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한번 해볼래?"
갑자기 뜬금 없는 소리를 친구녀석이 하더군요. 소개팅이라.. 참 추억의 단어입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솔로로 살다보니 친구가 보기에 딱했나 봅니다. (후훗 제 전투력은 30년입니다) 저도 언젠가 부터 불안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이러다가 연애도 못하고 인생 끝나는건 아닌가 말이죠. 그러게 대학교때 해준다던 소개팅 다 갔다 차버린 제가 멍청이이긴 하지만 이제와서 어쩌겠습니까.. 저도 이러고 살줄은 몰랐거든요.
근데 왜 돈벌땐 안해주고 백수가 되서야 해주는거니.. 하아.. 어쩌지 걱정이 들더이다. 만약 잘되면 어쩌지. 난 아직 취직 못했는데.. 허엄..
밤하늘에 달이 뜨던 그 날 두눈을 감고 차분히 명상에 빠져 감성이라는 바다에서 이성이라는 배를 타고 찬찬히 노를 저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녀를 만난다고 해서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 또 내가 마음에 들거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지요. 우선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어떤 사람인가 대화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문제를 빠뜨렸습니다.
평소에는 멀쩡하고, 입담도 드립도 방귀대장뿡뿡이가 뿌앙뿌앙 쏴대듯 터지는 데, 꼭 마음에 드는 여자분을 만나면 하늘에서 그분이 강림을 하시거든요.
맞습니다. 찌질이의 신이요.
"넌 왜 여자한테는 어버버 대고 그러냐 헛소리 하고"
"오빠 평소에 하듯이 하면 생길텐데 왜 없어요? 그냥 평소 하듯 해요"
네네 알고 있습니다. 근데 참 말이 쉽지 그게 쉽진 안터이다. 호감이 생기면, 긴장을 하고 긴장을 하면 "찌..찌.. 찌질대버렷!!" 이 되는데
증상을 알면서도 이걸 어떻게 고쳐야 하나 이 미친 불치병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렇더랍니다.
또 인간유형을 말하자면, 저는 탁재훈 같은 [캐리형]의 입담이라기 보단 윤종신 처럼 주워먹기를 통한 [인자기형] 과 누군가 대화에서 옆에서 조미료를 팍팍 쳐서 "아 그럼그럼~" 북돋아주는 [다시다형],대화를 하면 그걸 들어주면서 "맞아맞아" 맞장구 쳐주는 [덩기덕쿵더러러 형] 이거든요.
이 유형의 문제점은 무엇이냐. 캐리형과 만나면 으쌰으쌰 영혼의 듀오가 되는데, 누군가 대화캐리가 없으면 그걸 이끌어 나갈 능력이 좀 부족해요. 남자들간에는 나름 캐리가 되는데, 여자들하곤 뭐 대화 코드를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코드연습이 되어있지 않다 보니 코드잡다가 다쳐 손가락에 맺힌 피방울이 눈에 맺혀 피눈물이 뚝뚝뚝 흐릅니다.
그렇습니다. 어찌되었든 하기로 한거, 찌질의 신이 오지 않도록 항마력을 늘리고 굳은 다짐을 하는 수밖에요.
난 지금 친구를 만나는 거다. 난 지금 거래처 직원을 만나러 가는 거다. 중얼중얼..
그렇게 주선자와 커피숍에서 만난 그녀는 하얀 블라우스에, 긴머리 끝을 약간 파마 준 모습이었습니다. 하하하 안녕하세요.
커피숍에서 이런 저런 에피타이져 대화를 하다가 주선자가 여자친구랑 영화를 보러 간다고 가버렸습니다.
그 옛날 디아블로2 문에 불이 들어오듯 진정한 전장터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이제 구원군은 없는 외로운 전장터로..
그래도 대화가 잘 맞아 대화는 어찌저찌 술술 되었습니다. 제가 그전 했던 소개팅 과는 달리 여자분이 대화를 주로 하는 상황이어서 제 능력치가 살아나는 느낌입니다. 슬쩍슬쩍 농담도 던져대고 뭐.. 나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느낌입니다.
그러다가 머리를 뒤로 스윽 쓸어넘겨서 목선을 보이는데.. '허얼.... ' 소리가 마음 한 구탱이에서 나오더군요. ...
그때였습니다. 스물스물 그가 오는것이 느껴졌습니다. 찌질의 신께서 저의 어깨를 붙잡는 것이 말입니다.
갑자기 몸이 경직되고 머리속이 멍청해지면서 웃기만 하기 시작했습니다. 큰일이다 난 이곳을 빠져나가야 겠어.. 아 안되잖아!
이 신이 더이상 오기전에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자.. 자리를 옮길까? 밥먹으러 가자"
신은 말했습니다. [들어오는것은 자유지만 나가는 것은 아니란다] 이자식아 니가 멋대로 들어왔잖아..
밥을 먹으면서 뭔가 이건 꼬여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말하는 것에 자신감이 없고, 포크질도 긴장해서 어법버 대질 않나, 대화도 "하하하 아 그래?" 만 연신 하며 몰핀을 넣을 뿐이었죠. 으아 이걸 어쩌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아까처럼 머리는 왜 자꾸 쓸어 넘겨서
접신된 찌질이가 쌈바춤을 추게 만들게 하는건가,,(이거 며칠전에 유게에서 본 여자가 호감있는 남자에게 하는 행동.. 죄송합니다 제가 연애를 글로 배워서..)
이제 남은것은 술의 힘을 빌리는 수 밖에 없겠습니다. 맥주 마시자고 한 다음에 맥주먹으면서 대화를 이어나가야 겠다.. 머리속에는 홍감독께서 박주영을 생각하듯 그것만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찌질로 인해 사지가 파열되고 피가 튀기는 상처투성이 몸뚱이가 흔들리는 것을 부여잡고 이 최후의 대사를 언제 외쳐야 되는가 타이밍만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찌질의 신은 저를 놓아주지 않는군요. 으아 그만 찌질대 제발.. 그 이상한 소리, 대화에 맞지도 않는 소리도 그만하고
"그러고보니.. 너 여긴 어떻게 왔어?"
"난 차 끌고 왔지 흐흐" [어? 차가 있어? ]
"근데 xx(주선자)에게 얘기 들었어? 나 10시에 과외가 있어서 과외하러 가야해" [이시간에????]
찌질의 신은 격하게 웃으며 저의 뒤통수를 날리었고, 머리속은 제야의 종소리마냥 데엥 데엥 구슬프게 울렸습니다.
"아.. 그렇구나. 아쉽네. 과외 아니면 더 보면 좋을텐데.. "
그렇습니다. 찌질의 신은 끝까지 저를 놔주지 않았습니다. 에프터를 신청해야지 멍청한 놈아..
그러고 헤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망한 것입니다.
어버버버 대면서 그녀를 보내고 근처 벤치에서 알제리전 3:0을 맞이한 감동님 처럼 얼굴을 부여잡고 그대로 굳었습니다.
그리고 한숨한번 크게 내 쉰 후에 하늘을 보며 하하하 웃었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ㅠ
읽어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혼자있고 싶습니다. 다들 나가주세요.ㅠ
ps. 아 훈훈하다 ^_ㅠ 이래야 pgr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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