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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은 고백 : 29살 모태솔로인 남자의 후기
태어나서 첫 고백을 하고 그녀에게 좋다는 말을 들은 지 2년 5개월, 연애한다고 휘청이긴 했어도 운 좋게 시험에 합격해 시작하게 된 사서의 길은 1년 7개월, 그리고 우리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지 한 1년. 가족이 늘었다.
29년 동안 참았던 연애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신혼생활을 1년 이상은 지속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건만 결국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을 어쩌지는 못했는지 아니면 아빠 엄마의 사랑이 불타올랐던 건지 신혼 3개월 만에 네가 생겼단다.
네 엄마가 임신한 것 같다고 테스트기를 사오라고 하고 결과를 확인했을 때 아빠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단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거든. 어떻게 알았냐고? 아빠는 어른이거든. 어른은 다 알고 있단다.
테스트기의 빨간 2줄은 아주 선명했지만 우리의 생활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단다. 아직은 실감할 수가 없었거든. 그러다가 병원에 가서 확실하게 진료를 받고 너의 할아버지 할머니께 '죄송해요. 제가 엄마 아빠를 할아버지 할머니로 만들어 버렸네요.' 라고 했을 때부터 내 가슴은 조금씩 두근거리기 시작했단다.
아내가 먹고싶은게 생기면 한밤중에도 뛰어나가야 한다는 선배들의 말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졌지만 네 엄마는 고맙게도 입덧도 없었고 당기는 음식도 많지 않았단다. 그래서 아빠가 당기는 음식인 냉면을 정말 많이 먹었단다. 일주일에 세네번 먹었어.
네가 점점 커질수록 네 엄마의 배도 불러왔고 너의 모습을 초음파로 볼 때면 참 경이로움을 느꼈단다. 손을 흔들고 발을 차고 초음파로 흐릿하게 보이는 너의 얼굴을 보며 엄마 아빠는 서로를 닮은 것 같다며 결론이 나지 않는 끝없는 논쟁을 벌였단다.(기뻐해라 아들. 이 논쟁은 엄마가 이겼어. 넌 나를 더 닮은 것 같구나.)
어느새 배 밖에서 네 손발이 보일정도로 활발해진 너의 움직임을 보며 웃다보니 어느새 막달이 되었고 네 엄마는 친정에 내려가 있기로 했지. 사실 이때 아빠는 쪼금 신났단다. 결혼하고 나서는 게임을 많이 못했거든. 며칠간 밤늦게 게임을 실컷 했는데 어느 순간 그다지 재미가 없더구나. 이미 함께하는 생활에 익숙해진 건지 혼자 하는 생활이 못 견디게 쓸쓸했어.
그러던 어느 날 새벽 5시 반 전화가 왔다. 나올 것 같다고. 나는 직장에 전화를 하고 차를 몰고 2시간이 넘는 거리인 청주까지 단숨에 달려갔단다. 긴 기다림 끝에 진통이 5분 간격으로 오고 우리는 병원으로 갔지. 아. 아빠는 그날 엄마가 그렇게 비명을 크게 지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단다. 네 엄마의 퉁퉁부은 눈을 보며 군대가는 것이 더 나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 정말 어쩔 줄 모르겠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네가 태어났단다.
그때 아빠는 엄마 머리 곁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네 머리가 보였고 그 다음순간 네가 나왔다. 너는 나오자마자 누가 엉덩이를 쳐주기도 전에 우렁차게 울어댔지. 갓 태어난 아기는 징그럽다고들 하지만 넌 사랑스러웠다. 귀엽고.
어느덧 네가 이 세상에 나온 지도 한 달이 지났구나. 아빠는 네가 자라면 하고 싶은 일이 많단다. 같이 장난도 치고, 이곳저곳 여행도 다니고 싶고 같이 만화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싶어. 함께 배드민턴이나 축구도 하고 싶고. 이건 엄마한테는 비밀이지만 너랑 게임도 하고 싶단다. 게임은 아빠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부분이거든. 그리고 판타지나 무협 스릴러 같은 아빠가 좋아하는 소설들도 함께 읽고 싶단다. 물론 아직은 먼 이야기이지만 말이야.
아빠가 보니 엄마도 엄마 나름의 많은 계획이 있는 것 같으니 넌 아주 바빠질 듯싶구나. 아빠랑도 놀아주고 엄마랑도 놀아주어야 할 테니 말이야. 네가 우리의 말을 이해할 나이가 되면 많은 이야기를 해줄게.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 우리 사는 세상의 이야기. 아빠는 네가 할 많은 질문들이 기대가 된단다. 네가 궁금해 하는 질문들에 대답해 주는 것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볼 네 모습이.
한때는 찌질했고, 소심했고 나약한 사람이었지만 너는 아빠가 그런 사람이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게 멋진 아빠가 되어줄거란다. 어진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축하한다. 아빠랑 엄마랑 재밌게 살아보자.
너의 탄생을 축하하며 2014년 4월 28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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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고백 성공했다고 PGR와서 신나게 글 쓰던데 어제 같은데. 이런 게 인생이겠죠?
PGR식구들에게도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