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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9/09 15:32:22
Name 켈로그김
Subject [일반] 고향 다녀왔습니다.

금,토,일 3일간 병원 휴진으로 인한 휴가가 생겼습니다.
추석은 옴짝달싹 못하게 생겨서 이 참에 고향에 다녀왔지요.


1. 선물.

이번 고향행에서는 외할아버지,할머니를 뵙고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비싼걸 살 형편은 안되고.. 그러면서도 뭔가 해당 제품군 안에서 고품질이어야 한다는 압박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그러던 중, 아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
"동무, 타조고기 먹어본 적 있음메?" .. 는 아니고,
크고 아름다운 타조고기를 파는 농장이 근처에 있는데, 정 고르기 어렵다면 한 번 생각해보자고 하더군요.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타조고기로 결정.

+로 처가쪽 동서 형님이 어디서 메론을 엄청 들고 와서..
(구입한건 6kg고 스크래치난걸 비료포대로 2 포대를 거의 거저로 가져왔다고 하더군요.)
3kg정도 빼돌려서 그건 선생님 드릴 선물로 결정.

스크래치 심한 것도 하나 챙겨서, 저녁에 고향친구들 만나서 먹을 술안주로 당첨.

자. 고향 갈 준비는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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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동.

자고로 명절의 꽃은 귀향길 고속도로.
늘 버스나 기차로 이동하던 저는 자가용을 타고 고향에 내려가고 싶었습니다.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썬글라스 끼고, 거만하게 "어이 학생, 길 좀 묻겠네" 한 번 하고 싶었지요.
그리고, 드디어 이번 기회에 자가용을 운전해서 고향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소백산맥의 몽환적인 절경을 보면서 힘차게 출발했지만,
88고속도로의 옹졸함에 좌절하고
(공사중이라 왕복 2차선. 추월불가.. 레미콘과 트럭의 완벽한 콤비네이션으로 속도억제 효과까지..)
가스가 바닥난 에어컨 + 썬팅이 전혀 되지 않은 차 유리 + 오전9시~오후1시의 태양과 동남쪽으로 향하는 차의 방향에 협공도 당하고..


그렇게 빨피 간당간당하게 고향에 도착했습니다.
출발할 때도 보고싶었던 고향이지만, 길 위에서 그 마음이 백배는 더 커져버린
역대급 감동귀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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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생님. 우리 선생님.

그 감동 추스릴 새도 없이 저는 선생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토요일 근무가 끝나고 남자 휴게실에서 반주로 막걸리를 드셨고,
저는 그 개고생을 하며 차를 끌고온게 심하게 후회가 되었습니다.
나도 막걸리 맛있게 먹을줄 아는데.. 운전을 해야 되네..

선생님께서는 프로게이머가 일꾼을 나누듯 능숙하게 저와 가족의 안부를 물어보셨고,
"젊고 힘 있을 땐 아웃도어, 나중에 힘 딸리면 실내에서 놀거라" 라는 덕담도 해 주셨습니다.

너무 능숙한 것이 tm의 고객응대같기도 해서 살짝 서운할 뻔 하기도 했지만서도..
'저런 것이 어른의 화법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저도 익혀야 할 덕목이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왜 제 결혼식 때 주례를 서지 않았는지도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당시 계시던 곳이 남녀공학이었는데, 한 여학생이 불법을 저지르다 딱 걸렸답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이 진술하기를 "그 선생님이 시켰어요" 라고 하였고,
검찰이 기소하여 한창 공판이 진행중인 상황이었다고..
다행히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사람이 얼마나 수상해보였으면, 여학생의 진술만으로 검찰이 기소씩이나 할까.. 하는 생각도 잠시..)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멜론을 보관하는 방법과 먹는 방법을 열심히 가르쳐 드리고는 헤어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멋쩍게 웃으시며 "켈로그야.. 나도 멜론 먹어봤다" 라고 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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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되로 받고 말로 주는 우리 할배,할매..


이번 귀향의 컨셉은 "금의환향" 이었습니다.
특히나 어무이가 대차게 망해버린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시기 때문에,


결혼하고, 애도 낳고, 나름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비록 새롭게 생긴 빚이 더 많지만) 빚도 다 갚고,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거지요.
그러기에 살짝 무리를 해서 명절비용(제사, 음식, 명절용돈 등) 쓰시라고 봉투도 살짝 두툼하게 준비를 해 갔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손자 통장 만들어서 저금해놓으라고 제가 명절비용이라고 준비한 봉투보다 두 배는 두꺼운 봉투를 주셨고,
양봉업을 하시는 할아버지 친구분께서 두 분 드시라고 선물한 꿀을 제게 주셨습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 줄 모르니 항상 경계하고 조심하고,
자신을 함부로 남에게 내보이지 말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특히나 장사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고..

그리고 제가 잘 되어야 동생도 살고, 엄마도 살고
사람들도 켈로그 켈로그 하면서 찾는다고... 어떻게든 단디 잘 살아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당신들의 자식들 중에 가장 잘 배운 울어무이가 그렇게 되고,
다른 형제들도 그리 풍족하지 못하게 사는 모습이 마음이 많이 아프셨나 봅니다..

어무이한테는 올 추석에 들를 때 참고하라고 일러줘야 할 말이 생겼습니다.

"할배 할매가 엄마 오면 잡아먹을거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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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제 본론 시작. 일단 마시자.


언제나 1년에 두 번.
명절에 고향에 오면 저를 반겨주는 두 친구가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의 무용담(삽질)을 신나게 얘기해주고,
그 친구들은 울산 친구들의 사건.사고.소식을 종합하여 저에게 들려주는
등가교환의 법칙 하에 끈끈하게 맺어진 우정이지요.

이 날도 즐거이 웃고 떠들고 마시고,
오랜만에 노래방 가서 예전처럼 짖어도 보고,
정말 보람차고 생기발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에 제가 슬슬 감질이 오네요?
그래서.. 이번엔 평소와 달리 여관방을 잡고 1차를 추가로 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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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젠 몸이 예전같지가 않구나 친구야..


MT갈 때, 장보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저희가 갈 곳도 MT였고, 행복하게 안주며 술이며 담배를 챙겼지요.
벗과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일 수 있다는건 멋진 일입니다.


MT도 만족스러웠습니다.
[ 니들같은 애들한테 주는 방 ] 이라고 준비해둔 듯, 은은히 베어있는 술과 담배의 잔향이 아늑함을 자아내고
바닥에 군데군데 보이는 담배빵은 앞서 이 곳을 거쳐간 청춘들의 흔적.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초박형 콘돔까지
무엇 하나 거슬림이 없는 교과서적인 광경.

일단 새로운 술과 안주가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저는 큰 것 부터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의욕이 앞섰던 걸까요.. 찢어졌습니다.
쓰라림으로 시작한 증상이 거동이 불편해지더니
급기야는 앞에서 짠~ 을 요청하는 친구를 외면하고 똥꼬를 부여잡고 드러누워버렸지요.


그걸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준은 아니겠지만, 저는 밴드의 베이스기타로 약 3년을 활동했습니다.
그 때 단련이 된 핑거파워로 정성스럽게 운지하듯 꼬옥.. 누르니 통증이 누그러지더라고요..
술기운에서였는지.. '오늘 베이스 치는 꿈 꾸면 대박인데..' 하면서 혼자서 히죽히죽거렸는데,
제가 생각해도 참 미친놈처럼 보였을거 같습니다..;


-----------------------------------------------------


7. 어쨌든 잘 다녀왔습니다.

느낀 점은..
외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렇고..
긴 대화 속에서 '평가' 는 없고 '당부' 만 있었다는 점.
뭔가 걱정스럽고 불안해보이니 평가보다는 당부를 하시는 거겠지요.
걱정 안 하시게 단디(;) 잘 살아야겠습니다.

친구들은 항상 고맙습니다.
"켈로그 술먹자고 해놓고 똥꼬 찢어져서 gg쳤다" 는 소스를 던져준 걸로 올해 상반기 몫의 고마움에 대한 보답은 된 것 같고요.

이제.. 남은건..
이틀만 약국 봐 줄 사람 구해서 항문 레이저 찜질하러 가는 일만 남았네요.
일단 그 때 까지는 어떻게든 약으로 개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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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정말 이쯤되면 좀 지겹기도 합니다.
언제쯤 똥이라는 코드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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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디망디
13/09/09 15:39
수정 아이콘
떨어질 수 없는 운명...
켈로그김
13/09/09 16:55
수정 아이콘
사실 저만 그런건 아닐겁니다.. 다들 부끄러워서 말 못할 뿐이지..
13/09/09 15:42
수정 아이콘
저도 해외에 있다가 오랜만에 한국에 가서 선생님을 찾아뵜을때..(10년만...) 보자마자 제이름을 기억하시는걸보고
울컥하더군요...왜 울컥했는지 미스테리지만...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보니 선생님도 그냥 사람이셨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구요...학생때는 왠지 선생님이란 존재는 어려워서...그냥 먼 존재였는데 크...
켈로그김
13/09/09 16:55
수정 아이콘
그렇죠..
그런데 또 반대로, 저는 다시 선생님이 커 보입니다.
20대에 본 선생님보다 지금 보는 선생님이 더 어른처럼 보여요.
wish buRn
13/09/09 15:43
수정 아이콘
추석당일 하루쉬는데 부럽습니다 .
이른 추석연휴 알차게 보내셨네요.
켈로그김
13/09/09 16:54
수정 아이콘
저런..;;
저도 추석은 당일만 쉴 수 있어서 어쩌나 싶었는데 이번에 큰 기회가 찾아왔네요.. 다행히;
一切唯心造
13/09/09 16:11
수정 아이콘
기승전똥찢이군요...
아쉬울뻔했습니다 흐흐
켈로그김
13/09/09 17:05
수정 아이콘
저는 오늘 정말 힘드네요.. 앉았다가 일어설 때가 고통스럽습니다 ㅠㅠ
정말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같은 동작이 나오네요;;
13/09/09 16:34
수정 아이콘
초박형 콘돔과 MT, 그리고... 음? (아 이런 음란마귀..)
켈로그김
13/09/09 18:51
수정 아이콘
그리고 찢어진 똥꼬.. ;;
Darwin4078
13/09/09 16:38
수정 아이콘
항문출혈 조심하세요.
중2 시절의 그 기억이 떠올라서 흠칫합니다.
켈로그김
13/09/09 18:52
수정 아이콘
저는 오늘 정말 지옥을 보았습니다..
제 몸이 성치 않다는게 소문이라도 났는지 올해 하반기 들어 최고 바빴어요 ㅠㅠ
피가 찔끔 났을지도 몰라요..;;
저글링아빠
13/09/09 17:32
수정 아이콘
저런..

친구한테 소주 좀 부어달라고 하시지 그러셨어요..
켈로그김
13/09/09 18:51
수정 아이콘
친구야 입으로 좀 발라줘.. -0-;
13/09/09 18:05
수정 아이콘
추억의 책상은 보고오셨나요?
켈로그김
13/09/09 18:53
수정 아이콘
아마 그 당시 바로 교환(?) 했을거에요. 그 이후로 행방을 알 수가 없다는..
그래도 우리 마음 속에 있으니.. 그걸로 퉁치죠.
13/09/09 21:21
수정 아이콘
내가 이 글을 쓴 것은 사실 그 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기승전똥, 역시 피지알이고 그 가운데서도 켈로그님입니다.
켈로그김
13/09/10 09:46
수정 아이콘
"고향 어른들 만나뵙고 느낀 점" 을 쓰려고 했는데
정말 시기 적절하게 찢어졌네요..

과찬이십니다;;
tannenbaum
13/09/09 21:44
수정 아이콘
88고속도로의 멋짐을 아시는군요

군입대전 호기롭게 렌트해서 대구로 여행갈때 생각했었죠

과연 내가 살아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
켈로그김
13/09/10 09:51
수정 아이콘
본문에 적는건 깜빡했지만,
노면상황도 꽤 좋지 않더라고요.
예전에도 88을 탄 적이 있었는데, 왜 아무 생각 없이 또 거기로 갔을까.. 진입하면서 후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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