다. 한편 구로다 나가마사의 3군도 추풍령을 넘어 청주로 갔다가 북상했죠. 서울을 향한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에 맞서 한강 방어선을 지키던 김명원은 적을 보고 무기 등을 모두 강에 버린 후 도주합니다. 하아... 또 이 병력에 대한 고찰을 해야 되나요. 일단 실록은 천 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병력을 믿고 가 봅시다. 한양의 여유 병력들이 대부분 탄금대에서 무너졌고 남은 병력을 수습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구요. 그러면 최소한 한강을 버리고 도망갔는데도 용서한 선조의 심정이 조금이라도 이해 가니까요. 만약 임진강 방어선에서처럼 만명이 넘은 상태에서 도망간 거면... 대체 선조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짐작도 안 가거든요. 김명원은 임진강에서 다시 도원수로 방어를 맡게 됩니다. -_-; 또한 이렇게 북으로 도망가는 동안 이산해가 파천을 처음 꺼냈다느니 류성룡에게 책임이 있다느니 하면서 재상들이 또 교체되죠. 특히 정철은 다시 부름을 받게 되구요.

5월 2일. 1, 2군은 각기 한강을 도강합니다. 이 때 보면 또 재밌는 게 고니시 유키나가는 미리 도착해서 가토가 건너기 어렵게 나룻배들을 모두 없애버렸다는군요. 둘의 경쟁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만 합니다. 어쩌면 탄금대에서 1군이 패하기를 원했던 사람 중에 가토도 끼여 있지 않을까 싶네요. 3일에 1, 2군은 한양에 입성합니다. 그래도 고니시가 좀 더 빨랐죠. 한양을 지키던 병력은 없었고 노비들은 양반들이 도망간 데 분개해서 노비 문서를 태워버리면서 궁도 태워 버립니다. 그나마 다른 궁들은 전후 복구했지만 경복궁은 흥선대원군까지 쓰지 못 했죠. 동대문으로 들어온 1군, 남대문으로 들어온 2군에 이어 3군도 입성하고 5일에는 4군도 들어옵니다. 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양만을 보고 올라왔는데 왕이 달아나 버렸으니까요. 왕을 사로잡아서 조선의 점령을 선포하고 명을 어떻게 해 볼까 생각해볼 차에 이렇게 돼 버렸고, 이젠 왕을 쫓는 것과 함께 전국을 직접 점령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꿔야 했습니다. 어쩔 수 있어요. -_-; 까라면 까야죠.

10일까지의 휴식 후 일본군은 2군을 임진강 방어선으로 보내 조선군의 반응을 살핍니다. 이즈음 남쪽에서 놀던 수군이 기습 받아서 깨졌다는 말을 들었을텐데 뭔가 생각할 여유는 없었겠군요. ^_^ 일본군은 편제를 어느 정도 바꾸고 조선 8도 점령 작전에 들어갑니다. 한편 히데요시는 이걸 승인하면서 16일에는 한양 점령 보고를 받으면서 9군과 지원군 5000명을 파견해서 부산을 지키게 했고 북진을 승인하고 지휘 체계를 개편하면서 각 군들이 해당된 지역에서 군정을 실시하고 현물납세를 받게 했습니다. 그걸 대충 보면...

우선 3, 4군(시마즈 요시히로 등)이 구로다 나가마사 밑에서 통합하고 5군을 4군(후쿠시마 마사노리), 5군(하치스카 이에마사), 6군(쵸소카메 모토치카)로 분할, 6군은 7군으로 서열을 바꾸게 하고 예비대로 전환시킵니다. 이 7군은 조선 의병이 낙동강 쪽에서 수송대를 기습할 때 허구헌날 나오는 걸 보면 부산-한양까지의 보급로를 맡은 것 같네요.

각 군이 맡은 지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숫자는 일본이 파악한 조선의 석고입니다. 반올림했습니다.

경상도 - 모리 테루모토 (289만석)
전라도 - 고바야카와 다카가게 (227만석)
충청도 - 후쿠시마 마사노리 등 (99만석)
강원도 - 모리 요시나리 (40만석)
경기도 - 우키다 히데이에 (77만석)
황해도 - 구로다 나가마사 (73만석)
함경도 - 가토 기요마사 (207만석)
평안도 - 고니시 유키나가 (179만석)

왠지 이대로 됐으면 고생만 한 고니시와 가토는 안 좋은 땅 받게 되고 금싸라기 경기도, 영호남은 모리 가문과 총대장 우키다에게로 돌아가게 됐네요. 거 참 -_-;

한편 조선 조정은 교시를 내려 한양 백성들을 달래려 했으나 한양 점령 소식을 듣고 평양으로 향합니다. 이 때 황해도에서 6000명의 병력이 소집되고 함경남도 병사 신할이 병력을 이끌고 오면서 조선군도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게 됩니다. 일본군도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니 시간도 어느 정도 벌었구요. 4월 29일에는 전라감사 이광이 팔천명을 모아서 북상하려 했지만 도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회군했습니다. 다시 기 모으고 올라오려고 한 거죠.

2. 임진강 방어선
일본군이 다시 북진을 제대로 시작한 건 16일이었습니다. 이 때 선발대가 현재의 의정부 북쪽 양주의 서쪽 해유령에서 부원수 신각, 유도대장 이양원 등의 매복에 의해 전멸당합니다. 김명원이 급히 도망가는 와중에도 그들은 어느 정도 병력을 유지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던 것이죠. 하지만... 김명원은 자신의 잘못을 신각 등의 명령불복종으로 허위 보고하면서 노한 조정에서는 그들을 벌 줘야 된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선조는 신각을 참수하라고 했는데... 선전관을 보낸 후에 승전 장계와 함께 70급의 수급이 도착합니다. 급히 다시 선전관을 보냈지만... 이렇게 임란 직후 첫 승전을 거둔 신각은 목이 잘립니다. 임진왜란 기간 중에 패했다고 처형한 몇 안 되는 사례였습니다. 그 직후 나온 말들을 보면 패한 장수들이나 도망간 수령들을 용서할 테니 적과 힘껏 싸우라는 말이 많거든요. (그리고 이산해를 파직하라는 말은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나옵니다 -_-; )
한편 경기도 여주에는 강원도 조방장으로 임명된 (임란 당시에는 파직당해서 고향에 돌아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원호가 진출해서 구미포에서 적을 크게 무찌릅니다. 선조에게 보고가 들어가서 가선대부에 가자되기도 하죠. 이후 승지 성영, 목사 남언경, 방어사 변응경 등이 여주, 이천 등지에 주둔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일본군이 점령을 어느 정도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죠. 하지만 이들이 이후 적을 공격하거나 하지는 못 한 것으로 보이며 일본군이 전국 8도를 점령하려고 시도할 때 후퇴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호는 강원도에 적이 쳐들어오자 이들과 맞서다 장렬하게 전사합니다.

그럼 본론인 임진강으로 돌아가 보죠. 실록을 보면 장수들이 강을 건너 싸우려 하지 않는다면서 비난을 가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아마 적을 격퇴하라는 상당한 압박이 들어가 있었던 듯 합니다. 상대는 가토 기요마사의 2군, 하지만 이들도 강을 건너는 부담감과 조선군의 많아 보여서 쉽게 도강하지 못 합니다. 어쨌거나 이들은 비교적 전쟁에 익숙한 북병들이었거든요. 거기다 나룻배들은 모두 조선측이 가지고 가 버렸습니다.
18일부터 27일까지의 대치 끝에 일본군은 파주로 후퇴할 움직임을 보이며 진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함경남도 병사 신할은 여기서 적을 공격할 것을 주장하죠. 뒤이어 온 한응인도 합류, 강을 건널 것을 주장합니다. 위에서의 압박도 있을 것이고 자기도 북방에서 경험을 쌓아 왔을 테니까요. 두 번이나 죄를 지은 김명원은 발언권이 적었지만 일단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유극량의 경우 신중론을 펴며 결사 반대합니다. 하지만 강경이랑 온건이랑 붙으면 언제나 강경이 이기죠.
만여명의 병력이 강을 건너 적을 추격합니다. 하지만... 적의 매복에 걸려서 크게 패합니다 여기서 신할, 유극량 등이 전사하고 말죠. 유극량은 도강 후에 적이 진을 단단히 치고 있자 후퇴를 다시 청하지만 신할은 거부하고 싸웁니다. 유극량도 도망갈 생각 없이 싸우죠. 이런 신할의 모습에서 왠지 신립이 떠오르죠. 예. 둘 다 신숭겸의 후예인 평산 신씨로 신할이 신립의 동생입니다.

강 건너편에서 몰살당하는 아군을 본 남은 조선군 역시 사기가 크게 꺾입니다. 결국 김명원과 같이 남아 있던 한응인은 임진강을 포기하고 철수해 버립니다.

3. 용인 전투
임진강 다음은 대동강입니다. 이 때 일본군은 각기 자기가 가야 할 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죠. 특히 1, 2군은 서로 조선왕을 쫓겠다고 경쟁하다가 제비뽑기로 고니시는 평안도로, 가토는 함경도로 가게 됩니다. 이미 이 때부터 일본군의 군량은 문제가 되기 시작했을 겁니다. 군량 걱정 안 하고 올라왔는데 왕은 도망가고 현지 징발로는 한계가 있게 됩니다. 그나마 낙동강을 확보하긴 했지만 큰 길이 없는 조선으로서는 이미 문제가 됐겠죠. 거기다 슬슬 경상도에서 곽재우 의병군이 활약을 시작했고(18일), 전라도에서도 김천일 등 의병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임진강을 돌파할 무렵 무시무시한 적이 남해를 휩쓸기 시작합니다. 1, 2군의 진격에 비해 다른 군들의 진격은 늦는 편인데 이게 군량이 1, 2군에 집중돼서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위에 언급했듯 한양에서 그리 멀지 않고 분명 보급로 중간에 있을 여주 부근에도 조선군이 공격을 해 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조선 육군 역시 패했어도 용인까지 진출했었죠. 이 때 이미 일본군도 쉽지 않은 상황에 빠진 겁니다.
용인으로 진군한 조선군은 기록상으로 5만입니다. 앞서 후퇴했던 전라감사 이광, 나주목사 이경록(이순신과 친한 그 이경록입니다) 선봉장 부사 이지시 등이 한 갈래였고 전라방어사 곽영, 광주목사 권율, 선봉장 백광언이 또 한 갈래였죠. 전라도의 병력만 4만이었습니다. 충청도군은 팔천명으로 순찰사 윤선각, 병마절도사 신익이 있었고 경상도 순찰사 김수도 백여명이나마 합류합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남도 근왕군이라 칭했고, 10만이라고 자랑하면서 진군합니다. 그 병사와 수레의 행렬이 40~50리에 달했다느니 하면서 대군이라는 걸 자랑했지만, 류성룡은 후에 이들을 "양떼몰이 하는 것 같았고, 봄나들이 온 것 같았다"면서 까죠 -_-; 이들은 용인까지 별 어려움 없이 진군하지만,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1600 병력에 의해 패합니다. 우선 두 선봉장(이지시, 백광언)을 필두로 곽영이 진격을 시작하는데 적의 매복을 받아 패했고 이지시와 백광언은 전사합니다. 이 둘은 본대가 후퇴할 시간을 벌기 위해 끝까지 싸웠다는 말이 있더군요. 한편 본대는 진격을 포기하고 현재 수원의 광교산으로 후퇴합니다. 이 때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단 두 명 (혹은 수십명)을 이끌고 말을 타고 돌격, 충청병사 신익은 도망칩니다. 수정실록에는 "이 때 형세가 마치 산이 무너지고, 하수가 터지는 듯 하였다" 고 합니다. -_-; 30리 뒤에 주둔해 있던 이광 등의 본대도 이에 따라 도주, 남도근왕병은 무너지고 맙니다. 일본측에서도 전멸이 아닌 "궤주"라는 표현을 썼죠. 전투 전에 권율 등이 신중론을 내세웠고 후방에 있는 독성산성에서 적을 기다려서 깨뜨린 뒤 진군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의기만 너무 높았던 것일까요. 적이 코 앞 광주 등에서도 매복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잘못했으면 전멸의 위기도 가능했겠네요. -_-; 대동강을 향한 군사 작전이 이 이후에 행해진 걸 보면 일본군도 꽤나 경계했던 것 같습니다.

6월 6일. 이렇게 또 한 번 일본군과 붙어볼 만 했던 조선군 주력이 무너지면서 한양 남쪽의 조선군은 소멸되었고, 일본군은 본격적인 공격에 나서게 됩니다. 그나마 이 병력들, 특히 권율의 전라도군은 후에 웅치, 이치 전투에서 활약하게 되죠.

4. 대동강 방어선
고니시 유키나가의 1군과 구로다 나가마사의 3군이 대동강 근처에 진출한 것은 8일입니다. 9일에는 고니시가 화친을 청하자 이덕형이 가서 회담을 했는데, 이 때 현소(겐소) 등이 말하기를 "우리는 그냥 명을 치려고 하는데 동래, 상주, 용인에서도 니네 조선군은 그 말 안 듣고 칼만 들이대더라. 이제 그만 길을 열그라. 괜한 희생자만 는다." 고 했습니다. 이게 실록의 기록이고 수정실록에서는 "명나라에 조공하려고 하는데~" 로 기록돼 있더군요.
이에 이덕형은 "전쟁을 쪽수로 하능가? 개소리 허덜 멀고 다음 수만 둬"... 가 아니고 (황산벌 - -a) "명나라로 갈 거면 절강으로 가지 않고 왜 여기로 왔음? 조선 먹으려고 하는 거 아님? 거기다 명은 우리 부모님 같은 나라니 안 됨" 이라고 했죠. 실록에는 "그럼 강화 못 함"하고 쿨하게 떠났다고 하는데 수정실록에는 이덕형이 군사를 물러난 다음에 강화하자고 하자 적이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불손한 말(아마 명이나 조선 왕을 까는 말이었겠죠)을 해서 파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일본 측으로서는 도망가는 조선 왕을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했을 것이고 이덕형으로서는 시간을 끌어보려고 했을 겁니다. 용인의 대패가 조정에도 알려졌을 시간이니까요.

이 때 이일은 적을 탐지하고 돌아왔는데, 패하긴 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조선군의 사기가 올랐다고 합니다. 강 중앙의 섬에서 적 10여명을 쏴 죽여서 진군을 늦췄다고도 하는군요. 에 뭐 그렇다 칩시다. -_-; 조선 조정은 급히 윤두수, 이원익에게 평양을 사수하게 하고 북쪽으로 떠납니다. 이 과정에서 평양 백성들은 "너희래 신하들이 제대로 안 하니 나라가 이 꼴이 났잖슴메!"고 하고 왕에게는 "여기서 결사 항전한다 카지 않캈어? 왕만 도망가면 우리만 어육이 되라는 것이네?" 라면서 난동을 부립니다. 겨우 주동자 몇 명을 죽이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는군요. 참 꼴이 우습습니다.
선조는 중국에 계속 구원을 청하면서 안주 -> 영변 -> 박천 -> 정주 -> 선천 -> 용천을 지나 의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세자 광해군은 영변에 머물면서 조정을 둘로 나눠서 분조를 설치, 반격을 지휘하게 하구요. 한편...

이 때 처음으로 요동도사가 요동진무 임세록을 보내 일본군을 탐색하게 했는데 류성룡이 대접하면서 연관정에 올라 적의 형세를 보기도 합니다.

평양성은 윤두수를 필두로 도원수 김명원, 평안도 순찰사 이원익, 평안도 감사 송언신, 평안도 병사 이윤덕 등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병력이 삼, 사천 정도라고 하는군요. 이원익은 밤에 몰래 강을 건너 적을 기습해서 백여명을 사살하기도 하고 (이 때 돌아오다 강을 못 건너서 아군도 30명이 죽었답니다) 위에서 적었듯 활로 적 소수를 죽이기도 하고 적도 조총을 쏘기도 했습니다. 이게 성 안에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보면 일반 조총이 아니라 크리를 키운 오오쓰쓰(대통) 종류가 아닐까 싶네요. 그 외에도 아군이 현자총통을 쏘니까 적이 놀라서 흩어졌다가 화전이 땅에 떨어지자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14일. 김명원은 영원 군수 고언백, 벽단첨사 유경영에게 400명을 주어 강을 건너 적을 기습하게 합니다. 이 때 적을 많이 쏘아 죽이고 300여필을 빼앗았는데 그 와중에 토병 임욱경이 전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적이 반격하자 조선군은 후퇴했지만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이 적을 오는 걸 보고 강변에 배를 대지 않아 많이 빠져 죽었다고 하네요. 뭐 하는 짓인지 -_-; 역시 의기는 있었지만... 조선군은 조선군이네요. 그리고 여기서 치명적인 실수가 일어나는데, 나머지 병력이 돌아가기 위해 왕성탄을 건넙니다. 적은 이걸로 왕성탄의 물이 얕은 걸 알게 되었고 군사를 정비한 후 저녁에 강을 건너기 시작하죠. 윤두수와 김명원은 성 안 사람들과 병력을 모두 내보냈고, 병기와 화포를 풍월루 연못에 가라앉히고 성을 탈출합니다.  다음 날 적은 무혈입성하고 양곡 10만석을 공짜로 얻게 됩니다. 이것도 불태우고 가지 좀 -_-;

5. 나라가 망하는가?
한편 가토 기요마사,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2군은 함경도로 가서 전체를 석권하고 7월 18일에 해정창 전투를 벌이고 23일에는 임해군과 순화군을 생포하는 등 등 승승장구합니다. 오버하다가 강 건너 여진을 치고 패해서 돌아오기도 하죠. 다음 편에서 자세히 얘기해보죠.
모리 요시나리의 4군(정확히는 재편 후의 3군)은 강원도 6월 4일 강원도 회양을 점령하고 태백산맥을 넘어서 강릉까지 점령하죠. 고바야카와 다카가게의 6군은 6월 22일 금산을 점령하며 전라도 진출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선조는 명으로 내부, 망명하기를 빌며 계속 압록강을 건널 의지를 내비칩니다. 나라 따윈 어떻게 돼도 상관 없다 이거죠. -_-; 이항복이 내부를 해도 될 것이다는 의견을 내비치는데(직후에 류성룡한테 갈굼당합니다 - -) 류성룡 등이 반대하자 "내부는 처음부터 내 의지였다"고 하면서 밀어붙이죠. 의주까지 가서는 윤두수가 필부(보잘 것 없는 놈)들이나 하는 짓이라면서 강경하게 반대하기도 합니다.

7월 초, 일본 2군은 신나게 함경도를 휩쓸고 6군은 노령산맥을 넘어 전주성을 공격하려고 합니다. 한편 7월 중순에 명군 선봉이 압록강을 건너죠.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의 존망이 걸린 (역시 발음 주의)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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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역시 야구 보면서 쓰는 건 불가능하네요 ㅠㅠ; 텀이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
다음 편은 "조선의 반격,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 편입니다. 의병 따로 할랬는데, 그냥 반격 전체를 보기로 하죠. 명의 참전과 수군의 활약은 따로 다루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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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강철대오
11/04/03 22:37
수정 아이콘
김명원님이 출동하시는군요. 사실 조선군도 장교레벨은 괜찮은 인물이 많았습니다. 실전을 통해서 경험을 쌓은 경험 덕이지요. 그런 장교들을 데리고도 한성 함락 이후의 전투를을 장대하게 말아드신 분이 바로 김명원이지요.
모모리
11/04/03 22:41
수정 아이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 역시 역사는 재밌습니다. 이 재밌는 역사를 어찌 그리 재미없게 가르치는지 으으.
양정인
11/04/03 22:49
수정 아이콘
흠...
역사엔 IF 란 단어가 들어가면 굉장히 재미있어지죠.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바로 한강을 도하하고 남으로 밀고내려왔더라면...
이란 가정을 하면 한국전쟁의 결과가 어찌됐을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죠.

마찬가지로 임진왜란에서 일본의 1, 2군이 며칠 안쉬고 선조를 쫓아 올라갔으면 조선이 정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듭니다.
10일 넘게 시간이 소비되고 임진강을 도하하는데에도 시간이 걸리면서 북에서 남에서 일본군은 시달리기 시작하죠. 가장 중요한 해상보급로는 먼치킨 수군으로 인해 시도조차 못하고 육상보급로는 곳곳에서 건드리는 의병들 때문에 원할히 이루어지질 않죠.
28살 2학년
11/04/03 23:10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조선의 3대 병맛왕을 꼽으라면 연산군과 선조, 인조를 꼽는데 선조는 정말 그중에 T.O.P라는 생각을 버릴수가 없어요.
무능하면 가만히라도 있지 질투심은 많아서 그저 잘하는 애들 댕강댕강.....
무리수마자용
11/04/03 23:22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임진강방어선이 뚫린게 저런 이유였군요 -_- 임진강에서 어디 나대지 않고 지키기만 했으면 좀 막았을려나요 크크
진리는망내
11/04/04 00:07
수정 아이콘
자주 리플 달지는 못하지만 정말 잘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임진왜란에 IF를 붙이는거 중에 최고는

이순신장군이 없었다면... 입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_-;
11/04/04 05:22
수정 아이콘
와.. 막 두근두근하면서 읽었습니다-_-;;;
정말 너무 재미있어요.
임진왜란이라는 게 대부분 이순신 장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데,
임진란의 전체를 보니 상황을 더 크게 볼 수 있고 훨씬 재미있네요.

가능한 이 시리즈가 길~~고 오래 연재되었으면 합니다.
나이트해머
11/04/04 09:11
수정 아이콘
저 초기의 쾌속 북상이 엄청나 보이지만 보급을 따진다면 저것만큼 삽질이 없었죠.
임란초기 일본군 마인드가 '왕잡으면 장땡' 이라는, 전국시대 마인드에서 머물러 있었다는 증거나 다름없습니다. 1년뒤 한성 이북으로 올라갔던 일본군은 40%가 녹아내리는(10만이 올라갔다가 6만이 살아내려왔으니...) 참사를 겪게 되죠.
일본군이 제대로 보급 가능한 선은 정유재란때 직산 근처까지가 고작입니다. 그나마도 낙동강 수로, 섬진강 수로를 사용해야 가능한 이야기인데 저땐 둘 다 확보 못하고 무턱대고 올라갔으니 기세는 무시무시했지만 멈추는 순간 망한거죠. 현지보급도 안되고 후방 보급도 안되고.
하야로비
11/04/04 10:01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항상 저저전만 하던 저그유저가 처음으로 테란 본진으로 쳐들어가면서
센터에서 크게 한 번 이기고 이제 본진센터만 밀면 끝 유닛 안나옴 크크크...이러고 있는데
갑자기 센터가 두둥! 이...이게 뭥미? 이런 상황인거죠
게다가 배럭과 팩토리에서는 갑자기 공격유닛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당연히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는 저그(배럭에서는 머린 나와도 히드라리스크 덴에서는 히드라 안나옴다-_-)는 당황할 수 밖에요.
Amunt_ValenciaCF
11/04/04 11:09
수정 아이콘
좀 이르지만, 임진왜란에 이어 정묘호란-병자호란 시리즈를 부탁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흐흐...정묘호란은 사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아있고, 병자호란은 쌍령전투, 남한산성수성전, 임경업 장군 정도가 알려져있네요. 그 뒤에는 정말정말 베일에 가려져 있는 나선정벌까지;; 제가 장기 프로제트 주제만 던진 꼴이어서 죄송합니다;;
눈시BB
11/04/04 15:54
수정 아이콘
나이트해머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말투가 너무 거치십니다. 맞는 말씀 많으시고 댓글 덕분에 저도 많이 찾아보게 되지만 그만큼 지식 갖추고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너무 몰아붙이시는 거 같네요. 매 글마다 댓글로 싸움이 되는 게 보이네요.
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11/04/0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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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을 절대 폄하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 중 한분이시지만,
뭐랄까.. 임진왜란의 모든 포커스가 이순신 장군 개인에게 맞춰져 있다보니
모든 건 다 '이순신 장군 덕' 이라는 식으로 논지가 흘러버리는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다른 중요한 사건들을 너무 쉽게 간과해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또 개인적으로 영웅사관에 상당히 거부감이 있는지라
임진왜란으로 인해 조선이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의 결합체라 생각하는데,
이게 '이순신 장군 때문이다.'라고 축약되어버리면 모든 요소가 다 생략되는 거 같았거든요.

가장 크고 멋진 나무 한그루보다는 그 크고 멋진 나무와 함께 숲 전체를 보는 게 훨씬 더 재미있고
그게 크고 멋진 나무의 진가를 더더욱 볼 수 있는 방법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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