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되짚어보면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월호 1주기가 되는 16일을 맞아, 대부분의 유가족은 안산으로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었다. 안산에서 열리기로 계획된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유족들은 예전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층 인사들이 안산에서 열리는 추모행사에 참석할 것을 요청해오고 있었다.

요청을 받은 청와대 측은 "세월호 추모행사와 관련된 일정을 고려하고 있다"면서도, "일정은 확정되는 대로 말씀드리겠다"(민경욱 청와대 대변인)며 구체적인 행사 참여 일정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후에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을 위해 출국하기로 예정된 상황에서, 당일 오전까지도 대통령의 행적은 묘연했다. 그런데 오전 10시 44분,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다.

[엠바고 사항]
1. 일정
- 12시 진도 팽목항 방문(40분 체류 예정)
- 14시 30분 중남미 순방 출국 (예정)

안산에 모여있는 유족들에게, 1~2시간 전인 10시쯤에서야 대통령이 진도 팽목항에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을 알린 것이다. (주석) 안산에서 진도 팽목항은 한두 시간 사이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대통령은 애초부터 유족들을 만날 생각이 없었다.

"일정은 확정되는 대로 알려드리겠다"는 말도 거짓이었다. 일정은 일찌감치 확정된 상태였는데도, 정부는 각 언론사에 엠바고를 요청해 보도를 통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언론을 통한 공식적인 방문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이 팽목항을 방문한 12시 이후에야 알려졌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안산에 와서 추모행사에 참여해달라는 유가족들의 지속적인 요청을 무시하고, 행사에 참석하게 되면 확정되는 대로 미리 알리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은 채로, 몇몇 유가족들만 남아있던 팽목항에 다수의 정부 고위 인사들과 대규모 경호인력을 대동하고 불쑥 나타났다.

일국의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조문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격식과 예의를 갖춰야 한다. 상주(喪主)인 유가족들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앞서 살펴봤듯 대통령측은 조문을 위한 최소한의 격식과 예의도 갖추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맞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대통령을 만나는 것은 정치적 의미가 있는 '사건'이고, 대통령과 나누게 되는 대화도 단순한 의미를 가진 말은 아니다, 대표자가 없고 사전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남아있는 몇몇 유가족들이 대통령을 만났다면, 그들은 그저 대본에 쓰여 있는 말을 읊는 인형이자 연출된 보도용 사진의 피사체가 되었을 뿐일 것이다. 그것을 잘 아는 유가족들은 더더욱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박근혜 대통령은, 유가족 없는 진도 팽목항에서 듣는 이 없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다. 담화문에는 세월호 인양을 준비하겠다는 발언 말고는 그 어떤 구체적인 약속도 없었다. 유가족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에 관한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외에는 이전부터 반복해오던 말뿐인 수사(修辭)뿐이었다. 진상은 특별조사위에서 밝히겠다. 국민안전처를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에 매진하겠다. 물론 특별법 시행령을 통해 진상조사위의 손발을 묶어놓았고, 사고에 큰 책임이 있는 전(前) 해경 간부들이 국민안전처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통령은 예정된 40분에 한참 못 미치는 시간인 20분만을 머물고, 홀연히 팽목항을 떠나갔다.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로 말이다. 그리고 언론들은 일제히 박근혜 대통령의 팽목항 방문 소식을 보도했다. 유가족들이 일방적으로 대통령과의 만남을 거부했다는 소식도 빼놓지 않았다. 동아일보 같은 신문에서는 한술 더 떠 유가족들을 '분열을 획책하는 세력'으로 그려놓았다.

'애써 팽목항까지 발걸음을 한 대통령'을 '유가족들이 일방적으로 거부'한 것이 아니다. 만남을 거부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요청해오던 유가족들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정부는 온갖 술수를 부려가면서 유가족들이 대통령과 만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한술 더 떠, 어용언론을 동원해, 그 상황을 유가족들이 대통령과의 만남을 거절한 것으로 바꿔놓았다.

(주석) 유경근 위원장에게 연락을 준 사람이 정부 관계자인지, 혹은 언론 관계자인지에 따라 해석은 달라지게 되는데, 정황을 추측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하므로 어느 쪽으로든 해석할 수 있다. 만약 언론 관계자가 정부 측과의 약속을 깨고 엠바고 사항을 알린 것이라면 정부는 애초부터 유족들에게 방문 계획을 알릴 생각이 없었다는 해석을 할 수도 있겠다. 정확한 맥락이 궁금해 관련된 언론 기사를 찾아봤는데, 이 부분을 명확히 밝힌 기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