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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8/24 09:43:12
Name FK_1
Subject [일반] [여행기] 2009년 몽골 고비사막 - 7일차
안녕하세요 ~
고비사막의 마지막 7일차 여행기를 올립니다.

이 글 다음에는 하루짜리 테를지 국립공원 여행기와 몽골 여행에 도움될 만한 몇가지를 올리겠습니다.

=====================================================================  

2009년 8월 28일..

내 평생 이렇게 춥게 자본 적은 없는 듯 싶다.
너무 추워서 거의 30~40분마다 자다 깨다를 반복..
그 때마다 게르 천장의 구멍을 통해 어두운 하늘을 확인하고는 좌절하길 수 차례..
해가 막 떳는지 어설프게 밝아진 하늘을 확인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눈을 겨우 뜨고 게르 바깥으로 나가니 H군과 어제 본 일본인이 무언가 얘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얼굴이 얼어서 말도 제대로 안나오는 가운데 겨우 인사를 나누고 너무 춥다고 오들오들 떨면서 같이 얘기를 나눴다.


<이른 아침 게르 뒤편 바위 언덕을 올라가 찍은 전경 - H군>

시간이 지나면서 한명 한명 일어나서 간단히 양치질도 하고 아침을 먹을 준비를 하는데 L군이 보이지 않았다.
"뭐 근처에 있을테니 금방 오겠지.." 싶어서 먼저 아침을 먹었다.

이 날은 언제나 똑같았던 아침이 지겨웠던지 아니면 너무 추운 새벽에 입맛이 없었던지 다들 빵을 깨작깨작 먹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어제 호쇼르를 튀기던 후라이팬이 보여 거기에 내가 간단하게 토스트를 해주니 그제서야 다들 식욕이 도는지
아침을 잘 먹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참을 먹고나서 출발을 준비해야하는 와중에도 L군이 보이지 않았다.
아침을 먹으면서 장난으로 "어디 올라갔다 굴러떨어진거 아니냐.." 라는 농담을 주고 받았는데 이쯤되니 다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각자 흩어져서 게르 뒤쪽 언덕과 앞쪽에 있던 호수쪽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난 뒤쪽 언덕으로 찾으러 갔는데 어디 쓰러져 있을까 싶어서 이름을 부르며 샅샅히 뒤졌다.
정말 이 때는 "전화 터지는 곳으로 이동해서 대사관에 신고를 해야겠다." 라고 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각했다.
그런데 한 30~40분 찾았을까 갑자기 누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깜짝 놀라 그 쪽으로 가보니 손가락으로 호숫가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호숫가로 갔던 C양이 L군과 함께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_-

알고 보니 L군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게르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앞 쪽에 보이는 호수가 가까워 보여서 걸어가보니
무려 가는데에만 한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거리였던 것이다.
몽골여행 1,2일차도 아니고 8일씩이나 됬는데 몽골의 탁 트인 시야를 무시한 것이다. -_-




L군이 아침을 먹는 동안 잠깐 밖에 나와보니 마침 주인아저씨가 염소를 잡고 있었다.
정말 신기했던 것이 살짝 가죽을 벗기고 급소인듯한 부위를 확 눌러버리니 염소는 피는 커녕 비명한번 지르지 않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그리고 염소 가죽을 벗기는데 손으로 쓰윽쓰윽하니 염소가죽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염소가죽을 벗기는 아저씨 - H군>

염소 잡는 것을 구경하던 사이 L군이 아침식사를 마쳤고 우린 게르를 뒤로 한 채 다시 출발했다.

몽골에 와서 지겹도록 넓은 초원을 보았지만 이 날의 초원은 뭔가 색달랐다.
왜냐하면 우리 고비여행 스케쥴상 이 곳이 울란바타르로 들어가기 전의 마지막 기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언덕에 올라가 찍은 초원의 전경. 그레이스와 푸르공이 장난감처럼 보인다. - H군>


<초원에서 구르기를 좋아하는 C양 - L군>


<보고 있던 L군까지 구르기 시작했다 -_- - L군>

그런데 중간에 차가 고장나서 우리 차에 같이 탄 몽골아저씨 한 명이 있었는데 일행들을 초원 한가운데에 두고 왔으니 좀 마음이
급할만도 한데 엄청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어차피 서두른다고 될 것도 아니고 여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정신건강상 훨씬 좋아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몽골에서 어디로 여행을 가던지 처음 계획한 스케쥴대로 딱 맞추어 여행을 할 수 있었다면 운이 정말 좋은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정말 많다.
그럴 때마다 괜히 운전기사나 가이드에게 짜증을 내봤자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들도 기분이 상해 될 것도 안 된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나서 귀국 후 평생 다시 못 볼 가능성이 99%에 가까운 오유나, 안카, 바에르만과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동승한 아저씨에게 부탁해 단체 사진을 찍었다.


<우리 팀원들과 바에르만, 오유나, 안카 - H군>

다시 북쪽으로 달리다가 잠깐 차를 세웠는데 마침 어떤 차 한대가 우리 앞에 섰다.
난 차 안에 있었는데 L군과 그들 일행이 말하는 것을 보니 한국 사람들 같았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보니 부부모임인듯한 네 분이 우리처럼 고비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우린 지금 일주일간 갔다와서 울란바타르로 들어갈려고 한다고 했더니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몇가지를 알려주고 헤어졌는데 생각해보니 힘들었던 것만 알려주고 좋은 것을 알려주지 않았던 것 같다 크크

한시간 정도 더 갔을까.. 드디어 울란바타르 근처에 도착했는지 포장도로가 나왔다.
아스팔트를 보니 반갑기도 했고 "드디어 샤워도 할 수 있고 한국식당가서 삼겹살에 밥도 먹을 수 있다!!" 라는 생각에 기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제 평생 다시 못 올지도 모르는 고비사막은 정말로 안녕이란 생각에 약간은 섭섭했다.


<울란바타르로 들어가는 길 옆에 늘어선 대형 광고판에는 한국 브랜드가 많다. - Y양>


<시내로 들어와 게스트하우스로 향하는 도중에 본 건물. 이 건물은 기차역이다. - Y양>

핸드폰이 터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사실 우리가 여행 중에 가장 궁금했던 이슈는 나로호 발사가 성공했는지 여부였다.
전화를 걸어서 간단히 안부를 주고 받고 나로호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니 다들 아쉬워했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내가 외국에 나가서 있으니 신종플루에 대해 걱정이 크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당시 몽골은 신종플루 안전지대였고 사막이나 초원은 사람이 거의 없으니 걸릴 일도 없었다는 점을 알려드리니 안심을 하셨다.

다른 소식도 궁금해서 신종플루,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등등 여러 소식을 전해들었는데 난 마지막에 들었던 소식에 기뻐 소리를 질렀다.
바로 당시 기아타이거즈의 미쳐버린 8월달 성적을 듣고서였다.
내가 몽골에 있었을 때 김상현 선수의 크레이지 모드에 힘입어 기아타이거즈는 연일 연승을 달렸던 것이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우리는 서로 한명 한명 안아주고 악수하며 수고했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테를지 국립공원을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하고 이드레씨와 협상을 벌였다.
테를지 국립공원은 울란바타르 근처에 있는 초원과 강이 넓게 펼쳐진 곳으로 편한 관광지라고 부를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결국, 그레이스에 오유나, 안카와 함께 테를지를 다녀오기로 하고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저녁시간까지 휴식을 취했다.


<오자마자 뻗어버린 C양 - H군>


<꼬라지가 험해서 도저히 신발을 다른 곳에 둘 수 없어서 한 쪽에 몰아놨다. 크크 - H군>

우린 저녁시간이 되어 먼지도 많이 먹고 했으니 삼겹살을 먹어야 한다며 한 15분 정도 걸어서 전주관 이라는 한국 식당에 갔다.
이 곳은 한국인 사장님이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언뜻 봐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우린 삼겹살과 제육볶음과 된장찌게를 시켜놓고 먹었는데 아무래도 외국이라 그런지 가격이 많이 비쌌다.
특히, 꽁꽁 얼어있던 냉동 삼겹살은 국내에서 소고기 먹는 가격이었다;;


<으으 .. 삼겹살이다!!! ㅠㅠ - Y양>

맛나게 저녁을 먹고 나서 다음날 아침에 먹을 거리를 사러 식당 건너편의 대형마트에 들어갔다.
가보니 역시나 우리나라 제품들도 아주 많았는데 다들 빵, 라면 등을 구입했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먹기 위해 맥주도 사가지고 들어갔다.


<울란바타르의 밤 거리 - Y양>

그런데 막 마트를 나와서 게스트하우스로 가려는데 어떤 꼬마애가 구걸을 하며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떨궈놓으려고 했는데 팔이나 옷을 붙잡으며 정말 필사적으로 달라붙는 모습이 너무나 안되보였다.

그렇게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고나서 나와 H군, Y양 셋이서 게스트하우스 입구에 있는 의자에 앉아 생구르 라는 몽골산 맥주를 마셨는데
나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좀 여린 면이 있어서 아까 그 꼬마가 생각나 마음이 좀 아팠다.
표정을 읽었는지 H군이 왜 그러냐고 물어봐서 그 얘기를 했더니 게의치 말라고 이 곳에서 그런 애들 한두번 본 거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물론, 그 말도 맞지만 다른 곳에서의 애들과 다르게 너무나 필사적으로 달려들던 모습이 계속 생각나서
그냥 빵이라도 하나 주고 올걸 이란 생각이 계속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그렇게 한참 얘기를 주고 받고 있는데 어떤 동양 남자 둘이서 담배를 물며 게스트하우스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알아들었던 한마디 .. "씨X" -_-;; 그렇다. 한국 사람이었다.

그들은 담배를 피고 다시 들어오면서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들과 얘기를 해보니 자전거를 타고 몽골을 한바퀴 돌았다고 한다;;
난 그 경이로움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차를 타고 돌아다녀도 정말 힘들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그것도 몽골 전역을 돌다니;; 덜덜;;

우린 그 자리에서 한참을 더 수다를 떨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눕자마자 약간의 술기운에 상대적으로 너무나 편한 침대 덕분인지 쉽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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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글링아빠
10/08/24 15:40
수정 아이콘
춥게 자고, 힘들게 이동하고, 먹을 것 마땅치 않고.
이 세 가지가 몽골에서 여행자를 젤 힘들게 하는 건데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 하루였겠네요.

그나저나 자전거로 몽골 일주는 정말 놀랍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 아무런 특별한 지형지물이 없는 몽골에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기가 어려웠을텐데요.
루미큐브
10/08/24 17:55
수정 아이콘
저 신발이 여정의 끝을 말해주는 수고하셨습니다 __)
켈로그김
10/08/24 18:45
수정 아이콘
역시 욕이.. 귀에 쏙쏙 들어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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