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립이후 한국바둑은 4명의 1인자와 4명의 2인자를 낳았습니다.

1인자 계보는 조남철 - 조훈현 - 이창호 - 이세돌
2인자 계보는 김인 - 서봉수 - 유창혁 - 최철한 이죠.

오직 원탑에게만 주어지는 "국수"의 예와 칭호를 얻은 4인, 그리고 끝내 그것을 얻지 못한 4인의 이야기.
오늘은 그 한국 바둑의 역사 대표 브랜드 8인과 박정환 김지석 사범에 대해 짧은 촌평을 해볼까 합니다.


1. 조남철 - 김인 시대

조남철 국수는 성적도 출중했지만,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우리나라 각종 신문기전의 창립을 유도하고 라이트팬을 위한 바둑책을 발간하는 등 한국 바둑의 아버지 같은 존재입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이라기보다는 바하나 하이든 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일각에서는 김인 사범 역시 국수로 보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개인적으로 그렇게 동의하는 편은 아닙니다. 분명히 조남철 원탑 시대를 무너뜨린것은 김인이지만, 그후 그의 치세는 너무나 짧았고, 곧바로 춘추전국 군웅할거의 시대로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죠. 마재윤을 무너뜨린건 분명히 김택용이었지만, 그렇다고 임이최마의 뒤를 잇는 5대 본좌까지는 되지 못한채, 택뱅리쌍이 주거니 받거니 혼돈의 시대가 열린 것에 견줄 수 있을까요.


2. 조훈현 - 서봉수 시대

조훈현 국수야 더 말할 나위가 없는 한국 바둑 최강 시대의 도래를 알린 선두주자죠. 당시만 해도 한국바둑은 세계대회에 구색맞추기 단 한명만 초대되는 등, 지금의 대만, 싱가폴, 홍콩만도 못한 바둑 위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설움을 딛고 우승 소식을 알려왔으니 역시 카퍼레이드 정도는 당연했겠죠. 언더독이 세상을 정복하던 카타르시스는 어쩌면 이창호 시대보다 더 컸을지도 모릅니다.

서봉수 사범은 끝내 국수의 칭호를 받진 못했습니다만, 대신 그에게는 "명인"이라는 별칭이 주어집니다. 유행하던 유학은 커녕 뚜렷한 스승조차 없는 그가 조남철을 상대로, 김인을 상대로, 조훈현을 상대로까지 명인위를 5년 연속 제패하던 모습은 팬들의 가슴에 깊이 남았습니다. 1인자보다 못하여 2인자라 불리지만, 애초에 3인자 그룹이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 그 둘만의 세상을 만든 것으로 평가되죠. 그러기에 세상은 그를 서국수라 부르지 못함을 달래어 서명인이라 부릅니다.


3. 이창호 - 유창혁 시대

한국 바둑만이 아니라 세계 바둑 역사 원탑이라는 이창호 국수에 대해서 정말 더 설명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창호가 바둑의 신인지는 몰라도, 바둑의 신은 이창호처럼 둘 것이다"...라는건 이제와서 너무 뻔한 얘기죠. 뭐 좀 덜 알려진 것으로 사실 이창호 국수는 오락실에 가서 철권을 즐겨하고, 노트북으로 최철한, 이세돌 등과 같이 야구게임 '마구마구'를 즐겨하는 열혈게이머라는 뒷얘기 정도만 더 소개해 둘까요.-_-a

서봉수 서명인에게 명인 타이틀이 있었다면 유창혁에게는 바로 왕위가 있었습니다. 이창호가 세계를 다 제패하고 다시 국내에 돌아와봤더니 끝끝내 유창혁이 무려 8년을 랭킹 2위 메이저 기전인 왕위 타이틀을 지켜내면서 이창호의 "당연한 전관왕"을 혼자 막았다는 얘기는 전설처럼 남아있죠. 게다가 1인자에 밀린 2인자답지않게 오히려 유왕위의 당대의 인기는 이창호 못지 않았습니다. 이창호의 바둑은 너무 강하고 확고해서 아마추어 팬들이 관전하기에는 좀 재미없는 정교하고 깐깐한 바둑이었다면, 유왕위의 별칭은 오늘날까지도 어느 누구에게 뺏기지않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서요.


4. 이세돌 - 최철한 시대

"아니, 그럼 수가 보이는데 수를 안내나요?" 이세돌 사범의 내츄럴 본 스웩으로 인해 끝끝내 그에게 이국수라는 호칭을 주기 힘들었던 안티팬들 조차도, 결국은 이세돌이 시대의 1인자라는걸 인정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이창호만큼 압도적인 원탑은 아니었지만 - 아니 애초에 그정도의 원탑이 나오기는 앞으로도 힘들겠지만 -  구리, 콩지에, 천야오에 등 중국세가 본격적으로 세계를 점령하러 오는때에 독야청청 타이틀을 늘려가던 이세돌 사범을 원탑의 국수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거죠.

독사 최철한에게 너는 2인자라고 말하면 지금도 수긍하진 않을겁니다. 아마 영원히 안하겠죠. 이세돌 국수의 팬들에게는 죄송한 표현일 수 있겠으나, 최철한 사범은 위에 거론된 역대 한국바둑의 2인자 가운데 누구보다도 1인자에 가까운 2인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인도, 서봉수도, 유창혁도 주유 제독의 얘기를 하고 싶겠지만, 오직 단 한사람 최철한의 실적과 성과, 역량, 투지 앞에서만큼은 한수 접어줄겁니다.  


5. 그리고 박정환 - 김지석의 내일?

한국바둑 최강의 20년간 조-서-유-이 4강이 언제나 보여줬듯이 (*순서는 응창기배 우승순서),  팬들이 항상 추억속에 회상하던 "우리끼리의 결승전 그림"이 한국바둑의 미래 박정환 - 김지석 양웅의 LG배 결승대결로 성립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겠죠.

둘중에 누가 1인자가 되고, 누가 2인자가 될지, 아니면 끝내 저 투탑이 승부를 못가리는 도중에 다른 선수가 갑자기 치고 나올지 미래는 쉽게 예단하기 힘든법입니다.



한편으로는 또 어느새 그런 와중에, 줄곧 2인자였던 중국바둑의 거센 파도에 휩쓸린 1인자 한국바둑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과연 유창혁 사범이 감독을 맡아 부활한 국가 상비군 연구회는 얼마나 어떤 성과를 이룰지도 궁금해지기도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