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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9 11:57
구타-가혹행위, 보급이나 지원 병과에 대한 내놓고 무시, 육사- 육대 출신에 대한 과도한 엘리트 주의- 아님 계급이 높아도 인간으로 안봄-, 심한 연공서열로 인한 인사 배치, 군 상층부가 전쟁 승리보다 자기 보신에 대한 강한 욕구. 현실적인 전술과 전략적 승리에 대한 노력을 하기 보다는 감상적인 낙관주의에 의거한 전쟁 구상. 민간에 대해 통제가 안되는 군문화, 과도한 정신론과 근성 강조. 사관과 부사관 간이 관계가 최악. 전투력 증가 보다 보여주기식 전력 증강....
응 적고 보니 남 일이 아니네요. 괜히 (역사적 의미가 아니라) 황군의 후예가 아니라능.
12/11/29 12:01
분명히 그 원인은 일제와 지금도 이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우익 쪽에 있지만, 일본군에 대한 분석이나 변명, 그들도 피해자라는 시각을 단 한 치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정말 싫습니다. -_- 그 글에 댓글로도 썼지만 북한이 지금도 멀쩡히 있으니 북한군부터 북한 편 들었던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분석도 하지 말아야 되는지... 저는 지금까지 북한을 미화하고 있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고보니 태평양 전쟁 글에서는 일본군 미화, 한국전쟁에서는 국군 북한군 미군 모두 미화, 5.18 글에서는 계엄군 미화... 많이 했네요 =_=a 제 글은 다 그런 거 분석하는 글이었으니... 아무튼 좋은 글 잘 봤습니다
12/11/29 12:06
일본군의 막장성이야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수 없으니까요.
진짜 파고들수록 이렇게 양파같은 군대는 십자군밖에 없을 것 같네요.-_-
12/11/29 12:08
솔직히 십자군도 1차 시기 민중 십자군이나 4차 십자군 빼면 당대 기준으로 약간 도가 넘은 수준에 불과하죠.
난징과 비교 불가 입니다.
12/11/29 12:08
난징의 경우 일본 군부의 모든 한신함 작태가 나온거죠. 4개월 전 상해 전투에서 중일전쟁 통틀어 최다 사상자를 낸 일본 군은 계속된 무능하고 한계선을 넘어서는 작전을 계속 하면서 난징에 입성했습니다. 이런 불만이 상층에 행해질게 두려웠던 일본군 상층부는 이걸 난징 주민들에게 터트려 버린 거죠.
솔직히 이걸 유게의 그글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내부적 이해가 없으면 사건의 본질을 못보고 되는 거죠. 물론 감정적으로 가해자 측에서 이 이야기가 나오니 안전 변명 같지만요.
12/11/29 12:10
개인적으로 유게에 대해 반발 댓글들을 읽어보니 일본군이 피해자임을 인정할 수 없음이 아니라 그런 상황적 설명이 결여된 것에 대한 반발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윤리 교과서니 가능하다는 이 부분은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보구요
12/11/29 12:09
예전 뭘 몰라도 한참 모를 땐 일본군이 비록 졌지만 그래도 선전해서 태평양 저 멀리까지 진출하긴 했네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좀 알고 나니까
막장도 이런 막장 군대가 따로 없더군요. 웃음밖에 안 나오는 수많은 삽질들을 보면 어떻게 초전에 그렇게 승리했나 싶습니다
12/11/29 12:09
아무리 생각해도 1900년도의 일본은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거 같아요. 체제가 그럭저럭 안정되어갔던 다른 열강들에 비해서 조금 빠르다 뿐이지 일본도 조선과 중국처럼 열강들에게 흡혈당하면서 계급과 사상이 대격변을 체험하던 시기였으니...그와중에 권력을 선점하던 사람들이 올라오려고 하는 사람들을 쳐내고 그 속에서 또 전쟁은 해야하고 배운것 처럼 아랫것들은 소모시키고...
더 슬픈 사실은 제가 일본군이라도 저런 상황이 저에게 떨어졌다면 저것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었겠나 하는겁니다. 옳은 길은 있지만 제가 그 길을 갈 확신은 없네요.
12/11/29 12:10
편협된 사고로 일본인이 모두 악이라고 치부하는건 영악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중간점을 못찾고 인간의 생명의 선까지 미화하는 건 개념과 국사에 대한 배움의 차이라고 봅니다.
12/11/29 12:11
우리나라는 하필이면 저딴 막장에게 침탈을 당해서...
조상님들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후유증은 후손인 우리들에게도 아직 남아있고.. 쩝.
12/11/29 12:58
유게글에도 썼지만 일본군은 이미 배급제도 자체도 엉망이어서, 일선 장교들도 쫄쫄 굶을 정도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배급품들과 그것을 마련하기 위한 예산과 자금들은 상당부분 높으신 분들의 뒷주머니에 두둑하게 쌓여 있었죠.(물론 개중에는 일선에 나와 있으면서도 사병 부식비나 부식을 뒤에서 꿀꺽하신 천하의 XXX들도 있습니다.) 그나마 일본군이 보급이 제대로 되었던 시기는 중일전쟁 발발 전의 '주둔지 내부'에 한해서였습니다. 일본군은 애초에 대부분의 전시 보급 자체를 현지에서의 '약탈 보급'으로 해결하는 것에 치중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유게의 글은 틀렸습니다. 기본적으로 먹을 것을 주지 '못' 한 것이 아니고, 먹을 것을 주지 '않은' 겁니다. '빼앗을 수 밖에 없었다' 가 아니고 '빼앗는 것이 목표' 였습니다. 이렇게 일본군 윗대가리들의 막장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인데, 유게글은 막장성을 표현했다기 보다는 '일본군도 어쩔 수 없었다' 는 뉘앙스가 묻어있죠. 물론 그 글이 일본군을 비판하는 내용임에는 분명하고, 많은 분들께서 말씀하시는 '일방적으로 증오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역시 맞는 말씀입니다만, 유게의 글은 분명 약간이나마 일본의 피해의식이 묻어 있다고 봅니다. 일본군의 막장도를 생각한다면 분명 그 글도 비판 받을 점이 있다고 보입니다.
12/11/29 13:00
고대의 전쟁에서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 이른바 승자의 권리 라는 거로 맨먼저 성벽을 오르거나 성문을 연 부대장과 부대원들에게 약탈의 우선권을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뭐 이게 약탈 뿐만이 아니라 강간 등의 우선권도 들어가지만...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점차 국가화가 되어가면서 급속도로 금지되가죠. 차후에 지배하기 위해서 살인,방화,약탈,강간등을 승자측의 "권리"라고 보장한다면? 이건 차후에 반란의 불씨가 되버릴겁니다.
과연 일본이 이러한 행동을 단순히 일반적 병사들의 광기나 다른 것으로 치부할수 있을까요? 아니면 병사들의 인식수준이 낮다고 치부한다? 이건 말이 안되죠. 어떻게든 간에 면죄부를 발부하려는 거 자체가 비난받아 마땅한겁니다. 괜히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에게 배척받는 거라고 본다면, 생각 잘못하는 겁니다. 독일은 나치범죄를 아직까지도 반성하고 그 죄상을 철저하게 교육하기 때문에 주변국가의 신뢰를 받는 겁니다. 일본요? 지금 일본이 그런 행동을 했다면 이렇게 지탄을 받겠습니까? 요코이야기 처럼, 자신들만 피해자 라고 생각하는거 자체가 일본이 욕먹어도 싼 일이라고 봅니다.
12/11/29 13:17
막장이다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들으니 진짜 어이가 없네요 크크크
그나저나 그 유게글에는 "이런 일본 군대의 막장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대학살을 저지르고 살인이란 행위를 자행했다는 것 자체는 용서받을 수 없다." 정도가 들어잇었어도 그렇게 파이어는 안됐을 듯...(물론 1차 저자의 원글에는 그 부분도 들어가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2/11/29 13:17
민간인 학살이 실드칠 게 되나요? 군인도 아니고 무기를 가진 민간인도 아니고..
명령을 내린 놈이든 받아서 실행한 놈이든 설령 법으로 처벌할 수 없을지라도 비난받아야죠. 단순히 명령을 실행만 했을 뿐이다로 치부하기엔 방어권 행사의 여지도 없이 학살당한 그 사람들은 뭐가 되죠? 일부에서 당시 국제기준으로는 합법적이었다, 규칙, 또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로 몇십년째 지겹도록 레파토리로 써먹고 있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럽니까? 지 딴엔 다 사정이 있겠죠. 이는 일본 우익의 주장과 전연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일련의 활동들도 따지고 보면 상당 부분은 지극히 합법적이었죠. 또 세뇌당한 게 자랑도 아니고 말이죠. 전 여기에 어떤 식으로든 면죄부를 줘선 안 된다고 봅니다. 잘못한 건 그냥 잘못했다고 하면 됩니다. 합법적이었든 명령에 따랐든 뭔 이유가 있든 잘못한 거죠. 괜히 그렇게 한 이유를 구차하게 대는 것 자체가 행위를 희석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수십만명의 민간인 학살이란 결과 앞에선요.
12/11/29 13:18
위에 이태리 이야기가 나와서...
이태리는 상하 관계가 너무 엉망이라서 패망한 군대구요. 일본은 반대로 상하 관계만 강조되어서 패망한 군대입니다. 미군은 상하 관계가 가장 합리적이어서 이긴 군대구요. 독일은 상하 관계가 강조되었지만 그 관계를 법으로 잘 엮었기에 효율적인 군대가 된 겁니다. 독일이 진건 히틀러 때문만은 아니고 그야말로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진 것입니다. 미영프소를 다 상대하니...사실 유전 공급을 원활히 받았어야 하는데 북해산으로는 한계가 있고 리비아나 중동 원유를 수급하기엔 영프 세력이 루트를 다 막아버려서...롬멜 역시도 그래서 패배한 부분이 크구요. 결국 거대한 우크라이나 유전과 곡창을 받아야하는데 소련이 그걸로 사사건건 독일을 쥐흔들었죠. 바르바로사 작전도 초창기에는 유전 획득이 목표였지만 히틀러의 집착으로 모스크바 함락으로 작전이 바뀌면서 패망하게 되었습니다.
12/11/29 13:38
북해산은 영국꺼 아니었나요? 독일의 연료는 국내산석탄을 이용한 합성석유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그다음으론 루마니아 플로에슈티 유전에 의존한걸로 압니다.
12/11/29 13:50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도시 출신들은 불온하고 말 안듣는다. 고학력 애들은 빨갱이 물이 들어서 안된다. 자고로 군바리들은 글줄이나 세고 손가락으로 숫자 열개 세면 된다.."는 풍조는 현재의 한국군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죠. 특히 일선 부대의 부사관들에게 강하게 나타납니다.
"난 유식한 놈 안 써먹어! 무식한 놈 좋아해!"라고 외치던 행보관이 떠오르는군요..
12/11/29 13:53
그리고 반딧불의 묘가 전쟁을 미화한다는 식의 의견은 좀 납득하기가 어렵네요. 전 <태평양 전쟁 떄의 일본은 완전 개막장이었음. 성전이랍시고 나라 개판으로 굴려먹음 응응.>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봐서..
12/11/29 14:06
중국이 일본한테 발린건 장개석이 모택동과의 전쟁을 대비해
미국이 지원한 장비를 다 휘하의 정예병에게만 보급하고 떨거지 군대들만 일본군과 싸우게 내보낸 탓도 있다고 하더군요
12/11/29 18:26
일본군이 애초부터 잔인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러일전쟁때 붙잡은 러시아군이나 1차 대전때 청도에서 포로로 잡은 독일군은 아주 잘 대해줘서 찬사를 받을 정도였죠. 이때 독일군 포로에게 소세지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벌어지고 같은 인종인 중국인은 물론 미국이나 영국포로들까지 잔인하게 대했습니다. 미드웨이 해전때는 붙잡은 미군 조종사를 산채로 묶어서 바다에 던지기도 했습니다. 뜀박질을 하다가 폭주를 한 꼴인데 '따라잡자'라는 마인드가 '우리가 최고'라고 변화한데서 온 것으로 봅니다. 부족한 것을 정신력으로 메꾸다보니까 오버한 걸까요?
12/11/29 20:07
아이리스 장의 난징대학살이라는 책도 추천합니다.
읽는데 온 몸이 덜덜 떨리더라구요. 일본군에 이런 선별(?)이 있는 줄은 또 몰랐네요.
12/12/02 14:32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당시 일본육군과 해군은 서로 정치 싸움하느라 그냥 서로 다른 나라 군대 수준이었습니다.
육군에 징집된 피점령지 국민들(대표적으로 조선인들..)이 그냥 강제 징용에 마지막에는 총알받이로 쓰이는 대우를 받았지만 해군쪽은 그나마(..) 봉급을 주면서 일을 시켰습니다. 이것보다 심각한게 바로 군용 석유 였는데, 육군쪽보다 해군쪽이 정말 기름이 심각하게 부족했는데, 육군쪽에서 기름을 안내줬다고 합니다. 당시 석유는 원유 자체를 육군과 해군이 서로 비율대로 나눠가져가서 각자의 정유시설에서 정유를 해서 썼다고.. (동남아시아쪽을 확보하면서 나름 석유는 확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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