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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2/23 09:55:31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역사에 대한 잡상 (11) 후삼국, 삼국의 잔상
휴, 그래도 나름 야심차게 시작한 3부작 반응이 괜찮아서 다행이네요. ㅠ; 예전에 근대에 좀 민감한 문제 찌르는 것보단 이 쪽이 나은 거 같네요. 루크레티아님 같이 비판 제대로 해 주신 분들에 대한 답글도 못 했는데; 그건 죄송하구요. 제가 그 쪽에 대해 확실히 개념 잡기 전까지는 당분간 민감한 부분은 최대한 안 건드리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일단 예전에 루크레티아님께 나중에 대답한다고 했던 것이 지금 생각 나서요. ㅠ 죄송합니다.) 원래 재밌게 쓰자는 게 초심이었고, 이래저래 말 하다가 너무 멀리 온 것 같네요. 돌아가겠습니다.
후삼국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세 개로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 쪽 다 다뤄 본 다음에는 그냥 제가 관심 있는 것들 위주로 이리저리 찔러 보고 싶네요. 광개토대왕 때의 영토 확장이라든가 백제-신라의 물고 물리는 관계라든가 근대 이전의 한일관계사라든가 조선 최고의 막장 원균이라든가 아무튼 - -;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 번쯤은 다 써 보고 싶네요. 최근에 알렉산더님의 문법 글이나 키키라님의 국어학 글 보면... 아무래도 전공자니까 국어학은 제대로 못 하더라도 한국 고어들이나 한국 설화들 한 번 파 보고 싶기도 하구요. 여기도 재밌는 거 많거든요. +_+)
잡설이 길었네요 일단은 후삼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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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삼국지연의가 인기 있는 이유가 3+a에 특화된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인물들이 1~2세대라는 비교적 단기간에 불타오르고 꺼졌기에 그렇다는 글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전국시대도 이와 비슷한 거 같구요.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서 이에 대응하는 시기는 후삼국시대죠. 하지만 후삼국시대는 별로 인기가 없죠. - -a 삼국지, 전국시대를 마구 꾸미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게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두 시대는 오랜 기간 동안 2차 창작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래서 삼국지연의를 최고의 동인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죠) 후삼국시대는 정.말 인기가 없었습니다. -_-; 아무래도 우리는 외침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봐요. 왜란, 호란에 대한 2차 창작은 활발했으니...

각설하고, 한국에서는 태조 왕건 이전까지는 정말 듣보잡이었습니다. 그저 나말여초. 다만 궁예에 대한 매력은 역시 있었는지 신채호는 [일목대왕의 철퇴]를 썼고, 이광수는 [마의태자]를 썼죠. 마의태자는 그냥 제목일 뿐이고 -_-; 사실 궁예가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래도 이거 말고는 찾기 힘드네요.
그렇다 하더라도 무시할 시기는 못 됩니다. 역사적으로는 이 때 많은 가문의 시조가 들어섰으니까요. 태조 왕건 때도 여기에 나오는 시조가 장난 아니게 많은데 항의 받으면 어쩌나 했다는군요. -_-;

흐음... 인물보다는 후삼국시대라는 시대 위주로 해 볼게요. 좀 특별한 것들을 집어 보겠습니다.

1. 삼국통일의 불완전성
역시 제일 먼저 써야 될 건 이거겠죠. 만주 잃은 건 둘째 치고 삼국통일이니 하지만 그게 완벽하지가 않았어요. - -; 애초에 수도가 너무 동남쪽에 있기도 했고, 칠백년이라는 긴 시간의 정체성이 그리 쉽게 사라질 리가 없죠. 그리고 이노무 골품제 -_-; 그나마 가야를 멸망시킬 때는 그래도 괜찮았던 게 이 이후엔 꽉 조여진 거죠. 장보고의 경우라든가 최치원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솔직히 바꾸긴 힘들었을 거예요. 신라의 정체성 그 자체였을 테니까요. 하지만... 결국 이건 스스로의 발목을 잡게 되죠. 원래 영토의 몇 배를 얻은 신라지만, 시스템은 그에 따라 주지 못 한 겁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잔상은 아직도 남아 있고 이는 나중에 후백제와 후고구려의 성립에 큰 영향을 줍니다. 신라는 이런 백성들을 어루만져 주지도 못 했고 골품제 때문에 백제, 고구려 출신이 중앙에 융합되지도 못 했습니다. 특히 백제는 신라편에서 보듯이 통일전쟁 때도 왠지 찬밥이었죠. 뭐 알아서 할 만큼은 했겠습니다만... 역시 힘들었나 봐요. 사실 고려 때도 신라, 백제, 고구려(응?) 부흥 운동이 일어나긴 했었습니다. 아무튼 중앙이 권력 다툼하며 썩어 가는 동안 백제, 고구려의 유민들은 자기 지역에서 힘을 쌓았고 인재들은 기회의 땅 당나라로 갔습니다. 이게 빵 터진 게 원종, 애노의 난이죠.

2. 신라구
의외의 사실이겠지만 이 시기 일본은 큰 위험에 처합니다. 해적들 때문에요. 어디서? 신라에서요.
이들은 신라구라 불렸으며 820년경부터 일본에 마구 침략을 하게 됩니다. 아예 조직화된 해적이라서 그 수가 대단했다고 하며 해당 지방의 병력만으로는 막기 힘들 정도였다고 하네요. 이들은 일본 중부, 지도 보면 위로 살짝 튀어 나온 곳 있죠? 여기까지도 왔다고 하며 지금 도쿄의 근처에서도 일본에 있던 신라인들이 난을 일으킨 적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신라구를 막지 못 해서 신에게 빌 정도면 그게 어땠는지 짐작이 가죠? 이 규모 때문에 지방 호족들과 결탁한 게 아니냐는 설도 있다는군요. 왜구와 비슷하단 걸 생각하면, 살기 힘들어지면 다 똑같아지나 봅니다. -_-;
한편 통일신라 직후에 일어난 해적들을 백제의 잔적이라고 일컫는 경우가 있던데 이건 이거대로 특이하더군요. (근데 이걸 대륙백제설로 이용해서 -_-; ) 백제가 해양 대국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실제 백제의 유민이 해적이 됐던가 그냥 백제가 물에서 잘 놀았으니 싸그리 백제로 몰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의외로 상륙전 하나 못 막고 망했습니다만... 이런 점으로 사서에는 그냥 해적으로 나오는 수달을 태조 왕건에서 백제 편으로 바꾼 거겠죠. 실제 왕건을 잡으려다가 붙잡혔고, 궁예가 수달에게 생각보다 더한 모욕과 분노를 줬으니까요. 오히려 이들이 무정부적인 성격이 나타난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백제가 바다로 뻗어 나갔으니 이런 나라들은 보통 무정부 혹은 다문화, 혹은 독자적인 성격이 강하긴 하네요. 일본에서도 왜구를 비롯해서 해적들이 독자 세력을 유지했었고, 도시국가들은 대부분 해상무역을 통한 부로 영토국가의 지배를 안 받고 독자적으로 살았으니까요. 그렇다면 백제의 중앙집권이 약한 것에 이것도 들어가지 않을까 싶긴 한데... 뭐 이런 추론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_@; 뭐 그렇다 하더라도 백제의 유민들이 친했던 일본 공격하는 것도 그렇고 -_-;;;;;; 아무튼, 그 때 일본은 신라구 때문에 힘들어했고 견훤은 이런 해적들을 때려잡으며 세력을 키웠습니다.

3. 영토
저번에 한 번 나왔던 내용입니다만... 이 당시 먹고 먹히는 관계를 보면 참 특이합니다. 일단 가장 먼저 왕건의 나주 점령이 있겠죠. 일단 후백제 땅이 그렇게 쉽게 점령된 것도 그렇지만, 나주는 중앙의 지원이 없었는데도 정말 오랫동안 버텨 줬습니다. 왕건과 나주 인근 호족들의 이해관계가 맞았다는 거겠죠. 이후 후고구려는 이 나주를 기점으로 진주, 김해까지 수군을 파견하는 등 제해권을 잡습니다. 이것은 견훤도 마찬가지로 나주를 수복한 후에는 남해는 물론 서해의 제해권도 장악하죠.
사실 삼국시대 때도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전에도 나름 영토가 있었는데 그냥 수도로 쑥 밀려오기도 했고 고구려의 북쪽에 있다는 말갈은 허구헌날 백제를 공격했고(말갈 얘기도 나중에 해 보고 싶네요) 백제는 북위랑 전쟁을 했다고 하질 않나 서라벌은 심심하면 무너질 위기에 처하고 나당전쟁 때는 왠 신라군이 압록강을 건너기도 하고...
삼국시대는 예도 많지만 기간이 너무 길어서 확인이 어렵지만, 후삼국시대에는 이 짧은 기간 동안 정말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일단 위의 나주, 그리고 한 쪽이 승리해서 그 지역을 뺏으면 주변 호족들이 우르르 항복하는 등의 일에서 볼 수 있죠. 삼국시대의 전쟁 동안 있었던 일이 더 심하게, 더 빠르게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주는 공산 전투 이전에는 함락되지 않았고, 태조 왕건에서 태평이 유명하죠? 태평이 있던 유긍순의 염주는 후고구려의 중심 패서지역에 있었는데도 궁예가 한창 영토를 늘리는 동안에도 항복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왕건에게 투항한 지역들을 보면 아직 신라나 후백제 땅에 막혔는데도 투항한 게 많죠. 견훤은 서라벌을 기습할 때 다른 지역을 공격하지 않고 곧바로 갔고, 돌아올 때도 점령한 지역은 없었습니다. 왕건 역시 신라 영토를 전투도 없이 넘어서 백제와 싸운 적도 있죠.
다시 말하면 그 시대는 지금의 영토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그 때의 영토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점과 그 점을 중심으로 한 약간의 면, 그리고 그 점들을 잇는 선의 개념이었죠. 문명 해 보신 분들은 이해가 빠르시겠네요. 그 면이 얼마나 넓냐에 따라 그 지역 혹은 그 나라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신라의 5소경 등은 바로 이 점의 면을 넓히기 위해서였죠. 거기에 서울이 아닌 이상 이 점들을 통치하는 것은 대부분 그 지방 호족이었습니다. 그 결속력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거죠. 이 결속력 때문에 다들 많은 고민을 했을 겁니다. 이건 중국 역시 마찬가지예요. 한, 당, 청 때 많은 영토를 얻었다 하지만 국경 지방은 그냥 군사 원정 하고 돌아와서 '영향력을 얻었다' 정도고 자국 내에서도 미개발지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 지역은 빼야 됩니다. 뭐 이렇게 하면 뭔가 아름답지 않으니 지금의 색칠한 지도가 나오는 거지만요. 그래서 중국은 국경에서 한 두 번 털리면 수도까지 쭉 밀리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죠. 왕족들을 파견해 왕을 만드니 지들이 반란 일으키고 요충지에 군사 박아놓으니 군벌 돼 버리고... =_=; 그래도 중국은 중앙집권이 비교적 빨리, 잘 됐다는 게 대단하긴 하죠.
아무튼 이 점들의 결속력이 약해지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기 쉬워지고 그게 한국 역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서울이 털리는 경우입니다. 이 결속력이 강했냐, 약했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상황을 볼 수 있구요. 뭐 단기결전으로 그거 무시하고 비집고 들어올 수도 있죠. 그래서 중요한 점, 요충지의 중요성이 커집니다. 백제든 후백제든 대야성을 그렇게 탐냈고 고려와 백제 사이에서 상주에서 전투를 몇 번이고 치렀다는 걸 보면요. 면이 넓은 점을 차지하면 그 면이 다 들어오거든요. 마찬가지 이유로 거리가 멀거나 군사력이 약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고려, 조선에서 만주와 요동을 탐내지 않은 이유도 그것으로 설명 가능합니다. 고구려부터가 그 넓은 만주보다 평양과 한강에 더 신경썼죠. 요, 금, 청 등 만주에서 일어난 나라들도 중국을 먹은 후에는 만주를 신경 안 썼구요. 얻기도 힘들고 얻어도 이득도 별로 없고, 지키기는 힘든 곳. 유목민이라면 모르겠습니다만 농경민이라면 아무리 넓어도 딱히 구미가 당기진 않았을 겁니다. 지금이야 영토가 국력이니까 그 넓은 땅이 아쉽겠습니다만 =_=; 문명에서 희귀자원이 많은 곳이 좋지 아무리 넓어도 자원 하나 없는 곳이 좋을까요.
자 후삼국 얘기로 돌아가서 -_-; 이 때문에 후고구려, 고려와 후백제의 싸움은 최대한 이 요충지를 얻는 국지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강주의 강봉규, 벽진군의 이총언 등은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며 양쪽에 줄다리기를 했고 매곡성의 공직은 두 번이나 배신을 때리고도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이런 요충지가 함락되면 다른 곳도 쉽게 공략이 되거나 알아서 항복했죠. 상주의 경우 원종, 애노의 난부터 격전지였고, 아자개가 귀순하고 나서야 정리됐구요. 중앙군 이외에는 이런 호족의 병력이 지원해줘야 됐고, 이들과의 결속력이 중요했습니다. 왕건의 경우 혼인정책으로 했고 견훤은 처자식을 붙잡아 두는 걸로 했죠. 그리고 이 호족들 눈치 보기 때문에 중앙군 위주의 국지전만 계속 됐고, 고창의 경우처럼 호족들이 한 편을 들어줘서 전세가 뒤집힌 전투도 있습니다. 그리고 왕건은 이렇게 자신의 우세가 확실시 된 후에야 10만에 가까운 병력을 동원하는 결전을 치르죠.
아무튼 이래저래 현대의 관점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은 앞으로 자주 쓸 듯 하네요.

4. 삼국의 잔상
견훤이 정말 백제의 유민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그의 주장이니까요. 뭐 그렇게 따지면 궁예 신라 왕자 설도 자기의 주장이긴 하네요. -_-; 아무튼 정작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는 상주의 호족이었고 백제는 신경 쓰지도 않았죠. 그런 상황에서 백제의 부활이라... 참 엄청난 떡밥이죠?
자신이 영향력을 쌓고 백제의 부활을 자청했던 무진주(광주)를 버리고 완산주(전주)로 도읍을 옮긴 것 역시 그것과 연관지을 수 있습니다. 전라남도 지역은 꽤 오랫동안 마한의 목지국이 있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나주가 그리 쉽게 떨어져 나간 것 역시 그 지역 호족이 백제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적었다고 볼 수 있죠. 이후 견훤은 나주에 대한 공격도 계속 하긴 했지만 주로 백제의 옛 땅 충청도와 상주, 대야성 등 신라로 가는 곳에 주로 전투를 벌입니다. 아, 거기가 국경이긴 했지만요 ==; 서라벌을 칠 때도 명분은 의자왕의 복수였죠. 진짜 백제 유민이었든, 그냥 백제 민심을 끌려고 했든 백제 부활 떡밥은 유효했다는 겁니다. 조선 때도 백제의 마지막 서울은 전주였다고 기록할 정도니까요. 단50년 동안 이루어진 나라였지만 그 영향은 컸습니다.
후고구려는 어땠을까요? 박지윤은 스스로를 고구려의 옛 관직인 대모달로 칭했습니다. 궁예는 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고구려 부활을 내걸고 스스로를 고씨라 칭했습니다. 후에 늘어나는 영토 때문에 고구려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자 마진, 태봉 등으로 나라를 바꿨죠. 그리고 역시 패서 일대를 기반으로 한 왕건은 고려로 돌아오게 됩니다. 결국 이와 함께 김부식의 삼국사기 편찬으로 고구려 정통을 잇는다는 것으로 확실시 되었죠. 견훤과 왕건의 대신라 정책 차이도 그 자신의 성격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이와도 관련 있을 겁니다. 백제는 정말 신라의 원수였지만 고구려의 경우 신라를 속방으로 삼기도 하고 멸망 때도 신라가 고구려 유민을 대우해 준 만큼 친하게 지내도 딱히 반대가 없었겠죠.
그렇다고 신라가 그냥 끝물이었냐? 그것도 아닙니다. 천년 왕국이 그냥 끝날 리가요. 견훤은 반기를 들면서도 정작 왕은 칭하지 못 했고 서라벌로 진격해서 왕을 죽이고도 그냥 돌아와야 했죠. 왕건은 정말 신라를 애지중지 했고 삼국사기에서도 고구려 정통과 함께 신라 정통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왕건의 조상을 보면 신라 왕족이 끼어 있죠. -_-; 뭐 김춘추와 김유신 사돈 맺기의 표절입니다만... 고려와 백제의 전세가 역전된 고창 전투에서 고창 호족들이 다 죽어 가던 고려 편을 든 이유는 고려의 친신라 정책이었습니다. 이래저래 얻어 맞아도 신라의 영향력은 남아 있었던 겁니다.
중국에 대해서도 서로 정통성을 인정받기에 바빴습니다. 고려가 나주를 점령한 가장 큰 효과 중 하나가 후백제의 대중국 무역로를 끊은 겁니다. 견훤은 최대한 오, 월 등과 교역하며 스스로를 인정받으려 했고 강주의 강봉규는 신라의 사신에 끼어들어 은근슬쩍 강주도독 자리를 받아 버립니다. -_-; 그리고 고려는 자신의 조상에 당의 숙종을 집어넣었죠. 발해를 생각해보면, 신라와 백제는 신경쓸 틈이 없었겠고 궁예는 발해에 크게 관심을 안 가진 듯 한데 (그래도 북진은 계속 한 듯 하긴 하네요) 반해 왕건은 적극적으로 북진을 하며 평양을 서경으로 바꿔서 열심히 키웠고, 도움을 주진 않았지만 발해의 유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고구려 정통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겠죠. 이 때 흡수한 북방의 야인들, 발해의 유민들은 고려의 국력에 제법 도움을 줬을 듯 하네요. 일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 견훤이 일본과의 국교를 다시 수립하려 했다는 것 외에는 딱히 없는 듯 하네요. 하긴 일본의 도움 받을 만한 상황은 아니었죠. 거기에 일본은 안 그래도 신라구 때문에 힘들테니 -_-;

후삼국시대의 전투양상은 삼국시대와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라의 골품제가 붕괴되고 단순 초적들이 장군을 칭하고 호족들이 장군, 왕을 칭하면서 최승우 같은 새로운 지식인들이 거기에 합류하는, 무언가가 바귀는 시기였습니다. 백제, 고구려의 잔상과 신라의 미약하게 남은 최후의 불꽃이 한 데 뒤섞였고, 그 시대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 했습니다. 비교적 짧은 난세였지만,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였음이 분명하죠. 누가 있었고,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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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버릇인 횡설수설이 여기서도 계속 되네요. -_-; 영토 얘기는 한 번 꼭 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해야 됐을지... 일단 계속 써 보겠습니다. 과연 삼부작으로 끝낼 수 있을까요 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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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우
11/02/23 10:28
수정 아이콘
이런 정말 제가 좋아할만한 글을 이제서야 봤네요.
영토 관련 이야기, 제 생각에는 아예 따로 글 하나 마련할 만큼 재미있는 주제인거 같아요. 세월이 흐른 현재 영토는 '전선'으로 구분되지만, 과거에는 전점(?)에 가까웠으니까요.
굳이 비유하자면 현재의 전선은 마인과 탱크로 줄을 긋는 테테전, 과거의 전선은 요충지만 다크스웜 럴커로 수비하는 테저전?

이 글 읽었고, 이제 시리즈 이전 글 정독하러 가야겠습니다.
카서스
11/02/23 10:34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근데 이모티콘 --;; 와 같은 종류가 너무 눈에 띄네요... 전체적으로 너무 자신감이 없어보인달까... 좀 아쉽습니다.
아우구스투스
11/02/23 10:40
수정 아이콘
항상 잘 읽고 추천 누르고 갑니다.

후삼국은 정말 재밌는 시기죠. 혹시나 추천이 될 소설인지는 모르지만 한창 태조왕건이 인기일때 박영규 작가가 후삼국기 였던가요? 5권짜리 소설을 낸 적이 있는데 재밌습니다. 다만 유금필이 너무나도 사기적인 캐릭터로-기병 80기만 이끌고 북쪽부터 서라벌까지 가서 서라벌을 구원하질 않나 모함으로 유배되자 주변 어부들을 이끌고 수군을 만들어서 후백제 수군을 괴멸시키지를 않나- 묘사된게 좀 걸리지만요.

재밌는 글이고 언제 영토에 대해서 다같이 이야기 해보는 시간이 있으면 재밌을 듯 합니다.
왼손잡이
11/02/23 10:44
수정 아이콘
저도 너무 재밋게 읽었습니다~! 다음글이 기대되네요 하하
11/02/23 12:09
수정 아이콘
드라마 태조왕건은 못봤지만, 10살도 되기전에 봤던 위인전기에서의 왕건은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나름 후삼국에 관심이 있었는데...

신라구는 얼마전에 우연찮게 본 만화에서 나오더라구요. 거기선 울릉도가 본거지로 나오던데... 뭐... 해적이든 산적이든 도둑들이 많다는 이야긴 중앙의 통제가 안된다는 뜻이겠죠.

점으로 싸운 점은, 특히나 신라에 대해서는 절대 공감합니다. 예전에 쉽게 접하는 지도들은 사실 평평해 보이죠... 그래서 면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네이버나 다음등에서 제공하는 스카이 뷰로 한반도를 보면, 정말 요충지라던가가 보이지요. 특히 경상도쪽은 죄다 산이라...
11/02/23 14:5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이런 좋은 시리즈물을 놓치고 있었다니!라는 생각에 이전 글까지 정주행하고 왔네요. 이중천 품삼국을 볼 때와 느낌이 비슷합니다. 단순히 '몇 년에 누가 누굴 쳐서 어떻게 되었다'가 아니라 왜 그랬는지의 이유를 놓치기 쉬운 부분까지 잡아주셔서 재밌게 읽고 있어요.
+ 정주행하고 보니 이모티콘이 많은 글도 적은 글도 있는데 대체로 보면 눈시BB님이 어이없음을 표현하거나, 그 날 글 쓸 때의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읽으면서 느낀 점은 글 참 잘 쓰시고, 글에 어투랄까 그런게 묻어나서 굳이 강조를 하지 않으셔도 자연스럽게 글쓴이의 감정선을 따라가게 되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토스희망봉사
11/02/23 14:56
수정 아이콘
오 의자왕 시절에 전주가 수도 였다니 흥미 롭네요 그쪽 까지 밀렸었나?
원래 백제의 본체는 충청도가 수도의 중심지 였지요 인천과 경기도 일대를 포함한 곳이 사실상 백제의 중심 근거지 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항상 백제의 마지막에 전라도가 많이 출현해서 전라도가 백제 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는데 사실은 충청도와 경기도 일대가 백제 문화의 근거지이자 주력 영토 입니다 전라도는 그냥 파벌 정도에 불과 했지요
백제는 근초고왕이 3만 군사로 고구려 관광 시킬 정도로 호전적 이였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신라와 달리 수도가 밑에 치우쳐 있지는 않았습니다.
진리는망내
11/02/23 15:31
수정 아이콘
이번 글도 잘보고 갑니다.
태조 왕건 정말 재밌게 봤는데 다시 생각나네요.
2000년대 들어서 허준&태조왕건이 사극중에 최고였던거 같습니다.
루크레티아
11/02/23 17:02
수정 아이콘
짧은 지식으로 몇 마디 휘갈긴 것에 대해서 그리 신경쓰실 것은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저도 그냥 주워들은 것 중에서 약간 다르다 싶은 것을 늘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견훤의 백제부활 떡밥은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뜬금 없고, 정책과도 맞물리지 않은 쉰 떡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뒤쪽에서 말씀하신 천여 년을 이어온 신라의 영향 덕분입니다. 물론 백제땅이 천 년을 지배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당 전쟁 이후 200년이 넘는 세월을 대동강 이남의 주민들은 신라인으로 살았습니다. 아무리 자긍심이 철철 넘치고 반감이 강한 신라와 원수지간의 백제인들이라도 200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죠. 알게 모르게 이미 자신은 신라인이라는 인식들이 굳어 졌을 것 입니다. 다만 신라 하대로 이어진 귀족들의 권력투쟁에 맞물린 호족의 성장으로 인해 다만 중앙 정부에게만은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겠지요. 자신이 이미 신라인이라는 소속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뜬금없이 백제라는 구호를 들고 일어난 견훤에게 어쩌면 반감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견훤의 대호족 정책은 왕건에 비하면 강압적이었죠. '우린 원래 백제인이었어. 그러니 지금 빨리 썩어빠진 신라를 몰아내고 백제를 다시 세우자. 날 좀 도와줘.' 라고 빌어도 모자란 판에 '니들 백제인이었지? 나도 그러니까 좋은 말 할때 빨리 내 밑으로 들 와라.'라고 하니 홈그라운드에서는 왕이나 다름 없던 호족들이 곱게 볼 턱이 없었죠. 떡밥만으로도 부족한 판에 정책까지 이리저리 채이니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벤카슬러
11/02/23 22:27
수정 아이콘
추천 누르고 갑니다. 다음 내용이 무척 기대되네요.
신라구에 관해서는 처음 듣는 내용이라 무척 생소했구요(역사 전공서적 말고 이런 내용을 다룬 매체가 거의 없었던 듯 하네요)
영토에 관해서는 저도 '왕건의 나주 점령'이 엄청 생뚱맞아 보였는데 눈시님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습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투를 보면 특정 전장이 계속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나 보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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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34 [일반] 에바사마의 일본 자전거 일주#14 (고양이의 폭력성 실험) [8] Eva0103995 11/02/23 3995 1
27433 [일반] 말년 휴가의 느낌? [13] Dr.쿠레하4872 11/02/23 4872 1
27432 [일반] 동남권 신공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84] Alan_Baxter6893 11/02/23 6893 1
27430 [일반] 선생님 심부름 셔틀하던 어느 초딩 이야기 [10] 7drone of Sanchez6304 11/02/23 6304 2
27429 [일반] 역사에 대한 잡상 (11) 후삼국, 삼국의 잔상 [24] 눈시BB9023 11/02/23 9023 6
27428 [일반] 빅뱅의 컴백 티저가 모두 공개되었습니다. [14] 세우실5993 11/02/23 5993 0
27426 [일반] 북한의 철도 관련 자료를 제조하면서. [9] I.O.S_Daydream16329 11/02/23 16329 2
27425 [일반] 돌하우스 완성!!(이 몇달 전인지.;;;) [9] Who am I?5588 11/02/22 5588 1
27422 [일반] 아버지께서 홀인원을 하셨답니다. [12] 허느님맙소사6964 11/02/22 6964 1
27421 [일반] 연말정산 35만원 토해냅니다. 흑흑흑 [39] Red Key8395 11/02/22 8395 1
27420 [일반] 유시민과 박근혜, 정치인으로서 박근혜 의원. [67] 똘이아버지6270 11/02/22 6270 1
27419 [일반] [MLB] 박찬호가 상대했던 메이저리그의 주요 타자들 [24] 페가수스5850 11/02/22 5850 1
27418 [일반] 국정원 좀도둑 사건 그 후 [36] 월산명박6208 11/02/22 6208 1
27417 [일반] [NBA] 멜로가 드디어 뉴욕으로 오는군요. [9] ShaRp4313 11/02/22 43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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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12 [일반] [영상주의] 중동국가에 퍼지고 있는 개혁의 물결 [13] 단 하나4124 11/02/22 412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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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06 [일반] [여행] 2주 같이 여행 다녔던, 2년 여행 다니는 프랑스 부부 직접 인터뷰한 동영상. [3] 한듣보4672 11/02/21 467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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