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방사선 전문의와 응급실 의사 모두 여성의 몸속에 있는 유도철사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환자는 집중치료 병동으로 이송되었고 이후 상태가 좋아져 다시 일반병동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환자는 일반병동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폐에 혈액이 응고되는 폐색전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다시 여성은 호흡 곤란을 일으켜 응급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사이 두 차례나 엑스레이 촬영을 더 하고 CT와 초음파 검사까지 했죠. 그때서야 의료팀은 유도철사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그전에 찍었던 엑스레이 사진 3장과 CT 촬영사진을 다시 꺼내어 살펴보니 유도철사가 뚜렷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여러 의사들이 모두 눈앞에 빤히 보이는 유도철사를 보지 못하고 놓쳤던 것입니다. 엑스레이, CT, MRI 등을 관찰하는 방사선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을 공부하며 실무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게다가 다른 내과 전문의도 엑스레이나 CT 영상을 보는 데에는 선수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동시에' 유도철사를 못 보고 놓친 것은 그저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연속적으로 일어난 불운'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찜찜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 들이 벌어진 것일까요?

캘리포니아 주의 공공안전 고문인 피터 제이콥슨의 조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유럽과 캘리포니아 주의 여러 도시들을 대상으로 자동차의 보행자 및 자전거 관련 사고 발생률을 조사했습니다. 2000년에도 각 도시에서 100만km당 도보 및 자전거 여행자들의 부상자 및 사망자수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는데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죠. 도보 및 자전거 여행자가 가장 많은 도시에서 오히려 사고율이 더 낮았습니다. 반대로 도보 및 자전거 여행자가 적을수록 이들의 자동차 사고율이 높아졌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보행자가 두 배 많은 마을로 이주한다면 걷다가 자동차에 치일 확률을 3분의 1가량 줄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예상'에 있습니다. 도보 및 자전거 여행자가 많으면 이들의 자동차 사고율이 높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그곳 운전자들은 이런 여행자들을 항상 염두에 두기 때문에 자동차 사고율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것이죠.

이 내용을 일베 이미지 사용건으로 적용해 보죠. 

‘방송에서 일베 이미지가 나가는 것을(이런 중차대안 일을) 관계자가 어떻게 모르고 할 수 있냐?’라고 했을 때 모르고 할 수 있는 확률이 적잖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일베에 일절 무관심한 사람일수록 더 실수할 확률이 커질 것입니다. 게다가 '내가 이미지를 한두번 써 보나. 나는 저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할리가 없다.’라는 자신감의 충만 또한 실수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이죠. 결국 '일베에 대한 어느정도 정보'를 가지고 ‘자신이 일베 이미지를 쓸 수 있다는 예상’을 하고 그것을 적절한 방식으로 ‘경계’를 할 때에만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했을 수도 있을테지만 사안의 중요성 정도와 이렇게 심심할 때마다 일이 반복이 되는 것을 보았을 때 이런 '부주의 맹시'가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이 핑계는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방송 프로그램 입장에서 결코 실수하면 안되는 일 중에 하나가 되었으니까요. 저도 일베 이미지 송출건은 의사들이 유도철사를 빼지 않는 것과 비슷한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재발되지 않으려면 네 가지정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베 이미지 사용 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사안을 대할 때 공통으로 적용할 수도 있겠지요.

1.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사전 정보가 무조건 있어야 합니다. 근데 일베 같은 경우는 '혐오'의 감정을 불어 일으키기도 해서 아애 신경도 안쓰는 경향이 있지요. 자신이 하는 일이 일베와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라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문제가 되는 일베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인들은 피곤하지요. 트윗 하나에 훅 갈 수 있으니까요.)

2. '나는 저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할리가 없어’라는 자만심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심리학 실험들을 보면 자주 등장하는 것이 ‘내가 그렇게 행동할 줄 몰랐다’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죠.

3. 예상을 해야겠지요. 먼저 내가 충분히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예상과 그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를 예상해야 할 것입니다.

4. 생각은 종종 증발되죠. 그래서 체크리스크가 필요할 것입니다. 매번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한 번 실수가 치명적이라면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죠. 이왕이면 방송사에서 이미지 송출시 점검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잘 만들어서 각 프로그램 관계자가 체크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베를 뜻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들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체크리스트를 보면서 확인해 나가면 실수할 확률이 줄겠지요. 저도 처음에 아래 글에서 나온 뮌헨 로고에서 뭐가 일베 이미지인지를 한참 동안 몰랐으니까요. 체크리스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효과가 매우 강력합니다.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죠. 하지만 재발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뭐 고의적으로 하는 것이야 ‘톰 크루즈’ 형님이 활동해 주시지 않는 이상 미리 막을 수는 없겠죠. 그러나 ‘실수’의 경우는 앞서 말씀드린 방법을 통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p.s) 1. '부주의 맹시'는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가 쓴 <보이지 않는 고릴라>에서 '체크리스트'는 아툴 가완디의 <체크! 체크리스트>에서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두 권의 책 모두 좋은 책입니다.

2. 유도철사 관련 원문은 여기서 : http://onlinelibrary.wiley.com/doi/10.1197/j.aem.2005.02.014/epdf

3. 사고 발생률 관련 원문은 여기서 : http://injuryprevention.bmj.com/content/9/3/205.full.pdf+html

4. 저는 영어는 못하고 검색만 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