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내 책상을 보면서 말했다.
때는 고3, 모두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던 시기였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때 우리 학교에선 책상에 무언가 힘이 될 만한 글귀를 써넣는 게 유행이었다.
평범하게 '힘내!' 라던가, 'D-몇일'로 남은 시간을 세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영화 황비홍의 '남아당자강' 가사를 적기도 했다. '열혈 남자는 태양보다 더 뜨거워야 한다.'였던가.
나도 그런 시류에 편승하는 느낌으로 써넣은 것이 'You can do it' 이었는데, 왜 'I' 가 아니라 'You'인지 묻는 친구들이 꽤 많았었다.
당시에는 그럴싸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도 왜 그렇게 썼는지 확답을 할 수 없었거든. 그저 웃으며 넘기거나 튀고 싶어서 그랬다고 대답하고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You can do it'
나는 나 스스로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일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게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의심이 들었다.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날 믿을 수 없었다.
그런 내가 '난 할 수 있다'고? 웃기지도 않지. 공허한 말이다. 누가 그 말을 믿을까? 나조차도 믿지 못하는데.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 확신할 수 없어서 다른 증거가 필요했다. 내가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무언가가. 설령 그것이 '책상'에 불과하더라도.
'넌 할 수 있어.'
책상은 항상 내게 말했다. 하지만 좋은 대답을 줄 수 없었다. 그때는 책상과 오랜 시간을 지내지 않았고, 그래서 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졸업한 지 9년이 넘어간다. 지금도 딱히 공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9년이란 시간은 강산과 함께 나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이제는 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책상은 아마 수명을 다했겠지. 지금은 땅에 있을까, 새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 책상이란 건 단지 형태에 불과하다.
'넌 할 수 있니?'
갈대처럼 흔들리며, 표류하던 배처럼 목적없던 9년전의 나에게, 오늘에야 답을 준다.
'그래. 난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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