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오늘이야말로 인력사무실에서 댓글알바 노릇을 하는 김국민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현 여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홍보글을 올리는 일하며, 과거 정권의 대통령이었던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가는 댓글다는 일에다가 SNS 작업까지도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일반적으로 댓글은 하나에 천원정도에 불과하는데 비해 SNS 알바는 그 몇 배에 가까운 돈이 들어오는 것이다.
댓글 10개에 만원, 트위터에 올린 글 5개로 2만원 - 아침 댓바람에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 동안 제대로 댓글알바도 못했던 김국민은 만원짜리 세 장이 손바닥에 쥐어질 때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이 삼만원이라는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맥주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여자친구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줄 수 있음이다.
그의 여자친구가 기침으로 쿨럭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라면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병원 한 번 제대로 가 본 일이 없다. 게다가 그는 병이란 놈은 병원에 가면 더 심해지기만 하고, 어차피 나을 병이면 푹 쉬면 낫는다는 자기의 신조에 충실하였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으되 반듯이 누워 가지고, 일어나기는 새로 모로도 못 눕는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병이 이대도록 심해지기는 열흘 전에 피자를 먹고 체한 때문이다.
그때도 김국민이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서 피자스쿨 피자 한 판과 맥주 두 캔을 사다 주었더니 민주가 천방지축으로 양손에 피자를 하나씩 들고 꾸역꾸역 먹었다. 마음은 급하고 전자렌지도 없어서 채 데우지도 않은 것을 민주가 양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 하더니만 그날 저녁부터 가슴이 땅긴다, 배가 켕긴다고 눈을 홉뜨고 지랄병을 하였다. 그때 김국민은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아놔 민주야. 누가 뺏어먹는다고 그리 급히먹다가 체해서 이 난리냐. 못 먹어 병, 먹어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하고는 여자친구의 뺨을 꼬집어 비틀었다. 홉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슬이 맺히었다. 김국민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하였다.
민주는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국민을 졸랐다.
“설렁탕은 소화도 잘 안 되는데 체해서 무슨 설렁탕이야,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겠구먼.”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줄 수도 있다. 주인 잘못 만나서 사료 한 번 제대로 못 먹고 있는 우리 강아지 노동이한테도 간만에 밥을 먹여줄 수 있다. 삼만원을 손에 쥔 김국민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아픈 손목과 손가락을 부여잡으며 점심을 먹기 위해 사무실 문을 돌아나올 때였다. 뒤에서 알바!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공무원이라는 것을 김국민은 단숨에 알아챌 수 있었다. 공무원은 다짜고짜로, “거 지금 상황이 급박해. 오늘 내로 댓글 삼백개 다는데 얼마면 되겠어?”라고, 물었다.
아마도 지금 발표가 되지 않은 여론조사 결과가 영 신통치 않아 어떻게든 뒤집어 보기 위해 맨발로 바삐 우리 알바들을 찾은 것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왜 구두를 채 신지 못해서 질질 끌고, 비를 맞으며 김국민을 뒤쫓아 나왔으랴.
“댓글 삼백개 말씀이십니까?.”하고 김국민은 잠깐 주저하였다. 자기가 지지하지도 않는 후보에 대한 댓글을 다는것에 대한 일말의 양심때문이었을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그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제 민주의 부탁이 마음에 켕기었다. 아침에 일하러 나가려 하는데 민주는 그 뼈만 남은 얼굴에 유일의 생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폭한 눈에 애걸하는 빛을 띠우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라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고 숨을 걸그렁걸그렁 하였다.
그때에 김국민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아 민주야. 정신차려. 우선 밥부터 벌어먹어야 될 거 아니냐. 지금 너 붙잡고 있는게 문제가 아니야.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일찍 들어와요.”하고, 목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댓글 삼백개. 다는데 족히 몇 시간은 걸리는 일이다.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 듯한 민주의 얼굴이 김국민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그래 댓글 삼백개에 얼마라는거지?”하고 공무원은 초조한 듯이 댓글알바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같이, “대선일이 이제 며칠 앞이더라. 삼일 남았던가..”라고, 중얼거린다.
“오십만원만 주십쇼.”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국민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돈 액수에 놀래었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 지가 그 얼마만인가! 그러자 그 돈 벌 용기가 민주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내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일 제이의 행운을 곱친 것보다도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오십만원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공무원은 고개를 기웃하였다.
“뭐가 비쌉니까. 원래 삼백개라고 하면 삼십만원인데, 빠른 시간내에 그 만큼 올리기 위해서는 어지간해서는 힘듭니다.” 하고 빙글빙글 웃는 알바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 흘렀다.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빨리 다쇼.” 관대한 공무원은 자기돈 아니라고 인심 팍팍 쓰더니 그런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댓글 삼백개를 다는 동안 김국민의 손목은 이상하게 거뿐하였다. 타자를 친다기보다 거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듯하였다. 키보드와 마우스도 오늘 따라 <스케이트> 모양으로 미끄러져 가는 듯하였다.
이윽고 슬슬 타자를 치는 이의 손목이 무거워졌다. 민주가 지지하는 야당 후보에 대한 욕설을 퍼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현듯 새삼스러운 염려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병자의 움쑥 들어간 눈이 원망하는 듯이 자기를 노리는 듯하였다. 그러자 멍멍하고 짖는 노동이의 짖음을 들은 듯싶다. ”거, 이제 몇 개나 남았나?.” 핸드폰 넘어 들리는 공무원의 초조한 부르짖음이 간신히 그의 귀에 들어왔다. 언뜻 깨달으니 김국민은 키보드를 놓은 채 엉거주춤 멈춰있지 않은가.
“아. 이제 백개만 더 달면 됩니다. 근데 피지알21이라는 곳은 가입하고 2개월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댓글을 못 달더라구요..”라며 변명을 하고, 김국민은 또다시 댓글을 달았다. 댓글수가 300개에 가까워질수록 김국민의 타자에는 다시금 신이 나기 시작하였다. 여당후보를 찬양하는 글을 올리다보니 정말로 여당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아름다운 세상이 올 것 같았다.
댓글 삼백개를 다 달고 나서 미리 계좌로 입금된 오십만원을 확인하고나니 돈을 거저나 얻은 듯이 고마왔다. 아픈 민주를 먹여살리기 위해 공사판도 나가보고 택배 상하차도 해보고 샤니 빵공장에서도 일해봤지만 이렇게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마치 졸부나 된 듯이 기뻤다. 핸드폰 너머 보이지도 않는 공무원에게 몇 번 허리를 굽히며, "당선 기원드립니다.”라고 깍듯이 재우쳤다.
어느 새 시간은 저녁 여섯시. 점심도 못 먹고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 보았더니 눈이 침침해진다. 굶주린 창자에서, 추운 사무실에서 어슬어슬 한기가 솟아나기 비롯하매 오십만원이란 돈이 얼마나 괜찮고 괴로운 것인 줄 절절히 느끼었다. 사무실을 떠나려는 그의 발길은 힘 하나 없었다. 온몸이 옹송그려지며 당장 그 자리에 엎어져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젠장! 점심도 못 먹고 배고파 죽겠네. 이런 빌어먹을!”
그는 몹시 홧증을 내며 누구에게 반항이나 하는 듯이 게걸거렸다. 그럴 즈음에 그의 머리엔 또 새로운 광명이 비쳤나니 그것은 <이러구 갈 게 아니라 좀 더 있다보면 사정 급한 높은 분들이 또 댓글을 달아달라고 할지 몰라>란 생각이었다.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 그런 요행이 또한번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하랴. 꼬리를 굴리는 행운이 꼭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내기를 해도 좋을 만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마침 인터넷을 보니 ‘국정원 여직원 인터넷 여론조작’ 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뭔가 연락이 올 것 같은 폼새다. 아니나다를까 채 십분도 지나지 않아 그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아, 거 나 김실장인데... 그 조심하라고. 댓글 단 거 어디가서 얘기하지 말고”
“아, 물론이죠 김실장님. 그런데 그.. 국정원 여직원 말입니다.”
상대편 전화기에서 입술을 꼭 깨무는 소리가 들린다. 김실장은 아무런 말도 없다. 김국민은 구걸하는 거지나 무엇같이 연해연방 그의 기색을 살피며, “그.. 국정원 여직원 관련해서 댓글을 또 달아야 되는게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하고, 뭔가 추근덕 대는 목소리로 김실장에게 물어본다.
“거 신경끄게,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니.” 김실장은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는 전화를 끊는다. 어랍쇼?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김국민은 고개를 갸우뚱 하며 퇴근 준비를 시작했다.
인터넷 생중계를 보니 국정원 여직원의 오빠라는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여론은 여전히 사그러들줄 모른다. 김국민은 원망스럽게 인터넷 생중계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는지 김실장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거, 이번 사건 관련해서 주요 커뮤니티에다가 댓글 50개 정도만 올리게.”
한동안 값으로 승강이를 하다가 육만원에 국정원 여직원 관련 댓글 오십개를 올리기로 하였다. 국정원 여직원 댓글을 달고 사람들과 키배를 하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밤 아홉시를 훌쩍 넘겼다. 이젠 정말 민주가 걱정되기 시작하는 김국민이었다.
저렇게 술이 취해가지고 이 빗길에 어찌 가노, 라고 길 가는 사람이 걱정을 하리만큼 그의 걸음은 황급하였다. 흐리고 비오는 하늘은 어둠침침하여 더욱 더 밤이 깊어진듯한 느낌을 주었다. 시청앞 지하철역에 다달아서야 그는 턱에 닿은 숨을 돌리고 걸음도 늦추잡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집이 가까와올수록 그의 마음조차 괴상하게 누그러웠다. 그런데 이 누그러움은 안심에서 오는 게 아니요,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을 빈틈없이 알게 될 때가 박두한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불행에 다닥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리려고 버르적거렸다. 기적에 가까운 벌이를 하였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 오늘만 해도 댓글알바로 59만원이나 번 것이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사면을 살피었다. 그 모양은 마치 자기 집 - 곧 불행을 향하고 달려가는 제 다리를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 누구든지 나를 좀 잡아 다고, 구해 다고 하는 듯하였다.
그럴 즈음에 마침 길가 세계맥주집에서 그의 동료 이시민이가 나온다. 그의 우글우글 살찐 얼굴에 주홍이 돋는 듯, 온 턱과 뺨을 시커멓게 구레나룻이 덮였거늘, 얼굴이 바짝 말라서 키만 멀대같이 크고 얼굴도 새하얀 김국민의 풍채하고는 기이한 대상을 짓고 있었다.
“어. 김국민씨, 오늘 댓글 많이 달았어요? 오늘 일이 많은 것 같더라고. 돈 많이 벌었을 테니 한 잔 먹고 가요.”
뚱뚱보는 말라깽이를 보든 맡에 부르짖었다. 그 목소리는 몸짓과 딴판으로 연하고 싹싹하였다. 김국민은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다. 자기를 살려준 은인이나 무엇같이 고맙기도 하였다.
“시민씨는 벌써 한잔 한 모양이네요? 시민씨도 오늘 벌이가 좀 짭짤한가보죠.”하고, 김국민은 얼굴을 펴서 웃었다.
“뭐, 상황이 상황이니까. 오늘만 해도 십만원은 넘게 번 것 같긴 하네요..”
맥주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감자튀김에 노릇노릇 치즈를 얹고 사우어크림을 뿌려놓았고, 나쵸에는 살사소스가 곁들여져 나오고 있었다. 먹음직스럽게도 기름이 좔좔 흐르는 독일식 소세지에 새콤한 프루트 칵테일까지. 이 너저분하게 늘어놓인 안주 탁자에 김국민은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안주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그래도 오늘 하루 종일 굶어 배도 고팠던 터라 찌개에 공기밥도 하나 청하여 맥주와 같이 먹었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알탕에 참치타다끼까지 다 비우고 말았다. 게다가 맥주도 카스, 하이트가 아니라 호가든에 하이네켄을 마셔버렸다. 시민씨와 같이 마시자 원원히 비었던 속이라 찌르르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하였다. 거기에 기네스도 또 한 병 시켜 마셨다.
김국민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이미 맥주만 여섯병을 넘게 마신 탓이리라. 게다가 거기에 청하도 두 병 더 시켰다.
시민씨는 의아한 듯이 김국민을 보며, “아니 오늘 왜 이렇게 많이 드세요? 벌써 안주값에 술값만 십만원은 나올 것 같은데....”라고 주의시켰다.
“아따 이놈아, 십만원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돈을 막 벌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뭐 얼마나 버셨길래 이리 마시시나?”
“삼백만 원을 벌었어, 삼백만 원을! 이런 젠장맞을 술을 왜 안부어……괜찮다 괜찮다,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돈 산더미같이 벌었는데.”
“어, 이 사람 취했구먼, 그만마셔요. 이제 집에 갑시다.”
“이놈아, 이걸 먹고 취할 내냐, 어서 더 먹어.”하고는 시민씨의 귀를 잡아채며 취한 이는 부르짖었다. 그리고 안주를 가져오는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듯한 알바에게로 달려들며, “이놈, 너도 이번 선거에 빨갱이를 찍을테냐! 이놈!.”하고 야단을 쳤다. 알바는 어이없다는 듯이 이시민씨를 보며 문의하는 듯이 눈짓을 하였다. 주정꾼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내며, “에미를 붙을 이 빨갱이 놈들같으니, 이놈 내가 돈이 없을 줄 알고.”하자마자 허리춤을 훔칫훔칫 하더니 오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어 알바 앞에 펄쩍 집어던졌다. 그 사이에 천원짜리 몇 장이 함께 바닥에 떨어진다.
“아씨, 돈 떨어졌네, 왜 돈을 막 끼얹나.” 이런 말을 하며 김국민은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는 듯이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짓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자 더욱 성을 내며, “봐라 봐! 이 빨갱이 새끼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뼉다구를 꺾어놓을 놈들 같으니.”하고 시민씨가 주워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하면서, 풀매질을 친다.
청하 두 병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가고 말았다. 김국민은 입술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이 입술을 쪽쪽 빨면서 “또 부어, 또 부어.”라고, 외쳤다.
또 한 잔 먹고 나서 김국민은 시민씨의 어깨를 치며 문득 껄껄 웃는다. 그 웃음 소리가 어떻게 컸는지 술집에 있는 이의 눈은 모두 김국민에게로 몰리었다. 웃는 이는 더욱 웃으며, “이봐요 시민씨, 내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 오늘 거 국정원 여직원 티비 나오는거 봤소?”
“그래서.”
“내가 말이야, 그걸 보니까 빨갱이 새끼들이 불쌍한 여성 한 명 감금해놓고 괴롭히고 있지 뭐야. 그래서 내가 그랬어. ‘야 이 빨갱이 새끼들, 다 감금죄로 집어 쳐넣어야 된다! 교사한 야당 대선 후보도 콩밥좀 먹어야 된다!’ 이리 댓글을 달았다고.”
술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벙찐 표정이었다.
“빌어먹을 종북 녀석들. 그런 녀석들이 활개를 치니까 우리같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거야. 나라 잘 살게 해주겠다는데 지랄하는 것들은 다 종북놈의 새끼들이야!.”
한창 호기좋게 호통을 치던 김국민은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시민씨는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아니 갑자기 또 우는 건 뭔 일입니까?”
김국민은 연해 코를 들여마시며, “우리 여친이 죽었어요.”
“뭐, 여친이 죽었어요?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 거짓말이죠? 오늘 ? 장례식장은 어쩌고?.”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 참말로... 여친 시체를 집어 뻐들쳐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입니다, 죽일 놈이에요.”하고 김국민은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시민씨는 깜짝 놀라 술이 깨는 얼굴로, “아니 그럼 지금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집으로 가야죠”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시민씨의 끄는 손을 뿌리치더니 김국민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 웃는다.
“죽기는 누가 죽어.”하고 득의가 양양.
“죽기는 왜 죽어요, 생때같이 살아만 있단다. 그 오라질 년이 밥을 죽이지. 오늘 저한테 속으신 겁니다 시민씨. 흐흐흐”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아. 미쳣어요? 저번에 안그래도 민주씨 아프다 그래서 깜짝 놀랐네.”하고, 시민씨도 어느 불안을 느끼는 듯이 김국민에게 또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안 죽었어요, 안 죽었대도 그러시네.”
김국민은 홧증을 내며 확신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이 있었다. 기어이 술값 15만원을 채우고 술집을 나서는 김국민이었다.
김국민은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에 다 달았다. 집이라 해도 물론 셋집이다. 그나마 대학가에서 원룸 방 한 칸을 세 든 것인데 밤마다 옆집 깨지 않게 조심조심 다녀야 하는 그런 집이었다. 자기만 믿으라며 꼬드겨 같이 야반도주한 26살 민주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이제는 행복하게 해줄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국민은 문을 열었다.
만일 김국민이 술만 마시지 않았던들 한 발을 문에 들여놓았을 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 -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렸으리라. 쿨룩거리는 기침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같은 침묵을 깨뜨리는 - 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강아지의 낑깅 거리는 소리가 날 뿐이다.
하여간 김국민은 방문을 왈칵 열었다. 낡은 방에서 나는 곰팡내, 가지각색 때가 케케히 앉은 옷내, 병인의 땀 썩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국민의 코를 찔렀다.
방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군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야. 최민주!,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낭군님이 오셨는데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낑낑 소리가 짖는 소리로 변하였다. 노동이가 갑자기 김국민을 보고 짖기 시작한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국민은 민주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꺼들어 흔들며, “민주야. 말을 해. 뭐하는거야! 이런 제길. 지금 뭐하자는거야!”
“…”
“으응, 이것 봐, 아무 말이 없네.” “…”
“민주야..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보네.”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천정만 보느냐, 응.”하는 말 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국민은 미칠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테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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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 긴 것도 아닌데 나눠 올리는 건 아닌 것 같아서 한 번에 올립니다. 방금 전 글에 댓글 달아주신 분들 죄송합니다.
* 아까도 언급했다시피 가상의 평행우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 다룬 패러디 문학입니다. 예술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실에 이런 일이 있을리 없잖아요?
*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동안 대충 작업한 초벌판입니다. 향후 계속 수정될 수 있습니다. 많은 지적 부탁바랍니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12-06 11:17)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