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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5/08 04:31:41
Name Judas Pain
Subject [일반] 책을 출간한 뒤에
2002년 08월 16일.

제가 PGR에 Judas Pain이란 아이디로 가입한 날입니다. 이전부터 피지알을 들락거리고 있었으니 실제로 피지알에 발을 들인 시기는 2001년 즈음일 겁니다. 많은.. 많은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 나는 스무 살이었고, 사상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믿었다. 그리고 내가 존재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느끼며 묘하게 아파하고 있었다. 어떤 때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자신감은 어떤 문제를 만나기 무섭게 사라져 버렸고, 실제 현실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무능은 나를 절망에 빠뜨렸던 것이다. 나는 음울하고 부박하며 외모는 단조롭고, 그러면서도 고집스럽고, 경멸을 할 때는 극단적으로 경멸하고 또 감동할 때는 무조건 감동하고, 밑도 끝도 없이 쉽게 인상을 받고, 더구나 어느 누구도 내 의견을 바꾸어 놓지 못했던 것이다.”
-폴 발레리-, <유레카에 관하여>

제가 불특정 다수를 향해 글을 쓰는 방법을 처음으로 배운 곳은 피지알이었습니다. 물론, 맞춤법도 배웠지요. 자신의 뜻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게 어떤 일이며 어떤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란 것을 그 조울증 같던 토론들이 아니었으면 저는 잘 몰랐을 겁니다. 타인을 설득시키는 과정은 자신을 설득시키는 과정이었고, 자신을 아는 것은 타인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타인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글은 기교가 아니라 자세에서 나온다는 것. 제가 피지알에서 직접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그리고 반면교사로서 받은 가르침입니다. 저는 지금도 연*^^*님의 ‘멋진 글은 멋진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란 한마디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자세를 굳이 다른 말로 풀자면 용기일 겁니다. 자신이 궁리한 바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으나 고민한 것 자체를 내놓고, 자의적 판단으로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취사선택해서 감추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그 평가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

저는 비열해지기도 쉽고 기교에 빠지기도 쉬운 유형의 사람이지만 용기를 갖고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중계권 파동 등으로 제가 피지알에 실망도 했고 필화를 일으켜 제가 피지알에 실망을 주기도 했습니다. 떠나기도 했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피지알은 늘 여기 그대로 있었죠. 가끔 트래픽이 나가긴 했지만. 저는 제가 이곳을 미워한 만큼 이곳을 좋아합니다.



2011년 4/15일에 책을 한 권 내게 되었습니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란 제목의 책입니다.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판했고 한윤형님 그리고 최태섭님과 공저한 물건입니다.  대부분 그 두 분의 역량으로 쓰여 진 책이지만 그럼에도 제가 이 책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면 피지알에서 배운 바들일 겁니다. 다행히도 책과 시류가 잘 맞은 데다 출판사의 지원으로 교보문고 사회/정치분야 2~3위에 랭크되고 있는 중입니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는 1998년 IMF 이후 한국에서 나타난 열정노동의 현상과 구조(이 부분은 개정판에서 좀 더 보강할 수 있을 것입니다)를 다룹니다. 그 시절에 바로 우리의 스타크래프트1이 출시되었지요. 이 책이 특수한 현상들을 보편화시켜 드러내고자 한 개념은 프로게이머들과 함께한 이곳 피지알러 분들의 지난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일 겁니다. 저는 이 책을 e스포츠 태동기부터 10여 년간 매니아 바닥에서 그리고 필드 언저리에서 구르면서 느낀 분노에서 시작했고 그러한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작지만 희망과 그 고민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 책 다음 언젠가의 이야기가 되겠지요.

편집의 문제로 그리고 제 역량의 문제로 담아내지 못하고 풀어내지 못한 많은 것들은 언제가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길 바랍니다.



글쓰기가 세상을 바꿀까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공저자들이, 그리고 우리가 고민한 문제를 공적 사회에 풀어놓았습니다.


항상 같은 곳에 있어줘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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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31 23:44
수정 아이콘
이 글을 보고 도서관에 희망도서신청을 했더니 오늘에서야 들어왔더군요. 내일 아침 일찍 대출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11/05/08 04:36
수정 아이콘
비록 본인 저서라고 해도 책광고가 여러번 욕먹고 삭제된 바 있습니다.
형평성에 의해 같은 전철을 밟게 될지 유명회원이기에 축하의 대상이 될지 운영진의 처리가 궁금해지네요.
Judas Pain
11/05/08 04:39
수정 아이콘
저는 이글을 해야 할 인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제가 피지알에 있었기에 나올 수 있던 책이고 그에 대한 인사를 한번이라도 할 수 있다면 만족합니다.

다만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까지 그러했던 대로 운영진의 판단을 존중하고 신뢰할 따름입니다.
FIAT PAX
11/05/08 04:44
수정 아이콘
헐 ....무려 이 책의 저자셨군요....;
약 1주전에 봤던 책인데 ( 3
"궁지에 몰리지 않는ㅡ정확히는 삶이 궁핍해지는 처지, 혹은 미래의 위험을 가지지 않고ㅡ 노력과 그로인한 발전은 불가한건가" 라는 생각에 두어달 관련된 책들을 한참 팠었는데,
(사견으로는)자본에 흡수된 노동과 가치에 대해 이런저런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척하고 쉽게 결과를 도출해버리던 저자편익주의의 기존 도서들에 질렸던 상황인지라 더욱 좋았습니다.
책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Judas Pain
11/05/08 04:48
수정 아이콘
재밌게 보셨다면 다행입니다. 엄청 긴장되네요.
벤카슬러
11/05/08 07:43
수정 아이콘
오오... 제목만 보고 "한 번 읽어 봐야겠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저자분이 pgr 네임드 회원이셨다니 놀랍습니다.
나중에 대학교 서점에 있나 한번 물어봐야겠습니다. ^^
승리의기쁨이
11/05/08 08:54
수정 아이콘
으음 제가 책은 정말 읽기 싫어하지만 한번 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박나세요 그리고 꼭 읽어보겠습니다. 꼭 친구가 책쓴거 같은 느낌이네요
ArcanumToss
11/05/08 09:36
수정 아이콘
책을 쓰진 않았지만 취미 생활의 일부로 책을 번역할 때 용어 정립과 교정을 봐 준 것이 세 권이 있는데 제 이름도 올라가 있는 게 있습니다. ^^
그래도 굉장히 뿌듯하더군요.
그런데 무려 공동저자시라니... 얼마나 기쁘고 뿌듯하고 기대되면서도 떨릴지 짐작이 됩니다.
대박내시길 빌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 봤는데 평이 좋군요.

저 : 한윤형 , 최태섭, 김정근

사회 평론가 한윤형과 칼럼니스트 최태섭, e스포츠 전문 기자 김정근이 모여서 쓴 책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는 '열정 노동'이라는 새로운 명령이 21세기 한국 사회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분석한 책이다. 저자들은 프로 게이머, 영화감독, 언론사 입사 지망생, 파티시에, 네일 아티스트, 청년 사업가 등 스무 명의 젊은이를 인터뷰하며 대한민국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청춘을 이용하는지를 면밀하게 탐구한다.

소개를 보아하니 김정근님이셨군요. ^^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기억해 두겠습니다.
구국강철대오
11/05/08 09:38
수정 아이콘
축하드립니다. 멋지네요.
11/05/08 10:23
수정 아이콘
책 가격에 조금 놀랐습니다.^^(1만3천5백원...500원이 패인님 지갑에 들어가는건가?;;)

읽다보니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라는 제목이 강태공 스킬이 아닌지 생각했습니다.("열정은 어떻게 노동을 은폐하는가"를 말하고자 한 걸로 읽었습니다)
세상물정에 어두운 사람인지라 인터뷰를 통해 20대의 상황과 고민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11/05/08 10:27
수정 아이콘
축하드립니다. 멋지십니다.
쉐아르
11/05/08 11:18
수정 아이콘
흥미있어 보이는 내용이네요. 기회되면 읽어보겠습니다. 축하드려요!!
marchrabbit
11/05/08 11:46
수정 아이콘
오, 평소 가끔 생각하던 분야의 책이군요. 멋지십니다!
지갑이 부실해 도서관에서 찾아읽겠습니다. ^^;
11/05/08 11:49
수정 아이콘
축하드립니다. 멋지십니다. (2)
오늘 오전 11:49에 댓글 단 사람에게 한 권 공짜로 주시는 이벤트를 하시면 더 멋져지실지도.. 는 개드립이고 정말 멋지십니다 흐흐
꼭 읽어봐야겠네요
11/05/08 12:50
수정 아이콘
연*^^* .. 혹시 연오랑 님이신가요? 실명이 아닌 실닉넴을 알려주셔도 좋을 꺼 같은데..으허허.
낭만토스
11/05/08 16:58
수정 아이콘
헐 사놓고 아직 짬이 나질 않아서 우선순위에 밀려 책장에 있는 책이네요 인문 사회 교육쪽 책을 좋아하는지라 순위권에 드는책은 보통 사놓고 읽거든요. 어이쿠야 틈틈히 읽어봐야겠네요. 저에겐 이쪽분야 책에서 프로게이머가 있다는게 굉장히 자극적이어서 손쉽게 손이 가더라고요

혹시나 여쭤볼것이 있다면 쪽지보내도 괜찮겠지요 하하

출간 축하드립니다^^
세이시로
11/05/08 17:26
수정 아이콘
축하드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축하 인사를 드려야 할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먼저 글을 올려 주셨네요.
'프로게이머'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한 논의로는 최초가 아닐까요? 의미있는 작업 하셨습니다.
책도 많이 팔리고 용기도 더 얻으셔서 계속 좋은 글쓰기 해 주셨으면 합니다...!
대한민국질럿
11/05/08 21:24
수정 아이콘
팬이었는데 책까지 내셨네요. 정말 의미있는 일 하셨습니다.

지금은 비록 해외라 읽어보지 못하지만 나중에 귀국하면 꼭 찾아서 읽어봐야겠네요.

책 많이 팔리시길 바랍니다. 또 축하드리고 힘내시길 바랍니다.
말코비치
11/05/08 22:11
수정 아이콘
책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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