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에는 머리 한쪽에 보물지도가 가득 들어 있어서, 언제라도 찾으러 갈 수 있도록 아침엔 밥을 빨리먹었다. 공터, 운동장, 동네 산의 구석진 곳을 기어들어다니며 기적처럼 숨겨진 장소를 발견하고는 기뻤던 그 날들. 그 곳에 소중한 것들을 몰래 가져와 숨겨두고는 했다. 누군지도 모를 경쟁자들이 있을까 두리번 거리면서도, 그때는 왠지 찬란하게 반짝였었던것만 같다. 매일매일이 기쁨으로 가득차서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은 그렇게 어딘가의 숨겨진 장소를 찾으러 떠나고 싶어진다.
만약에 내가 시간을 달릴 수 있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릴적 꼬마시절로 돌아가고싶어진다. 누군가 데려가 줬으면 해. 추억가득했던, 서쪽숲을 찾아나서기 위해 꿈과 희망을 가득 품었던 그때로.
아, 어머니. 그러나 나는 알고있어요. 우리가 서쪽숲을 바라볼 때에, 어머니는 애써 그곳을 바라보지 않으며 그런것은 없다 말씀하셨죠. 보물상자와, 멋진 것들과, 예쁜 꽃밭, 아늑한 나무들이 가득한 우리들의 유토피아 같은건 없다고요. 그래서 우리는 떠났지요. 서쪽숲을 향해서. 아, 어머니. 그러나 나는 알고 말았지요. 서쪽숲같은건 없단다. 나는 여기, 두발을 디딘곳에 바위품에 피어난 잡초처럼 굳건히 버티며 견뎌내어야만 한다는 것을요.
오! 내 어머니.. 난 알지 못했죠. 난 여기서 언젠가 언덕을넘어 떠나고 말리라 노래만 불렀지만, 커갈수록 사람들은 말했어요. 어디에도 서쪽 숲 같은건 없다고. 새가 되어 자유롭게 노니는 곳은 없다고. 아, 어머니 나는 알고 말았지요. 내가 서 있는 곳은 콘크리트 바닥 위였어요. 결국 나는 내 마음 단단히 서 있던 땅을 부수고, 내 소중한 보물상자를 흐물해진 마음 구석 서랍에 넣어버렸어요.
어릴 적에는 어른이 되면, 언제든 보물상자를 찾아 모험을 떠나리라 생각했는데, 언제든 자유로이 노닐 수 있는 서쪽숲을 향해 저 언덕을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난 이제 모르겠어요. 나는 어릿광대가 아니죠. 세상 모든 웃음도, 울음도, 노래도 찾으러 갈 수 없었어요. 그저 멀고 먼 길을따라 뱅글뱅글 돌았어요. 무대의 막이 내려가는 줄도 모른채 말이에요.
시간아 빨리가라고, 그렇게 빌었던 꼬마아이는 이제 시간을 붙잡아 보려 애를 써요. 시간은 대체 어디에 살고 있을까요. 그 친구를 좀 잡아두고 싶은데, 그건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나를 휩쓸고 지나가 버려요. 채 손 뻗어보지 못한 것들을 그대로 둔 채, 나는 계속 흘러가고 있어요. 점점 멀어져 잊혀질 것 같은 반짝임들은 희미해지고, 내 마음 바다 아래 숨겨둔 서랍의 보물상자는 젖지 않은 채 잘 있을까요. 시간은 흐르는 것이라고 해요. 세상은 변하는게 맞대요. 흐르고 변하는건 막을 수 없다고 해요. 하지만 이렇게 빨리 떠나가버리면 어떡해요. 내 손은 여전히 여기서 쭉 뻗어있는데, 아직은 보내고 싶지않아요. 이렇게 가는건 아니죠. 붙잡으려 허우적대지만 강물같은 넌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날 휩쓸고 데려가지요.
한 치도 보이지 않는 지리한 어둠 속에서, 끝없이 걷고 있는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빛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대체 여기는 어딘지, 얼마나 계속되는 것인지,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걸어온 것인지. 희망은 먼 저기 한줄기의 빛 뿐. 빛은 멀리에, 저기 멀기만한 하늘 끝 빛은 처음부터 없는 듯. 희망은 천길 낭떠러지 밑으로 무너지는 계단과 함께 저 바닥 끝으로. 나는 대체 어디에.
지금 나는 단단한 바위틈의 잡초처럼 굳건히 살아가고 있어요. 딱딱한 콘크리트 위에 발 디딜곳이 없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요. 어머니, 그래도 가끔은 저 먼 바다와 언덕을 넘어선 곳에 있을 서쪽숲을 바라보아요. 오직 힘들게만 살아왔던 사람들 모두를 데리고 그 곳에서 맛있는 과일을 먹으며 바람사이에 누울거에요. 살찐 돼지들은 부르지 않을거에요. 피흘리며 떠나간 잊혀져간 모두를 다시 데리고와서 우린 떠나고 말 거에요. 그토록 어릴때 바라던 반짝이는 모험을, 시간이 강물처럼 세차게 흘러 우리를 끌어당긴대도, 난 언젠가 꼭 출발할 거에요.
지금은 먼지투성이에, 한숨만 가득하지만
언젠가 꼭 나를 데리고 가 줘요.
추억이 빛바래지 않은 그때로.
희망이 무너지지 않은 그곳으로.
힘들고 피흘려 고름진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그 곳으로.
----------------------------------------------------------------------------------------------------------------------------------------------------
인용한 노래
오오츠카미키-memories
이적-서쪽 숲
패닉-내 낡은 서랍속의 바다, UFO,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나선계단
김진표-시간을 찾아서
뜨거운감자-청춘
---------------------------------------------------------------------------------------------------------------------------------------------------
사람을 좋아하면 필연적으로 피곤해 집니다. 기대는 높아지는데,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너무나 한정적이고 희박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간혹, 어느정도 그 두근거림이 사그라들고 나면, 의식적으로 머리에서 지우는 작업을 합니다. 캔버스의 유화를 긁어서 없애는 식으로, 하나하나 떨어져 나갈 때 까지 감정을 죽이지요. 아무런 방해 없이 설레였던 기간만큼 이 일을 반복하고나면, 어느새 내 작은 방 안엔 다시 나 혼자 철문 하나를 등에 기대고 앉아있을 수 있게됩니다. 그렇게 한번, 두번, 세번 방청소를 하고나면 점점 익숙해져서, 별것 아닌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사람은 고장나지만, 그렇게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지요. 아무렇지도 않기때문에, 수술이 필요한 중환자인데 안타깝게도 세 어릿광대의 아들들은 돌아오질 않는군요. 배를 가르고 웃음이듯 울음이든 집어넣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아무래도 그들의 여행이 길어지나 봅니다. 그래서 오늘도 방청소를 해야겠어요. 깨끗하게.
연휴가 끝나가고있군요. 오늘도 열심히 일해야겠습니다.
컵라면 먹고 징징대는게 조회수가 너무 많네요. 이런.
오늘은 컵라면 안먹으려고 카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