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05/29 22:47:51
Name redder
Subject [일반] 세계는 꿈꾸는 자의 것 - 어느 구직자에게 전하지 못한 말
나에겐 꿈이 없었다. 스물 일곱, 이제 막 학교라는 둥지를 벗어나 내 손으로 밥을 벌어야 했던 그 순간에도 이렇다 할 꿈은 없었다. 그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었고, 돈이 떨어지면 일을 했다. 무슨 일을 해도 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삶을 위한 벌이는 뭘 해도 내겐 의미가 없었고, 입에 풀칠하기 위한 모든 활동은 의미가 없어도 반드시 해야 했다.

뭔가 하고싶다는 사람들은 솔직히 속으로 비웃은 적도 많았다. 그 꿈, 똑같이 꾸는 사람이 많았다. 백명이 달려들어봐야 한명이 하는 자리고, 그 자리에 서기 위해 사람들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별다른 꿈이 없는 자들도 똑같이 거짓말을 했다. 단지 그 자리가 주는 안락함과 권력을 위해서, 그 자리가 주는 부와 명예를 위해서. 학교내내 책과는 담을 쌓은 녀석들도 취미는 독서라고 적었고, 모두가 똑같이 인자하신 어머님과 엄격하신 아버님 밑에서 평온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모두가 똑같이 현재시제와 과거시제를 구분하는 법을 배워 900점을 넘고 있었다.

그랬기에 내게 꿈은 거짓, 착각, 환시, 자기합리화, 뭐 그런걸로 더욱 더 굳어졌다. 역사 속에서 늘 있어 왔던 위정자들의 선언들, 백성을 위해 일어났다는 정치가들의 말과, 민중을 위해 떨쳐났다는 사람들의 결론과 그 수많은 젊음들의 이력서는 내게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로 이시대의 그들, 우리들이 괴벨스고, 스탈린이고, 전두환이었다. 애초에 꿈을 꾸지 않았던, 또는 못했던 나는 점점 더 꿈과는 멀어져갔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한 길은 내게도 같은 질문에 답하기를 강요했다. 십년 후 자기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면접에서 묻는 것은 무례한 질문이다. 거기에 대고 업무와 관련없게 포크 가수요, 라고 답하는 것은 자기 숟가락을 스스로 놓으라는 소리니까. 화가 났지만, 어떤 회사에서는 그 질문을 던지는 면접관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회사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별로 다를게 없었다. 여전히 면접자들은 자신의 꿈과 비전에 대해 거창한 포부를 밝히고 있었고, 나는 안쓰러움과 죄책감과 이상야릇한 우월감까지를 느꼈다. 나또한 그뒤로부터, 적당한 역겨움을 참아 가며 보조를 맞추었다. 한발 한발, 살기 위한 제자리걸음을 딛을 때마다 발보다 가슴이 아파 왔다. 이상한 세상, 진짜 꿈을 숨기고 모두 남들도 끄덕일 만한 꿈들만을 꺼내들면서, 그것도 서로 다 내면을 알면서도 껄껄거리는 세상. 나도 똑같았다. 나도 괴벨스였고, 나도 스탈린이었고, 나도 전두환이었다. 아니 내가 차라리 그보다 더했을 것이다.

아, 하지만, 너는 아닌 것 같다. 그래, 너는 아닌 것 같다.

세상은 너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일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너 같은 사람의 것이어야만 한다. 별 기대도 없이 물어봤던 네 꿈, 그리고 너무나 진솔했던 네 대답. 그래, 그런 꿈을 꾸는 자야말로 세상을 가질 자격이 있다. 나는 이렇게 너를 칭송할 자격조차도 없는 구겨진 인생이지만, 감히 네 꿈에 박수를 보낸다. 넌 이룰 자격이 있고, 이뤄야 하며, 이룰 것이다. 물론 너도 다른 누군가의 앞에서 결국 살기 위해 그럴듯한 가면을 쓰겠지만, 나는 믿는다. 네 가면은 적어도 다른 이들의, 혹은 내가 썼던 그것과는 남다른 이유라는 걸 믿고, 또 안다. 네 꿈은 모든 꿈을 비웃던 나마저도 감화시킬만큼이나 매력적이고, 그 매력을 아는 이라면 모두들 네 꿈에 동조할 것이다.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네 마음이 네 꿈과 미소를 지을 때.. 그때가 온다면 나도 뿌듯할 것 같다.나도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꿈이 거짓이라고만 둘러댔던 알량했던 나의 오만함을 반성하며, 뒤늦지만 다시 꿈꾼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켈로그김
15/05/29 22:55
수정 아이콘
좋은 만남을 가지셨나 보네요.
redder님도, 그 구직자분도 건투를 빕니다.
Tristana
15/05/29 23:16
수정 아이콘
작년 하반기에 꿈을 포기하고 취직한 신입 사원으로서...
추천합니다.
다들 해피엔딩이었음 좋겠네요.
크라쓰
15/05/29 23:20
수정 아이콘
순수하시네요.

자신을 한껏 숨기셔야 해요.
공허진
15/05/29 23:31
수정 아이콘
취직을 했다고 끝이 아니더군요
막장도 많아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8603 [일반] 1 [49] 삭제됨10365 15/05/30 10365 3
58602 [일반] 서강대 파격의 승부수.. 국내 최초 '정시,수능최저 폐지' [112] 삭제됨10994 15/05/30 10994 1
58601 [일반] 메르스 대책위에 한의사가 참여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152] 삭제됨12721 15/05/30 12721 2
58600 [일반] 8인의 반역자 (완결) - 페어칠드런 [4] Andromath4584 15/05/30 4584 3
58599 [일반] 최근 1년간 가장 많은 돈을 번 여자 운동선수 Top10 [14] 김치찌개5470 15/05/30 5470 1
58598 [일반] 관물대 빼던날의 기억 [8] 해원맥4448 15/05/30 4448 1
58597 [일반]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의 부자가 가장 많은 국가 Top10 [5] 김치찌개3799 15/05/30 3799 0
58596 [일반] 절을 고쳐 쓰고 싶어요. [20] 김성수7167 15/05/30 7167 16
58595 [일반] 고심끝에 적습니다. 운영진의 입장을 요청합니다. [357] 삭제됨18354 15/05/30 18354 60
58594 [일반] 개인적인 에이핑크 비활동곡 10선 [28] 좋아요3213 15/05/30 3213 7
58592 [일반] 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 [11] 글곰3772 15/05/30 3772 21
58590 [일반] 정동영을 위한 변명 [62] autopilot7072 15/05/30 7072 0
58588 [일반] PGR21 서버 접속오류 관련 글입니다(원인 밝혀짐) [146] Tiny17090 15/05/30 17090 1
58586 [일반] 아줌마들 혹은 아재들이 즐겨본 만화영화 [42] 드라고나5756 15/05/30 5756 0
58585 [일반] 차 밑을 떠나지 못하는 고양이 [13] 루비아이4787 15/05/30 4787 11
58583 [일반] 전 세계에서 스위스 시계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 Top10 [5] 김치찌개4282 15/05/29 4282 0
58582 [일반] 투모로우랜드 관상평 [20] 카슈로드5203 15/05/29 5203 0
58581 [일반] 한화가 위기의 5월 그 절정에 도착했습니다(맛폰) [90] 카롱카롱8557 15/05/29 8557 2
58580 [일반] 세계는 꿈꾸는 자의 것 - 어느 구직자에게 전하지 못한 말 [4] redder2390 15/05/29 2390 1
58579 [일반] [역사] 남만주철도 주식회사 이야기 [22] 삭제됨3886 15/05/29 3886 6
58578 [일반] 길가던 70대 노인 무차별로 폭행한 10대 [84] Tad8257 15/05/29 8257 0
58577 [일반] 중동호흡기증후군 공중보건위기에 대응 하는 우리의 자세 [137] 여왕의심복89625 15/05/29 89625 58
58576 [일반] [복싱] 반칙!! 혼돈!! 파괴!!! - 리딕 보우 vs 앤드류 골로타 [34] 사장18111 15/05/29 18111 2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