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아침 버스를 타면 약간의 안도감이 든다. 노약자석과 2인석을 제외한 몇 없는 로열좌석을 운 좋게 차지하기라도 한다면 그 안도감은 배가 된다. 차창을 두두두둑 하며 맹렬히 때리는 빗물로부터 자유로워 진 듯한 기분은 꽤 괜찮은 해방감이다. 비록 좀 눅눅한 공기와 축축해진 바지 아랫단이 맘에 드는건 아니어도 그 정도의 불편함이야 일상적으로 참을만한 것들이 아닌가. 어쨌거나 오늘은 운 좋게도 자리를 차지했다는 말이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편히 놓고 온 몸에 힘을 쭉 뺄 수 있다는 것은 가뜩이나 꽉 밀린 출근길의 남부순환로 위를 느릿느릿 기어가는 버스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아주 괜찮은 호사렷다.
꾸물꾸물 언덕을 기어오르는 버스의 꾸르릉 거리는 엔진 소리,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나오는 익숙한 노래. 차창 밖에서 우산을 쓰며 한껏 힘겹게 비바람을 헤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익숙하다면 익숙한 풍경이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 그것은 잡스런 생각도 없이 지루하게 흘러가는 풍경의 익숙함에서 받았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이었고, 머릿속에 새로운 흥미를 때려박는 일이었다. 나는 보았다. 그녀를. 까만색 전동 휠체어와, 비에 젖은 하얀색 블라우스. 5살배기 어린아이에게 맞을 것 같은 크기의 까만 트레이닝 팬츠와 작은 손으로 힘겹게 쥔 투명한 비닐우산. 예쁜 여고생의 얼굴과, 크다 말아버린 작은 몸. 빗물을 헤치며 언덕길을 힘들이지 않고 올라가는 전동 휠체어와, 그럼에도 굉장히 힘겨워 보이는 그녀의 등교길과 날씨에 대한 저항. 분투. 교복은 분명히 근처 고등학교의 것이었으나, 사이즈는 분명히 특별제작을 했음직한 작은 모양새. 그녀는 누가 보아도 장애인이었다.
그건 우연히 시작된 인간관찰이었다. 그날 따라 날씨가 궂었고, 그날 따라 도로가 더 정체되어 있었고, 그날 따라 언덕길이 늘어나기라도 한듯 그 아이의 등교길은 길기만 했다. 묘하게 버스가 움직이는 만큼 그 아이도 언덕을 올랐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를 꽤 오랫동안 눈으로 쫒았다. 버스의 창 밖은 내가 앉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이미 투쟁으로 얼룩진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각종 벽들이 쏟아지는 세상이었다. 그건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고,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 아이를 머리속에서 제 멋대로 이리저리 굴려보고 있었다. 그 아이의 삶에 대해서나 앞으로 이어질 삶에 대해서 정상인의 잣대로 이리저리 휘둘러 보는 것이다. 그 아이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상당히 상처받을 일이지만, 다행히 우리사이는 견고한 버스의 창이 튼튼히 서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동정으로 시작한다. 태어날 때의 이상, 어느 순간 성장하지 않는 아이. 의사의 비극적인 한 마디. "성장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변과는 다른 것의 공포.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분노, 증오, 절망, 혐오. 누구를 미워하고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가. 영화도, 드라마에서도 보여줄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 학교는, 친구들은,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함을, 혹은 어떤 시선들로부터 버티고 서 있어야 함을. 때때로 모든 선의도, 모든 악의도 전부 적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자리에서. 여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혹은 가질 수 있는 모든 호의들과 권리들과 불편함에서 자유로운, 그래서 모든 것이 더 부자유로운. 누군가의 사랑도, 농밀한 어른의 섹스도, 자신과 닮은 아이에 대한 소망도 기대해 볼 수 없는. 그런 생각을 해 볼 여유 이전에 살아남는 것 부터 걱정해야 하는 것. 남들과 똑같이 태어난 현대인과는 달리 훨씬 빠르게 전쟁터로 내몰려야하는 그런 생각들. 불과 몇 초 동안 벌어지는 어디선가 보고 들은 스토리들이 그녀를 헤집는다. 그리고 생각은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동정은 건방진 일이다. 나는 정상인이지만 정상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아이는 다섯살의 육체를 가졌지만 열일곱의 여자아이들보다 훨씬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강인한 정신과 더 고결한 영혼을 지닌 아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육신으로는 멀쩡해 보이나 실제 그 육신 속에 내재된 자유의지라는 이름의 정신들이 과연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여기서 정상적이란 남들 만큼일 테였다-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어떻게 보면 장애인일지도 모른다. 그 아이쪽이 훨씬 더 정상인일수도 있다. 그러니, 어-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동정에 대한 생각은 안개가 걷히듯 머리속에서 한 발 물러난다. 그 아이는 여전히 꿋꿋이 언덕을 오른다. 그 뒤에 벌어지는 생각은 아무래도 상상이다. 저 아이가 살아온 삶은 어땠을까, 앞으로 살아갈 삶은 어떨까. 동정을 하기 이전에 동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해프닝들. 결국 생각은 어느쪽으로 튕겨나가든 부서진 동정심의 조각을 몇 개씩 주워 돌아온다.
문득 묻고싶었다.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싶니. 남들은 헉헉대며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을 바퀴로 슁슁 올라가고, 때때로 누군가는 그 바퀴를 부러워 하겠지만 너는 그들의 헉헉대는 폐와 부들거리는 다리가 부럽니? 네게는 나와 같은 풍경이 보이니? 너의 세상은 어떤 세상이지. 그러니까- 너도 그냥 대학입학을 걱정하고. 아침 밥 반찬투정을 부리고. 잘 생긴 동급생 남자아이에게 설레는 그런 일상인거니? 머리속 한 켠에 벌어지는 생각은, 이 아이를 둘러싼 가정의 모습이었다. 이 아이 하나를 구심점으로 끊어질 듯 말 듯 위태위태하게 서로 밟지 말아야 할 금단의 영역을 만들고 가족을 유지하는 가정일까? 아니면 세상 모든 시선에 가라앉아있는 생각들에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온 힘으로 뭉치는 단단한 가정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모든 것을 외면하고 보통이 되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가정일까. 이렇게 떠오르는 생각은 금세 뒤섞인다. 그런게 다 섞여 있겠지, 한 가지 모습일 리는 없잖아.
아, 어느새 그녀가 버스를 앞질렀다. 생각보다 빠르구나. 빗물이 조금 약해진 듯 하다. 그 아이가 예뻐서 그랬을지, 아니면 그 언덕길이 빗방울 휘몰아치는 날에는 너무 길었을지. 어쨌거나 날씨가 조금의 너그러움을 보내는 듯 하다. 전동 휠체어 의자에 완전히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건만 고사리 같은 손-정말 그정도로 작았다. 손잡이를 용케 쥐고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은 여전히 튼튼히 우산을 잡고 버틴다. 왠지 모든 생각이 바보같아졌다. 꽤 괜찮잖아. 머리속에서 그 아이를 관찰하며 떠올랐던 많은 관념들이 쓸데 없어 졌다. 그 아이는 아마 수많은 전투를 이겨왔을 것이다. 그건 혼자의 싸움일 수도 있고 가족의 싸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던 매일이 그 아이에게는 환희로도, 공포로도 다가왔을 것이다. 나보다 조금 더 매일이 다이내믹할 뿐이구나, 나보다는 훨씬 강한 것 같은데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출근하기,학교가기 짜증나는 날씨에도 단정히 교복을 챙겨 입고, 비록 빗물에 죄다 젖어 생쥐처럼 학교에 도착해야 한다 할 지라도 어쨌거나 그녀는 아침부터 그녀를 막고 서는 적들을 멋지게 물리치는 것 아닌가! 얼마전에 본 아이언맨이 떠오른다. 철갑옷 없이도, 근육질 없이도, 세계 거대 부호가 아니어도 그녀는 매일 매일 이기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야에서 그녀는 사라졌다. 아마 그녀를 또 마주치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날은 유독 비가 많이왔고, 그날처럼 도로변 창가쪽 로얄석을 잡는 것은 흔한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녀의 등교길은 내게 꽤 인상깊은 일로 남았다. 내가 머릿속으로 굴려본 그녀의 삶은 상상의 표상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그녀를 휩쓸어갈 테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자기 방식대로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못할 것이다, 뭔가가 부족할 것이다, 뭔가가 힘들 것이다 라고 동정하지만, 그녀에게 그런건 문제로서 존재해도 문제로서 남겨두지 않을 것 만 같은 그런 뒷모습을 느꼈다. 니 일이나 똑바로 하라고 이 얼간아! 어쩌면 그녀는 내게 그렇게 웃을지도 모른다.
아- 이때쯤 햇볕이 쨍쨍하게 비추어 주면 좋겠는데. 하지만 날씨가 그 정도로 너그럽지는 않았나 보다. 비로소 귓가에서 밀려난 노래소리가 다시 들린다. 때마침 흐르는 노래를 그녀도 들어봤다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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