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많은 팀을 둘러보았습니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최강자였던 삼성라이온즈, 국내에서 가장 열정적인 팬을 보유한 롯데자이언츠, 뚝심과 미라클이라는 단어를 자신들의 고유명사로 정착시킨 OB - 두산베어즈, 세련된 팀 컬러와 "한국의 양키스" 라고 불리는 MBC청룡 - LG트윈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야구가 들어온 지방이지만 정작 프로야구가 개막될 무렵에는 연고지 출신 프랜차이즈스타가 턱없이 부족했고 형편없는 약팀으로 눈물을 흘려야했던 삼미슈퍼스타즈 - 청보핀토스 - 태평양돌핀스, 7번째 구단으로 창단해 화끈한 방망이를 보여주고 있는 빙그레 - 한화이글스, 8번째 구단으로 창단했지만 제일 먼저 해체라는 비운을 맛본 쌍방울레이더스, 엄청난 자금력으로 야구계에 뛰어들어 왕조시대를 일구어낸 하지만 결국 "돈으로 흥한자 돈으로 망한다." 는 말처럼 재정난으로 인해 2번째로 해체된 현대유니콘스, 애환많은 인천에 5번째 연고지팀으로 창단되어 왕조시대를 일구어낸 SK와이번스. 그리고 히어로즈. - 는 잠시 보류 -
하지만 이 팀을 빼놓는다면 우리나라 프로야구를 서술하는데 설탕없는 호떡,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컴퓨터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따라잡지 못한 최다 우승횟수, 전무후무한 4연속 한국시리즈 제패, 왕조라는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팀.
해태타이거즈입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뉴욕 양키스, 레알 마드리드, 보스턴 셀틱스, LA 레이커스등 왕조라고 불리는 타 팀들과는 달리 턱없이 부족한 자금력 속에서도 끈질기게 승부를 포기하지 않은 근성의 팀.
이제 시작합니다.
한 가지 당부할 사항이 있다면 원래 해태타이거즈는 1982년부터 2001년 시즌 중반까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2001년은 기아타이거즈편에서 서술했기 때문에 이번 시리즈는 1982년부터 2000년까지의 기간만을 다룹니다. 그래서 해태타이거즈 "19"년사 라고 붙였습니다.
나중에 기아와 통합하여 해태 - 기아타이거즈의 역사로 만들 것입니다.
절취선----------------------------------------------------------------------------------------------------------------------
1982년, 호남권역을 연고지로 창단된 해태타이거즈. 일단, 선수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상당히 준수했습니다.
실업무대의 홈런왕 김봉연, 최동원 - 김시진과 함께 "개띠 삼총사" 로 불린 김용남, 좌효조 - 우종모로 불릴정도로 정확한 교타자 김종모, 또다른 홈런타자 김준환.
하지만,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형편없이 적은 숫자의 선수들.
창단식에 참가한 선수들이 단 14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 선수들로 팀을 꾸려나가야했던 것입니다.
그나마 이 해에 서울에서 열린 세계 야구 선수권대회의 멤버로 뽑힌 김일권이 대표팀을 무단 이탈해 해태타이거즈에 입단했고 "원자탄" 이상윤과 "혹성탈출" 방수원등을 대학에서 중퇴시켜가며 입단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수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김일권의 입단도 개막직후 롯데자이언츠에게 2 : 14로 대파당하면서 간신히 "대표팀 영구 제명"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선수들은 부상을 당하건 말건 상관없이 꼬박꼬박 경기에 출장해야 했으며 수비위치도 여러번 변경해가면서 뛰었습니다.
"오리궁둥이" 김성한의 경우에는 투수, 1루수, 3루수, 외야수, 지명타자등을 전전했으며 김일권도 유격수, 외야수등으로 활약했고 김봉연도 1루수, 지명타자등을 전전해야했습니다.
실업무대와는 달리 엄청나게 많은 경기속에서 선수들은 하나둘 지쳐갔고 결국 상위권으로 도약하는것은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믿었던 이상윤, 방수원, 김용남은 부진했고 - 부진이라기 보다는 심각한 체력소모 - 결국 위에서도 서술했다시피 김성한이 부업으로 투수로 활약해야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그래도 한때를 주름잡았던 군산상고가 주를 이루는 선수들답게 공격면에서는 돋보였습니다.
김봉연은 팀 동료 김준환, MBC청룡의 4할타자 백인천과 시즌 막판까지 홈런왕 타이틀을 놓고 경쟁한 끝에 22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시즌 중반에 합류한 김일권은 75경기에서 무려 53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합니다.
김일권이 기록한 53개의 도루는 108경기로 늘어난 1987년에 가서야 청보의 이해창이 54개를 성공시키며 김일권의 기록을 갱신합니다.
놀라운 것은 투수와 야수를 전전해야했던 김성한이 69타점을 기록하면서 타점왕 타이틀을 쥔데다가 홈런 13개를 때려냈으며 투수로서는 팀내에서 유일하게 10승을 올려 사상 초유의 10 - 10 클럽 (10홈런, 10승)을 개설한 것입니다.
여담으로 김성한은 도루도 10개를 성공시키며 10 - 10 - 10클럽 (10홈런, 10도루, 10승)도 개설합니다.
어찌되었든 하루하루 입에서 단내가 나는 상황속에서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던 해태타이거즈는 전기리그에서 20승 20패로 4위, 후기리그에서 18승 22패로 롯데자이언츠와 공동 4위에 오르며 최종순위 38승 42패로 4위에 머무릅니다.
주요 선수들의 성적을 살펴보겠습니다.
타자
김일권 : 75경기 출장, 타율 0.270, 330타석 282타수, 76안타, 11홈런, 48득점, 53도루
차영화 : 76경기 출장, 타율 0.259, 323타석 282타수, 73안타, 1홈런, 46득점, 32도루
김종모 : 77경기 출장, 타율 0.291, 286타석 258타수, 75안타, 10홈런, 43타점
김봉연 : 74경기 출장, 타율 0.331, 304타석 269타수, 89안타, 22홈런, 52타점, OPS : 1.040
김준환 : 80경기 출장, 타율 0.301, 331타석 306타수, 92안타, 19홈런, 45타점
김성한 : 80경기 출장, 타율 0.305, 340타석 318타수, 97안타, 13홈런, 69타점
조충열 : 80경기 출장, 타율 0.231, 298타석 268타수, 62안타, 2홈런, 35득점
김우근 : 61경기 출장, 타율 0.189, 166타석 143타수, 27안타, 4홈런, 18타점
김종윤 : 69경기 출장, 타율 0.244, 194타석 168타수, 41안타, 1홈런, 19득점
투수
김성한 : 26등판, 5선발, 106.1이닝, ERA : 2.88, 10승(3선발승, 7구원승) 5패 1세이브, 49K
김용남 : 33등판, 17선발, 175이닝, ERA : 3.09, 9승(6선발승, 3구원승) 12패, 85K
이상윤 : 23등판, 19선발, 102이닝, ERA : 3.88, 7승(6선발승, 1구원승) 5패, 58K
방수원 : 34등판, 15선발, 154.1이닝, ERA : 3.91, 6승(3선발승, 3구원승) 7패 1세이브, 63K
강만식 : 29등판, 19선발, 144이닝, ERA : 4.44, 5승(3선발승, 2구원승) 11패 1세이브, 86K
주요부문 순위를 알아보겠습니다.
타자
홈런 : 김봉연(1위), 김준환(2위), 김성한(4위), 김일권(7위), 김종모(12위)
타점 : 김성한(1위), 김봉연(4위), 김준환(10위), 김종모(11위)
타율 : 김봉연(5위), 김성한(10위), 김준환(11위), 김종모(13위)
도루 : 김일권(1위), 차영화(5위), 김우근(19위), 김종윤(19위)
득점 : 김봉연(1위), 김준환(6위), 김성한(7위), 김일권(7위), 차영화(12위)
투수
다승 : 김성한(7위), 김용남(9위), 이상윤(11위), 방수원(17위)
탈삼진 : 강만식(6위), 김용남(7위), 방수원(12위), 이상윤(14위), 김성한(18위)
평균 자책점 : 김성한(6위), 김용남(9위), 이상윤(16위), 방수원(17위), 강만식(20위)
세이브 : 김성한(11위), 강만식(11위), 방수원(11위)
각 팀간 상대전적을 알아보겠습니다.
vs OB : 6승 10패, vs 삼성 : 3승 13패, vs MBC : 7승 9패, vs 롯데 : 11승 5패, vs 삼미 : 11승 5패
도합 38승 42패를 거두었습니다.
팀 성적을 확인해보겠습니다.
득점 : 374(4위), 실점 : 388(2위), ERA : 3.79(4위), 타율 : 0.261(4위), 홈런 : 84개(1위), 도루 : 155개(1위)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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