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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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05/29 16:28:12
Name 스타슈터
Subject [일반] 글쟁이가 글을 쓰는 이유
인터넷 시대의 서막이 열린것은 약 20년 전 쯤의 이야기입니다.
모뎀으로 인터넷 연결을 시도하면 모스부호와도 같은 삐빅소리가 나오는걸 들으며 설레이던게 기억납니다.
초고속 (!) 56k 모뎀으로 다양한 정보를 빠르게 (...) 받아보던 그때는 양질의 글이 귀한 시절이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글들을 접하게 만들어준 인터넷의 탄생은 20세기 인류 최대의 기적이라고 불릴만 했습니다.

그런 인터넷을 동경했던 저는 어려서부터 인터넷의 대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고,
결국 공대 테크트리 만렙 강화를 완성시키고 통신사 네트워크 엔지니어가 되었습니다.
공대 만렙을 찍으며 모솔 특성도 같이 사은품으로 들어왔지만 그 이야기는 오늘의 주제가 아니고,
오늘은 인터넷에서 글을 쓰게 된 계기를 잠시 되짚어 보고 싶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정성과 수고가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까지의 한글 교육이 전부였던 재외국민 1.5세인 저에게는 더욱 벅찬 작업입니다.
한글 키보드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지냈던 저에게, 키보드 자판을 익히는 것 또한 매우 고된 작업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인터넷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가 헤쳐나가야할 관문이였습니다.

저는 한글을 인터넷으로 배웠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글을 계속 접할 곳이 인터넷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초딩때부터 열심히 인터넷 눈팅족을 했지만, 글은 자주 쓰지 않았습니다.
남들만큼 좋은 글을 쓸 자신이 없었고, 제 언어 능력 또한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매번 커뮤니티에서 좋은 글들을 보고 배웠지만, 남들이 보고 배울만한 글을 쓰기에는 너무 부담이 컸습니다.
그래서 개인 블로그에만 한편, 두편씩 적어나간 글이 어느새 세자릿수를 훌쩍 넘겼고,
글을 적어 내릴때마다 생각이 정리되는 듯한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딱히 무언가를 바라고 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런 의견을 듣게 되었습니다:
"컨텐츠 소비자는 점점 많아지는데, 양질 컨텐츠 생산자들은 한정되어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패스트푸드 글"이 인기를 끌게 되는데, 그게 바로 짧은 글과, 그에 맞서는 강렬한 반응들입니다.
소위 말하는 글 리젠률이 높고, 짧고 강렬한, 단시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글들이 넘쳐나는 곳들이 늘어납니다.
그런 글 위주로 나아가는 커뮤니티가 득세하고, 제가 알던 인터넷은 어느새 트래픽 싸움의 중심지가 됩니다.
심지어는 언론사들도 클릭수 유도를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달기 시작하고 (숨막히는 뒤태!),
커뮤니티 속에서도 진정한 공감을 얻는것 보다는, 많은 반응을 얻는것 자체를 더 중요시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런 글들의 효용성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패스트푸드 좋아하고, 맥도날드 사랑합니다. (더블치즈버거 소고기 패티 다이스키... 하앍)
다만 글쟁이 입장에서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추천수 100을 받을 200자의 자극적인 글과,
추천수 50을 받을 2000자의 정성들인 글 중 선택하자면,
어느새 무게추는 자극적인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우리가 MSG를 까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조미료 만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정성들인 글을 쓰고 싶어 2000자를 선택합니다.
다만 현실은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인지라 많이 쓰면 많이 틀리게 되고,
사소한 부분에 대한 지적 또한 감내해야 합니다.

그게 처음에는 두려워서 저 또한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는 것을 기피했지만,
예전에 봤던 고마운 글들 또한 올려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제 인터넷 생활이 즐거워질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한글을 인터넷에서 배웠습니다.
한글 정규교육은 고작 초등 1학년때의 3개월 정도고,
나머지 글쓰기 내공은 전부 인터넷의 양질 글들을 흡수한 산물입니다.
조금 귀찮고 시간을 들여야 할 부분이 많음에도 총대를 매고 인터넷에 글을 쓰는 저만의 이유입니다.
받은게 있으면, 돌려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딱히 내용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누군가 보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느끼게 만들었다면,
100개의 추천보다 더욱 값진 정성이 담긴 글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PGR이 시끌벅적 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실수합니다.
실수는 많이 나설수록 많이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말하면 말실수를 많이 하고,
많이 쓰면 글실수를 많이 합니다.

커뮤니티의 생명력은 글이고, 글쟁이는 관심과 공감을 먹고 삽니다.
다만 글을 쓰는 사람은 무관심보다, 엇나간 관심이 더 무섭습니다.
글의 내용을 봐줬으면 하는데, 사람들의 이목이 다른 무언가에 초점이 맞춰질때 가장 실망합니다.

1%를 차지하는 조금의 실수보다는,
99%를 차지하는 글의 내용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PGR 눈팅 6년동안 느낀 건,
그래도 이런 글은 피지알에서나 쓸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여러분들께 고맙고, 운영진도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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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문의
15/05/29 16:32
수정 아이콘
이럴수가
받은 걸 돌려주기 위해 글을 쓰신다라 ....
인터넷의 글을 이렇게 흡사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때의 정신으로 글쓰시는 분이 계시다니....

그냥 인터넷글은 막 싸지르는 맛(?)에 쓰는 거 아닌가요 크크
물론 게시판 규칙과 성격에 맞게 질러야 겠지만

뭔가 갑자기 글쓰기 머쓱해지는
스타슈터
15/05/29 16:35
수정 아이콘
싸지르는 글도 좋아요. 크크크
다만 그런 글에 필요한 드립력이 많이 부족하니 이런 분위기 글이 용납되는 PGR에서 은신중입니다. 흐흐;
ridewitme
15/05/29 16:32
수정 아이콘
저도 아직 피지알의 대안을 찾지 못했어요. 여기보다 어떤 점은 더 나은 데가 있어도, 여기같은 데는 또 없더라구요
스타슈터
15/05/29 16:37
수정 아이콘
항상 다 좋은건 없죠. 흐흐
그래서 다른 커뮤니티도 많이 다니긴 합니다!
다만 이런 글은 그래도 PGR에서나 쓰지 않겠습니까?! 크크
Locked_In
15/05/29 16:39
수정 아이콘
동의합니다. 피지알보다 어떤 점이 나은곳은 있어도 피지알보다 나은곳은 딱히 없더라구요. 다른 곳 여기저기 다 들쑤시고 다녀도 PGR21이 집이죠.
챠밍포인트
15/05/29 16:47
수정 아이콘
피지알이 최고의 사이트는 아닙니다만 여기 분위기를 대체할 사이트도 없죠
전 그래서 꿋꿋하게 계속 피지알을 할겁니다
스웨트
15/05/29 18:10
수정 아이콘
저두요
제가 이 분위기에 그대로 스며들어버린 건지는 몰라도
피지알 만한 사이트를 못찾겠어요 ㅠ
ridewitme
15/05/29 18:45
수정 아이콘
네. 너보다 예쁜 여자는 많았지만, 너같은 여자는 없었어. 이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허강조류좋아요
15/05/29 16:59
수정 아이콘
정말 피지알이 좋습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
사신아리
15/05/29 16:59
수정 아이콘
굉장히 마음 편해지는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막 저도 글쓰고 싶어지네요!
15/05/29 17:11
수정 아이콘
써주세요.
바위처럼
15/05/29 17:18
수정 아이콘
예전만큼 글이 쓰고싶은 에너지가 안생기는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읽는건 여전히 좋아합니다. 자주 써 주세요.
CoMbI CoLa
15/05/29 17:48
수정 아이콘
저는 일생이 글을 쓴다는 것과 별로 연관이 없지만, 항상 글을 잘 쓰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좋은 글이란 짧고 함축적인데도 그 의미가 명확한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쓰면 항상 글이 길어지고 장황하게 되더라구요.
마스터충달
15/05/29 17:51
수정 아이콘
길고 장황한 글도 나름의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표현에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특정한 장르의 글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글은 표현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니까요. 안 하니깐 못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일단 써보고 사람들과 나눠보세요.
CoMbI CoLa
15/05/29 17:57
수정 아이콘
말씀이라도 그렇게 해주시니 힘이 나네요. 고맙습니다.
보로미어
15/05/29 17:58
수정 아이콘
글을 읽고 감동받았습니다.
앞으로 pgr에서 자주 뵈었으면 좋겠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스웨트
15/05/29 18:05
수정 아이콘
요근래 글 쓰는걸 주저 했는데..
저도 오랜만에 글써야 겠다 생각이 드네요 흐흐
저도 pgr이 좋습니다 거짓이 아니라구요
15/05/29 18:51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잊고있던걸 생각하게 하는 좋은글 같아요
선물세트
15/05/29 19:23
수정 아이콘
최근 시끌벅적한 피지알의 상황과 맞물려 자게에 요며칠간 올라오는 글들을 보고있자니 무언가 일종의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많은 회원분들이 탈퇴한다고 공언하고 있는 혼란한 정국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양질의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피지알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봐라 이렇게 있지 않느냐 라고 외치는 듯한 그런 메세지요.
이런 글을 써주셔서 감사하고 저도 부족한 필력이나마 그러한 메세지의 전달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라라 안티포바
15/05/29 19:38
수정 아이콘
그와 더불어서
일련의 사건을 제외한 글들에는
오히려 예전보다 피로감이 덜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한 다수의 피지알러들이
그동안 피지알에서 필요이상으로 날이 서있었고, 그럴 필요가 없음을 어느정도 인지하게된 계기가 아닌가 싶어요.
크로스게이트
15/05/29 19:39
수정 아이콘
좋은 글쟁이가 많이 떠나가는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피지알에 요근래 좋은글들이 많이올라오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2막4장
15/05/29 20:32
수정 아이콘
우왕~ 좋군요.. 양질의 글 생산자가 떠나가는 건 참 아쉽고, 그러네요.
괜히 날세우지 말길 바랍니다. 저를 포함한 모두들
Eternity
15/10/02 10:56
수정 아이콘
스타슈터님 댓글을 읽고 뒤늦게 이 글을 찾아 읽게 됐네요. 많은 부분 공감하게 됩니다.

[추천수 100을 받을 200자의 자극적인 글과,
추천수 50을 받을 2000자의 정성들인 글 중 선택하자면,
어느새 무게추는 자극적인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우리가 MSG를 까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조미료 만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정성들인 글을 쓰고 싶어 2000자를 선택합니다.]


특히 이 부분에 눈길이 가네요. 이른바 글쟁이로서의 본분 혹은 초심을 잃지않고 글을 써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스타슈터
15/10/02 11:53
수정 아이콘
저도 항상 Eternity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특히나 연애학개론을 많이 좋아했었네요.
공감을 할만한 글들이 많은것을 보아하니 세상이 그리 고독하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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