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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1/09 17:42:19
Name Neandertal
Subject [일반] 야, 너는 무슨 잡초를 그렇게 열씸히 그려썄냐?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일화 하나.

중학교 미술 시간이었습니다. 미술 과제로 박 공예를 하고 있었지요. 즉, 박 전면에 그림을 그리고 그림이 다 마르면 니스 칠을 한 다음 위 아래로 구멍을 뚫어 끈을 연결해서 벽 같은 데 걸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걸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박에다가 뭘 그릴까 고민하다가 나름 예스러운 풍취를 느끼게 한답시고 난을 그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소재도 정해졌겠다 박에다 열심히 난초를 그리고 있는데 돌아다니면서 학생들의 작업을 지켜보던 미술 선생님이 제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딱 한 마디 하셨습니다.

“야, 넌 무슨 잡초를 그렇게 열심히 그려쌌냐?”

학생들은 배꼽을 잡으며 웃어대고 제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 일화는 제가 미술에 영 소질이 없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좋아하는 화가 한 명 없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런던에 1년 정도 머무를 때 가끔씩 트라팔가 광장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를 가서 그림들을 감상하곤 했는데 한 화가의 작품이 확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Rain, Steam and Speed 라는 제목이 붙은 그림이었는데 강렬한 색채와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한 사물의 형체, 소용돌이 치는 듯한 역동적인 터치…무언가 지금까지 봐 왔던 그림과는 아주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그 그림을 그린 화가는 영국 출신의 윌리엄 터너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다른 작품들도 모두 제가 보았던 그 그림처럼 강렬한 색채와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윤곽선, 소용돌이 치는 듯한 터치가 일관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인터넷에서 터너의 그림을 찾아보곤 하는데요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예전의 중학교 때 미술 시간으로 되돌아 가서 잡초 대신 터너의 Rain, Steam and Speed 같은 그림을 그렸다면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잡초 운운하는 얘기는 저 멀리 사라지고 미술 선생님한테 "자네, 미술 한 번 본격적으로 해 볼 생각 없나?”라는 은밀한(?) 제의라도 받지 않았을까요?...^^

기분 좋은 주말 저녁…잠시 그림 감상 좀 해보시죠…^^


Rain, Steam and Speed


Buttermere Lake


Snowstorm


Light and Color


Slave Ship


Landscape with Distant River and Bay


Shade and Darkness


The Burning of the Houses of Lords and Commons


The Burning of the Houses of Lords and Commons


The fighting Teméraire tugged to her last berth to be broken up
(007 스카이폴에서 007이 Q와 만날 때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고 있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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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09 17:43
수정 아이콘
유화인가요 우와..
Practice
12/11/09 17:48
수정 아이콘
썰을 풀어내는 능력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흐흐 좋은 그림 잘 봤습니다.
냉면과열무
12/11/09 17:50
수정 아이콘
그림 정말 아름답네요... 와...

그리고 저도.. 어렸을때.. 음 초등학교 저학년 때 수업시간에 꿈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지구본 보는게 취미였고, 초딩용 세계문화 서적을 정말 많이 읽어서 탐험가라고 당당히 발표했다가 선생님이 지금시기에 탐험할 곳이 어디 있냐며 애들 앞에서 무척 창피를 줬었죠..
All Zero
12/11/09 17:51
수정 아이콘
잘 모르지만 그림의 느낌이 좋네요.
12/11/09 17:54
수정 아이콘
하 그림 느낌 참 좋네요.
사티레브
12/11/09 17:55
수정 아이콘
빛표현을 이렇게도 하네요...
一切唯心造
12/11/09 17:56
수정 아이콘
그림 좋네요~

저는 미술을 잘 못해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하하하
엷은바람
12/11/09 18:01
수정 아이콘
좋은 본문과 그림에 어울리지 않는 답글이지만,

전 개인적으로 그림을 보면 아무 감흥이 없어요. 시를 봐도 그렇구요.
물론 저도 어디 놀러가서 멋진 풍경을 본다거나 하면.. 아~~ 좋다 라거나 하는 기분은 드는데
그림을 보면 잘 그린 만화책의 한 컷보다 더 유의미한 어떤 걸 찾을 수가 없네요

시에 대한 느낌도 마찬가지인데, 그나마 그림보다는 덜 하구요..
그래서 미술관 가서 그림 보는 것에 대해 전혀 공감을 못하고 있는 1人입니다.

뉴욕에 있을 때 엄청 기다려서 MOMA도 갔었고 (금요일 저녁 공짜)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몇몇 사진 전시회, 그림 전시회 등도 가봤는데, 내심 뭐 이런걸 돈주고 보냐.. 하면서도 겉으론 응.. 좋네 하고 말았네요

혹시 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고 그림이 좋아지신 분은 안계신가요? 계기 공유좀...
어차피 한 번 사는건데 그런 것도 일종의 즐거움 중에 하나가 될텐데 저만 못느끼는 것 같아서 억울해서 말에요.
제 시카입니다
12/11/09 18:49
수정 아이콘
글을 잘 쓰셔서 부러워요. 이런 자연스러운 전개라니..
아무튼 그림 잘 보고 갑니다!
12/11/09 19:16
수정 아이콘
그림 참 좋네요. 개인적으로 잘은 모르지만 모네의 팬인데 느낌이 사뭇 비슷해 좋습니다.
난멸치가싫다
12/11/09 19:22
수정 아이콘
터너가 아마 국회의사당에 불이 나자 남들 다 불끄러 달려갈때 전망 좋은 곳에서 그 모습 스케치했던 화가던가요?
Neandertal
12/11/09 20:04
수정 아이콘
난멸치가싫다 님// 터너가 국회의사당 화재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것은 맞는데 직접 화재 현장을 보면서 그렸는 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 그림들은 일단 본문에 올렸습니다...^^
12/11/09 19:45
수정 아이콘
터너 좋아하시는 분들은 빅벤에서 죽 걸어가면 나오는 테이트 브리튼 강.추. 합니다. ^^
12/11/09 20:52
수정 아이콘
와 그림 너무 좋아요..
Je ne sais quoi
12/11/09 22:16
수정 아이콘
터너 좋죠. 멋있어요. 정말 영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화풍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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