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3/05/20 17:25:23
Name 눈시BBbr
Subject 좀 이상한 헌팅


주말, 딱히 약속이 없으면 해가 지기 전에 잠을 잡니다. 야간알바를 해야 되기 때문이죠. 때로는 술의 힘을 빌리기도 합니다. 열시 반에 알람을 맞춰 놓긴 하는데 간혹 깜빡하거나 그대로 자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녁 알바랑 오십분 되면 확인 카톡 해주기로 약속했죠. 정말 코 앞이라서 늦지는 않습니다. 늦게 일어날수록 부시시한 폐인의 모습이 되긴 하지만요.

아무튼 일부러 자는것이니만큼 제대로 자기 힘들고 꿈도 이상한 걸 꾸다 몸이 찌뿌둥한 채로 가기도 합니다. 그래도 일할 때 안 자려면 그 때 자 둬야죠.

새벽 두시 이십오분, 물건이 들어옵니다. 먹고 마실 것들이죠. 손님 없을 시간대긴 한데 희한하게 이럴 때면 갑자기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늘 그렇죠. 청소할 때나 화장실 갈 때나... 제가 담배를 많이 피울수록 매상이 오른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때쯤 오는 손님들이야 다 비슷합니다. 술 먹고 오거나 술 더 사가거나, 피씨방에서 놀다가 집에 가는 길에 들르거나죠. 커플들도 참 많이 옵니다. 한밤중에 편의점 오는 거 무서운 건 아는데 그럴거면 남친 시키면 되지 왜 그 짧은 시간의 헤어짐도 거부하는 거랍니까. 그나마 외국인은 혼자 오거나 친구들이랑 오니 낫습니다. 가게 앞에 외국인 기숙사가 있거든요.

아무튼 그렇게 손님 받으며 물건을 정리합니다. 다 끝나니 두시 오십오분쯤 됐네요.

꽤나 바빴던 모양입니다. 그제서야 눈치채다니요.

손님 없을 땐 폰으로 노래를 듣습니다. 심심하잖아요. 가게에서 기본으로 틀어주는 노래들은 제 취향 아니구요. 그렇게 폰을 들고다니다 아무데나 놔두기도 하죠. 보통 노래가 들리니 까먹을 리는 없구요. 손님이 갑자기 왔을 때 좀 매니악한 노래가 나오는 게 좀 문제일 뿐이죠. 사쿠란보처럼요. 물론 전 일본 가요일뿐이니 당당히 들었지만요.

근데 그 폰이 없어졌습니다. 손님 와서 노래를 꺼놨고 그대로 잊고 있었던 거죠. 배터리가 많지 않아 노래만 들었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아니라면 중간중간 슬쩍 봤겠죠.

아무래도 누가 자기 거라고 착각해서 들고 간 모양입니다. 이거 참 ㅡㅡa 난감해졌군요. 급히 가게전화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거 연결을 잘못해서 배터리가 다 나갔더군요  orz 타이밍 죽입니다. 다른 손님한테 빌릴까 했는데 이럴 땐 또 아무도 안 오죠.

뭐 그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 했죠. 인터넷 되고 게임 되고 알람도 되는 신묘한 물건일 뿐이니까요. 이 오밤중에 저한테 연락할 사람도 없구요. 그렇게 급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원래 잃어버린 물건도 필요없어질 때 찾게 되는 법이죠. 마음을 놓으니 폰이 돌아왔습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술이 살짝 들어간 상태로 오셨던 분이었죠. 단골까진 아니었지만 몇 번 본 기억이 납니다. 카스 레몬과 오징어집을 주로 사갔죠. 살짝 섞여나오는 경상도 억양 덕에 더 쉽게 기억하고 있었구요

죄송하다고 하길래 괜찮다고 했습니다. 뛰어온 것 같아서 되려 미안해지더군요. 굳이 지금 돌려줄 필욘 없었는데... 확인해보니 역시 온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고도 딱히 뭘 사는 것도 아니면서 머뭇거립니다. 저로선 그걸 보고 있기도 그렇고 딱히 말할거리도 없어서 포스기만 보고 있었죠. 그렇게 한 이삼분? 뜬금없는 말을 꺼내더군요.

"혹시 pgr 하세요?"

...!?

어찌보면 당연한 질문입니다. 잠금해제하면 첫 화면이 피지알일 테니까요. 하지만 이건 피쟐러 내에서만 당연한 거죠. 그렇다면?

... 무슨 말을 할까요. 다른 데서는 아.. 아닙니다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혹시라고 했지만 확신에 가득찬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로그인 돼 있었으니 제가 누군지도 당연히 알고 있더군요. orz

아직 가입한 지 얼마 안 돼서 글 쓰기까진 몇 주가 더 걸린다고 합니다. 그래도 눈팅 몇년간 해왔다 하니 피쟐러라는 게 변하진 않겠죠. 저도 그 분도 이렇게 우연히 피쟐러를 만나게 된 건 처음이었습니다.

참 신기했고 반가웠습니다. 한 시간 정도 수다 떨었죠. 할 얘기는 많았습니다. pgr 얘기 게임 얘기 야구 얘기 등등... 후배라서 학교 요새 어떤지도 얘기했구요.

그래도 여자분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을 순 없죠. 밤도 너무 늦었으니 보냈습니다. 다음엔 낮이든 저녁이든 맨정신으로 보자고 하면서요.

생각해보면 참 재밌습니다. 헌팅한 적도 받은 적도 없지만 보통 전화번호를 따 가는 것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아예 폰을 가져가 버리네요 (...)

이걸 피쟐에 올릴까도 얘기했습니다. 재밌으니 올리긴 올리자고 했죠. 하지만 친목질 문제가 걸릴지도 모른다고 얘기해뒀죠. 그래도 그냥 썩혀두긴 아깝죠. 아 창피하니까 외모 묘사는 하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저로선 매우 아쉬운 부분이네요.

이런 식으로 써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재밌기는 할건데 이런 댓글이 달릴 가능성이 높으니 감안해야 된다고도 했죠. 그게 싫다면 그냥 피쟐러 우연히 만났다는 쪽으로만 쓰겠다구요.

상관없다는군요. 아예 생겼다는 쪽으로 써도 된댑니다. 아이구 그런 위험한 말씀을...

일단 약속을 정하고 먼저 일어나는 쪽이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오늘도 아침이 오는 소리에 잠이 들고 따가워지는 햇빛을 느끼며 잠에서 깰 겁니다. 그런 게 영 싫었는데 이번은 좀 다를 것 같네요. 깨고 난 다음이 다를 테니까요.






카톡이 왔답니다. 일어나야 될 거 같은데 역시 개운하지가 않습니다. 한 이삼분 지났을까, 전화가 오네요. 나 아직 자고 있는 중인데 봐주면 안될까요.

어기적거리며 전화를 받습니다. 역시 자고 있던 거였냐면서 늦기 전에 나오랍니다. 알겠다고 했죠.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서둘러야 했습니다.

카톡을 확인해 봅니다. "자고 있는 거 아니죠? ^^"라고 돼 있습니다.

간단히나마 이를 닦으며 혼자 되뇌여 봅니다.

그럼 그렇지...

뭐 그런 생각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현재시각 열시 오십오분,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할 테니까요.

-------------------------




... 너무 뻔한 스토리인가요. 어차피 제 글에 반전 따윈 없습니다.

pgr의 아스키 문학을 선도합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6-19 09:55)
* 관리사유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절름발이이리
13/05/20 17:27
수정 아이콘
남자분이었다면 눈시님께 좋은 기회였을텐데.. 애도
옆집백수총각
13/05/20 17:36
수정 아이콘
특히 ROTC.. 아 전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Zodiacor
13/05/20 17:28
수정 아이콘
그리고 화장실 변기의 물을 내리는데 물이 빙글빙글 계속 돌기만 하는데... 어?
무선마우스
13/05/20 17:29
수정 아이콘
PGR여초사이트설 떡밥 강화군요...?
가만히 손을 잡으
13/05/20 17:30
수정 아이콘
잘 되길 빌었는데..
대통령 문재인
13/05/20 17:34
수정 아이콘
역시 나의 pgr
가을독백
13/05/20 17:35
수정 아이콘
pgr 네임드들은 일상에서 마성을 가지고 있나봅니다.
k'님을 필두로 이리님, 눈시님 등등이 평범한 서민들(?)은 꿈도 못꿀 경험들을 하고 있어요..

그중 단연 최고는 eva님이십니다만..(..)
Friday13
13/05/20 17:35
수정 아이콘
갑은 eva님
Friday13
13/05/20 17:35
수정 아이콘
그리고 슬픈이야기가 되는데..
옆집백수총각
13/05/20 17:37
수정 아이콘
쩝 이렇게 하나둘 떠나가는 글이 자꾸 늘어나는건 기분탓...이다. 기분탓일거야.
jjohny=Kuma
13/05/20 17:38
수정 아이콘
응원을 할까... 위로를 할까... 고민되네요. 헤헤
13/05/20 17:41
수정 아이콘
설마 이렇게 끝날 리가 없죠
군인동거인
13/05/20 17:45
수정 아이콘
보고 계시겠네요 흐흐
jjohny=Kuma
13/05/20 17:52
수정 아이콘
그런데 사실 다른 분들도 본문 같은 경험 종종 하지 않으시나요? 저도 몇 번... O_Oa
Friday13
13/05/20 18:03
수정 아이콘
노코멘트
13/05/20 17:57
수정 아이콘
남자분이셨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여자분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을 순 없죠.'에서 .... 하.. 역시 될분은......
一切唯心造
13/05/20 18:08
수정 아이콘
여자를 만난 부분은 꿈인 것 같은데요 흐흐
은하관제
13/05/20 18:11
수정 아이콘
이쯤에서 누가 리플 달 때가 됐는데... 흐흐 는 농담이고요.
참 사람 일이라는 건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어떻게 만나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어서 조금은 두렵지만 재미있는 인생같기도 합니다.
무어가 되었든 굳럭입니다 흐흐
13/05/20 18:14
수정 아이콘
그래서.. 예뻐요?
(원래는 그여자분... 까지 나오자마자 말 끊고 물어봐야 제맛인데;;)
jjohny=Kuma
13/05/20 18:14
수정 아이콘
본문의 전개로 유추해보건대, 예뻤을 가능성이 농후하지 싶습니다. 흐흐
달달한고양이
13/05/20 18:14
수정 아이콘
하....토닥토닥...ㅠ_ㅠ....
히히멘붕이
13/05/20 18:15
수정 아이콘
그러쿠나..생기는 쿰을 쿠어꾸나...
13/05/20 18:16
수정 아이콘
제가 이해한게 맞으면 위에 있던일은 결국 꿈이였고 카톡과 전화소리에 잠에서 깨었다..라는거 아닌가요..
저게 맞다면 눈물이...
13/05/20 18:17
수정 아이콘
무슨 꿈을 꾸었느냐..
13/05/20 18:35
수정 아이콘
그것은 슬픈 꿈이었습니다.
jjohny=Kuma
13/05/20 18:51
수정 아이콘
종종 꾸다보면 슬프지도 않습... 크흙 ㅠㅠ
13/06/19 12:16
수정 아이콘
그 쿰이 이루어질 수 있읆샘슮...
13/05/20 18:20
수정 아이콘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휴대폰 일부로 여성분이 가져가셨다는 것에 한표.
王天君
13/05/20 18:21
수정 아이콘
은근히 불쾌한 글이네요
jjohny=Kuma
13/05/20 18:24
수정 아이콘
그...그런가요? 제가 봤을 땐 그냥 흔하디 흔한 경험담 같아서...
13/05/20 18:31
수정 아이콘
팽이가 멈추던가요?
A Peppermint
13/05/20 18:57
수정 아이콘
반대합니다.
가나다라마법사
13/05/20 19:04
수정 아이콘
결말을 왜곡해서 쓰시면 안되죠.. 희망사항이신건 아는데 ..거짓말하는 티 너무나요 ..
눈시님이랑 안어울리는주제에요
이런글 쓰니까 어색해요 쓰지마세요
후추통
13/05/20 19:05
수정 아이콘
전쟁 한번 시작해볼까.
눈시BBbr
13/05/20 19:32
수정 아이콘
... 여러분 맨 첫부분과 끝부분만 읽어봅시다
종이사진
13/05/20 19:43
수정 아이콘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알바 교대하자고 카톡이 왔군요.
13/05/20 19:44
수정 아이콘
?? 여러분, 눈시님입니다.
남자문제도 아니고 여자분이랑 엮인 일 따위가 눈시님께 존재할 리 없잖아요?


작금 커플들이 각종 추악한 인증으로 게시판을 어지럽히는 모습에 분노하시어 친히 아스키의 의지로 일필을 남기셨는데 이해를 못 하시면 쓰나요 ㅠ.ㅠ
눈시BBbr
13/05/21 00:11
수정 아이콘
둘째 줄 뭐라구요 -_-+++++
HealingRain
13/05/20 19:54
수정 아이콘
눈시님이라 기대했는데... ㅜㅜ
Paranoid Android
13/05/20 21:41
수정 아이콘
진정한피쟐눈팅러라면 역사책을들고오는 후덕한외모일때눈치챘어야하는거아닙니까 여자알바분?
이 아니라 그냥 쿰이구나.... 첫문단이란 끝문단만 읽을걸....
lupin188
13/05/21 10:45
수정 아이콘
아...어젯밤에 인셉션을 보았는데......크크크크크 역시 꿈이었군요.크크크크크
주이상스
13/06/19 21:20
수정 아이콘
pgr이니만큼 당연히 남자가 폰을 돌려주러 와서 헌팅한 건 줄 알았는데...
산적왕루피
13/06/19 23:06
수정 아이콘
여자따위에 휘둘리지 않을 눈시님...믿~~~쑵네다!!! 음하하하!!
13/06/20 02:39
수정 아이콘
제안서 쓰면서 인생을 저주하고 있었는데, 역시 삶은 어둡고 흉칙하기만 한 것은 아니군요. 다시 힘 내서 일해야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316 정관사 the를 아십니까? [42] Neandertal12931 13/05/28 12931
2315 국경없는 의사회를 아시나요? [13] OrBef7355 13/05/28 7355
2314 어느 장애인 소녀의 등교길 [9] par333k7703 13/05/28 7703
2313 [미술] 나도 저건 그리겠다 [74] A.디아13362 13/05/27 13362
2312 일본서기는 위서인가 [18] 눈시BBbr10838 13/05/25 10838
2311 [야구] 최고가 아니었던 최고. 무관의 제왕, 한용덕 [14] 민머리요정10374 13/05/23 10374
2310 오늘은 장례식 내일은 결혼식 [36] 떴다!럭키맨10767 13/05/23 10767
2309 자유 의지와 영혼과 자아와 뇌. 우리는 기계인가? [127] OrBef42472 13/05/23 42472
2308 야구의 불문율과 위협구 [125] 삼먁삼보리11012 13/05/22 11012
2307 좀 이상한 헌팅 [44] 눈시BBbr11692 13/05/20 11692
2305 [LOL] 많은 선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현 메타.. [48] Leeka10998 13/05/18 10998
2304 [LOL] 붉은 새에 대한 잡설 [21] 모리아스8603 13/05/15 8603
2303 요리 잘하는 남자가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면서요? [53] sungsik11757 13/05/20 11757
2302 기묘한 소개팅 [105] Swings15258 13/05/18 15258
2301 키배에 뛰어들 때의 방침 [76] 눈시BBbr10917 13/05/17 10917
2299 독서 전략 적용 [4] flowers8009 13/05/15 8009
2298 아찔했던 순간 [64] JSclub10790 13/05/15 10790
2297 더 열심히 살자 [5] 피오라7642 13/05/15 7642
2296 명량해전에 대한 새로운 연구 [73] 눈시BBbr13312 13/05/14 13312
2295 그럼 상상이 많은걸 해결해 줄까? [14] par333k6840 13/05/13 6840
2294 상상하지 않은 만큼, 비겁해 질 수 있었다. [21] par333k8339 13/05/13 8339
2293 [연애학개론] 행복하게 해주기보다, 비참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 더 어렵다 [23] Eternity12681 13/05/11 12681
2292 [야구] 처음부터, 그리고 영원한 4번타자, 영원한 홈런왕. 장종훈 [32] 민머리요정9295 13/05/10 929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