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상황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50대의 한 남성이 중앙로역에서 갑자기 휘발유통에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지하철 바닥에 뿌렸고 사고가 난 제1079열차는 멈춰있어서 다행히 승객들이 빠져나갔으나, 반대편에서 진입한 12량 제1080열차에 탄 대부분의 승객들은 번진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갇혀 192명(신원 미확인 6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그 후 변을 당한 당사자들을 추모하는 물결이 일고 재난대책 미흡이나 기관사의 대처실수에 대한 말들이 나오고 추모비가 건립되는등의 후속조치가 뒤따랐지요. 특히 그 때 여러 다큐특집으로 피해자 당사자들과 유가족들의 후유증을 보면 2차 피해에 대해 조명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당시 피해자중 한 명은 트라우마때문에 몇년간 대중교통 이용 후유증 및 공황장애에 시달렸고 끝끝내 신원파악을 못하고 실종된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오열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뼈대만 남은 객차내에서 제대로 수습한 시신이 체 60여구가 안된다고 하니 그 유가족들의 심정을 차마 헤아릴 수 없게 되었지요.
당시 중앙로역 사령실과 기관사, 그리고 신고를 접수한 소방 당국의 미숙하고 안일한 대처로 당국은 수많은 질타를 받았으나 그 날에도 수많은 시민들을 구한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출동한 119 대원들은 역사 내에 쓰러진 부상자들을 100명 가까이 구출하였고 출장 근무 중이던 지하철 공사 직원 2명은 연기속에서 시민 10명을 구출하고 안타깝게도 연기에 질식사해 숨졌습니다.
또한 그때 수많은 사연을 가진 승객들의 통화 내용이나 문자메세지가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었지요. 용돈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어머니의 음성메세지, 조금 늦을거라며 안심시키려는 오빠, 일부러 헤어지자는 연인의 연락... 아래 문자메세지를 보면 참 가슴이 미어집니다. 볼 때마다 울컥해 눈물이 나요.
현재는 국내의 모든 객차가 타지 않는 불연 소재로 교체된 상태이고 또한 역사 내에 비상등과 유도등 등 화재에 대비한 안전장치가 완비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대구지하철노동조합은 10주기를 맞아 추모위원회를 결성하고 문화제, 사진전시 등의 행사를 열기로 한다고 하네요. 우리의 재난 대처 능력, 안전불감증에 대해 다시한번 돌이켜 봐야할 슬픈 역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전람회 - 고해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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