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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4/27 14:23:04
Name susimaro
Subject [일반] 우울증의 단상..
https://ppt21.com../zboard4/zboard.php?id=freedom&page=1&sn1=&divpage=2&sn=on&ss=on&sc=on&keyword=susimaro&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7073

예전 PGR21 자게에 쓴 글입니다. 1년 하고도 10개월이 지난 글이네요. 지금 읽으면 부끄럽기도 하고
제 자랑과 제멋만 한 것 부린 글이라 생각이 듭니다.

밑에 우울증으로 고생하시는 분의 글을 읽고 경험자로서 조언이라기보단 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우울증 진단 받은 지 11개월 되었습니다. 이번 5월이 되면 딱 1년째네요.
정말 제가 우울증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별 증상도 없었고 우울하다는 느낌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행복하지 않다? 뭔가 삶이 지루하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게 점점 지속되다보니 의욕은 상실하고 학교도 휴학하고
결국 혼자 지내게 되더군요. 점점 나락으로 빠지던 저를 구해준 건 저의 이모님이었습니다. 저를 보다 못해 병원을 적극 추천하셨고
작년 5월 첫 정신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정신과 과장님과의 상담, 그리고 여러가지 심리테스트를 거쳐 나온 최종 병명은
회피성 인격장애,우울증이였습니다.

꽤나 진단결과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냥 조금 스트레스가 과다하고 아직까지 내 길을 못찾았을 뿐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의 병명은 그렇지 않더군요. 결국 전 현실도피를 하는 우울한 소년이였습니다. 정신과의 진단으로 인해 군대도 재검을 통해
공익판정을 받았고 인지치료까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20대 초반 남성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하더군요.)
우울함이 가중되면 무엇이든 하기 싫어집니다. 아르바이트도 때려치우고 주식,경품 등등 저의 수입원들이 모두 끊어버렸습니다.
아니 끊어져버렸습니다. 정말 하루하루가 무기력하고 한시간 한시간이 지겨웠습니다. 자존감도 떨어지고 남 앞에 나서는걸
꺼려하게 되면서 바깥활동을 정말 최소한으로 제한했습니다. (2주에 한번 병원 방문 이외에 3개월정도 집밖에 나가지 않은적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집안살림이 부유하여 병원비를 부담해줄수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고 그래서 병원방문을 그만둘까 생각하던 찰라에
다시 도움을 주신건 이모님이셨습니다. 제 병원비 일체를 모두 부담해 주셨습니다. 병원비 뿐 아니라 간단한 용돈까지요.
(20대에 용돈 타 쓴다는게 굉장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기에 쥐뿔도 없었습니다. 자존심마저)

그러면서 정신과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정신과라는 진료과에 갈때만 해도 걱정이 태산이였습니다. 정신병원하면 이상한 곳이라는 인식. 영화에서나 보던
정신병 환자들이 생각나면서 조금 두려워 했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건 기우였습니다.
정신과. 그 어떤과보다 쾌적하고 분위기도 좋습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상한 사람들도 한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보면 전부 정상인입니다. 남들과 다름을 느낄수 있는 환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각각의 병명으로 정신과를 방문했겠지만
본인이 정신과에 다닌다고 말하지 않는이상 정신과 환자라고 판단을 내릴수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 숫자는 정말 많았습니다. 정신과 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예약명단을 보면 그 어느 진료과보다 압도적으로 정신과 환자수가 많았습니다.

심리검사 이후 첫 공식적인 진료를 마치고 약물을 받았습니다. 종합병원이였고 약은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서 받는게 아닌
병원내에 있는 조제실에서 받았습니다. 의사,간호사 모두 친절하였으며 약사분까지 굉장히 활동적이시고 친절하셨습니다.
실제 정신과를 겪으면서 정신과라는게 전혀 인식만큼 이상한 곳이 아니구나. 다른 병원 다른 진료과와 다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주에 한번. 아침,자기전 하루두번. 약물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약물도 모든 사람에게 같은 약물을 투여한다고 같은 효과를 보는게 아니더군요.
근 3개월 정도는 저에게 맞는 약을 찾기위해 이약 저약 먹으면서 실험 아닌 실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끔찍한 불면증에 시달릴때도 있었고 (10분자면 깨버립니다. 피곤은 하지만 잠은 오지 않습니다 사람이 미쳐버리죠)
폭식증에 시달린적도 있습니다. (2주동안 무려 7kg이 늘어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여러가지 현상을 겪으면서 좋은것도 있었고 좋지 않은것도 있었지만 결국 저에 맞는 약을 찾았고 지금까지 복용중입니다.
1년전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1년전에는 밖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사람만나는 것도 무서웠고 별로 나가야할 이유를 몰랐습니다.
지금은 매일같이 밖을 나가고 햇볕을 쐽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비가와서 조깅하러 밖에 나가지 못하면 꽤나 아쉬울
정도로 밖에 나가는걸 즐겨합니다. 친구와의 연락도 시작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벗어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경제적 활동도 시작했습니다. 다시금 간단한 알바를 시작하면서 병원비도 스스로 내고 용돈도 다시 스스로 벌어씁니다.

제가 1년만에 바뀐건 병원의 도움이 50% 이상이라 생각합니다.
병원가면 100% 낫는다?! 이런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울증은 병원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쉬이 낫지 않을꺼라 생각합니다.
우울증이라는게 겪어본 결과 마음을 굳게 먹는다고 생각을 바꾼다고 강인한 체력을 다진다고 낫는건 아니더군요.
아니 강인한 체력은 우울하면 다질수도 없습니다. 할 의욕이 생기지 않거든요.
약물의 도움을 받으면서 서서히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우울증 약의 최소 반응주기는 2-4주입니다. 아니 최소 4주
3개월은 복용해야 진전정도를 알수 있습니다. 한번가고 그만갈꺼라면 차라리 안가는게 낫습니다. (보험문제 등등)
치료와 상담을 받다보면 서서히 의욕이 생기는게 느껴집니다. 저같은 경우 그랬습니다.
그때부터 운동과 치료를 병행합니다. 웨이트,유산소 운동이 우울증에는 굉장히 효과적입니다.
점점 우울감이 떨쳐지면 예전의 나로 아니 좀더 발전적인 나로 변할수 있습니다.
우울증도 하나의 경험이라 생각하고 남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한것을 경험해봤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신다면
우울증은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될수 있습니다. (링컨또한 만성우울증 환자였고 우울증을 통해 더욱 발전하게된 케이스입니다.)

현재 상태가 매우 호전되었으며 약물을 줄이는 단계에 진입하였습니다.
우울증은 의사가 그만와도 된다고 할때까지 꼭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여전히 우울증에는 벤조다이제핀계의 항우울제가 많이 쓰이고 있고 어느정도 의존성을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판단으로 병원가는것을 중단하는건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치료가 끝나면 공익근무를 하게 될것이고 공익근무가 끝나면 또 다른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예전처럼 막연한 두려움은 없습니다. 현재 삶에 충실하고 미래의 걱정을 현재로 당겨와 현재 삶을 망치지 않을것이니까요.


ps. 요즘 법정스님의 책을 한권한권 구매해서 읽고 있습니다. 너무 와닿고 행동의 변화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독서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나 아니 독서에 별 관심이 없으신 분들도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워낙 유명도서들이라 왠만한 도서관에는 다 비치되어 있을것입니다.

많은 법정스님의 책중 추천드리고 싶은것은 '살아있는것은 다 행복하라'입니다.
법정스님의 여려책을 엮어 짧막짧막하게 나온책이며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법정스님의 삶과 철학에 더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여타 책을을 한권한권 읽어나가시면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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엷은바람
10/04/27 14:33
수정 아이콘
좋네요.. 우울증 따위 박차고 새 삶을 사시길 바라겠습니다.

근데 궁금한게 있는데..
정신과 치료는 비용 수준이 얼마나 될까요? 몸이 안좋아서 병원 찾는것과 비슷한가요?

저도 정신과 상담 및 치료를 좀 받고 싶을때가 많은데..
그 비용때문에 항상 망설여지더라구요 (괜히 헛돈을 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KnightBaran.K
10/04/27 14:36
수정 아이콘
무엇보다도 우울증을 극복해가고 계신다는 점 축하드립니다.
Mynation
10/04/27 14:49
수정 아이콘
의학도로서도 참 공감가는 글이네요.. 의지 잃지 않으시고 건강 완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Who am I?
10/04/27 15:21
수정 아이콘
요새 정말 마음이 마음이 아닌지라.....뭐라고 해야하나...으으음.....조금 부럽기도 하고 그렇군요.

잘 극복하신 것 같아서...축하드립니다. ^^
ringring
10/04/27 15:22
수정 아이콘
우울증을 겪고 있는 많은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인것 같아요..
제가 아는 동생도 아파하고 있는데 꼭 읽어보라고 말해야 겠어요^^
10/04/27 15:38
수정 아이콘
정신과 치료는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건가요? 진료비도 그렇고 약값도 그렇고 꽤 비싼 듯싶은데,,,
KnightBaran.K
10/04/27 16:01
수정 아이콘
이모님이 참 대단하신 분이구나 싶네요.
나두미키
10/04/27 16:09
수정 아이콘
거의 극복하신 듯 해서 더욱 반갑네요..... 왠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화이팅입니다.
10/04/27 23:43
수정 아이콘
본문에 완전 공감하고(특히 "아니 강인한 체력은 우울하면 다질수도 없습니다. 할 의욕이 생기지 않거든요.") 호전되신다니 기쁩니다. 저도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으며 복용 전에 비해 큰 차도를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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