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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은 우리가 직접 지각하게 되는 것을 '인상(impression)'이라고 불렀는데, 다만 러셀은 그에 대해 '감각재료(sense-data)'라는 훨씬 진전된 개념을 사용했다. 인상은 앞서 설명한대로 우리의 의식(마음)에 직접 나타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정신적인 것이다. 직접 경험되는 것이지만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셀은 경험주의의 전통을 계승하는 과정에서 로크, 버클리, 흄으로 이어지는 인식론의 전개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각되는 것'이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는 관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각되는 것'이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은 버클리의 실수였는데, 러셀은 그 이유가 '지각되는 무엇'과 '무엇을 지각하는 것'을 혼동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무엇을 지각하는 것', 즉 지각 행위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지각되는 무엇'은 마음속에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러셀은 그 '지각되는 무엇'을 감각재료라고 불렀으며 그것은 우리 머릿속에 있기는 하나 마음과 같은 정신의 영역이 아니라 물리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흄의 경우 '인상'이라는 용어가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감각재료'라는 말은 사람들에 따라 종종 마음속 존재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러셀의 경우에는 물질적인 것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그래서 인상과 달리 러셀의 감각재료는 물리적 대상의 표면 일부일 수도 있고, 빛이나 소리의 파장일 수도 있고, 관찰자의 신경계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철저한 경험주의자의 관점을 유지한 측면에서 러셀은 흄을 계승했다. 그러나 흄과는 다른 발전적 견해를 보이면서 흄에게서 나타나는 회의주의적 색채로부터 한층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단순하게 말하면, 흄의 경우에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이 인상들(과 그 조합들)로 제한되기 때문에 물리적 세계가 있다고 확언할 수 없었다. 러셀도 우리가 물리적 세계 자체를 경험한다고 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흄과 동일한 노선에 있다.
그러나 러셀은 감각재료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물리적 세계의 파편들을 경험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것을 토대로 논리적 구성을 통해 물리적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런 점에서 러셀은 근대 영국 경험주의를 진일보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박병철 <버트런드 러셀:확실한 지식을 찾아서>中 p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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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기술이론이나 러셀의 역설, 논리학을 제외하고는 러셀의 철학적 내용에 대해서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흄과 비교하면서 그의 초기 철학의 시작을 간략히 소개한 부분이 있어 옮겨봤습니다. 이후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러셀은 감각재료를 물리적인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물리적 존재를 추론해냅니다. 물리적 존재없이 감각재료들만 존재한다는 가설보단 물리적 존재를 가정하는 편이 상식적이고 단순한 가설이라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요약하자면) 앎의 최소단위로서의 감각재료들의 결합을 원자명제로 삼아 세계를 그려내는 논리적 원자론을 주장합니다.
#1
비교대상이 있으니 러셀의 인식론이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떻게 경험주의를 계승-발전시켰는지 이해하기는 쉽지만 러셀의 인식론만 떼어놓으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감각재료가 무엇인지, 그러니까 '지각되는 무엇이며 머리속에 있지만 물리적인 것'이 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지각되는 것은 대상이고 머리속에 있는 건 두뇌나 신경, 혹은 뉴런일 뿐이니 둘이 같다고 생각하긴 힘듭니다. 경험주의 전통 하에서 우리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각된 무엇일텐데, 지각되는 무엇을 말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게다가 물리적이라니 도통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경험주의 전통에서 실재를 설명해내기 위해서 요청된 억지스러운 개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2
어떤 책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러셀은 기적이 일어날 확률과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거짓을 말하고 있을 확률을 비교해보면 후자가 더 현실적이라면서 기적을 비판합니다. 위와 같이 유명 철학자에 대한 책을 읽다가 그 내용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다보면 비슷한 이유에서 자신이 없어집니다. 러셀이 틀렸을 확률과 저자(박병철)이 틀렸을 확률과 제가 틀렸을 확률을 비교해보면 제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믿고 의지할 선생님이 없으니 이럴 때마다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답답하긴 합니다.
#3
러셀의 인식론과 논리적 원자론에 대한 이야기는 10개의 챕터 중에서 중반부 3개의 챕터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부분에서는 다른 철학적 내용들과 종교관이나 운동가로서의 생애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철학에만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러셀 개인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도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생애만 보면 전반부는 이론가로서 지위를 굳히고, 후반부에는 실천운동가로서 이름을 날린다는 점에서 촘스키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논리로 무장하고 공격적인 태도로 키배에 임했다는 점에서 피지알러에게 모범이 되는 건 아무래도 러셀이겠죠. 러셀의 에세이를 읽어보면 논증이 뚜렷하게 보이고, 그 논증들이 타당하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더군요. 저도 그런 키배를 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4
모든 책이 각각 하나의 내용만을 담고 있다면, 기왕이면 짧은 책이 좋겠죠. 그런 의미에서 살림지식총서는 좋은 기획입니다. 짧고 간결한데 내용은 두꺼운 책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알찹니다. 몇 개 읽어본 것 중에선 푸코와 부르디외, 칸트를 소개한 책이 좋았습니다. 영 아니다 싶은 책도 있었는데 기억이 잘 안나네요. 지금 이 책은 좋다고는 말하긴 힘들어도 중간 이상 정도는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살림지식총서 가격이 예전엔 3300원이었는데 어느새 4800원으로 올랐습니다. 양심상 부담된다고는 못하겠지만 만원에 세 권에서 만원에 두 권으로 변하니 느낌이 다르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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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군시절 읽을 게 없어서 러셀 자서전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너무 긴데다 자기가 썼던 편지를 거의 전부 수록해준 그 꼼꼼함 덕분에 참 괴로웠었죠. 전반적으로 지루한 가운데 눈에 띄는 곳은 바로 그 전반기의 삶에서 후반기의 삶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실존체험을 서술한 부분이었습니다. 40대 전후였던 것 같은데, 혹 러셀 자서전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그냥 다른 부분 다 떼고 그부분만 읽어보시면 됩니다. 전반에 이론가로서 지위를 굳히고 후반에 실천운동가가 되었다라기 보다는, 그냥 전반과 후반이 전혀 다른 사람이에요. 윌 듀란트의 평도 기억에 남는데, "문제의 체험 전에 만나봤을 땐 창백하고 빼빼마른 기괴한, 그냥 걸어다니는 수학 공식이나 다름 없던 사람이었는데 체험 후에 보니까 불같이 열정적이고 인도주의적 사회주의자가 되어있었다." 그런 식으로 말했는데, 좋은 묘사로 기억합니다.
전반부 후반부 얘기는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렇게 평가할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촘스키가 사회운동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론가로서 지위를 굳혔기 때문에' 사회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이론과 별개로 실천적이어야 할 문제의식을 느꼈기 때문이겠죠. 소개해주신 윌 듀란트의 평은 러셀이 사회주의자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순 있겠지만 어쨌든 참 인상깊네요.
저는 학부 수준 밖에 모르기도 하고, 또 OrBef님이 생각하는 제대로의 기준과 대중교양서의 수준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칸트 등은 일단 내버려두고 게티어 반례부터 시작하는 현대 인식론의 흐름만 따라가면 조금 공부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을 바라면야 양도 많아지고 어려워지겠지만요.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