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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2/14 23:17:37
Name 책닭
Subject [일반]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 왔습니다.









'천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또 하나의 감독, 레오 까락스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흔히 많은 천재 감독들의 작품이 그러하였듯, 이 영화는 때때로 저를 버려 놓고 가 버립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과연 영화인가, 우연히 켜진 카메라나 CCTV 따위에 찍힌 영상인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순간순간 있었다는 것이지요. 아마 영화에서 길을 읽어낼 수 없으니(저에겐), 단지 영사기를 통해 스크린에 비춰지고 있을 따름인 영상으로 느껴진 것이겠죠(지금 생각해도 미쉘도, 알렉스도 영화가 끝날 무렵까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론은, 얼치기 평론가로서 이 작품과 정면승부를 해 보겠다는 호승심 비스므리한 감정은 30분을 가지 못했다는 이야깁니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 언뜻 보면 자해하고 있는 것 같은 거대 동상 아래를 지나고 있을 때 제 머릿속에 남은 것은 어떤 감정, 영화가 일으킨 감흥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알렉스와 미쉘이 퐁네프 다리 위에서 춤을 출 때(알고 보니 유명한 장면이었더군요), 또 그 둘이 알몸으로 해변가를 달릴 때, 그런 순간들은 이해하려다 지친 제게 오아시스처럼, 굳이 깡통을 굴려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가슴으로 와 와닿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아마 알렉스가, 유복한 미쉘의 군인 아버지보다, 또 두툼한 열쇠고리를 꺼내보이는 나이든 부랑자보다, 또는 과거의 세계가 갖지 못한 무언가를 미쉘에게 줄 수 있었다면 아마 그때 제가 느끼던 무언가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레오 까락스의 페르소나라는 드니 라방보다, 이 영화에서 제 시선을 잡아끈 것은 줄리엣 비노쉬가 분한 미쉘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고뇌하고, 헤메이는 인물이라서 그럴까요? 이 인물은 영화 내내 다양하게 투영되는 아버지의 상에서 벗어나려고 하다가, 결국은 다시 돌아오고, 다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방황의 끝에서, 미쉘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파리와 안녕을 고합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아마도 이 영화는 나에게 어쨌든 청춘의 영화로 기억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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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14 23:40
수정 아이콘
저도 내일 모레 보러갑니다..!! 크크 기대되네요
마스터충달
14/12/15 00:03
수정 아이콘
초딩시절에 뭣도 모르고 그저 너무 좋아서 넋놓고 봤었던 영화 중에 하나가 <퐁네프의 연인들>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세가지 색 삼연작도 비슷한 마음으로 넋놓고 봤었죠. (줄리엣 비노쉬는 그 중 블루에 나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꼬꼬마가 뭘 알고 봤을까 싶기도 한데
진짜 저 작품이 무섭게 느껴지는 건
뭣도 몰랐을 꼬꼬마의 시선을 2시간 동안 한눈도 팔지 못하게 붙잡아 놨다는 점이랄까요.
전 도대체 뭐가 좋아서 다리 밑 거지들이 연애하는 영화를 그렇게 열심히 봤을까요;;;;
Darwin4078
14/12/15 00:04
수정 아이콘
대학교 새내기때 영화동아리에서 프로젝션으로 틀어주는걸 봤습니다.
왜 그런데 가서 이 영화를 봤는지 기억은 잘 안나는데, 아마 쫓아다니던 여학생이 영화동아리에 있어서 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나란 남자, 그런 남자니까요.

보고나서의 느낌은 딱 두가지.
주인공, 얘네들 미친듯.
앞으로 프랑스 영화는 절대 안봐야겠다.

하지만, 프랑스 영화를 안봐야겠다는 다짐을 깨고, 또 한편의 레오 까락스 영화를 보게 되는데...
역시 위의 여학생 때문이지 않았나 싶은데요...
그게 나쁜 피였습니다. 아... 음... 도저히 안되겠더라구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겠다 싶었습니다.
건담, 마크로스, 나디아, 건버스터, 이런거나 보면서 항가항가거리던 보던 오덕이 뭔놈의 누벨 이마주... 크크..
bloomsbury
14/12/15 00:09
수정 아이콘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이해하면서 본 건 아니지만 저에겐 나쁜 피가 그런 영화네요. 달리는 드리 라방의 모습과 모던 러브..
김연아
14/12/15 00:15
수정 아이콘
정성일 해설의 시네마토크로 봤습니다.
역시나 정성일답게 굉장히 신선한 해석으로 시작해서 기승전정치로 마무리하는 능력에 박수를 크크크.

정성일이 미셀을 고양이로 해석하던데, 전 거기에 넘어갔습니다.
어차피 판타지와 리얼의 경계가 허물어진 영화인만큼, 미셀을 캣우먼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더라구요.
王天君
14/12/15 00:53
수정 아이콘
오 이거 보신 분이 계셨군요. 저도 최근에 봤는데 스토리보다는 미쟝센이 극도로 강조된 작품이더라구요. 제 취향은 아니었는데 90년대 삘이 물씬 나서 뭔가 반갑고 그랬어요
로고스
14/12/15 01:22
수정 아이콘
그만큼의 배역을 해내었던 줄리엣비노쉬라는 여배우를 보게 된 것만으로도 인생의 큰 축복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Neandertal
14/12/15 10:49
수정 아이콘
92년도에 국내에 개봉했을 때 기숙사 형이랑 같이 가서 본 영화로군요...
제가 우겨서 보기로 한 영화였는데 보고 나서 괜히 그 형에게 미안했다는...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 지...
Betty Blue 37˚2
14/12/15 11:20
수정 아이콘
미친영화죠... 영화 보는 내내 저도 책닭님 처럼 그들을 이성적으로 이해해보려 몇 번을 노력해 봤지만 그럴수 없었어요. 그들의 사랑을 이성이라는 잣대로 비정상적이라고 이야기 해버리기엔 그 사랑의 순수함이나 진실됨이 가져다 주는 감동을 설명할 길이 없겠더라구요.
사랑 본연에 가치에 중점을 두는 관계가 어려워진 요즈음에 그들의 미친 사랑은 그래 이게 사랑이지!!라고 외치는 것 같아서 불편하면서도 부럽기도 하고 뭐...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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