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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2/07 01:22:52
Name 아웅
Subject [일반] 우리엄마 이야기
1.
노래와 춤을 좋아하던 22살의 엄마는 울산에서 공장일 을 한다는 청년에게 얼굴도 모르고 경북 상주에서 울산까지 시집을 왔습니다. 가부장적인 시아버지와 아들이면 최고로 아는 할머니의 맏며느리로 시집생활을 시작했죠.
할아버지는 반찬이 마음에 안 들면 밥상을 뒤엎기 일쑤였고, 할머니는 며느리는 머슴보다도 못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고향에 갈 수 없던 엄마는 밤마다 눈물을 짜야 했다네요.

2.
모두의 관심을 받고 낳은 첫째아이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딸 이였습니다.
얼마 후 낳은 둘째 아이까지 딸 이였지만 엄마는 행복했습니다.
그래도 내 자식이려니,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했데요
할머니와 집안 어른들의 대를 이어야한다는 눈살을 받으며 낳은 셋째는
아들일까란 확신이 있었지만 또 딸 이였고,
그때 엄마는 아이를 낳고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 못했답니다.

3.
그 다음해에 동서 (저에게는 작은 어머니)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다음해 연년생으로 다시 둘째 아들을 낳았고요.
그해 설날, 할머니는 둘째는 아들 보느라 힘들 테니
엄마에게 보기 싫은 딸년들 데리고 읍내에 가서 떡을 해오라고 했답니다.
머리에 바리바리 짐을 얹고 치마폭엔 세 명을 딸을 데리고
읍내까지 가던 시내버스에서 엄마는 부끄럽게도 서러움이 북받쳐
서럽게 울었답니다.

4.
그렇게 아들 없는 설움을 받던 엄마에게 막내로 태어난 저는 한줄기 빛과 같았답니다.
그놈의 아들이 뭔지, 이젠 아들 없는 설움 안 받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안 그래도 벌이가 시원찮던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서는 바람에 우리가족은
빚쟁이들을 피해 방한칸짜리 달동네로 피신해야했습니다.
자식들을 모두 다른 곳에 맡기고 엄마는 여자의 몸으로 공사장에서 시멘트질을 하거나 벽지를 발라야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행복했습니다.

5.
그렇게 자식들을 어렵게 키우고 누나들을 모두 타지(서울, 대구)
로 보냈고 집도 장만하며 엄마가 삶의 여유를 찾을 때쯤,
엄마에게 이상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걸을 때마다 다리가 아프다고 생각했지만 병원비가 아까워 병원을 몇 년 미루던 엄마에게 고관절이 괴사하는 희귀병이 온 겁니다.
수술비가 없어 또 빚을 져야했고, 수술을 한 엄마는
걸음을 제대로 옮길 수 없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6. 몇 년 후 장애인의 몸으로 살아가던 엄마에게 우울증이 왔습니다.
매일을 술과 같이 하다가 자살까지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그 후 엄마는 6개월간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7.
엄마가 퇴원하던 날, 엄마는 이 모든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셨고,
열심히 살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막내인 제가 성공한 모습으로 이런 글을 썼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해서 안타깝네요. 고생만 한 엄마인거 같아서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습니다.
엄마,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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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사령관
10/02/07 01:26
수정 아이콘
화이팅해서 사십시다 어려울때일수록 힘내서 더욱더 힘내서 사는길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꿈꾸는등짝
10/02/07 01:55
수정 아이콘
아웅님// 저도 누나많은집 막내아들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할머니때문에 맘고생부터 여러가지로 한이 많으셨죠.
아들도 못 낳는다고 구박도 아웅님 어머님처럼 많이 받으셨구요.
저희 어머니도 요즈음 무릎이 않좋아서 이제 좀 편해질만 하시니까 돌아다니시는데 불편해 하시고 그러시네요.
정말 저와 많이 닮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남일 같지가 않네요.
마음 잘 추스리시구요. 화이팅~~ 힘내자구요~~
요를레이
10/02/07 01:55
수정 아이콘
할아버지 할머니분께는 죄송스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저렇게 며느리 구박하는 사람들 보면 울화통이 터집니다. 에효....
블랙잭
10/02/07 02:43
수정 아이콘
세대가 바뀌었다지만 아직 어르신들 세대에는 남아선호 사상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는 하죠.
저희 할머니께서 흔히 말하는 동네에서 유명하신 할머니이셨는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첫째 둘째가 다 아들이 아니었으면 어쨌을까...하고 아찔 하시다고 하시죠.
그래도 할머니께서 저희들을 끔찍하게도 아끼셨죠.
특히 제 형은 어느정도 나이들어서까지 제손으로 코 한번 풀어본적이 없었다는....
지금은 그나마 보기 힘들지만 제 또래정도만 해도 누나만 대여섯인 애들이 꽤 있었죠.
괜시리 생각나서 주절거려 봤네요..
저도 어머니 생각날때마다 코가 시큰하고 가슴이 아려오고 그러네요..
효도 해야하는데....하고 늘 생각만 있지 실천은 안되고...부모님께서 바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것도 죄송스럽고..
1년 1년 지날때 마다 늙어가시는 모습에 늘 마음이 아픕니다.
발음기호
10/02/07 02:55
수정 아이콘
아 정말 부모님께 잘해드려야하는데...
쉽지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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