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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3/05/23 06:26:08
Name OrBef
Subject 자유 의지와 영혼과 자아와 뇌. 우리는 기계인가?
00. 일단 사족.

- 저 개인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토픽이지만, 관심 없는 분들에게는 굉장히 재미없는 이야기입니다.
- 이 분야에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이 있거나 고민해보신 적이 있는 분들께는 "뭐야 다 아는 얘기잖아?" 라고 느껴질 수 있는 수준의 시시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 유물론을 끝까지 밀고 가면 자유 의지, 영혼, 자아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됩니다. 이미 이 과정을 다 거친 분이라면 상관없지만,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없는 분들이 처음으로 이런 결론을 받아들이게 되면 사람 성격에 따라서는 강력한 패배주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최대한 그런 느낌이 들지 않도록 긍정적인 이야기들도 되도록 삽입하긴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멘탈이 약한 유물론자에게는 일독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미리 말씀드려둡니다.


0. 들어가기에 앞서 몇몇 단어의 정리.

출처는 모두 위키피디아입니다.

자유의지 -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통제할 수 있는 힘·능력이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전적으로 가지는지, 부분적으로 가지는지,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는지에 대해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자유의지에 관한 문제는 인과 관계에서 인간 자유와 자연법칙의 비중을 얼마로 볼 것인가와 관련돼 있다.
영혼 - 사람이나 동물의 생명을 유지하고 정신을 갖게 한다고 여겨지는 것으로 과학의 범주 밖에 있기 때문에 과학의 범위에서는 판단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과학으로는 존재 여부가 식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과학적인 범위에서의 인간의 경험과 지식으로써 영혼이 존재한다고 증언되고 있으며 인류 역사에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종교와 사후세계 및 영적인 현상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자아 - 우리 일상의 모든 경험(감각, 사고, 행동 등)의 밑바닥에 있는 모든 경험을 통일하여 모든 경험을 하는 바로 그 당사자라고 생각되는 의심할 수 없는 자신을 말한다. 칸트는 본능·욕망에 의해 사는 경험적인 자아 이외에 도덕적으로 살려는 자신(양심)을 신적인 인간의 본질로 생각하여 '본래적인 자기'라고 불렀다.
의식 - 유물론에서 의식은 고도로 조직된 물질(대뇌피질)의 작용으로, 언어를 이용한 외적 세계의 반영이다. 말 없는 의식이란 없다. 관념론에서 의식은 물질에서 분리되어 독립하며, 물질의 존재를 부정하든가 또는 의식이 낳은 것이 물질이라고 주장하게 되며, 의식이 물질보다 근원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의식이란 일반적으로 대상에 관한 의식이며, 정신작용을 '나'의 작용이라고 자각하는 의식을 자의식이라고 한다.

이 네 단어는 척 보기에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문맥상 그 구별이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단어를 섞어서 쓸 수도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다른 대상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구별해서 사용하겠습니다.

1. 고대의 멋쟁이들.


아직 철학이 고도로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저 네 가지 개념이 큰 구별 없이 사용되었습니다. 

3500년 전 (1500 BC) 힌두교
아트만 - 힌두교에서 생명은 숨과 같은 의미로 쓰였으며 아트만의 원래 뜻은 숨쉰다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목숨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지요. 즉 우리의 몸은 아트만이 머물다 떠나는 그릇 같은 것이고 진짜 나, 즉 아트만은 끝없는 윤회 속에서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변하지도 않는 어떤 본질적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세상은 물질계와 정신계가 따로 존재한다는 이원론의 시작이자,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사상적 기반이기도 합니다.

2500년 전 (500 BC) 붓다
니르아트만 - 붓다는 이 아트만의 존재를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와 인과율을 통해서 묶여있으니 (불교에서는 인과율을 "인연"이라는 매우 멋진 말로 표현하지요) 그 어떤 존재에도 본성 같은 것은 없고, 생명도 예외가 아닌지라 생명에 주체는 없고 아트만이나 자아 같은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파했지요. 불교의 무아설(無我說; 나는 없다)의 시작입니다. 붓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세상은 물질로만 이루어져 있고 모든 물질은 인과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현대 유물철학은 지난 2 ~ 30년의 연구를 거쳐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상 조류는 이후 서양에서도 생겨납니다. 사실 뭐 철학과 종교라도 해도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법칙에서 예외는 아니었던지라, Psyche (고대 그리스어로 "숨") 이라는 단어가 영혼의 어원이 되었지요. 다만 서양에서는 순서가 반대였던 지라, 처음에는 psyche 역시 필멸이고 변화하는 존재라고 여겼던 반면에 (스타워즈의 뽀스와 비슷한 개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를 거치면서 영혼은 불멸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었고, 기독교가 서양 세계를 2천 년간 지배하면서 영혼의 불멸성은 절대적인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2. 중세 유럽인의 고민.

인도와 힌두교에 대한 이해가 얕은 관계로 이제 인도 이야기는 빼고, 동아시아와 유럽을 주로 다루겠습니다. 사실 영혼이 인식 불가능의 영역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동의할 만한 이야기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서 깊게 생각해보면 자아라는 것 역시 인식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철학자가 아주 간단한 질문을 던졌었는데, 

"방의 불을 다 끄고 소리도 끄고 눈을 감고 이제 당신들이 말하는 자아를 인식할 수 있는지 깊이 성찰해보세요. 시간을 오래 보내면 보낼수록, 자아라는 것 역시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옛 선인들은 그런 사실을 깨닫고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나마 동양은 유교와 불교가 번갈아 지배 이데올로기로 등장하면서 일반 대중들도 "무아" "무상" 등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살았습니다만, 서양은 지배 이데올로기가 기독교 단 하나였던 관계로 기독교를 비판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행위가 되어버렸습니다. 따라서 영혼이나 자아의 문제에 회의를 일으킨 난다긴다하는 지성인들도 결국은 어떻게든 주류 철학과 자신의 회의를 조화시켜야만 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아우구스투스 -> 고백록 쓰고 기독교에 항복
"자아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몸속에 있는가 아니면 영혼 속에 있는가?" 파스칼 -> 팡세 쓰고 기독교에 항복

이런 사람들이 대표적인 예지요. 하지만 영혼이라든지 비물질적인 정신 등등의 개념에는 재미있는 역설이 있는데, '우리가 영혼을 인식할 수 없다면 애초에 영혼이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라던지 '물리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정신이 어떻게 물리세계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들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데카르트는 우리 뇌에 존재하는 송과선이 정신세계와 물리세계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연한 거지만 송과선 이론은 아무런 논리나 실증적 근거가 없이 그냥 '송과선이 이 역할을 하지 않으면 내가 곤란하니까 송과선이 이 역할을 해야 함'이라는 식으로 갖다 붙인 것이었고, 현대 신경 과학을 통해서 간단히 부정되는 이야기입니다.

3. 신경 과학이 이룬 근래의 발견들.

신경 과학이라고 하면 많이들 20세기에나 시작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옛날 사람이라고 해서 신경을 존재를 몰랐을 리가 없지요. 

17세기에 이미 토마스 홉스는 '가슴은 펌프에 불과하고 신경계는 끈에 지나지 않는다. 의지라는 것은 우리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때로는 좋아하고 때로는 싫어하는 반응에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18세기부터는 정신이 대뇌의 물질 작용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설에 힘을 주는 과학적 발견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데이빗 헉슬리는 '뇌가 손상을 받으면 인식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인식이라는 것은 혹시 신경계를 타고 다니는 어떤 물질에 의한 것이 아닐까?'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19세기에 이르면 이미 이원론에 아무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뇌의 일부인 척수 신경의 동작 원리가 인간과 하등 동물 사이에서 유사하다는 것이 밝혀졌고, 최면술이나 몽유병 환자의 관찰 등을 통해서 인간의 행동과 의식이 분리될 수 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토마스 헉슬리 등의 과학자들로부터 '인간은 오토마타이며 우리가 의식이나 자아라고 믿는 것은 뇌가 만든 log file 이다'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이런 가설들에 더욱 힘을 실어줍니다. 그 중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 자기 공명 촬영 기법을 통해서 인간의 뇌를 찍어보면, 의식이 다루는 주제에 따라서 뇌의 다른 부분이 활성화됩니다. 예를 들어서 수학 문제를 풀 때와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뇌의 일부분이 활성화되고 다른 부분은 비활성화되는 식인데, 이 발견이 의미하는 바는 이 글의 0번에서 정의한:

자아: 우리 일상의 모든 경험(감각, 사고, 행동 등)의 밑바닥에 있는 모든 경험을 통일하여 모든 경험을 하는 바로 그 당사자라고 생각되는 의심할 수 없는 자신을 말한다.

이런 게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서 뇌의 다른 부분을 사용하기 때문에, 모든 경험을 통일하여 경험하는 곳이 따로 있지 않다는 이야기지요. 뇌의 특정 부분이 손상되면 그 특정 능력이 손상됩니다. 전전두엽 피질은 우리의 도덕 개념을 관장하고 편도는 공포와 동정심을 관장하는 부분이라고 알려져있는데, 미국의 교도소에 수용된 사람의 1/4 정도가 이 두 부분 중 하나가 손상되어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사이코패스는 무슨 철학적인 숙고를 거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편도가 손상된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 앞에서 최면술이나 몽유병의 예를 들어서 인간의 행동과 의식이 분리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에 관해 더욱 치명적인 관찰은 2007년의 헤인즈의 연구 결과였는데요, 헤인즈는 실험 대상자들에게 두 개의 숫자를 주고 본인에게 두 숫자를 더하든지 빼든지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앞의 시계를 보면서 자신이 더하기와 빼기 중 무엇을 수행할지 결정한 시점이 언제인지 기록하게 했습니다. 인간이 더하기와 빼기를 할 때 전두엽의 활성 패턴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한 헤인즈는, 실험 대상자들의 전두엽 활성 패턴을 측정하여 그 인간이 실제로 더하기를 시작하거나 빼기를 시작한 시점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실험 대상이 본인이 결정을 내렸다고 믿는 시점실제로 결정이 이루어진 시점보다 나중이라는 것을 알아내게 됩니다. 이 실험은 이후 빨강/파랑 단추 누르기 실험 등을 통해서 다른 연구 그룹이 다양한 방법으로 교차 검증하였고, 우리의 의식이 뇌의 실제 동작 시점보다 최대 10초나 늦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됩니다. 헉슬리의 '인간은 오토마타이며 의식과 자아는 log file 이다'라는 주장의 강력한 근거가 되었지요.

4. 자유 의지라는 환상.

의식이나 자아라는 것이 환상이고 인간이 오토마타라면, 당연하게 따라나오는 결론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란 없다는 것입니다. 유물론적 세계에서는 그 어떤 것도 인과율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2010년 캐시모어 논문의 유명한 그림입니다. 



그림 A는 전통적인 자유의지 개념도입니다. 자유의지 (WILL) 은 인과율의 바깥에 존재하며 의식 (Conscious thought) 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끼칩니다. 의식은 무의식적인 신경 작용 (Unconscious neural activity) 를 결정하고, 그것이 우리의 행동 (Behavior) 를 결정하여 바깥의 물질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반대로 물질세계는 유전자, 환경, 양자역학적 임의성을 (GES; Gene, Environment, Stochasticity) 통하여 우리의 신경계에 간섭하고 그 결과는 다시 우리 의식으로 피드백됩니다. 신경 과학계에서 지난 200년 동안 이루어낸 모든 결과물은 A 모델이 거짓임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그림 B는 유물론의 일부 사조에서 자유의지를 합리화하는 방식입니다. A의 모델을 약간 수정하여, 자유의지 역시 신경계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 의식을 조정한다는 모델입니다. 이런 방식의 설명을 양립가능설 (compatibilist; 자유의지와 인과율이 양립할 수 있다) 이라고 하는데, 자유의지가 인과율에 종속된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그냥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림 C의 모델에서는 자유의지가 아예 삭제되어 있으며 화살표의 굵기가 반대로 변했습니다. 모델 A와 B에서는 의식이 신경계에게 결정을 통보하고 신경계는 결과물을 보고만 하는 수준이었던 것에 반해서, 모델 C에서는 신경계가 의식에 결정을 통보 (이 모델에서 의식은 log file) 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의식은 가끔 무의식이 지난 기억을 검색할 때에나 사용되는 수준이라는 모델입니다. 이 모델이 현재 신경 과학계에서 주장하는 모델이자 양립 불가능설 (incompatibilist;  자유의지와 인과율은 양립 불가능하다) 에서 말하는 모델이자 제가 믿는 모델입니다. 캐시모어 논문은 결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현실은, 우리가 자유 의지가 없다는 말이 우리가 파리나 박테리아 수준으로 자유 의지가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설탕 한 줌이 자유 의지가 없는 수준으로 우리도 자유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은 우주 어디에서나 같고 그 법칙은 자유 의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5. 유물론과 과학에서 볼 때 자유의지도 없고 의식도 없고 자아도 없다고 치고, 영혼이 있으면 다 해결?

0번에서 이야기했듯이, 영혼은 그 단어의 정의상 과학의 범주 밖에 있기 때문에 과학의 범위에서는 판단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영혼을 믿어서라도 자유 의지가 있다고 믿고 싶으면 그거야 그렇게 하면 됩니다. 다만 유명한 무신론자이자 신경 과학자인 샘 해리스는 

"당신이 (문맥상 사람의 의식) 당신 영혼을 선택할 자유가 없었는데 그 영혼이 무슨 선택을 자유롭게 하든 말든 그게 당신 자유와 무슨 상관입니까?" 

라는 반박을 했었지요. 저는 저 반박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6. 자유의지도 없고 의식도 없고 자아도 없고 영혼도 없으면 나보고 뭐 어쩌라고?

이런 결론을 내고 나면 사실 꽤 울적한 것이 사실입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진화론의 선구자인 찰스 다윈은 진화론이 자유 의지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긴 말이

"이 사실은 생각을 아주 깊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깨달을 수 없고, 따라서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질 수가 없으니 사회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다소 냉소적이고 진화론부심 가득한 말을 남겼지요. (근데 도킨스는 이 이야기를 널리 퍼뜨려 돈을 많이 벌었다는 건 함정) 사실 저만 해도 자유의지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나니 꽤 울적하게 느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자유의지가 결정론적 세계관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거야 약간 과장 섞어서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것이니 저런 생각을 처음 했던 것은 꽤 오래전이었지만, 그런 식으로 문장 한 두 줄로 아는 것과 뇌의 신비가 하나하나 벗겨지면서 새록새록 우리가 오토마타인 것을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은 기분이 좀 다르더라고요.

하지만 저 결론을 다른 태도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유명한 천문학자이자 무신론 (본인은 불가지론자라고 말하지만 그건 그냥 립서비스....) 인 칼 세이건이 남긴 것인데

"우리는 우주가 오랜 시간을 거친 성숙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첫걸음입니다. 우리는 우리 기원을 궁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별의 시체에서 태어난 것들이 우주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지요. 수없이 많은 원자가 모이고 모이고 위로 위로 더 복잡하고 더 복잡하게 진화해서 마침내 의식이라는 특성이 우주에 등장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종과 우리 별에 고마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꼭 우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주 자체를 위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합니다"

두 번째는 붓다입니다. 아마 칼 세이건보다 더 유명하지요?

"자아라는 것은 허상이니 자기 자신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고 모든 타인과 다른 생명을 사랑하도록 하십시오"

둘 다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선택은 자기 마음대로.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6-20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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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에스디
13/05/23 06:29
수정 아이콘
안녕하세요 설탕입니다 그래도 저는 기왕이면 유기농 흑설탕 쪽으로...
의식을 가지고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분에 넘치는 행복이죠. 잘 읽었습니다.
13/05/23 07:03
수정 아이콘
형제 설탕님 반갑습니다. 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정도만 해도 꽤 굿딜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공짜인지라!
레지엔
13/05/23 07:00
수정 아이콘
뭐, 있으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습니까. 나는 숨쉬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13/05/23 07:05
수정 아이콘
저도 평소에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는데, 금연한 지 꽤 되었어도 가끔 니코틴 충동이 확 일어나는 것처럼 이 주제도 종종 머릿속에서 되살아나서 저로하여금 술을 먹게 합니다.
레지엔
13/05/23 07:12
수정 아이콘
어차피 저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신경과학적인 물건이 아니라 정치적인 물건이라고 보는 입장이라... 자유의지가 없다고 인정받는 것이 술을 땡기게 하진 않더라고요.
13/05/23 07:14
수정 아이콘
자유의지가 있어야만 개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고 그래야만 법과 도덕을 세울 수 있으니, 정치적으로 꼭 필요한 개념이긴 합니다. 그래서 저런 수많은 발견들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가 널리 퍼지지 않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글링아빠
13/05/23 07:02
수정 아이콘
역시 그 옛날에 모든 걸 파악하신 붓다 짱짱맨..은 농담이고,

설사 모든 걸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내가 자유의지가 없음을 내가 인식하는 것 역시 멋진 일 아니겠습니까.. 흐흐..
13/05/23 07:06
수정 아이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포스트 기독교 사회에서는 점점 불교의 가르침이 퍼지지 않을까 합니다. 일단 자유의지를 부정한 상태에서 도덕이라는 것을 세울 방법이 불교적 접근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지라.
저글링아빠
13/05/23 07:10
수정 아이콘
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전 불교를 통해 진심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다윈의 말대로 불교이론도 생각을 아주 깊이 하기 전에는 깨달을 수 없는 것이어서,
긴 역사를 거치며 사람들이 별 생각 없어도 알기 쉬운 내용으로 이미 제멋대로 변형되었다는 건 함정.

개인적으론 파고들자면 심각한 회의론자를 위한 종교라고 생각을..
그래서 널리 퍼질지는 모르겠네요^^
포스트모던과는 잘 어울리지만 자본주의랑은 또 잘 안어울리기도 하구요.
13/05/23 07:20
수정 아이콘
그래서 저도 언젠가는 불교를 좀 공부해야할텐데 일단은 연구비부터 좀 따서 아들부터 먹여 살려야.... 그러려면 지난 연구를 빨리 논문으로 출판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밀린 실험을 빨리 마무리해야 하는데... 그러려고 지금 재즈의 본 고장 뉴 올리언즈까지 와서 재즈는 듣지도 못하고 실험만 하고 있는데... 아 일단 눈물 좀 닦고;;;
저글링아빠
13/05/23 07:23
수정 아이콘
크크.. 기회 닿게 되면 천천히 접해보시면 되죠... 이천년도 훨씬 더 썩은게 어디 안 도망가요..
아마 쓰신 글로 보아 잘 즐기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에이멜
13/05/23 07:23
수정 아이콘
그렇습니다. 우리가 애인이 없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운명.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거의 상태만으로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고, 만약 이러한 명제를 조금이라도 부정하는 증거를 확보한다면 (그것이 무엇인가에 관계없이) 그 증거에 '자유의지'라는 이름을 붙여주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 물론 전 저러한 명제가 증명 될 리가 없다고 보기에 자유의지에 관한 논쟁은 신이 존재하는가에 관한 논쟁과 비슷한 양상을 띌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13/05/23 07:27
수정 아이콘
미래의 완벽한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양자역학을 통해서 증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 임의성 내지는 비결정성에 자유의지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들도 제법 있고요. 그것에 대한 반론도 이미 있는데,

"인과율의 지배를 받지 않는 주사위가 있다고 치자. 당신은 대부분의 시간은 결정론적으로 움직이고 가끔씩은 저 주사위를 던져서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고 치자. 그것을 과연 당신은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하겠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 반론에 동의하는 사람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요. 거기서부터는 가치관의 영역으로 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에이멜
13/05/23 07:52
수정 아이콘
네. 그래서 저는 이 테마가 이미 어느정도 완결된 논쟁(신이 존재하는가 하는 논쟁이 완결된 논쟁인 정도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반론은 근본적으로 '게임의 대부분은 선택불가능하고, 가끔씩 선택가능하다고 치자. 그럼 게임은 선택가능한가?'하는 수준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논쟁은 3DO시절에 활발하게 논의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자유의지의 '존재성'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그것의 빈도를 끌어들이는 것 역시 부적절한 논법이고요.
거의 모든 자연수는 소수가 아닙니다. => 소수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죠.
13/05/23 08:03
수정 아이콘
아 저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내 의지가 들어가지 않은 비결정성을 "자유"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정의라는 뜻이었습니다.
에이멜
13/05/23 08:23
수정 아이콘
그렇다면 문제는 '자유의지'라는 단어 자체의 모호함이 되겠군요. '자유의지'라는 것을 전혀 모호함이 없는 형태로 정의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봅니다.

그런측면에서 자유의지를 '과거의 상태만으로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13/05/23 08:27
수정 아이콘
자유의지를 그렇게 정의한다면 그것이 존재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자유의지는 개인에게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있는지 여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씀하신 정의대로라면 자유의지가 있더라도 개인은 그 의지의 결과물에 책임이 없지 싶습니다.
에이멜
13/05/23 08:31
수정 아이콘
한 인간이라는 폐쇄된 계 안에서의 자유의지를 생각하면, 그 자유의지가 어떤 형태인가, 어떤 것인가와 무관하게 그 행동은 온전히 그 사람의 책임이라고 말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계 밖에서 온 요인에 의해서 예측불가능성을 띄게 된다면 그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인정할 수 있겠지만요.
13/05/23 08:41
수정 아이콘
양자역학적인 임의성을 그 사람의 일부로 볼 것인지 아니면 외부요인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서 다른 결론이 나오겠네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에이멜
13/05/23 08:50
수정 아이콘
빠르고 적절한 피드백 감사드립니다.
허공에삽질
13/05/23 07:26
수정 아이콘
전기과 출신이라 그런지 뇌의 신경회로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신경세포로 구성된 이 신경회로는 정말 그야말로 인간이 접할수 있는 복잡계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시스템일것 같습니다. 전공자가 아니라 얼마나 이런 복잡회로의 구조가 규명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뇌의 신경회로의 구조 또는 매카니즘이 아직 신뢰할만한 수준이하로 알려진경우, 이런 복잡한 회로상에서 거시적으로 관찰되는 뇌의 활동(fMRI상에서의 피의 흐름)을 근거로 인간의 행동과 판단의 유무를 판단하는것이 강한 신뢰도를 가질까요?
13/05/23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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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어느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뇌가 사고를 지배하는 메커니즘을 아직 충분히 안다고 말할 수 없고, 님의 말씀대로 어떤 패턴이 어떤 사고와 연관성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지요. 아직 갈 길이 멀긴 합니다. 다만 그동안의 모든 관찰은 일관되게 한 방향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허공에삽질
13/05/2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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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합니다. 제가 생각했던건 마치 수많은 트랜지스터들이 유기적으로 구성된 한 씨피유의 동작을 규명하기 위해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돌리면서 그 씨피유의 부위별 발열을 거시적으로 측정하는 방식이 현 fMRI를 사용하여 인간의 사고의 매카니즘을 규명하려 시도하는것과 유사해보는것입니다.
참 재미있고도 신기하고도 어려운 분야같습니다. 아직 갈길이 멀어보입니다만 언젠간 괴수 과학자들이 규명해내겠지요 크크
재미있는글 감사합니다~
13/05/2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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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입니다. 관련연구자로서 한마디만 첨언하면 fmri는 혈류의 흐름보단 부위별 산소 사용도 측정에 좀 더 가깝습니다. 그러면 발열과 더 비슷할지도.
허공에삽질
13/05/2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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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정보 감사드립니다!
azurespace
13/05/23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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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실 오토마타라.... 만일 그렇다면 그 오토마타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오토마타가 아닌 확률적 오토마타일 것입니다. 요컨대 각각의 상태와 상태를 연결하는 간선은 선택될 확률을 지니고 있겠죠. 퍼지 오토마타라고도 부를 수 있겠습니다. 저는 같은 사람이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경우 언제나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13/05/23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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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란 게 환상이라고 말해도 그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죠
올라갈팀은올라간다
13/05/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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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나오니 않은 개념으로, '마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현실 세계와 유리된 자유 의지는 없다고 해도 크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마음이란 건 신경계의 작용으로 실존하고 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요. 단순히 자유 의지라는 대상이 없다고 해서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결정론적으로 움직인다거나 자유가 없다고 하기에는 비약이 있지 않을까요. 자유 의지 없이 마음만으로도 인간이 기계와는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13/05/2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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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시는 "마음"과 제 글의 "의식"이 거의 같은 의미인 것 같습니다만.... 그게 아니라면 어떤 의미인지 추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각인생
13/05/2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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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가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의식, 감각 같은 것은 어디서 생겨나는 걸까요? 저는 인간이 신경, 근육, 뼈 등으로 이루어진 기계다 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입장이지만 아무리 뇌의 신경 연결이 복잡해진다고 해도 의식이나 자아 같은 것이 생겨날 수 있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더라고요.
13/05/2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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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학적으로 보자면, 신경계는 크게 중추, 말초, 그리고 자율신경계로 나뉩니다.

그 중, 자율신경계는 우리 의지로 움직이지 못하는 신경계로 보고, 크게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로 나뉘는데요,
고전적으로 교감신경계가 자극되면 흥분, 그리고 부교감 신경계는 침착해지는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된다고 하지요.
그래서 교감이 올라갔다가도 부교감이 그것을 억제해서 우리 몸을 정상(resting)으로 돌린다라고 하는 기전을 믿어왔구요.
즉, 교감과 부교감은 서로 음양의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우리 자율신경계를 조절한다고 믿어왔습니다.....만

그런데 최근 들어서 많이 통용되는 이야기는
평소 부교감이 dominant하기 때문에 우리몸이 차분하게 있다가, 자극이 들어오면 부교감 신경계의 activity가 줄어들면서
교감신경계가 dominant해지게 된다는 쪽으로 말하고 있더군요.


이 말을 조금 orbef님의 글과 연결시켜서 조금 확장시켜보자면, 저는 감정이라는 생물의 본질적 요소가 너무 저평가 되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의 이성에 통제되는 자유의지라는 것은 평소에 dominant하게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지만,
결국 감정이라는 본능에 의한 행동패턴이 어느 순간 가장 중요하게 드러나지 않나 싶어요.
그러고 나서 시간이 지나 감정이 잦아들고 우리의 자아가 감정의 수위보다 높아지게 되면 다시 평정을 되찾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다가도 과거의 감정에 기반한 행동이 부끄럽기 때문에 자다가도 이불에 대고 하이킥을 하는 것이기도 할 테구요. -_-;;;;;
나다원빈
13/05/2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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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복잡한 회로도를 보면 마치 그게 아무 규칙도 없고 일관성도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회로도를 이해할 수 있는 지식과 시야가 생기면 그 회로도의 규칙과 패턴을 파악하고 확장시킬 수도 있죠.

현재 인간의 자아란 아직 파악하지 못한 뇌의 행동패턴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파악하게 되는 날 인간의 자아란 것도 단순히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의 행동패턴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될 수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라고 쓰니 댓글에 이미 그런 내용이 수두룩...
개미먹이
13/05/2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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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능을 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기계적인 메카니즘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과학의 높은 성취인 것 같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더 이상 영혼이니, 자아니 하는 형이상학적 개념에 얽메이지 않게 되는 것은 역으로 인간을 자유롭게 이해하는 첫 걸음이라고 봅니다.

본문에서 예를 드신 "두 개의 숫자를 주고 본인에게 두 숫자를 더하든지 빼든지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기회" 정도의 차원에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본능적인 선택에 가깝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서는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급박한 상황에서의 대피 능력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뛰어난 성취들, 예를 들어 과학과 같은 자연에 대한 학문이라던가, 법학, 정치학, 철학과 같은 인간 스스로에 대한 고찰을 돌이켜 보면, 과연 인간DNA의 기계적인 반응 만으로 이러한 성취들이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비록 영혼이나 자유의지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 (어차피 이 개념들은 인간이 정교한 과학을 만들기 전에 있어온 종교적인 개념입니다)에 의지 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난 성취들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능력에 자부심을 갖아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보고픈
13/05/2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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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무지하게 어렵네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경계 즈음에 서서 양쪽이 혼합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일감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자유의지라는 게 무언가 하는 거네요.
그것이 과학적으로 존재를 밝힐 수 있는, 그리고 밝혀야 하는 자연 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적당한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자유의지라는 것을 신경계의 활동 단위로 내려가서 검증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신경의 자극에 따른 반응이 동일하게 나타나니 이는 자유의지가 없다고 하는 건 무식하게 생각해 보면 바늘로 찔러도 자유의지로 아픔을 안느낄 수 있는가, 아픔을 느끼는 건 다 똑같지만 그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는 것 아닌가, 그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 개인의 자유의지를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의지라는 말 자체가 본능에 따른 반사작용이 아닌 스스로의 판단에 의한 결정을 의미하는 것일텐데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은 모든 것은 본능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말인가요? 그런데 사람들은 똑같은 자극이 주어져도 저마다 다른 판단을 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그것을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된 것이며 그것도 본능에 따른 반사작용일 뿐이라는 건가요?

여러가지 의문을 제기했지만 반박을 하는 내용은 아니며 질문을 하는 것으로 받아주시면 되겠습니다. 실은 살짝 멘붕이 와서 저 스스로도 혼란스럽네요.
13/05/2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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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저도 멘붕입니다. 그래서 이런 해로운 글을 올렸다가 멘붕을 전염시키는 것 아닌가 싶어서 고민을 많이했는데, (저번 글이 사실 그 정신상태에서 올린 글입니다) 이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픈 욕구가 너무 컸고 사람의 지적 욕구는 득실 이전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결국 올렸네요.
보고픈
13/05/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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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기만이 아니라면 이를 공론장에 내놓는다고 해서 해로운 경우는 절대 없다고 해야겠죠. 어차피 겪어야 할 멘붕이라면 pgr같은 경로를 통해서 겪는게 훨씬 편안할 테니 이는 오히려 권장할 일입니다.
그러니 빨리 제가 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내놓으세요.
13/05/2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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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지금 모바일이라 장문의 댓글을 쓸 상황이 아님을 감안해주세요. 일단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기가 태어날 때에는 약 1조개 정도의 시냅스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시점에서 시냅스의 초기조건은 유전자와 태교 형태에 따라서 다 다르니까, 이미 1조 팩토리얼 정도의 개성이 가능하지요. 그리고 성장하고 교육받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시냅스는 없어지고 남은 시냅스가 서로 강하게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정신"의 실체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무한에 가깝게 다채로운 오토마타가 가능한 것이고, 때문에 주어진 동일 자극에 다들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죠.
보고픈
13/05/2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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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바일로 열심히 댓글 달아주셨는데 거기다 닥달을 했다니...
편한 조건일 때 천천히 답글 주셔도 됩니다. 조금 더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남은 시냅스가 서로 강하게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정신"의 실체'라고 이야기하셨는데 그 정신을 자유의지라고 칭하는 것이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이를 굳이 자유의지가 없다라고 판단해야 할지. 처음에 질문했듯이 사실상 자유의지라는 것은 자연과학적으로 그 존재를 판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유의지라는 것을 먼저 정의하고 그 메커니즘을 규명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싶네요. 결국 자유의지라는 것은 자유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13/05/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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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냅스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현재 시냅스의 형태 + 주어진 자극 = 내일 시냅스의 형태

이런 식의 오토마타 플로우차트를 따를 텐데, 이것은 당구공이 큐에 맞아서 (수정/착상) 굴러다니면서 다른 공과 부딪히면서 궤적을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의사와는 별로 상관이 없으니까, 당구공의 궤적이 자유롭지 않은 것처럼 인간의 정신도 자유롭지 않다... 그 정도의 이야기르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보고픈
13/05/2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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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인지는 어렴풋이 이해합니다.
다만 저로선 이 이야기 어딘가에 교묘한 문맥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자연스럽지 않은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고 그 점에서 살짝 위화감이 느껴지는데 아직 정리가 잘 안되네요.
정리되는대로 추가적인 질문 드리겠습니다.
지각인생
13/05/2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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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행동패턴이 아무리 복잡해져도 뇌를 구성하는 구성물질(원자나 그보다 더 기본적인 입자들)의 위치, 상태, 움직임으로 그 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하면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형태의 의식이나 감각이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뇌를 보고 그 작동원리에 대해서 연구하면 완전히 기계적인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겪고 있는 의식이 어디서 나오고 어떤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아요.
13/05/2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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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쪽 이론이 나름 꽤나 정교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정리되가고 있으니 가벼운 흥미를 가진 사람으로서는 제대로 반박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결국 영혼이란게 뇌의 산물이라면, 이는 무신론으로 연결되기가 쉬울테고..(물론 뭐 일부 사람들에겐 창조를 강화시키는 쪽으로 갈 수도 있겠습니다.)
내세라던지 윤회따위는 완전 허구의 산물로 증명될테니깐요. 그러다 보면 말씀하신대로 좀 허무해지긴 합니다.
어찌보면 컴퓨터가 나오고 나서 더더욱 사람들이 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분하다 보니, 나의 소프트웨어는 내것이고, 내가 가져갈꺼야.. 라고 직관적으로 믿어버리고 싶은 맘이 생기는 건 같습니다.
피자21
13/05/2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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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우주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게 칼 세이건이란 천문학자가 남긴 말인가 보군요.
진짜 처음 들었을때 소름끼치게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우리가 기계인지 아닌지는 머지 않은 미래에 실제 체험할 수 있게 될거라고 봅니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서.. 의식을 컴퓨터로 옮겼는데도 똑같이 자유의지가 있는것처럼 느껴진다면 논쟁의 끝이 아닐까 싶네요.
당연히 그렇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실제로 확인된다면 엄청난 충격이겠죠.
근데 이렇게 되면 영생(?)이 가능해지는건가..
13/05/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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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면 빛의 속도로 우주를 여행할 수 있겠습니다 ;)

참, 그리고 칼 세이건의 13 부작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는 인간이 죽기 번에 한 번은 볼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기 전과 본 후는 결코 같지 않을 겁니다.
알파스
13/05/2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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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운동하다가 캄캄한 하늘에 떠있는 밝은 달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와 도대체 저길 60년대에 어떻게 갔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근데 계속 보고 있으니 '아 나란 존재 미약한 존재 아직 내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흰코뿔소
13/05/2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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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에서의 영혼에 대한 연구에는 약간의 헛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결정을 내렸다고 믿는 시점'은 본인의 결정을 인지하는 시점이며
'실제로 결정이 이루어진 시점'은 영혼이 결정을 내린 시점일 수 있지요.
제가 보통 내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인지가 느린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 자신을 잘 성찰해보면 이미 결론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머리로 인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잘 파악을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A를 원치 않아'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A를 갈망하는 경우를 제 자신을 돌아봐도 주변을 봐도 흔히 알 수 있지요.

그러면 왜 뇌가 손상될 경우가 그 특정능력이 손상될까요?
그 이유는 영혼의 의지(?) 발현을 위한 물질적인 매개체가 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나 비행기, 컴퓨터 등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자 하여도 control system이 고장나면 그럴 수 없겠지요.

그리고 부처님은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십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경에 부처님의 전생이 나올리도 없거니와 여러 종류의 신들이 등장할 수가 없지요.
다만 영혼도, 자아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허상'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허무, 허망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거든요. 수상행식도 마찬가지.
모든 물질과 정신세계는 공하지만 공한 와중에도 존재한다. 그러기에 이 세상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한다.

불교에서 자유의지란 미묘합니다. 인연에 의해서 결정되고 영혼에 각인된 함장식(아뢰야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내가 A라는 사람을 사랑한다 해도, A와의 인연이 발현되는 것이 대다수 입니다. 미워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보통 중생은 인연, 업장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부처님만이 진정 자유롭다고 할 수 있구요.

@ 실제 부처님의 뜻과는 다를 수 있으며 제가 듣고 이해한바를 적어보았습니다.
13/05/2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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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쪽는 관심은 많지만 아는 바가 적어서 뭐라 댓글 달기가 조심스럽네요. 다만 앞에서 말씀하신 "시점에 관한 지적"은 그럴 여지가 없다고는 못하겠네요. 재미있는 시각입니다.
흰코뿔소
13/05/2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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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참고하시라고 적었습니다. 굳이 그에 대한 의견을 말씀 안하셔도 :)
13/05/2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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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느끼기엔 인간의 자유의지와 의식이 인과율과 양자역학적 무작위성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얘기는
모든 컴퓨터 프로그램의 동작이 0과1상태만을 알고 있는 트랜지스터에 의해 결정된다는 얘기같군요.

즉 맞는 얘기이지만, 기본 원리인 트랜지스터라는 것은 computer scientist나 programmer에겐 그다지 큰 의미는 없는 얘기죠.
그보단 오히려 프로그래밍 언어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것이 '실재'하며,
프로그래밍 언어를 '잘 작성'하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의지라는 것이 완전 허상이며 의미없는 것이라고는 얘기할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13/05/2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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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다만 단순한 것이 무목적하게 스스로의 힘으로 진화하여 복잡한 것이 되었다는 진화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프로그래밍 언어 역시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트랜지스터들의 조합에서 창발한 것, 즉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 것으로 보아야 하니 기존 시각과는 좀 다르긴 합니다.
swordfish
13/05/2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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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자들 보면 기계론적 사회시스템과 연결되어
좀 자유주의자의 적 같아서 별로 호감이 가지 않더군요
도킨스는 마치 새로운 세계로 인도 해준다고 말은 하지만
사회적 입장에서 인간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하면 교체가능한 부품인지라
억압과 배제가 가능한 대상이 되죠
13/05/2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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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도킨스가 말하는 도덕이론은 굉장히 헛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논증을 따라가보면 아주 긍정적으로 해석해줘봤자 아주 단순한 형태의 공리주의밖에 나올 수가 없지요. 하지만 과학이란 것은 우리의 호오의 감정대로 가는 것이 아니기도 하기 때문에 그를 비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13/05/2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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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뜨네요. 한 시간 반 동안 사라지겠습니다. 댓글은 나중에 꼭 확인해서 피드백하도록 하겠습니다.
13/05/2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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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당기는 훌륭한 글입니다. 테드 창의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동명의 표제작에서는 페르마의 원리를 이용해서 결정론적 세계를 보여주고, 거기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데, 훌륭한 이야기지만 읽으면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읽은지 오래 되어서 기억은 안 나지만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compatibilist의 입장을 보여줬던 것 같네요. 인과율의 세계에서는 태도라는 것도 무의미한 말장난 같이 느껴졌거든요.
칼 포퍼 같은 과학철학자가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을 비판한 것도 결국 마르크스의 역사주의, 결정론적 세계라는 걸 싫어했기 때문인 걸 생각하면, 정치적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유의지에 대한 토론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유의지에 대한 자신의 태도는 이미 결정론적으로 선행되어있습니다. 정말 자유의지가 없다고 증명된다 하더라도, 그는 입력된 결과를 바르게 프린트한 프린터 정도의 뿌듯함밖에는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파스칼은 유능한 도박사라면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신이 조금이라도 존재할 확률이 있다면 신이 있다고 믿는 편이 좋다고 논증했습니다. 자유의지에 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할 수 있지 않을까요?
13/05/2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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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뭐 이 글에 대해서 모두가 동의해준다고 하더라도 뿌듯하기보다는 허망할 것 같습니다. 근데 왜 허망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사람 마음이란 것이 참 오묘합니다.
쭈구리
13/05/2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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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순수한 비결정론적 세계에서 탄생한 자유의지만이 개개인의 책임을 묻고 도덕을 세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불성설일 수 있지만 단 10%의 자유의지만 갖고 있어도 그 안에서 책임은 물을 수 있습니다. 도덕이란건 순수한 관념론적 사유에 의해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생존과 번식의 필요에 따라 발명하고 발달시킨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순수한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한들 인간 개개인이 서로 격리되어 있거나, 아니면 감정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라면 도덕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저는 칼 세이건의 입장에 완벽하게 동의합니다. 이런 우주에서 복잡한 생명이 탄생하고 인간과 같은 존재가 나타난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인간에겐 여러가지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 내에서 많은 것을 해내고 이룰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에 대해 계속 탐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혼이 있다고 한들 인간이 순수한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신경과학, 뇌과학, 인지과학 등의 연구결과로 인해) 근거는 찾을 수 없습니다. 영혼은 그저 자유의지를 믿고 싶은 자들의 무책임한 도피처가 아닌가 합니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창조주 신을 내세우고 우주 기원에 대한 설명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13/05/2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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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칼 세이건의 저 말은 미치도록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
인생의 마스터
13/05/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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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행동, 지능, 욕망 등 뇌가 보여주는 대다수의 특성들은 기계화가 가능해 보입니다만...

그러나 지금 내가 나라고 존재함을 경험하는 것은 기계로 대체가 안될 것 같습니다.
13/05/2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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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를 벗어난 영혼을 믿지는 않습니다. 비슷한 허무주의에 빠졌던 적이 있고, 지금 제가 정착한 이론은, 인간은 충분히 복잡계이고,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 창발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정도입니다. 봄날씨를 즐기며 양자이론을 생각하지 않듯, 파렴치한 인간을 보며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너를 비난할 수는 없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뭐 그정도의 타협..
또 다르게는 자유의지에 대한 펜로즈의 해석을 좋아합니다. 이 분은 자유의지의 근원을 양자역학이라고 주장하시면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에 기대서 이런 허무를 극복하시려 하십니다.
몽키.D.루피
13/05/2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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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심리철학에서도 영혼(soul)의 존재는 당연히 부정하지만 마음(mind)의 존재까지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에서처럼 완전한 제거주의는 극단적인 입장이고 대부분 어느정도 마음의 기능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게 고대철학의 영혼이나 종교에서 말하는 영적인 존재, 내세, 근대철학의 이원론의 영혼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긴하죠.
그리고 자유라는 개념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흔히 자유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사실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는 없습니다. 개념상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자유를 가진 존재가 둘 이상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자유는 신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애초에 인간에게 부여된 자유라는 개념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라는 내용을 함의하고 있는 겁니다.(freedom과 liberty라는 용어로 구분하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칸트에게 있어서 자유는 본성을 억누르고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자유(본능에 따라 마음대로 행하는 것)와 좀 상반되는 견해죠. 마찬가지로 칼빈에게 있어서 기독교적 자유는 죄성을 따라 죄를 지으려는 인간의 본능을 참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의를 행하는 게 자유입니다. 이처럼 자유라는 개념 자체도 위에 위키 식으로 정의하는게 무조건 옳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본능에 따라 마음대로 행위하는게 자유인지, 그 본능을 억제하는 식의 행위(일종의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행위)가 자유인지는 명확히 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과학자들이 하는 철학 작업은 이렇게 기본적인 개념 정립이 안 된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 본문에서 자유의지를 인간이 스스로 전적으로 통제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면 정의에서 부터 개념상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렇게 정의해버리면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 둘 이상이 모이면 다른 하나의 자유의지는 반드시 침해되거든요. 그리고 굳이 신경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이런 정의는 쉽게 무너집니다. 인간이 스스로 인간의 몸을 전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건 굳지 현대 과학으로 보지 않더라도 명백하니까요.
그러므로 자유의지가 없다고 밝혀졌다고 해서 그렇게 절망하실 필요는 없는 거 같습니다. 신경과학이 밝혀낸 것은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같은 형이상학적 존재가 없다는 것이거든요. 여전히 자유와 도덕, 목적, 마음 등의 개념은 뜨겁게 다뤄지고 있는 주제입니다.
13/05/2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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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래서 당분간 과학자들 책은 좀 멀리하고 언어철학과 심리철학 공부를 좀 하려고 합니다. 뭔가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자꾸 들어서요.
13/05/2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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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몽 보면 머리에 칩이 뇌를 대신해서 애들이 멘붕하는 장면이 나오죠.
그땐그랬지
13/05/2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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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머리통을 자기 손으로 갈라서 거울에 비춰보고 멘붕하는 장면...텅 빈 공간에 칩 하나 덜렁 있는 장면...인상적이었죠.
쭈구리
13/05/2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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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자렘인들은 뇌가 있는 고철마을 사람들과 똑같이 사고하고 행동하죠. 뇌에 저장된 모든 기억이 칩에 이식되고 그 칩이 뇌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모방하여 작동할 수 있다면 인간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겁니다.
Legend0fProToss
13/05/2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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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도 있듯이 정치,법의 근간이 자유의지기 때문에 쉽게 건드릴수는없죠
사실 자유의지라는게 현대관점에서 보면 실재한다기보단 사람들이 만들어낸 구성개념이라고 봐야하겠죠
다만 자유의지라걸 통해 말로 개인이라는 개체에 담고 있는 유전자 및 사고체계,행동체계에 대해 책임을 지울수있는
기준을 만들어준다는데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유의미하게 다룰수있는 단위가 개인이니
그 기준을 잡아주는 구성개념으로써 자유의지는 의미가 있다고 할수있습니다.
도킨스가 말하는 차=인간 유전자=운전자의 비유를 들어 차를 처벌할게아니라 운전자를 처벌하는게 맞지않느냐하지만
차들의 세계에서는 차를받아버리는게 정상이지 그안에 운전자를 꺼내서 공격하는건 말이안되죠
Legend0fProToss
13/05/2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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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어떠한 단위(개인,집단,유전자,세포)가되었든 개체간의 배신(공격)행위를
처벌하는것은 진화에 있어서 필수적이기에 자유의지를 통해 인간이라는 개체의 범위를정하고
그에응하는 처벌을 하는것은 비자연적이고 비과학적이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 제글은 왜이렇게 전달력이없죠...쓰면서 답답하네요ㅠ
13/05/2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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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동의하긴 하지만, 여기에는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사회가 개인을 처벌하는 것은 정당화가 되지만 개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왜 악한 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매우 어렵다는 문제가 좀 있거든요.
Legend0fProToss
13/05/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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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것이기라기보다는... 진화라는 것이 개체들이
협력/배신이 공존하는 딜레마게임(죄수의딜레마)으로 봤을때
배신은 상대방의 협력을전제로 달콤한 착취를 선물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배신일변도의 전략이라면 이미 인류는 이런 집단생활이 불가능했거나 망했겠죠
그런걸 바탕으로 봤을때 그에 대한 처벌은 협력을 이끈느 필수적요소이며 진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요소라고 보고싶네요
이러한 배신에 대한 처벌의 메커니즘은 인간 뿐아니라 다른종 혹은 세포나 유전자의 다른 수준에서도 발생한다는걸
보이는 견해들이 나타나고있습니다...
결론은 마틴노왁의 "초협력자"라는 책을 추천드립니다!
13/05/2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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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씀은 100% 동의합니다. 다만, 언젠가 다른 글에서 썼던 이야기인데, 진화나 공동체의 생존 가능성이라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도덕율은, 공동체가 이러저러한 법을 세우면 잘 돌아갈 거라고, 또 개인이 이러저러하게 행동하면 생존 확률이 올라갈 거라고 보여줄 순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실관계이지 당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머리가 똑똑해서 절대로 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는 연쇄살인마가 자신에게 큰 쾌락을 주는 살인을 굳이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Legend0fProToss
13/05/2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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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도 당위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머리가 똑똑한 연쇄살인마가 쾌락을 주는 행위를 하지말아야할 이유는없지요
하지만 연쇄살인마와 같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그 살인마를 찾아서 응징을해야지요
그래야 지금의 연쇄살인마의 위협도 줄이고 미래에 살인마가 또 출현할 가능성도 줄지않을까요?
절대로 잡히지 않는다는가정에서는 저도 반박 못하겠습니다만 잡힐가능성이 조금은 있다고하면
연쇄살인마는 쾌락>잡혀서 처벌받는 리스크 가 크다면 계속 나타날것입니다.
그러니 잡혀서 처벌받는 리스크를 높여주는게 저는 공동체 존속에 큰 기여를한다고봅니다.
13/05/2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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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대략 동의합니다. 다만 그것이 전체주의로 이어지지 않도록 안전 장치는 있어야겠지요.
13/05/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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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과학을 공부하다 보니 저러한 사실들이 어느 순간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어버려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네요. 더불어 '인간이 이렇게 똑똑할 필요가 있나?' 라는 자화자찬격 의문도 들었구요. 크크
13/05/2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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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저런 논증에 대해서 친화력이 남다른 분들이 있긴 하더군요.
13/05/2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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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화력은 없는데 그냥 그런가보다 합니다.
뭐 내 자유의지가 있다한들 내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게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사실의 자각뿐이라고 생각해보면
그딴거 그냥 과학의 영역으로 냅두고 난 철학의 영역으로 접근해보는게 훨씬 생산성 있을 거 같기도 합니다.
13/05/2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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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제가 원래 배경이 과학/공학이다보니 이쪽이 더 편하더라구요. 철학책은 학부 교양 교재도 어렵지만 과학책은 웬만하면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으니까요. 외국어 vs 국어의 느낌이랄까요..??
보고픈
13/05/2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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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인즈의 실험이 '인간은 오토마타이며 의식과 자아는 log file 이다'는 결론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의식과 뇌의 동작을 구분한 것이 올바른 것인가 하는 점도 의문스럽고.

제가 여기에 뭔가 문맥전환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1.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 자체가 뇌의 활동의 산물이다.
2. 뇌의 활동이라는 것은 각 신경세포들의 자극에 따른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3. 결국 자유의지라는 것은 주어진 인풋이 정해진 알고리즘을 거쳐 나오는 것이다.
4. 그러므로 자유의지라는 것은 없다
는 논리의 전개가 타당한가 하는 부분입니다.

마치 생각할 줄 아는 로봇을 만들었다는 주장에 대해
그 생각이라는 것도 결국 생각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준 것이고 그 알고리즘에 의해 나온 것인데
그러면 그것을 생각하는 로봇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네요.

개인적으로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결론보다는 자유의지란 무수한 뇌 신경세포들의 생물학적 반응의 결과다라는 결론이 훨씬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자유의지가 없다는 결론의 실천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13/05/2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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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헤인즈의 실험 하나만 가지고는 좀 부족한 면이 있지요. 다른 한가지 연관되는 실험들을 소개하자면,

빨강 파랑 버튼 실험같은 선택 실험에서, 피실험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미리 대화를 통해서 약을 쳐두면 80% 이상의 확률로 한 쪽 선택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실험자는 자신의 선택이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나중에 그 사실을 밝히더라도 '아냐아냐 난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걸 스스로 선택한 거야' 라고 합리화를 한다는군요.. 물론 80% 의 확률이 보여주듯이, 피실험자의 주장은 환상이고 그의 선택은 무의식 오토마타가 결정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은 의사 결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사 결정이 다 이루어진 후 그것을 저장해놓는 회로라고 볼 만한 실험 결과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무의식은 자유의지가 있다' 고 말해버리면 문제가 해결되긴 하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존재가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본문의 샘 해리스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지요), 애초에 무의식이라는 놈이 인과율에서 벗어난 자유의지가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지요.

자유의지가 없다는 결론의 실천적 의미라면, 아무래도 '도덕' 과 관련이 있겠지요.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차를 처벌할 수 없듯이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에게 죄를 물을 수 없으니까요. 요 바로 위의 legendofprotoss 님과의 댓글 묶음이 관련 이야기입니다.
보고픈
13/05/2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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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들어갈수록 이는 자유의지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부터 논의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뭔가 레이어가 다른 것들이 혼동되어 있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빨강 파랑 실험에서 무의식에 영향을 줘서 결정을 유도했다는 것이 자유의지의 부정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의식에 영향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 문제이지 않을까요? 미리 약을 친 것에 따라 반응이 결정된 것은 제가 보기엔 자유의지가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유의지가 성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보이네요. 자극에 합리적으로 반응한다는 뜻이니까요.

저 실험을 조금 단순화해서 비유하자면 사랑이 갈급한 한 pgrer에게 미녀와 추녀 두사람을 선보이고서 나는 니가 누구를 선택할지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입니다.

실천적 의미에서 조금 더 분명하게 나오는데 우리가 흔히 자유의지라는 것은 본능에 따른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이를 제어할 수 있다는 의미로 쓰지 않나요? 그렇다면 자유의지라는 것을 실천적으로 논의하자면 인간은 그런 메카니즘을 갖고 있는가 아닌가로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사람을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애초에 브레이크가 없이 만들어졌는가, 아니면 브레이크를 갖고 만들었는데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사실상 브레이크가 고장난 것으로 볼 수 있는 정신질환자의 범죄에 대해 그 누구도 도덕적 책임을 묻지 않잖습니까.

그렇지 않고 인간의 사고가 작동하는 가장 원초적인 작동방식을 갖고서 자유의지가 있다 없다 논하는 것은 컴퓨터가 0과 1의 연산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때는 0과1 어쩔 때는 2와 10의 연산으로 작동해야만 자유의지가 있는것이다라는 주장처럼 들립니다.
13/05/2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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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본능에 따른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이를 제어할 수 있다' 라는 정의를 자유의지라고 본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본인이 본인의 결정에 의식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면 무엇인가를 스스로의 의지로 제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거든요. 본인이 자신의 결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결정의 순간도 인식할 수 없다면, 말씀하신 자유의지가 성립할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만...
보고픈
13/05/2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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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유의지가 무엇이냐 하는 것에서부터 혼선이 있는 것 같은데 자유의지를 자연의 인과율에 구애받지 않는 어떤 의지라고 한다면 그런 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고 만약 있다면 그것은 고장난 메커니즘이겠죠. 빨강 파랑버튼에서 충분히 약을 쳤음에도 그쪽 방향으로 유도되지 않는다면 그건 자유의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의식을 구성하는 메커니즘이 고장난 것이란 말이죠.

제가 볼 때 자유의지란 의식을 구성하는 기저의 작동방식에서 논할 대상이 아니라 그런 작동방식으로 이루어진 sw의 결과물 속에서 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컴퓨터의 원리는 똑같이 0과 1에 기초한 연산이지만 그 연산을 이용해서 만들어내는 sw는 무한히 다양하죠. 어떤 프로그램은 정확히 입력하지 않으면 결과를 내놓지 않고, 어떤 프로그램은 대충 입력해도 다양한 결과를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자유의지를 평가할 때는 그 연산방식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의 메커니즘에 대해서 논해야지 그것이 0과 1로 작동하느냐 안하느냐를 갖고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식과 사고행위를 구분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해되지 않네요. '본인이 본인의 결정에 의식적으로 관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지금 사고하고 있는 나와 별개로 기존에 형성된 어떤 지적 산출물의 집적체가 존재해서 그것이 나의 현재 사고행위에 관여하거나 그 사고행위의 결론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인간의 결정 자체가 자신의 사고행위의 결과인 것이죠. 무의식이 결정과정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하지만 그 무의식이라는 것도 의식이라는 것을 전제해야만 성립하는 개념이죠. 결국 인간이 스스로를 의식할 수 있는 이상 자유의지가 없다는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 댓글이 어째 반박처럼 쓰였는데 반박이라기보다는 제가 납득이 잘 안돼서 좀 더 깊이 생각해보기 위한 질문입니다. 너무 무지한 얘기라 불편을 드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13/05/2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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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시는 자유 의지가 인과율에 종속되어있음을 가정하신다면 본문과 별로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 의지는 인과율에서 벗어난 무엇인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런 거 없다는 게 본문의 요지였습니다.

다만, 말씀하시는 인과율에 종속된 자유의지란 개념은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로봇에게 '가서 사탕을 사 와라. 단 가게에 가는 방법은 니 마음대로 선택해라' 라고 명령을 내려서 로봇이 자신이 가진 플로우 차트에 따라서 버스 탑승을 선택하고 그래서 사탕을 사오면 그 로봇은 자유 의지를 지닌 것일까요?

어떻게 보면, 제 요지는 '자유 의지' 라는 단어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쪽에 더 가까울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자유 의지를 정의하던, 그것은 1. 자유롭지 않거나 2. 존재할 수 없다' 정도의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저도 뭐 입장 정리가 끝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댓글이 조금씩 일관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보고픈
13/05/2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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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할수록 자유의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네요.

만약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가 있다고 가정하면
그 존재에게 일정한 조건의 자극을 가해서 의도한 결과를 이끌어 낸다면 이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존재는 외부의 자극에 반응을 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인데 그런 것이 존재할지도 의문이지만 존재할 가치가 있나 싶네요.
만약 존재한다면 그냥 랜덤한 운동을 하는 개체일 뿐이겠죠. 아니면 그야말로 프로그래밍한대로만 움직이게 되어 있는 기계이거나.

자유의지라는 단어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면 그 실천적 의미인 자유의지가 없으므로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도 성립이 안되겠죠.

제가 말한 인과율에 기초한 자유의지란 자유의지를 구성하기 위한 기초자료들이 인과율에 기반한다는 것입니다.
더우면 짜증을 내고 바늘로 찌르면 아프고 하는 건 자연의 인과율을 벗어날 수 없죠.
하지만 그런 기초자료들을 종합해서 해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인과율로만 접근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13/05/2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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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초자료들을 종합해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도 인과율에 따른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컴퓨터가 아무리 복잡하고 알고리즘이 아무리 복잡해도 결국 컴퓨터는 인과율에 따르듯이, 사람의 뇌가 아무리 복잡해도 결국 인과율에 따를 거라는 맥락입니다.
보고픈
13/05/24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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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정도 인과율을 따른다는 것이 곧 인간은 기계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일지 의문이네요.
그리고 예를 드신 실험들이 곧 그런 것을 증명하는 실험이라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
지구상에 인과율을 따르지 않는 존재가 있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
자유의지라는 것을 분명히 하려면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는 어떤 행태를 보이는지가 설명가능해야 하는데 OrBef님이 생각하는 바에 의하면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의 행동양식을 설명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자유의지라는 것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결국 OrBef님이 정의하는 자유의지란 초월적 존재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13/05/24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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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OrBef님이 정의하는 자유의지란 초월적 존재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예 동의합니다. 결국 저 긴 글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란, "유물론의 세계관과 전통적 의미의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다" 라는 딱 한 줄이었습니다.
13/05/23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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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매우 흥미롭게 본 것과 별개로 제입장에서는 상당히 공포스러운 글입니다 -_-;;
저는 약간 사후개념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는데요, 예~~전에도 자유게시판에 글을 쓰긴 했지만
(여기서 자아는 내가 나라는 인식, 자각 뭐 그런 집대성입니다)


죽으면 모든게 단순하게 끝 -> 자아소멸 -> 노답
지속되는 환생->이전기억을 가지지 못한 다음생애의 자아를 진정한 나로 볼수있는가? 지금의 자아는 내 기억의 집대성일수도 있는데?
->그럼 내 자아는 지금 현재의 내가 죽는순간 소멸인가? ->노답
환생은 없으며 사후세계만 남음 ->사후세계는 영원한가?->사후세계도 끝이있다->자아소멸->노답
->사후세계는 영원하다->영원해? 내 의식이 끝없이 이어진다? 자아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원인모를 공포감에 노답


아무튼 뭐 이런 망상으로 인해 가급적이면 생각을 안하려고 합니다. 끝없이 지속되면 완전 멘붕오거든요,정신질환 발작처럼 잠시동안
옵니다. "그 기분" 이요..지금은 10년넘게 가끔씩 고통받다가 생각을 안하는 방법을 터득해서 최근에 "그 기분"이 들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런 암담함을 기본으로 깔고있어서 제가 인생을 더 악착같이 즐기며 살려고 하는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흰코뿔소
13/05/2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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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되는 환생 -> 이전 기억을 가지지 못하지만 영혼에 각인 되어있는 입력정보가 존재한다 -> 이번생의 운명, 성품, 능력, 인연 등을 결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로는 기억을 하지 못 해도 마음 깊은 곳의 영혼에는 기억되어 있는 정보가 있다. 그것이 어떤 상황이 펼쳐지면 표출된다. 혹은 일반인이 아닌 영적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전생, 혹은 다른 이의 전생도 알 수가 있다.

정도로 수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아라는 것이 기억의 집대성이라면, 기억을 못하는 어린 시절은 내가 아닌 걸까요?
자아가 기억의 집대성이라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할 문제 아닐까 싶습니다.
13/05/2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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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도 썼듯 통칭상 자아라는거지 달리생각하면 그냥 "나"로 해석해도 될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어린시절의 일상을 기억을 못한다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것은 아니겠죠
다만..뭔가 아쉬운 느낌입니다. 내가 나긴 한데..이전까지 내가 어떤사람이었는지 전혀 모를수 있다는 불안감..이라고 해야할까요?
물론 지금현재의 나역시도 이전에 있을지도 모르는 전생의 기억이라던가..이런건 별로 알고싶지 않지만
문제는 다음생에의 나도 이럴것이라는거죠.. 지금처럼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도 , 알수도 없을테니까요

내가 나였다는 사실에 대한 망각과 자아의 소멸이 제 생에 가장 큰 고민입니다. 으 정말 종교라도 가져야 하는건지..
하지만 전 오늘도 퇴근을 하고 실론즈를 탈출하려 애쓰겠죠..
13/05/23 13:38
수정 아이콘
제 마님도 같은 고민 때문에 밤잠을 설칩니다. 인간이라면 피하기 힘든 고민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마님은 그러면서도 내일 저녁엔 프리셀 올클을 위해 달리겠지요.
흰코뿔소
13/05/23 13:43
수정 아이콘
어린시절의 나는 나이지만,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나이겠죠. 앞으로도 계속 변해갈 것이고.
여기서 불교의 무아가 등장합니다. 어차피 나라는 존재는 계속해서 변해가기때문에 집착하거나 메여있을 필요가 없다고.
반대로, 저런 가르침이 등장하는 이유는 Animako님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중생들이 나라는 존재에 매여있기 때문이겠죠. 저도 포함해서.

하지만 색즉시공과 동시에 공즉시색이기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지금 존재하기에 열심히 살면 됩니다. 실론즈 탈출을 위해서 :)
13/05/2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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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허 뭔가 엄청나요.. 어렵기도 하고.. 하지만 답변해주신 말씀은 제게 큰 도움이 될거 같습니다.
저것이 진리일 가능성이 있어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것은.. 제 안에 "그래도 어딘가 바뀌지 않는나만의 [본질]같은 것이
있을것이다]
"는 일말의 기대?희망?같은게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변해가는건 좋지만 완전히 다른것이 된다는건 왠지
무섭거든요 크크

변화 하니까 갑자기 든 생각인데
요즘 하나같이 미래를 위한 투자 , 젊었을때 고생은 사서한다 , 지금 쓰지말고 저축해라 이런말들만 하니까 묘한 반감이 들어서..
저는 젊었을때도 적잖게 즐기자 주의거든요..이걸 불교의 무아에 대입시켜서 정당성을 부여하면 재밌겠다 싶네요

"여러분 , 지금 젊은 나와 미래의 나를 동일선상 위에 놓지 마세요 , 나라는 존재는 변화합니다.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나를
희생하지마세요!!"
흰코뿔소
13/05/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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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크 지금이 아니면 못하는 것들이 있죠.
지금 안 하면 미래에 후회할 일도 있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과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것은 미묘하지만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중요하고 나중도 중요한데 왜 나중만 생각하나요.

나만의 본질...이라고 까지는 뭐하고 나를 특징짓는 특성은 있다고 보셔도 됩니다.
현세에 부처님이 여러분 계셔도 아마 그 특성은 다 제각각일거예요. 다만 그 특성이 영원불멸이 아니란 거겠죠.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통의 본질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겠죠.

슬슬 제가 알고있는 한계선을 왔다갔다하네요. ^^;
도움이 될 것 같다니 기쁩니다.
감모여재
13/05/2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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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읽거나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아라는 걸 버리기 힘들어진단 말이죠. 하하..
사실 영혼이나 자유의지가 있다고 한다면 나의 죽음=나의 소멸='내'게 있어 세계의 소멸 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이유 중 한 가지라도 덜어낼 수 있는데, 정말로 내가 '설탕과 유사한 오토마타'에 불과하다면 나의 죽음='내'게 있어 세계의 소멸이라는 것을 피할 방법이 없기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종교가 내세를 얘기하면서 사람들을 다독거리려는 것도 그런 이유일테지요. 그런 점에서 불교는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번뇌를 버리라니. 그거야말로 자유의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흐흐흐...
흰코뿔소
13/05/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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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입니다. :) 번뇌를 버려야 자유의지가 가능한....;; 번뇌를 버리려면? 수행을 해야하고 말이죠.
수행은 어떻게?? 일단은 자기 마음을 이기는...극기.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을 생각하는 자세. 행동...
뭐 이런 식으로 나가게 됩니다.
감모여재
13/05/2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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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불교이론으로는 그렇습니다만 - 실제 윗 글에서 논의되고 있는 신경과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번뇌를 버린다고 자유의지가 가능한 것도 아니죠.
흰코뿔소
13/05/2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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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연구된 신경과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렇습니다. 저는 불교의 가르침을 택하고 믿고 있지만 말이죠.
13/05/2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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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종교가 없고 특정종교를 비하할 의도는 아님을 먼저 밝히며)

기독교는 하나님믿고 교회다니세요가 첫걸음인데 , 불교는 욕망과 번뇌를 버리라고 하니 진입장벽으로 치면 불교가 참 높은거같습니다.

솔직히 엄두가 안나요 크크
흰코뿔소
13/05/2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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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 불교가 존재하는 이유가 진입장벽이 높은 불교로 이끌기 위함이죠.
기복 불교가 불교의 본 뜻을 변질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
반대로 고고한 불교 수행자들은 진입장벽을 낮추려는 노력을 안 해서 문제;
감모여재
13/05/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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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성당에 다니며 서로 사랑하자고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긴걸까요.
13/05/23 13:49
수정 아이콘
아니 잘 나가다 말고 이런 해로운 댓글은 뭔가요!!!!

축하드립니다 흑흑
감모여재
13/05/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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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흑흑.. 하실 필요는 없으신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흑흑..
jinsw0424
13/06/2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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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사족을 달자면...... 사실 말이 '믿는다' 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 이 의미하는 것들은 결코 낮지 않다는 게 함정이죠;
스타트
13/05/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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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학기에 두뇌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에서 자아와 두뇌에 관련하여 열쪽짜리 핸드라이팅 레포트 쓴 생각이 나네요. 한소리를 또하고 또하고해서 분량을 채웠던 기억이..
射殺巫女浅間
13/05/2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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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슷한 문제가 교양과목에 시험으로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이런 걸 배웠나 뭐 어쩌라는 거지; 해서 머리 빙빙 돌리다 대충 떠오르는 대로

뇌를 하드웨어로 생명을 전력으로 자아를 OS로 비유해서
뇌와 생명은 세계에 자아를 구현하는 물리적 바탕이다 라고 썼더니

교수님께서 왜인지는 모르지만 좋은 점수를 주셨습니다.
뜬금없지만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합니다 교수님 크크
13/05/2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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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런 문제들은 교수가 이해하기 힘들도록 엄청 복잡하게 쓰면 점수가 대박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습니다. 교수 입장에서도 '이렇게까지 썼는데 설마 뭘 알고 썼겠지!' 라고 생각하게 되어 있거든요.
저글링아빠
13/05/2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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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되고 있어서 저도 편승하여 여쭈어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불교의 핵심이 삼법인에 있다고 생각하며 집착을 버리는 건 과정이나 목표가 아니라 그 진의에 도달했을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결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저도 공부해가는 과정이라 엄청난 오류-_-가 있을 가능성이 무시무시합니다만 어쨌든 제 이해는 그렇습니다).

이런 식으로 파고들고 나면 윤회나 업(카르마)에 대한 가르침을 조화롭게 받아들이기가 좀 어렵더라구요.
제행무상 제법무아인데 업은 또 무엇이고 윤회가 "설사 있다한들"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아직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생이 그러하듯-_- 조금 파고들다 모르겠어서 "아.. 모르겠다... 이걸로 고민하는 것도 미망이여... 손가락이 어케 생겼으면 어떰... 달만 가면 되지.." 이러고 맘편히 윤회를 믿지 않는 불교도라는 멋대로의 포지션을 잡아버렸습니다만, 여전히 이 이야기가 나오면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한 가르침 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흰코뿔소
13/05/2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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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을 나눠서 이해하시면 좀 더 와닿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제행무상 제법무아입니다. 하지만 중생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기에, 집착을 하고, 그래서 업을 쌓고, 업으로 인해서 윤회를 합니다.
반대로, 제행무상 제법무아를 깨닫는다면 모든 집착이 놓아지고(말씀하신대로 결과가 됩니다) 모든 죄가 한 순간에 소멸되며, 관자재보살이 되고 해탈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가는 길에서 화룡점정, 완성을 하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제행무상 제법무아라고 하더라도 중생들은 진리의 세계는 알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고 현실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업장에 가려져서 진리를 알지 못하며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생로병사를 반복하고 있지요.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제행무상 제법무아를 알려줘봐야 문자적으로 답을 알고있는 것이지 체득한 바가 아니기에 집착이 놓아질리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타행을 하고, 자기의 안 좋은 마음을 이겨내어 상대를 위한 행동을 하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서 정당한 방법으로 돈도 권력도
얻고 그것을 잘 써서 복을 짓고, 부처님과 인연도 짓고 하다보면 윤회 중에서도 지은 복으로 편하게 잘 살 수 있고,
그러다보면 이 세상의 실체를 알게 되고, 번뇌도 집착도 조금씩 덜어지며 업도 소멸하고,
스승을 만나서 불교 공부도 하게 되고 수행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제행부상 제법무아를 깨닫게 되며,
모든 번뇌, 집착을 놓아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해탈이죠.
한 마디로 일반 중생수준에서 제행무상 제법무아를 가져다가 현실에 적용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인거죠.
유치원생이 박사논문 쓴단 얘기처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렇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어도 괴로움을 이겨내기에 도움은 됩니다.
어떤 고통도 괴로움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얘기니까요. 반대로 즐거움도 기쁨도 끝이 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듯이, 근본적으로는 제행무상 제법무아이지만, 윤회도, 업도 일시적으로 연기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도움이 될랑가 모르겠네요. 저도 제가 듣고 이해하는 선에서 썼으며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더 알고 싶은 부분이나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질문하시거나 지적해주셔도 됩니다 :)
저글링아빠
13/05/2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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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씀은 더 생각해보아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제행무상 제법무아이지만, 윤회도 업도 일시적으로 연기에 의해 존재한다"는 말씀은 윤회를 믿느냐의 차원을 넘어 이해할 수 있고 공감도 하겠습니다. 사실 굉장히 시원한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불교도가 되기 위해 불교의 모든 세계관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그게 붓다의 뜻에 더 가까울 수도 있지 않은가 감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흰코뿔소
13/05/2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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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쁩니다.
세계관을 믿고 안 믿고보다는 작게는 나의 고통을, 크게는 이 세상의 모든 고통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시면 길을 잃을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윤회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일단 일을 해야해서 ^^;
좋은 하루 보내시길.
LaCampanella
13/05/23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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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흥미로운 글 잘보았습니다.
자유의지와 영혼 자아와 뇌의 제목이 상당히 임팩트 있는 제목이라서 그런지 많은분들의 의견으로
댓글이 많이 달렸네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에 앞서, 20C에 이르러서 심리학의 인지적 접근방식이 등장하면서 마음을 심리학에 복귀시키는 대변화가 일어나죠.
이로 인해서 인지과학이 등장하게 되고, 인지신경과학도 크게 발전해온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마음의 인지적인측면
에 한정된 부분이였고(짧지만 얼마전까지의 기조), 마음의 형성에 있어서 다양한 인지과정이 서로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는지,
전형적이 아닌 개개인의 독특한 작동방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아직 알지 못하는 한계(물론 더 나아지겠죠)를 가지고있긴합니다.

저 같은경우는 무의식의 처리과정도 자아에 관련된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뇌는 지속적으로 방추체같은 무의식정보와 특수감각기를
포함한 입력을 받고 있는 상태로 즉, 감시상태 혹은 대기상태라고 할 수 있겠죠. 에서 특정한 입력이 오면 그걸 감지해서 작업기억으로 옮
겨오면서 의식적으로 처리하게 되는 상황에서 그 이전의 상태는 의식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실제로 "처리되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상에서 피질을 거쳐 편도체로 이어지는 상위 경로와 시상에서 편도체로 직접이어지는 하위경로
에서 의식으로 나타나지 않는 하위 경로의 작동은 그럼 내가아닌 다른 무엇이 존재해서 작동한다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암묵기억과 암묵처리를 통한 처리도 작업기억(working memory)에 올라와 있어야 감정도 의식적으로 알 수 있는데,
작업기억전까지의 처리는 누가 처리하는것인가라는 의문이 필연적으로 남는다고 봅니다. , 부자아(不自我)가 처리? 내 뇌에서 처리되지만
내가 아니다? 쓰고보니 내용이 중복이군요. 계속 이야기 해보자면 인간의 의식이라는것은 암묵적이던, 외현적이던 기억에 의해 활성화되고
처리 된다는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분리된 단일 장치로써 자아의 존재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지속적이고 끊임
없는 입력을 받고 있으면서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처리되고 있는 상태, 그것이 나이고 자아 아닐까하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반대로 모든
입력을 제거하고 뇌의 피질만 놓아 두는 행위, 흔히 생각하는 뇌를 뚝 때서 기계에 이식했을때 과연 그 뇌가 의식을 가진 인간인가? 라는것에는 의문이 남습니다.


시냅스의 형태가 정신의 실체라고 쓰신글을 보고 문득 든 생각입니다.
시냅스 자체가 정신의 실체라면 OrBef 님께서 추구하시는 과정은 신경과학적으로 환원적 접근을 하고계신다고 봐도될까요?
크리스토퍼 코흐 " 의식의 탐구"에서 의식 신경상관물(의식이 존재하는 기관,NCC)이라는것을 선정해놓고 이러저러한 내용들이 나오는데,
신경과학적으로 딱 이렇다 라고 할 수 없는것으로 코흐도 이야기하는것 같았거든요.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 책이 어렵기도하고 많기도하고...

사실 제가 이야기 하고있는것과 비슷한 내용은 '뇌과학의 함정 Out of Heads - Alva Noe"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일대의 이슈가 되었습니다.
기능이 있는 인공물 뿐만아니라 스마트폰이나 아날로그적인 메모장도 결국 자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사용되어지고 기능적으로나마
같은 처리를 하는 뇌의 기관과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차를 운전하면 차와 일체감을 느끼는 분들 많죠. 그럼 자신의
차도 자신이 운전할때는 어느정도 자신의 자아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굳이 차가 아니더라도, 사용하는 인공물들이 다들 그렇다고 생각되거든요.

결론적으로 저는 모든 만물과 생명의 정신과 상호작용하면서 존재하는 시스템 자체를 의식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서 어떤 동물도 의식이 없다! 라곤 할수 없다고 봅니다. 존재하는 자체로 이미 의식인셈이니까요.
단, 동/식물은 분리하는 한에서 지만요.
13/05/24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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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의 댓글 감사합니다. 개체 수준에서는 존재할 수 없었던 어떤 형질이 창발했을 때 그것을 환원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이애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을 올리던 시점에서 제가 궁금했던 것은 "인간이 오토마타인가 아닌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고, 인간이 얼마나 복잡계이던 아니던 그 결론에 영향을 끼칠 것 같진 않습니다.

그것과는 별도로, '홀로 존재하는 의식'이란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씀에도 동의하고, 나와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무엇인가는 이미 나의 일부라는 말씀에도 공감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 군체는 이미 또 한 단계 창발성을 거친 더 높은 존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13/05/23 17:27
수정 아이콘
아아 재밌어요 이런글!!
가을독백
13/05/2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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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유익하긴 한데 어떤점이 유익하다고 해야하는지 모르겠어!! 라는 느낌입니다.(..)
jjohny=Kuma
13/05/24 00:45
수정 아이콘
으아아 바쁜 하루를 보내다 보니 이제야 각잡고 긴 글을 볼 시간이 생겼네요. 이런 재밌는 떡밥을 이렇게 흘려보내다니ㅠㅠ
이미 타이밍은 다 지나간 것 같지만, 이제라도 읽어보렵니다. 피곤해서 얼마나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헣헣
13/05/24 03:10
수정 아이콘
쿠마님 지각!
Legend0fProToss
13/05/24 02:27
수정 아이콘
이미 떡밥은 식은거같지만 하나보태자면
많은연구들에서 "자유의지에대한 믿음"이
더 나은퍼포먼스를 이끈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로이 바우마이스터 )자유의지가
실재하건 아니건상관없이말이죠 크크
13/05/24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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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저도 앞으로는 이 이야기는 제가 그 사람의 실패를 간절히 바랄 만큼 싫어하는 사람에게나 해야겠습니다 ???
13/05/24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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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마인드
이성/의지/감정

우리가 자유의지를 옹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키워드는 자유의지란 과거나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 정도일 겁니다.

자유의지는 선택의 힘인 반면,
의지가 몰고가는 과거의 행위엔 자유로움이 없고(더구나 반복적이며), 현재는 과거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다만 미래에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냐는 건 다른 문제이며, 여기서 성찰하는 이성이 개입한다면 자유의지는 옹호될 수 있겠지요.
왜냐면 너무 단순하게도, 인간은 자기가 인과에 따라 의지행위-기계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에 의지적으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비성찰적 연쇄반응을 체크하는 실험은, 자유의지 개념이나 실체에 대해 무엇도 말해주지 않는다고 봅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인간이 하는 선택이란 단순하고 반응적이며 기계적이라는 것-인간이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은, 많은 선인들이 옛부터 통찰한 바였던 거 같습니다.

저는 의지엔 자유가 없고, 다만 이성이 개입해서 자유의지가 전개될 가능성이 생길 뿐이라 봅니다.
13/05/24 03:13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성찰하는 이성"이라는 개념이 칸트같은 사람들이 말한 그것일텐데, 그것이 비물질적인 어떤 것이어야겠습니다. 근데 저는 유물론자적 입장에서 이 글을 쓴 지라.... 그 기반이 변하지 않는 다면 성찰하는 이성이라는 것 역시 자유 의지처럼 그냥 이름일 뿐이겠지요.
13/05/24 03:28
수정 아이콘
그것이 꼭 비물질적이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성이 물질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애초에 유물론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개념을 포함해 모든 개념은 다 이름일 뿐이고요)

다만 실험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기겁할 이야기겠지만,
잘 통제된 실험 뒤의 실험체에게 실험체의 기계적인 행위를 설명해 주고 그가 그 점을 성찰한 뒤 과거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지만 봐도

자유의지 개념에서 파생한 수많은 법, 정치 등의 기반이 크게 흔들릴 일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종교는 제외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저는 그러한 실험들이 우직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인과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과 인간이 복잡한 기계임을 보다 상세히 밝혀주는 것 외에 사실은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13/05/24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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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우리가 인과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과 인간이 복잡한 기계임을 보다 상세히 밝혀주는 것" 이 본문의 요지입니다. 그 외에는 당연히 별 의미가 없겠지요. 서론에 적었듯이, 사람에 따라서는 '이미 다 아는 얘기잖아?' 라고 느끼실 수 있는 이야기였고, pain' 님이 그런 경우인 듯 합니다.
13/05/24 10:57
수정 아이콘
아닙니다;;

덕분에 생각을 좀 더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보고픈
13/05/24 11:35
수정 아이콘
이해를 못하고 자꾸 엉뚱한 소리하는게 아닌가 싶어 대화를 이어가기가 불안한데 그래도 궁금해서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네요.

원래는 길게 썼습니다만 다 빼고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인간은 오토마타일 뿐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인간의 행동을 예측가능하거나 인간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측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지만 자유의지가 없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 의미있는 서술이 될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사실상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자유의지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13/05/24 11:47
수정 아이콘
음...

1. 미래를 알지 못하는 것과 미래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같은 뜻이다.
2. 미래가 결정되어 있지 않은 것과 자유 의지가 있다는 하는 것이 같은 뜻이다.

이 두 문장에 모두 대답이 Yes 가 아니라면 미래를 알 수 있는가 아닌가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관련이 있는 비유가 몇 가지 정도가 생각나는데요,

1 - 우리는 당구공의 궤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1 - 새로 패치된 WoW 에서 등장한 새 레이드 보스를 상대한다고 치고, 그 보스가 우리 입력에 어떻게 반응할 지 예측가능하거나 통제하기 힘들지요.
2 - 양자역학의 스케일에서는 비결정론이 통합니다. 그럼 그 스케일에서 움직이는 입자들은 자유의지가 있는 것인가?
2 - 양자역학의 임의성이 충분히 오랜 시간이 주어지면 고전역학의 세계로 퍼져나가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도는 궤도도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는 비결정의 세계입니다.

저는 말씀드린 네 가지 대상 중 누구에게도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고픈 님은 이미 인간의 행동이 인과율에 따라 움직인다는 가정을 받아들이신 것으로 아는데요, 보고픈 님께서 생각하시는 자유의지가 어떤 것인지, 또 그 자유의지가 없다는 (혹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어떤 실험이 필요할 지, 이렇게 두 가지를 정의해주시면 얘기가 좀 쉬울 것 같습니다.
13/06/24 06:43
수정 아이콘
진화로 발전되고 경험으로 습득한 뇌 매순간 최선의 결정을 할뿐 자유의지는 없다고 생각되네요.
인간실격
13/06/25 01:05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일련의 실험과 자유 의지가 없다는 최종 결론에서 논리적 연결점을 못 찾겠네요. OrBef님 글에서 공감이 이렇게 안가기는 거의 처음인 듯...
13/06/25 01:14
수정 아이콘
제가 뭐 대단한 철학자가 아니니만큼 그런 날도 있는 거지요 ;) 첨언하자면, 우리의 '의식'이 자유의지가 없다는 정도로 표현을 조금 좁히는 편이 글 흐름상 훨씬 좋았을 것 같다는 때늦은 후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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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4 상상하지 않은 만큼, 비겁해 질 수 있었다. [21] par333k8339 13/05/13 8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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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2 [야구] 처음부터, 그리고 영원한 4번타자, 영원한 홈런왕. 장종훈 [32] 민머리요정9295 13/05/10 9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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