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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4/03 12:19:13
Name swordfish-72만세
File #1 20150402_194011.png (362.2 KB), Download : 74
Subject [일반] 임진왜란 당시 서양인이 기록한 부산성 전투 내용


문제는 이걸 기록한 프로이스 신부는 조선에 온 적이 없습니다.
단지 고니시에게 들은 내용은 자신이 경험한 양 기록하고 있을 뿐이죠.
이 때문에서 사실 조선군이 진짜 어떤 수준이었는지는 알기 힘듭니다.

병력이나 장비는 아마 승자인 코니시가 부풀렷을 가능성은 농후 하거든요.

아무튼 무장을 보면 조선에는 총이 없다고 생각하시는데 개머판 없는 총은 있었습니다.
서양식 기준으로 하면 핸드 캐논이라는 무기죠.


문제는 개머판이 없다 보니 명중률이 형편 없었고 방아쇠가 없어서 불을 들고 있다가 심지에 붙여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들고 잘 쏘려면
손이 세개가 있어야 했다는 문제점이 있었죠. 그래서 마차나 바리케이트, 성벽 같은데 기대고 쏴을 가능성이 큽니다.

투르크식 활이야 각궁을 이야기 한데 유럽인들이야 기후 때문에 쓰지는 못해도 전쟁 때문에 나름 익숙한 물건이었을 겁니다.
또한 조선은 아주 다양한 화포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징비록에서 일본군이 활을 쏘는 것으로 나오는데 애초 이시기 즈음이면 동서양 모두 활과 총을 병용해서 쓰니
틀린 것도 아니죠. 총이 다량 배치되어 활의 연사 속도를 씹어 먹지 못하는 한 총의 엄호용으로는 꽤 좋은 무기니까요.
문제는 총의 수가 늘면 늘수록 운용으로 극복해 버리니 나중에 갈수록 활 비중이 확 줄지만요. 거기에 화약과 총기 개량 같은
성능적 발전 때문에 활은 도태 됩니다.(활은 무조건 인간이 낼 수 있는 팔힘 수준을 넘지 못하죠. 하지만 총은 인간의 팔힘과
화력이 별 관계 없으니...) 물론 드라마 처럼 일본군이 각궁을 쓸리는 거의 없다는게 함정. 일본은 습한 기후라 각궁의 접착제인
아교가 풀어져 목궁을 써야 합니다.


물론 이런 화약 무기들은 원래 전쟁이라면 훌륭한 무기들이었겠지만 동아시아에 서양인들이 들어오면서
변화된 새로운 전쟁에서는 거의 구식 무기들이라 임란 이후 홍이포, 불랑기포 같은 무기들로 대체 됩니다.


갑옷의 경우 얼마나 입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애초 이 당시 위 사진의 찰갑의 경우 유지 보수가 어렵고 비싼 물건이었느니
다 입혔을 거 같지는 않고 반대로 사극 수준으로 포졸복만 입었을리는 없을 테니 말이죠.
아무튼 주축은 위의 사진의 찰갑입니다. 기록에서 가죽 갑옷이라고 나오지만 찰갑은 철, 가죽, 종이 등 소재를 다르게 사용해서 만들었습니다.

물론 다른 갑옷 형태도 많이 썼다고는 합니다.

위의 두정갑 같은 물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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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캐리어
15/04/03 12:26
수정 아이콘
활과 총을 병용할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기 때문이었으리라고 봅니다. 저 당시에는 화승총이다보니 비오는 날에는 사용이 불가능했을테니까요.

유럽이야 기만전술을 사용하기보다는 회전을 통해 승패를 겨루는 방식이다보니 일기가 좋지 않으면 양측모두 전투를 피하는데 반해서, 동아시아는 기만전술을 위주로 병력을 운용하다보니 일기에 영향받는 무기만으로는 위험할수 있으니 그를 보완할 수 있는 궁부대를 동시에 운영했으리라 봅니다.

이후 총포의 발달로 일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순간부터는 급격하게 도태되었죠.
swordfish-72만세
15/04/03 12:30
수정 아이콘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애초 일기가 나쁘면 동서양 모두 전투를 피합니다. 왜냐하면 통제가 안되기 때문이죠. 폭우나 안개가 심하면 애초 지휘관의 상황 판단과 명령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여기에서 전투를 할 바보는 없죠. 악천우에서 전투를 하는 건 솔직히 소설에서나 나올 일입니다. 아니면 급작스럽게 싸워야 할 일이 생기거나 혹은 기술적으로 부족한 다수의 민병대가 정부군 상대할 때 수적 우세를
가져가기 위한 막공격을 시도할 때 수준이죠.
또한 조선 같은 나라는 각궁을 사용했는데 이것도 약간의 강우 수준이라면 쓸 수 있지만 비가 좀 내리면 활이 풀어져 싸울 수 없습니다.
최종병기캐리어
15/04/03 12:45
수정 아이콘
화승총의 약점은 전투를 못할정도의 악천후가 아닌, 약간의 비만으로도 무용지물된다는 것이었으니까요. 플린트락 방식(공이가 부싯돌을 쳐서 불꽃을 일으키는 방식) 이전의 화승총은 가랑비에도 쓸 수가 없었으니까요.
swordfish-72만세
15/04/03 12:49
수정 아이콘
그 약간의 비에 취약한 건 각궁도 마찬가지라서 대부분 비 그치길 기다릴 겁니다.
15/04/03 15:21
수정 아이콘
사실 날씨보다는 당시 화승총의 구조상 화약을 접시에 미리 얹어놔야 하는데 뛰어다니다 보면 그 화약 다 엎질러서 실제로 총이 발사가 안되는 경우가 많았을겁니다. 물론 덮개를 만든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전쟁통에 뛰어 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15/04/03 12:31
수정 아이콘
징비록 보면서 한심스러운게 그거죠.
일본 전투복이나 평상복은 고증을 정확히 했다 하면서 군사칸베에 그대로 베껴가지고 평민들도 입고 있는 옷이 전부 비단에 자수 다 박혀있는 옷이고
조선은 선조빼고는 자수박힌 비단옷은 찾을 수 없으며, 일본 전투복은 킹왕짱 세게 만들어놓고 조선군사들은 무려 전투를 하는데 포졸복입고 네버엔딩 한국사극이 끝나는날 까지 등장할 삼지창만 다들 들고 있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수준의 전투만 보여주고..
끝나고 지방 탐방 및 기행 영상보여주는거도 군사 칸베에 그대로 베껴가지고.. 야튼 이게 친일방송인지 모를정도로 대한민국 사극을 만드는 작자들이 죄다 nhk방송만 베끼려고 하고 한국인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고증에는 힘을 쓰질 않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막말로 삼국시대 이후에 일본의 국력이 한반도를 넘어섰다고 봐야한다는게 학계의 중론이라지만 이건 뭐 초초 선진국 대 후진국정도의 차이로 만들어버리니 어이가 없는거죠.
15/04/03 13:08
수정 아이콘
끝나고 지방 탐방 및 기행 영상은 오히려 NHK따라하라고 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원래 NHK 대하드라마는 예전부터 해당 지역영상을 각 회차마다 보여줬죠. 협약체제도 되어있고 하니 벤치마킹해도 무리는 아닙니다.
15/04/03 15:38
수정 아이콘
좋은 걸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습니다만 저같이 nhk 대하드라마도 같이 자주보는 사람이 이거 베꼈네라는 생각까지는 안들도록 고증도 여러 경로를 통해서 우리 것으로 만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부활병기
15/04/03 16:01
수정 아이콘
베끼는게 오히려 단점이 될리가 있나요?

다만 조선군 맨몸 징집설은 이미 두들겨 맞은지 오래 됐는데 여기에 쓸 예산은 매번 없다는게 문제일겁니다.

임진왜란 우려먹는게 한번으로 끝날것도 아닌데 한번 투자를 하긴 해야 합니다.

사극들이 예산 쓰는걸 보면 장수들은 자주 고증이 맞던 안맞던(특히 고려 이전으로 갈수록) 폼나게 갈아주는데....
15/04/03 16:39
수정 아이콘
주체성없이 베끼기만 하면 단점이죠.
보면서 대놓고 베낀것같이 느껴질 정도인데요..
부활병기
15/04/03 17:03
수정 아이콘
애초에 역사 덕후들이 PD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동아시아 역사에 빠삭한 PD가 없습니다.

고증 모르면 도움 받는게 좋은겁니다.

NHK가 자국 역사에 대해서 탄탄한 고증으로 유명한데 굳이 다른 선으로 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상호 협력으로 서로 도움받는게 정상입니다. 일본 고증을 우리가 알면 얼마나 더 잘 알겠습니까?

조선군의 고증에 예산과 신경을 덜 쓰는게 문제지 NHK 고증 베끼는게 문제가 아닙니다.
15/04/03 19:09
수정 아이콘
nhk가 자국에 유리하게 고증을 한 것을 그대로 갖다 쓴게 솔직히 불만입니다.
저도 nhk대하드라마 고증은 믿을 수 있다 이렇게 들어왔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일본 자국의 입장이죠.
부활병기
15/04/03 15:04
수정 아이콘
돈이 없는게 클겁니다. 50부작에 제작비가 110억... 비슷한 길이면 CCTV나 NHK가 300~500억 정도는 쓰는듯 싶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지창 든 조선군 맨몸 징집설은 이제 그만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NHK쪽 고증만 반영하다 보니 일본군 장비만 레벨업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부활병기
15/04/03 15:11
수정 아이콘
그런데 한심하기 짝이 없는 수준의 전투... 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공성전, 시가전은 난전으로 찍는게 딱히 문제가 되지 않고. 전열 유지가 강조되는 야전은 패스하는건 대부분의 사극이 선택하는 일이라...

이게 돈 문제라 딱히 비난하고 싶진 않아요. 예전보다는 나아졌으니.
15/04/03 15:23
수정 아이콘
말씀대로 예산부족이 있을테니 군사 칸베에서 보여준 세키가하라 전투정도 수준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kbs사극은 우리를 무능하고 당하기만 하는 포지션으로 만들어놓고 말도 안되는 포졸들 삼지창 들고 전쟁나가는 이따위 고증을 만드니 화가나는 겁니다.
제가 처음에 nhk사극을 언급한건 예산 문제를 넘어서 저들의 지향점은 분명하다는 겁니다. 자신들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국민들이 보고 자부심을 고취하게 하는거죠. 그게 싫다면 고증을 양쪽 정확하게 해서 반영을 하던가 해야지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저는... 작년 상,하반기 nhk에서 군사 칸베에해서 그당시를 조명하네? 우리도 해볼까? 해놓고 고증은 그냥 그쪽을 갖다 베끼는 수준의 노력밖에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쪽에서 고증하는건 자신들의 우수함을 알리기 위함인 것까지 감안을 해야지 이건 뭐 왜국의 일개 다이묘의 국력보다 조선국력이 못한다는 인상을 줄만큼 고증을 일방에게 몰아줘버리고 당시 풍신수길이 온전한 정신은 아니었다지만 반 미치광이 만들어버려서 분노는 풍신수길독박씌우게끔해버리고 정확한 역사전달의 의무는 내팽개치는게 맘에 안듭니다. 솔직히..
첨부터 기대하고 보기시작해서 어쩔수 없이 보지만 보면서 인상 찌푸려질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겨울삼각형
15/04/03 12:44
수정 아이콘
임진왜란은 그냥 일본의 기습때문에 초반 망.. 테크를 탔을 뿐이지요.
실제로 임진왜란 발발 1년이 지나고 한양 수복한 이후에 조선이 징집한 정규군 병력만 해도 16만인데..

드라마 징비록의 묘사처럼 각지역별로 군역이 개판인 상황이라면 이렇게 못 뽑아내죠.
부활병기
15/04/03 15:06
수정 아이콘
오랜 평화로 점검한다고 한게 소집 정도고 훈련은 도외시한 결과가 야전에서의 수많은 도망이긴 합니다만......
15/04/03 15:13
수정 아이콘
당시 조선의 군역이 역대급 개판이었던건 맞죠. 16만 모았다고 해도 국가 총동원 수준으로 긁어모아 그정도지 어느정도 수습되고 나서는 농사지으라고 돌려보냈습니다. 병농일치제도라서 농사짓는 장정 = 병사니까요. 기습이라고하기도 뭐한게 거의 1년 전부터 대놓고 쳐들어간다고 떠들고 다녔고 요시토시가 계속 정보를 찔러준 걸요. 전쟁인데 상대편 준비 다 끝날때까지 기다렸다가 싸우는것도 말이 안 되잖아요.
나이트해머
15/04/03 17:08
수정 아이콘
병농일치는 일본이나 조선이나 마찬가지. 본질적으로 동아시아적 병농일치제의 범위 안에 있습니다. 그건 개판이라는 근거가 전혀 아닙니다.

또한 이존의 여진족과의 군사충돌 과정에서 한번 정비된 시스템이 임란 시기 조선의 동원체계이고 제대로 장부와 일치되어 동원이 이루어졌는데 역대급 개판이라면 개판 아닌 군역은 대체 뭐냐고 묻고 싶네요.
최종병기캐리어
15/04/03 16:49
수정 아이콘
정규군 16만의 수준은 둔전병보다도 못한 전투력이었을텐데...

막말로 농민 징집병이라 무장상태나 훈련도, 사기 측면에서는 꿔다놓은 보릿자루 수준이 아니었을까 예상해봅니다.
나이트해머
15/04/03 17:02
수정 아이콘
계사년초 실록기사에 나오는 16만은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워대다가 한양 탈환을 위해 파악 좀 해보자 해서 추산된 병력이었고, 일본군의 손실률이 그시점에서 40% 대에 도달하던 시점인데 꿔다놓은 보릿자루면 백년 전국시대 전쟁짬밥을 먹었다는 일본군은 보릿자루에 죽어나가는 허수아비겠죠.

애초에 일본의 전국시대 아시가루 혁명 자체가 소수 무사집단에서 병농일치적 징용군사집단인 아시가루로 중심이 넘어간 것, 즉 근본적으로 농민병인건 마찬가지입니다. 전국시대 전쟁질로 인해 사회적으로 전쟁에 익숙해서 잘싸우는 것이지 본질적으로 다른게 아니에요.
부활병기
15/04/03 17:08
수정 아이콘
나이트해머님이 잘 설명하셨지만 농민 징집병 자체는 조선이나 일본이나 같습니다. 큰 차이는 실전 경험의 차이긴 해요.

구조적으론 군관등의 비율 차이로 통제력이 좀 다르긴 하죠.

병영국가 로마 전기를 제외하면 하사관 계급이 전부 국비로 고용되지 않는건 마찬가지고.

지배층이 유사시 군관 그룹으로 흡수되어야 하는데 전쟁에 참여하는 태도가 다르긴 합니다.

사무라이와 양반으로 크게 구분이 되긴 하지만..

그 중에서 남명 조식 계열의 지배층은 실천을 중시하는지라 같이 구박받을 이유가 없긴 합니다.

또 다른 이유론 평화가 오래되면 외지의 군사 훈련은 중앙의 정치 세력에게 반란 가능성이라는 부담을 주게 됩니다.

왜적을 막자는 정여립의 대동계가 반란 모의로 고발된 것처럼 말이죠.

이러니 소집엔 신경을 써도 군사 훈련은 잘 하지 않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정에겐 '반란아냐?' 라는 의심을 사고 군역자들에겐 '아 먹고 사느라 바쁜데 왠 훈련이여?' 하는 원성을 사니...

군역을 동원해서 축성만 신경쓴 이유가 이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이트해머
15/04/03 17:19
수정 아이콘
애초에 호남 의병군 과반수는 서인이고(김천일, 고경명, 최경회 등 호남의 네임드 의병장들은 당시 호남 서인의 지도자적 인물들이죠....) 남인은 당시 조정의 지배적인 당파로 다수의 관군 지휘관들을 배출했으니 앞장서 싸우는 데 있어서 당파 따지는 건 무의미합니다. 다 나가서 싸웠죠.

애초에 사무라이가 양반보다 낫다는 식의 평가를 내리는 건 전혀 맞지 않지요.
부활병기
15/04/03 17:31
수정 아이콘
전 전시 동원과 전투력은 봉건 제도 아래 무력 통치를 해왔던 사무라이들이 더 낫다고 봅니다. 상대적으로 중앙 집권제 아래 문화 통치를 해왔던 양반 계급이 전시에 불리할수밖에 없는건 당연한데. 참신한 주장을 하시는군요.

많은 분석이 사무라이의 양반의 삶을 대비해서 논지를 전개합니다. 애초에 맞지 않다면 근거를 들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나이트해머
15/04/03 18:00
수정 아이콘
전시 동원과 전투력은 두 사회집단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아닙니다. 전국시대 일본은 사회적 분위기부터 전쟁에 익숙해져 있었던 사회라 이걸 '사무라이' 와 '양반' 의 차이로 놓고 말하는 것이 맞는 이야기라 보지 않습니다. 거기다 [남명 조식 계열의 지배층은 실천을 중시하는지라 같이 구박받을 이유가 없긴 합니다.] 로 따로 분리시켜 놓고 계신데, 이후 몇세기동안 재작성된'호남절의록'이나 '임진왜란과 호남지방의 의병항쟁'과 같은 오늘날의 의병 관련 연구들은 북인들만 앞장서서 싸웠다는 식의 주장을 부인합니다. 의병 중 가장 많은 것이 북인이라면 그것은 사실일 수 있으나 그들의 행동은 다른 양반들과 다른 특별한 게 아니었죠.

애초에 조선 군대 중기의 군관 문제는 지방의 군관들을 죄다 뽑아다 중앙군으로 올려버린 세조시기 오위의 형성부터 따질 문제죠. 지배층이 앞장섰다 여부를 문제삼기보다는.
부활병기
15/04/03 18:07
수정 아이콘
하지 않은 말을 덧붙여서 과장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겟습니다.

전 '전시에' 라는 한정을 두고 무인 집단이 도움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전쟁에 참여하는 태도가 다르다-. - 전 전시 동원과 전투력은 봉건 제도 아래 무력 통치를 해왔던 사무라이들이 더 낫다고 봅니다- 이 두 평가가 '두 사회집단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아닙니다' 라는 지적과 배치되는건지?

제가 전체적으로 사무라이가 양반보다 낫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면 그런 부분을 지적해보세요. 왜 제 의견을 과장하십니까?

제가 적은 의견에 대한 반박을 하시기 바랍니다. 독해는 중요합니다.
나이트해머
15/04/03 18:23
수정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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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층이 유사시 군관 그룹으로 흡수되어야 하는데 전쟁에 참여하는 태도가 다르긴 합니다.

사무라이와 양반으로 크게 구분이 되긴 하지만..

그 중에서 남명 조식 계열의 지배층은 실천을 중시하는지라 같이 구박받을 이유가 없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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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 대해 '전시에 임하는 태도' 라는 측면에서 양반층이 사무라이에 못한 것은 아니었으며, '실천을 중시하는 조식 계열' 과 '나머지 양반층' 이 분리되어 후자가 구박받을 이유도 없다는 말입니다만.
부활병기
15/04/03 18:42
수정 아이콘
특이하신 분이네요.

전시에 임하는 태도에서 양반층이 사무라이에 비해 못한게 아니었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징비록의 내부 비판은 눈을 감고 보시는겁니까? 오랜 평화와 구조적 문제는 둘중 하나만 강조될 부분이 아닌데. 지식 자랑을 하시려는 듯이 근거는 대지 않고 반론하시는 이유는 대체 무엇입니까?

전국시대에 녹봉을 받는 기준이 전공에서 나오던 일본의 무사 계급에 비해.
양반이라고 하나 실제론 문반의 문화 통치가 주류인 지배 계급이 전시의 태도가 못한게 아니었어요?

통치의 효율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조선의 지배계급이 우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쟁에 임하는 태도 조차 비슷하다고 보는건 지나친 평가 같습니다만.
나이트해머
15/04/03 18:53
수정 아이콘
부활병기 님// 징비록은 우수한 사료지만 마찬가지로 동시대 인물인 안방준이나 윤근수 등은 거기에 대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었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요. 교차로 파악해야 맞는 것 아닙니까.

전시 태도에 대해 양반층이 일본의 무사계급보다 못하다고 하는 주장은 대중서적을 벗어나면 찾아보기 힘든 것인데 그걸 부정한다고 참신한 주장이나 특이하신 분이라는 소릴 들을 것은 없어 보이는데요. 오히려 조선후기 양반사족층의 특권주장의 기저에는 임란때 앞장서서 싸우는 등 국가를 우선시하고 앞장서서 국난극복에 임했던 존재이므로 그만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이유도 거론됩니다.

전쟁에 익숙했던 당시 일본 사회의 특성상 지배층인 무사계급이 전쟁에 익숙하지 않은 양반과 비교해서 군대 내에서 더 효율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적절한 지휘를 수행했다고는 말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태도가 아니라 익숙함의 문제죠. 대표적인 의병장이었던 조헌은 의병을 일으켰을때 자신은 군사 일에 서투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당시 조선 양반들이 군사 기술적 측면에서 일본 무사보다 서투를 것이나, 그것과 전쟁에 임하는 태도에서 무사보다 못하다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지요.
부활병기
15/04/03 20:22
수정 아이콘
나이트해머 님//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었다고 비판하는건 남인을 감싼 당파색이지.

임란 초기에 양반 상당수가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는 기록이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한' 기록이 되겠습니까?
대중 서적이 아닌 기록에서라도 사무라이의 전시 태도보다 양반의 전시 태도가 못할게 없다는 근거라도 좀 가져와 주시기 바랍니다.

양반의 상무 정신은 사무라이 못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을 전 나이트해머님 빼고 본적이 없습니다.

이미 서두에서 '큰 차이는 실전 경험의 차이긴 해요.' 라고 제한을 건 상태에서 추가적인 설명을 한 부분을 트집잡는건 무슨 이유신가요? 독해 능력에 문제가 있으십니까?

별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 따로 생각하죠?

오랜 평화가 이런 시스템을 만들고. 이런 시스템이 다시 전쟁 수행에 있어서 무사 집단보다 비효율적인 대응을 하는 순환 효과가 일어납니다.
나이트해머
15/04/03 20:48
수정 아이콘
부활병기 님// 애초에 대중서적에서나 전시 태도를 비교합니다. 그 영역을 벗어난 시점에서 양반사족층이 임란에 대해 무기력한 태도를 취했다는 건 이미 논외인 시점에서 대체 언제까지 무기력했다고만 하실지. 안방준이나 윤근수 등의 인물들도 임란을 겪었고 안방준은 아예 의병장으로 뛰었던 사람들인데 이들의 비판은 부정하고 징비록은 교차검증할 필요가 없는 그런 절대적인 신뢰도의 사료라는 말인지?

상무정신은 전쟁에 임한 태도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전쟁에 임해 앞장서서 나가 싸우는 건 상무정신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고경명, 조헌 등 당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들은 그들 스스로가 군사에 능하지는 않아도 사회지도층으로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관군 동원에 적극 협조했고, 관군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을때 곧바로 직접 일어났습니다. 이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이전까지 국시로 정해져 있었던 사병 금지 원칙 뿐이고, 애국의병은 괜찮다는 허락이 떨어졌을때 곧바로 적극적인 투쟁에 나섰죠. 이게 일본 무사들보다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못한 겁니까. 오히려 이걸 못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더 놀랍습니다. 상무정신 = 전쟁에 임하는 태도? 아닌데요.

군사에 서투르다는 것과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적극적이었다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전자는 기술이고 후자는 태도죠. 적극적으로 전쟁에 대응하여 맞서 싸운다는 이념적, 사상적 부분이 군사기술에 서투르다는 기술적 부분에 의해 부정될 수 있다는 이야기신지?


전제를 깔았으니까 부분부분 지적할 것도 지적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라도 있습니까. 그런건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독해에 문제있다는 식의 모욕은 언제까지 하실지 지켜보고 있지요. 님의 리플은 작은 지적도 해서는 안되는 절대적인 그런 것이었습니까. 그걸 요구한다면 네. 알겠습니다.
부활병기
15/04/03 21:24
수정 아이콘
나이트해머 님// 내 지적은 숭고하지만 독해에 문제가 있다는 반론은 모욕으로 느끼시는 태도 잘 지켜봤습니다. 적당히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내로남불도 적당해야 공감을 얻습니다.

이전에도 나이트해머님 지적에 민감하게 반응한 적은 없었어요.

조선은 임란중에 문제의식을 느낀 류성룡이 속오군 체제를 조직하기 전까지 양반에게 군역의 의무를 지우지 않았습니다. 현직 관료와 학생이 합법적으로 면제를 받았는데. 실제론 거의 대부분이 면제 대상에 속했습니다. 그 속오군 체제도 전쟁이 끝난후 무력화 되었습니다만.

그중 의병장으로 나선 몇몇 양반들의 예를 거론하며..

문관 그룹이 주류인 양반이 사무라이와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별 차이없다는 주장은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군요. 그러니 별 차이없다는 근거라도 부탁드립니다. 상무 정신과 또 전쟁에 임하는 태도는 다르다는 말장난도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군역을 이행하지 않던 전체 양반중에 의병장은 몇%나 되겠습니까?
나이트해머
15/04/0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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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병기 님// 남에게 내로남불이라면서 자기자신을 옹호해 봤자 님이 여기서 자신의 리플에 조금의 지적도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호남절의록에 이름이 수록된 의병장들은 1200여 명에 달하며, 대부분 뒤에 가문이 수록되어 있는 양반층입니다. 그나마도 이는 불완전한 것으로, 예를 들어 남문창의록(임란 초기 장성 남문에서 모여 구국의병을 결의한 이들을 기록)에 이름이 수록된 이들 중에서는 30%정도밖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호남에서만 처도 이정도인데, 다수의 의병장을 배출한 경상도나 충청도 등 기타지역을 합친다면 더이상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죠. 거기다 의병장이 되려면 평상시에 명망이 뛰어나거나 가세가 커야하는만큼 그렇지 못한 양반계급들은 의병활동을 하더라도 의병장은 되지 못하니 이들까지 합친다면 양반층이 임란에 있어서 무기력했다는 이야기는 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부활병기
15/04/0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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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해머 님// 좋은 얘기입니다. -조금의 지적-이라고 자기 자신을 옹호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과장해봐야 본인이 내로남불식 태도를 보이는건 변하지 않습니다.

당시 조선의 인구는 900~1200만 근처로 추정되고. 양반들은 거의 군역이 면제되었습니다.

호남 절의록은 임진 왜란,정유재란 당시의 의병장만 언급하는게 아니라. 병자.정묘호란과 이괄,이인좌의 난 전부를 포함해서 1200여명을 언급합니다. 호남에서만 쳐도 이정도라는 숫자를 부풀리는건 자제하시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호남절의록의 인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시점에서 본인이 얘기하시는 교차검증은 어디로 갔습니까?
나이트해머
15/04/0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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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병기 님// 조선 양반층의 특권은 양난 이후에야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갔고 임란 이전에는 암묵적인 수준이라 지역이나 상황에 따라서는 인정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퇴계 이황 정도 되는 인물도 때로는 역을 질 차례라는 말을 듣습니다. 대다수 면제라고 무작정 이야기하기 전에 어느정도였는지부터 찾아봐야 하겠지요. 또한 양반의 수가 급증했다고 하는 조선후기에도 양반이 다수가 되었다기보다는 양반을 지향하는 사람의 수가 다수가 된 걸로 보이는 시점에서( http://m.blog.naver.com/lord2345/50190121971 )전체 인구 중 소수인 양반층 중 호남에서만 처도 수천여 명이 의병으로 최전선에 나간 것은 사실상 계층 전체가 임란의 최전선에 나갔다 봐도 별로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호남절의록은 물론 불완전하죠. 근데 교차로 검증해보면 이는 없는걸 집어넣었다기보단 있는걸 추려 뽑았다는것으로 확인됩니다. 간추려 뽑은게 1200여 명이라면 이건 의병활동에 참여한 인원수는 수천에 달할 것으로 추산해도 문제는 없죠.
부활병기
15/04/0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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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해머 님// 거칠게 계산해보죠.

조선의 인구를 대충 천만으로 잡고. 호남의 인구를 1/4로 잡습니다. 호남 양반 계층을 10%로 잡으면 25만이 나올겁니다. 이중 일반적인 군역 대상 조건인 남성+15~60세로 잡으면 6.25만 가량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여기에 왜란+호란+이괄의난+이인좌의 난 4번의 조건을 대입해보고. -의병장만 기록했을테니 실제로는 호남의 의병 참여자만 수천명이었을것이다-까지 인정한다 칩시다.

명종 이후에 쓰여졌다고 알려진 작자 미상의 호남 절의록이 판본마다 인명 내역이 다른것을 있는걸 추려 뽑았다는 해석으로 인정하기로 해요.

5~6만의 호남 지배계급에게 4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1200명+@가 의병으로 나섰다.

이러면 전국의 양반 계층 전체가 전쟁의 최전선에 나서게 되는군요. 조금의 지적 잘 들었습니다.
나이트해머
15/04/04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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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병기 님// 너무 거칠어서 고려대상도 안되는 헛계산 감사합니다. 일제시기 전후에 추산해야 나올락말락한 호남인구 한반도 전체의 1/4 라는 주장으로 모집단에 수십만에서 백만단위로 덧붙이고 17세기 중반에나 지역별로 나올락말락한 양반비율 10% 추정으로 다시 뻥튀기 시켜서 양반 머릿수를 팝콘튀기듯 뻥튀기하셨군요. 물론 그 뻥튀기로 추산한 인원도 전체가 군역의 원칙적인 대상이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을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서애집에 올라와 있는 8도 전체의 총 군액은 35만.)

물론 호남절의록이 전체 의병참전 양반 중 일부만을 추산한 거라던가 하는 걸 무시한다거나 어떻게 해서든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활동 양반 수를 줄여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양반인구 벙튀기 노력만큼이나 놀랍기도 하고요.

어떻게 해서든 양반을 부도덕하게 만들고 싶어서 노력하시는 모습 잘봤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치에 맞는 숫자가 들어간 계산식이었다면 설득력이 부여됐을지도 모릅니다만.
부활병기
15/04/04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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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해머 님//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불만이면 직접 계산해보시죠.

신용하-권태하 교수 추론 조선 인구는

1639년 =>1080만
1657년 =>1150만
1675년 =>1300만
1693년 =>1665만

입니다만. 이런거 귀찮아서 천만으로 계산한 겁니다. 또 인조 24년의 호남 인구는 28%를 넘었습니다. 나이트해머님 뇌속에선 인조 시기가 일제시기 이후로 생각되시나 봅니다? 언급한 시기에 호남의 인구는 28%~18%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데 뻥튀기라고 뻥튀기하는 모습 잘봤습니다.

1592년부터 1728년까지의 호남 의병장 수를 전국으로 확대해도.

조선의 연간 군역 부담자를 계속 더하면 어떤 비율 격차가 나는지 생각이란걸 좀 해보시기 바랍니다.
군역을 양반이 적극적으로 회피했다는 분석이 유력한 이상 의병장 수로 커버가 안되요.

어떻게든 양반을 도덕적으로 만들고 싶어서 노력하시는 모습 잘봤습니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다면 수정하시겠지만. 기대하진 않아요.

오래된 전쟁 속에서 전투의 공으로 지위가 결정되던 사무라이 계급에 비해, 평화를 유지하며 문화통치를 펼친 양반계급은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달랐다...

이게 비도덕적인 평가인지 도저히 알수가 없군요. 어디까지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평가해야 합니까?

원하시는대로 전쟁에 대한 익숙함을 빼도 군무 수행면에선 문제가 됩니다.
부활병기
15/04/03 18:17
수정 아이콘
호남에서 북인들은 정여립의 난으로 싸그리 피해를 입었는데. 호남의 의병장들은 과반수가 서인이었다는 주장이 반론이 되기 힘들다는건 잘 아실만한 분이 왜 이러십니까?

전 사색 당파중에 북인의 후예들이 가장 의병 참여율이 높았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참여율을 따져보면 그런걸요.

그리고 그 성향은 실천을 중시한 학파기에 이런 특징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북인들만 앞장서서 싸웠다는건 문제가 있는 주장일겁니다만 제가 '북인들만' 이라고 한적이 없으니 그런 주장을 할때나 반박하시기 바랍니다. 이순신을 비방한 계열에 북인도 포함되는등 복잡한 문제지요.
나이트해머
15/04/03 18:31
수정 아이콘
의병에서 북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다고 하는 것과 사색당파 중에서 북인이 의병 참여 비율이 가장 높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죠. 각각의 당파가 당시 전체 사족층에서 차지하는 숫적 비율을 고려하지 않았으니까.

전 지도자적 인물들이 의병활동 과정에서 거의 몰살당하다시피 한 당시의 서인계열이 다른 당파에 비해 의병 참여 비율이 '덜했다' 고 보지 않습니다. 당시 가장 소수파였기에 전체 머릿수가 적었고, 그 결과 의병 계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았을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남인층이야 조정의 지배적인 당파였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고. 북인층을 따로 분리시켜 특별시할 이유는 없죠.
겨울삼각형
15/04/0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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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따지면 통제사 휘하 수병들 수준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제사 휘하 수병들이 평소에 가장 많이 한일이 청어잡이였다고 하는데요.
부활병기
15/04/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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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스는 저 당시 마카오에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으로 돌아와서 역시 일본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전언을 듣고 적은거라 과장이 있긴 해요.
15/04/0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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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가 죽지만 않았으면 전쟁이 계속되고 조선은 양분되어 한반도 남부가 일본땅이 되었을 거라는 주장이 있던데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습니까? 황급히 쌓아올린 왜성도 함락시키지 못하는 조선군과 명군 수준으로는 왜군을 몰아내는 건 불가능하고 결국 땅을 내주고 화평 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15/04/0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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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일본측 계책이었지 이미 전세가 넘어가서 불가능했을겁니다. 서해를 장악당해서 보급도 힘들었고, 성에 있어봤자 굶어죽기 딱 십상이었어요.
일본측 피해도 매우 크고 명분없는 전쟁에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히데요시가 죽은게 본국으로 튈 좋은 명분이었던거죠.
나이트해머
15/04/03 21:25
수정 아이콘
뭐랄까... 굉장히 옛날에 다음 토탈워에서 봤던 왜성논란 비스무리한데요.

그때 이야기된 바로는 왜성은 장기적으로 그 지역을 영역지배하려는 게 아니라 히데요시 죽기전에 바다로 밀려나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위치를 잡고 지어졌으며, 자급자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장기전을 벌일 경우 하늘에서 만나라도 내리지 않는다면 버틸 수 없다, 정도였던...
바다표범
15/04/03 22:46
수정 아이콘
함락은 못했어도 재해권을 잡고 있는 이상 말라죽는게 시간 문제였죠. 울산성 전투만해도 가토가 죽다살아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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