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2년, 고려의 북방에서는 나하추의 수만 군대가 몇달 째 암약하고 있었고, 고려 조정에서는 한참 뒤에야 북방 정세에 밝은 이성계를 상호군(上護軍) 동북면 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임명하여 나하추를 상대하도록 했다.
이성계는 덕산동(德山洞)의 초전에서 갑작스러운 기동력을 살려 나하추의 선봉대를 거진 격파했고, 달단동(韃靼洞)에서 이동 해 온 나하추의 본대에게도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성과를 거두었으며, 계속해서 갑작스러운 기습을 통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게 되자 나하추의 군대에도 피해가 누적되었고, 나하추는 그렇게 되자 대담하게도 이성계에게 대화를 제의했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나하추 였다. 나하추는 배짱 좋게 10명의 기병만을 이끌고 진 앞으로 나와 이성계에게 대화를 요구했고, 이에 이성계 역시 10여명의 기병과 함께 나섰다. 이에 양쪽의 최고 지휘관이 불과 군사 20여명만을 두고 만나는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나하추의 말은 이러했다.
“내가 처음 올 적에는 본디 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반성(潘誠) 등을 뒤쫓아 온 것이고, 귀국(貴國)의 경계를 침범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내가 여러 번 패전하여 군사 만여 명을 죽이고 비장(裨將) 몇 사람을 죽였으므로, 형세가 매우 궁지(窮地)에 몰렸으니, 싸움을 그만두기를 원합니다. 다만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나하추가 말한 사유, 관선생 등은 모두 고려에 침입했던 홍건적의 무리다. 나하추의 말 대로라면, 그의 고려 침입은 그저 홍건적을 쫒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으로, 원나라 세력인 나하추가 홍건적을 적대하는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좋게 좋게 말을 하는 나하추의 뒤를 힐끗 본 이성계는, '1만명이 죽었다.' 고 하는 나하추의 군대 형세가 되려 강력해 보이는 것을 목격한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이성계로서는 나하추의 말에 장단을 맞추거나 혹은 이를 추궁하거나 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성계는 장단을 맞추지도, 이를 추궁하지도 않았다.
그저 다짜고짜 요구했을 뿐이다.
"항복해라."
싸움을 그만두기를 원한다는 상대에게 다짜고짜 항복이나 하라는 식의 이야기도 당혹스럽겠지만, 이성계의 행동은 이에 한술 더 떴다. 이성계는 항복을 요구하면서, 나하추의 부장에게 곧바로 화살을 쏘아버린 것이다.
싸움을 그만두자고 말하러 왔는데, 되려 갑자기 화살 세례를 맞고 항복하라는 말을 들은 나하추로서는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휴전을 제의한 나하추의 제안이 사실일 가능성보다는 일종의 술수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보통 일반적이라면 이를 꾸짖고 추궁하는것이 먼저일테지만, 그런 말도 전혀 없이 일단 화살부터 쏘고 보는 것이다. 난장판 속에 심지어 나하추의 말 마저 화살에 맞아 나하추는 말을 2번이나 갈아 타야 했고, 이성계는 그런 나하추를 습격했다. 실록에서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於是大戰良久, 互有勝負。
이에 한참 동안 크게 싸우니, 서로 승부(勝負)가 있었다.
대전(大戰)이라는 표현을 보자면, 이 회담은 곧바로 전투로 돌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서도 이성계는 집요하게 나하추를 쫒고 있었는데, 이로 보자면 이성계와 나하추가 직접 대결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성계는 나하추를 계속해서 쫒았고, 나하추는 급하게 소리쳐야 했다.
“이 만호여, 우리 두 장수끼리 어찌 서로 핍박할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하추는 급기야 도주를 했고, 이성계는 급히 활을 쏘았으나 이는 나하추의 말을 맞추었을 뿐이었다. 나하추는 주위 병사가 말을 내주자 이를 타고 간신히 사지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이성계는 기병을 이용해서 이미 자기들끼리 서로 짓밞으며 완전히 규율이 무너진 나하추의 군대를 공격하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물러났다.
이 과정의 첫 시작은 그저 나하추가 "서로 휴전하자." 는 의사를 전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패전으로 이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이성계는 나하추의 제안에 대해 별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고 공격했을 뿐이다.
요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