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 바꾸고 자게에 글을 처음으로 써 보네요.
요새 연아양 결별 소식이 뜨거웠는데 크리켓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소릴 듣고 필 받아서 블로그에 써 본 글을 끌어와 봅니다.
부디 연아양이 하루빨리 마음 다잡고 좋은 모습 보여주며, 그리고 행복한 스케이터로 남길 바랍니다.
연아야~ 힘내라~ 퐈이야~!!!
p.s) 절대로 닉네임을 피알하고자 이런 글을 쓴건 아닙니... ^^;
부제 : 금시조(金翅鳥)의 비상
사람은 어떤 경우에 눈물을 흘릴까? 슬퍼서? 아파서? 어떤 일에 감동 받아서?
인간이 흘리는 눈물은 생물학적으로 3종류라 한다.
첫번째는 안구의 습함을 유지하기 위한 기저눈물, 두번째는 눈에 이물질이 들어갔을때 보호를 위한 보호 눈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정에 따라 두 뺨에 흐르는 감정의 눈물...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눈물을 흘리는 걸까?
이번에 연아가 오서 코치와의 결별 과정을 통해 크리켓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마리의 승냥이인 나는 지금까지 과연 연아의 눈물을 몇 번이나 접했을까? 대충 기억나는 것만 따져 봐도 꽤 여러 번 인것 같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눈물을 흘린다. 세월이 흘러 주름이라는 시간의 흔적을 얼굴에 아로새기며 흐르는 눈물의 의미가 깊어질 뿐 누구나 눈물이라는 저마다의 감정을 표현한다. 나 또한 어렸을 땐 아파서 울었고 친구와 싸워 한대라도 더 못 때린 아쉬움에 눈물을 훔치곤 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엔 '내 자신이 감정이 없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눈물을 흘려야 하는 상황에서 내 감정이 메마른 탓인지 눈물이 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게 아마 20대 였던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30대에 접어들면서 눈물이 많아 졌다. 내 몸이 죽을 것 처럼 아파서 흘린 눈물도 아니요 남에게 아쉬워 울분에 찬 눈물도 아니었다. 내 마음속에 어떤 사안이 감동적으로 느껴졌을 때 두 뺨에 자연스레 감정의 물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이번 연아와 오서의 결별 과정을 보면서 연아가 왜 그렇게 슬퍼해야 했는지, 언론에 노출되는걸 뻔히 알면서도 트위터와 미니홈피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사람은 이성적인 동물이기도 하지만 때론 감정의 동물이기도 하다. 진실은 분명 존재하는데 세상사가 진실과 다르게 전개 될 때 그것을 바라보는 연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합리적인 언론 보도 자료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연아는 이제 겨우 21살이다. 감정의 컨트롤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나이이기도 하다. 자신의 핏줄인 어머니가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때 연아가 느끼는 감정은 충분히 슬펐으리라. 난 그래서 더더욱 연아 편이고 싶다. 21살 앳된 한 소녀가 그녀의 피겨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은 부와 명예도 아닌 자신의 핏줄이라는 걸 난 어렴풋이나마 알기에 그녀의 태도가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을 한다. 그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삶의 지표도 세우고 살아가는 방법도 습득한다. 하지만 연아에 대한 단편적인 찌라시 기사들만 봐 왔던 사람들은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는 지식이, 파편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벌어지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장황하게 설명해 가며 연아의 고단했던 삶을 이야기 해주고 싶진 않다.
Figureskater Yu-Na Kim - KBS 다큐 '종달새의 비상' 中
연아는 피겨사 100년을 통틀어 아이러니 하게도 10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로 평가 받는 인물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인터넷에서 연아를 까는 소위 안티들도 피겨의 기술적인 측면에서 연아를 까대지는 않는다. 그들이 피겨에 대한 지식이 부족함도 있겠거니와 더욱더 중요한건 기술적인 부분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연아가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스케이터인지 스스로 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천재들은 존재한다.
어떤 종목, 어떤 분야든지 흐름을 바꾸고 시대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늘 존재해 왔고 그들 또한 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왔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데 문제점이 부각된다.
어렸을 적 농구에 심취해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를 실시간으로 보고 싶어 토요일 학교 끝나자마자 집까지 한 달음에 뛰어 다녔던 적이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뭐라고 이야기 하는지 알아 들을 수 없는 AFKN의 NBA 방송을 뚫어져라 매주 본적이 있다. 해설자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어린 나이였기에 알아 들을 순 없었지만 조던의 플레이를 보는게 좋았고 내게는 한주를 기다리는 낙이었다. 그의 플레이를 보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동네 농구장에서 밤 늦도록 따라 했던 기억이 내게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다른 나라 사람의 플레이를 보고자 나는 왜 그렇게 주말마다 뛰어다녀야 했을까? 그리고 난 왜 그의 플레이에 열광하며 내 어린 시절의 한편을 그로 채워 나갔던 것이었을까? 뭐라 정확히 표현할순 없지만 지구 반대편 사람으로 인해 내 어린시절 삶은 아름다운 로망으로 자리 잡았다. 조던은 내게 스포츠 스타가 아닌 내 삶의 로망이었던 것이다.
영화쪽 이야기를 해 볼까?
다들 이름은 들어 봤을 감독이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영화史적으로 두 감독은 높이 평가 받는다. 그들의 작품이 때론 작품성과 멀어져 있을 지라도 그들은 앞으로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 거란 방향을 제시해 줬다. 헐리우드 영화가 서부극이라는 장르의 한계로 자본이 쏠리고 영화社가 넘쳐나는 자본을 주체하지 못할때 그들은 SF라는 새로운 장르로 자본의 방향타를 돌렸다. 비록 작품성은 떨어질 지언정 하나의 예술 장르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줬던 한줄기 빛과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그들이 화면속에 그려냈던 SF와 창의성들은 내게는 충격 그 자체였고 동시대에 태어나 그들의 작품을 실시간으로 접할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연아가 바로 그런 역할을 피겨에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채점제에서 신채점제로 넘어오며 많은 문제점들이 부각 되었다. 신채점제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너무도 다양하고 어렵기에 피겨의 예술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연아의 등장이후로 피겨는 새로운 부흥을 맞이 하고 있다. 신채점제가 그토록 바랐던 기술과 예술의 조합을 토탈 패키지인 연아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피겨계의 대모로 불리는 비앙게티 여사도 연아의 그런 위대함을 알기에 신채점제를 부정하면서도 연아를 극찬 하는 것이다.
단순히 올림픽 금메달이란 성과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미쉘 콴도 이야기 했듯 연아는 전 세계 피겨를 꿈꾸는 어린 꼬마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해줬고 또 누군가에게는, 피겨라는 예술과 컴페티션이 결합된 독특한 스포츠에서 감동과 환희를 절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기에 연아에게 열광하고 피겨에 관심을 쏟는 것이리라.
금시조(金翅鳥)를 본적 있는가?
이문열의 '금시조(金翅鳥)'란 소설은 천재 서예가와 그의 스승이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이야기 이다. 그 소설에서 금시조라는 상상속의 새는 어떤 분야에서 최고 경지에 이르렀을 때 보는 예술적 최고 경지이다. 부끄럽지만 난 연아에게서 그걸 봤다. 연아가 '록산느의 탱고'를 연기할 때도 혼자 가슴 조려가며 카타르시스를 처음 느꼈고, 그 이후에 연아가 연기했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난 금시조의 환영을 봤다. 그중 최고의 압권은 바로 밴쿠버 올림픽에서 연아가 '조지 거쉰'을 연기할 때 남몰래 두 눈에 눈물을 머금으며 두뺨으로 그 감동과 환희를 흘려보내며 금시조를 느꼈다. 때론 그녀의 힘든 여정이 마치 내 여정이었던 것 마냥 가슴 조리며 한 번의 비상을 할 때마다 심장 박동이 요동 쳤지만 끝끝내 그녀의 연기에서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어깨위에 짓눌려 있는 무언의 압력들을 그녀 스스로 아무렇지 않은 듯 훌훌 털어 버리고 차디찬 공간과 빙판에 아름다운 그녀만의 예술적 궤적을 그려 나갔을 때 난 이미 두 뺨에 주체못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연아를 팬질하며 흘렸던 수많은 눈물중 하나이다.
연아는 항상 그랬다.
자신의 몸이 비틀어지고 점프를 하기도 버거웠을 때 승냥이들에게 감동과 환희를 선사했다. 때론 자신의 슬픔을 아무렇지 않은 듯 앳된 소녀가 감출 줄도 알았다.
그런 연아가 이번 코치와의 결별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4년이라는 짧다면 짧기도 하고 길다면 길기도 한 아련한 추억들 속에서 자신의 스승을 그저 묵묵히 떠나보내려 했던 한 가녀린 소녀가 스승의 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크리켓에서 그녀가 흘렸던 눈물은 어떠했을까? 연아는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눈물을 잘 보이지 않는다. 설령 눈물을 보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일지라도 그녀는 자신의 본분인 연습을 끝까지 마친다. 눈물을 훔치며 롯데월드 아이스 링크에서 일반 사람들에 치여 가며 끝까지 연습을 마쳤던 연아이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런 연아가 크리켓 한 모퉁이에서 스케이트화를 차마 신을수 없는 상황에 직면 했을 때, 그리고 4년 동안 동거 동락했던 스승이 자신의 입장만 항변 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참았던 눈물을 가녀린 두뺨에 흘려보냈다. 아무런 말없이 한 시대를 풍미하고 그 역사가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 속에서도 그녀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한(恨)이라는 정서를 그렇게 표출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연아 눈물의 의미를... 나 또한 한 마리의 보잘것없는 승냥이로서 그녀가 흘린 아름다운 무언의 언어를 알지 못한다. 그저 그녀가 잘되고 행복한 스케이터로 남기를 바랄뿐...
연아는 내년 3월 도쿄 월드 챔피언십에서 프리스케이팅으로 '아리랑'을 연기한다.
그녀가 21년의 한(恨)을 담은 새로운 연기를 펼쳐 보일 것이다. 연아가 2007년 도쿄에서 종달새를 저높은 창공으로 날려 보내지 못했지만 난 그녀가 이번 월드에서는 종달새 보다 더 멋지고 찬란한 상상속의 금시조를 푸른 하늘에 쏘아 올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또한 그녀가 비상시킨 아름다운 금시조를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창공에 띄워 보내리라. 내 삶이 아무리 지치고 힘들지라도 그녀가 보내준 금시조의 향연을 반드시 도쿄 월드에서 내 마음과 모든 승냥이들의 염원을 담아 반드시 비상 시키리라.
* 금시조(金翅鳥)
신화에 나오는 동물. 다른 말로 가루라라고도 함. 용을 잡아먹는 사나운 조류의 왕으로 독수리보다 더 사나운 새.
고대 인도 사람들은 새의 괴수로서 큰 생의 존재를 생각하고, 대승경전의 팔부귀중의 하나로 자주 인용. 밀교에서는 대범천ㆍ대자재천등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이 새로 화현(부처님이나 보살들이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모습을 변화시켜 세상에 나타는 것)한 것이라고도 하고, 혹은 문수 보살의 화신이라고도 함.
Yuna Kim (김연아) - Bulletproof (All That Skate Summer, 2010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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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멋진 글이네요..
이번 시련은 참 뜻밖의 시련이죠... 그래서 더 연아선수가 측은하게 느껴집니다.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연아선수는 정작 본인은 열심히 운동하는데,
주위(연맹, 언론, 국내코치 '풍선의 난', img ib 매니지먼트사, 구라이언 오서 등등...)가 참 안습입니다.
과거의 시련을 잘 극복하고 보란듯이 우승하면서 피겨계를 평정했듯이 이번에도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저도 연아 선수의 팬으로서 이번 일이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팠습니다.
특히 연아 선수가 연습도 못하고 흐느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하지만 이또한 지나가리다.
21살의 이제막 성인이 된 연아에게 우리가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언제나 그녀를 믿고 지지하는 많은 승냥이들이 함께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화이팅!!!
금시조131267M님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연아선수의 인생은 새털같이 남았으며 그녀의 인생은 선수의 신분으로만 평가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시련도 인생 전체로 봤을때 잔잔한 바람으로...... 그렇게 지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많은 피겨팬들, 아니 적어도 제 마음에는 영원한 히어로죠. 그저 그녀가 뜻하는대로 많은 일들을 즐겁게 이루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